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4
정신을 차리고 세상에 적응하고 일주일쯤 되자 슬슬 내 앞으로도 일이 쌓이기 시작했다.
“삼촌…….”
“가주님, 나는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 무사히 돌아와서 기쁘지만…….”
차르니엘 에탐.
기억보다 조금 더 주름이 진 남자는 정말로 시원스러운 얼굴로 내게 차분하게 인수인계를 하기 시작했다.
“실무를 삼촌이 다 본 거예요?”
“동생들이 하나같이 제 일에만 관심이 많은 걸 어쩌겠니.”
“아빠는요……?”
“내가 떠밀어 주는 일이나 간신히 하더구나.”
내가 알기로 차르니엘 삼촌은 머리를 쓰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검을 쓰는 걸 사랑한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네게 인수인계만 끝내면 한동안 에탐 가문을 떠나려고 한다.”
“아…….”
“저 멀리 제법 비옥한 땅이 있던데, 신기한 식물도 난다더구나. 내가 네 다음 생일까지 반드시 선물로 마련해 오마.”
요컨대, 즉… 전쟁을 하고 싶다는 말인 듯했다.
“네 다음 생일엔 가주 작위를 정식으로 계승하는 발표가 있을 테니 말이다.”
내 다음 생일이라고 해도 이제 반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
“반년이면 충분하지.”
내 눈빛을 읽은 듯 차르니엘 삼촌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의욕이 어찌나 넘치는지, 눈을 뜨고 다음 날 맞이했던 다크서클이 늘어져 있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얼마나 갇혀 있었으면.’
괜히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인수인계면 빨리 나가 봐도 괜찮아요.”
내 말에 차르니엘은 체통도 집어던지고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원래 이 사람이 이렇게 안쓰러웠나…….’
꽤 카리스마 있고 든든하며 거대한 태산 같은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지난 7년간 어머니와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차르니엘 에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사실 내가 처리하는 일은 대부분 집사가 알고 있을 거야.”
“집사요?”
“아, 원래 있던 집사… 카일로는 아버지를 따라 다른 곳으로 내려갔어. 지금 있는 집사는 새로 뽑은 사람인데…….”
아직 소개를 못 해 줬구나.
그가 덧붙였다.
“조만간 사용인들이 네게 인사를 하러 올 테니 만나 볼 수 있겠구나.”
“그러고 보니 이 주변으론 사람이 거의 없네요.”
“네 유별난 아빠가 네 근처론 정해진 사용인 외엔 출입 자체를 금지했거든.”
그래서 내가 있는 층에는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았던 거구나. 의문이 그제야 풀렸다.
“근데 저, 어제 저택에서 수인을… 본 것 같은데요.”
“아…….”
차르니엘 에탐이 가볍게 웃었다.
내가 없는 동안 세상은 정말 바쁘게 돌아간 모양이었다. 고용인으로 보이는 이들 중에서 수인 한 명을 보고 조금 놀랐더랬다.
‘제국은……, 수인을 좀 혐오하지 않았던가?’
에탐 가문도 썩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일단 황제부터가 수인을 굉장히 불쾌하게 여겼으니까.
“일전에 그 하타르 사건 기억하려나?”
“네.”
여기선 7년이라지만, 내게는 겨우 3년 전의 일이었으니 기억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그때 꽤 많은 위로금을 뜯어냈거든.”
“……아.”
하긴, 감히 제국에 그런 중독성 있는 약물을 풀었는데, 가벼운 사과로 끝날 일은 아니었겠지.
‘내가 어려서 내 앞에선 그 정도로 끝낸 거였나?’
황제가 발을 벗고 나서서 정식으로 명령을 내렸으니 에탐 가문에선 최대한의 것을 뜯어냈어야 했을 것이다.
“그랬구나.”
“네가 말한 그 특수한 광석은 물론이거니와 거액의 보상금과 정식 사과문, 그리고 절대 국교를 하지 않던 그 나라의 국교를 강제로 열게 했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뜯어낸 모양이었다.
“아마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선 그쪽에선 우리 측 요구를 들어주는 게 최선이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무리 수인국이 대단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제국과 비교할 순 없을 거다.
“뭣보다 여기엔 네가 있었으니 말이다.”
“……나요?”
“그래, 드래곤의 이름은 생각보다 수인국에는 크게 작용하더구나.”
그러니까 날 팔아먹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차르니엘 삼촌은 영 어울리지 않는 낯으로 바람 소리만 나는 휘파람만 불다가 자리에서 슥 일어났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좀 교류하게 됐단다.”
“아하…….”
“덕분에 수인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개중에 널 동경해서 여기서 일하게 해달라는 수인도 있었고.”
“저를요?”
내가 뭐라고 동경까지 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전설 속에나 나오는 생물이라 그런 건가?’
의아함에 고개를 반쯤 기울였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스트레칭을 하며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러고 보니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열심히 읽고 온 이유가 있지.
‘소설의 꽃, 사업!’
나는 눈을 반짝였다.
에탐 가문은 물론 부자지만, 나도 돈을 쓸어 담는 멋진 부자가 되어 보고 싶었다.
일단 모두가 한다는 옷 사업부터 시작해볼까 했다.
‘역시 사업은 고모들이랑 얘기해야겠지?’
돈을 쓸어 모을 생각에 히죽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인수인계는 아빠에게 받을게요.”
“…크흠, 그러겠니? 일단 여기에 자료를 정리해 두긴 했단다.”
“……철두철미하네요.”
얼마나 빠르게 내게 떠넘기고 전쟁터로 나가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오늘 바로 떠나도록 하마.”
“오늘요? 이렇게 갑자기?”
“음, 네가 일어난 것도 봤으니까 충분하지.”
언제든 떠날 준비를 다 해 놨다는 게 더 신기할 노릇이다.
나는 어느새 훌쩍 멀어진 차르니엘 삼촌을 보며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못살아.’
그래도 이렇게 돌아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무척 행복했다.
“끙, 그럼 일단…….”
옷부터 사야겠다.
나는 빌려 입은 샤르네의 옷을 내려다보며 설핏 웃었다.
* * *
소문은 바람보다 빠르다고 했던가?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내 층에서 인수인계를 받는 동안 움직이지 않았는데, 내 앞으로 수많은 다과회와 연회 초대장이 오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바깥에는 요양 중이라고 했다고 들었는데…….’
내 요양이 다 끝났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듣기라도 한 걸까?
산처럼 쌓인 초대장을 보고 있노라니 새삼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칼란과 실리안, 샤르네에게서도 편지가 도착했다.
‘다들 아카데미에 다니는 모양이네.’
이제 와서 딱히 학교생활을 하고 싶진 않아서 나는 아카데미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말이다.
‘음, 기숙사제라 마음대로 못 나오는 모양이네.’
울분이 가득 적힌 편지를 가볍게 읽은 나는 그것을 잘 접어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다.
광기가 느껴져서 조금 무서웠다.
필 로즈먼트에게도 편지가 와 있었고 힐 로즈먼트에게서도 다과회 초대장이 왔다.
릴리안과 에노쉬에게서는 황궁 입궁을 요구하는 황명이 내려와 있었다.
‘……다 못본 셈 칠까.’
이거 전부 해결하려다간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부족할 거다.
“에이린.”
“아빠.”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니.”
“하지만 차르니엘 삼촌이…….”
“그 망할 인간은 원한다면 다시 잡아다 앉혀 둘 수 있단다.”
응, 그럴 거 같아서 내가 힘들다고 말 안 하는 거예요. 아빠.
신나서 말을 타며 초원을 달리고 있을 삼촌이 불쌍하잖아.
그리고 아빠라면 정말로 차르니엘 삼촌을 어떻게든 데려올 것 같단 말이지.
“아빠.”
“왜?”
“이제 이 층에 사람 들여도 괜찮아요.”
내 말에 아빠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빙긋 웃었다.
“그러니?”
“네, 오빠들도 아카데미에서 못 나오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졸업반은 졸업과제에 논문까지 내야 해서 나오는 게 하늘의 별 따기지.”
“아빠도 그랬어요?”
“설마.”
아빠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나왔지.”
“와, 다 하고 나온 거예요?”
“아니?”
“……그럼?”
“그냥 나왔다.”
아, 그냥 불량아였구나.
내가 조용해지자 아빠가 내 서류와 초대장을 가볍게 들쳐 보더니 그대로 들고 가 벽난로에 넣어버렸다.
“아빠…….”
“볼 필요 없다.”
“으음…….”
나도 물론 그럴 생각이긴 했는데.
‘막무가내라니까.’
그 덕분에 나는 핑계가 생기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무슨 사업을 할 거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말이야.”
“아…….”
내가 뺨을 긁적였다.
“들었어요?”
“그래.”
퍽 서운하다는 표정의 그를 보다가 나는 설핏 웃었다.
“주인공은 아빠예요.”
“나?”
“네, 아빠가 모델이에요.”
물론 아빠뿐만이 아니라 가족들이 전부 그 대상이 되겠지만 말이다.
미용부터 먹거리까지, 3년간 에이린으로 돌아오면 활용하기 위해 열심히 읽은 로판 짬밥을 이용해서 어디 한 번 제대로 판을 벌여볼까 싶었다.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