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6
“신님…?”
“잘 지냈니? 아가.”
소년이 내 뺨을 꾹 누르며 말했다. 나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날개 달린 어린애에게 뺨이 꾹 눌리는 것이 퍽 생소하기도 하다.
“갑자기……, 왜…….”
나는 당황스러움을 표현하는 것보다 지금 놀란 감정을 혀끝에 올렸다.
불안한 감각이 등줄기를 섬찟하게 스쳤던 탓이다.
“일단, 미안하다고 먼저 해야 할 것 같아.”
아르마가 두 손을 모으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말이 그렇지, 신이 한낱 인간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일단, 이것부터 설명하자.”
아르마도 퍽 난감한 듯 한참을 허공에서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머릿속을 정돈한 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
“너희가 있던 새까만 공간, 혹시 기억해? 그, 톱니바퀴가 있던 곳.”
“네.”
“거긴 에이린의 세계와 차미소의 세계의 중간쯤에 걸쳐져 있는 공간이었어.”
“……그랬어요?”
“응, 원래 세계와 세계는 왕래할 수 없는 게 일반적이야. 위대한 신인 내가 차미소의 세계에 간섭해서 널 물리적으로 구해줄 수 없었던 것도 마찬가지고.”
아르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신마다 원할 때 다른 세계에 간섭할 수 있다면 세계가 엉망이 되는 것도 분명히 순식간일 것이다.
내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아르마는 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원래 그 공간은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야. 하지만, 꿈꾸는 자는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이잖아.”
“……그랬죠.”
그 때문에 영혼을 세탁해가며 별지기들이 계속해서 이용한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 특수함 때문에 너희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너희들이 있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버린 거야.”
“네, 근데 그게 왜요…? 저희가 없어지면서 무너진 거 아닌가요?”
적어도 차미소의 영혼을 아르마가 수확했으니 유지될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아르마는 내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너져서 사라졌지.”
아르마가 말했다.
“하지만, 거기서 문제가 생겼어.”
“문제요?”
“사라진 구멍을 메우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는 거야. 구멍 난 옷을 수선하려면 실과 바늘이 필요하고 사람이 필요한데, 그건 단숨에 되는 일이 아니야.”
“아직 구멍이 남아 있다는 건가요?”
“아니, 구멍은 사라졌어. 대가를 지불해서 막았거든.”
“아…….”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걸까?
답은 내가 고개를 채 기울이기도 전에 흘러나왔다.
“근데, 내가 세계의 구멍을 메우려고 개연성을 수집하는 사이, 시간이 조금 비었어.”
“…….”
“세계에 작은 균열이 생겼고 그 틈으로, 별지기가 들어왔어.”
원래라면 절대로 세계선을 넘어서 올 수 없는 존재라고 덧붙인 아르마는 답답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설마.’
문득 머릿속에 확 뒤바뀌었던 차미소의 세상이 떠올랐다.
모두가 나를 증오하고 미워하던 그곳에 다시 돌아갔을 때 누구도 나를 증오하고 미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에 손을 쓴 것은, 별지기였다.
“그놈이 누군가의 몸으로 들어갔는지 전혀 감지가 되지 않아서…….”
아르마는 울상인 얼굴로 나를 보았다.
퀭한 눈을 보아하니 이 신이 이 이야기를 내게 전할 때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망설였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 별지기는 여기에 와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이미 눈 한쪽을 잃고 육체마저 잃어서 남은 건 정신과 눈 한쪽뿐이야.”
아르마는 내 질문에 대답하기보단 조금 더 설명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차오르는 것은 불안감뿐이다. 왜 단번에 대답해주지 않는 걸까?
“게다가 내 세계라 온전히 힘을 쓸 순 없겠지.”
아르마는 여전히 말을 덧붙였다.
어쩐지 시선을 피한다는 느낌도 살짝 들었다.
“다만……, 이 세계는 네가 소원하고 네가 염원하여 만든 세계니까, 엄연히 말하자면 네 소망이 꽤 많이 녹아있어.”
“…….”
어쩌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직감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어렴풋하게 느끼던 불안이 덩어리로 굳어져 현실이 되어 앞에 나타날 거라는 그런 직감.
“아가야, 너는 이 세계에서 네가 바라고 소망하던 것들이 이뤄지는 느낌을 종종 받았을 거야.”
“네.”
“사실 그건 상관없는 일이야. 세계를 창조한 네가 우대받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거든. 어느 세계에 가든, 어떤 세상에 있든 사실 창조주는 대접받아. 그래서 별지기는 결코 창조한 세계로 너희를 보내지 않아.”
하지만, 이번에는 이변이 일어났다.
나는…….
아니, 우리는.
우리가 창조한 세계로 넘어왔다.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다.
‘거기서 하는 게 끝인 줄 알았더니.’
세상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만 별지기는 꿈꾸는 아이를 관리하는 관리자이니만큼… 네게서 창조주의 권한을 빼앗을 수 있어.”
눈치를 보며 덧붙인 아르마의 말에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기도 예상하던 일을 뒤집어쓴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소설의 여주인공은 이 정도 시련을 주면 행복해지던데…….”
나는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가짜 여주인공은 그것도 힘든가 봐요.”
“창조주의 권한이 빼앗기면 지금껏 이뤄지던 소원은 이뤄지지 않나요?”
내가 외로울 때마다 사람이 나타난 것도 듣고 싶었던 말을 해 주던 사람들도 전부 창조주의 권한 때문이었던 걸까?
“그게, 강제력에 의했던 것들은…… 조금 그럴지도 몰라. 그러니까, 조건 없는 호의라던가 뭐든지 생각하는 대로 잘 풀리는 부분이라던가…….”
아르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론 너는 드래곤이니까 뭐든 원하면 다시 얻을 수 있어. 드래곤의 구슬은 네 소원을 이뤄줄 거야.”
드래곤의 구슬은 이 세계에서도 아주 강력한 아티팩트라며 덧붙이는 목소리엔 다급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무, 물론, 창조주의 힘과는 다르게 그래도 한계가 있기는 해서 인간의 감정까진 움직일 수 없지만…….”
나는 가만히 아르마를 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있잖아요, 신님. 제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건…….”
입술을 달싹이던 나는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울컥 차오르는 말을 목 안쪽으로 다시 삼켜냈다.
꿀꺽 움직인 목울대를 몇 차례 매만지다가 힘겹게 고개를 숙이자 천사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온 아르마가 나를 품에 안았다.
“아니야.”
“……네?”
“모든 게 거짓이었다느니, 전부 창조주의 권한으로 이뤄진 강제력이었다느니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물론, 이 세계에서 너로 인해 태어난 모든 것들은 악의로 똘똘 뭉쳐있거나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대부분 네게 호의적일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야.”
아르마는 내 머리통을 품에 꽉 끌어안은 채 말했다.
“누군가와 가까워진 것엔 분명히 어느 정도 그런 힘이 작용하긴 했겠지.”
아르마가 말했다.
나는 멍하니 아르마의 품에 안겨 눈을 질끈 감았다.
고생하다 돌아와 이 세계에 발을 디딘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 불행을 주는 것인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등을 떠미는 정도에 지나지 않아. 지금이야 네게서 느껴지던 청량한 기운이 조금 사라져서 혼란스러운 사람이 많겠지만…….”
아르마는 차분하게 내 머리를 토닥거렸다.
“곧 다들 알게 될 거야. 그 전부가 강제만은 아니었음을.”
하지만, 사실은 원망하고 싶은데 원망하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
아빠도 그렇고 칼란도 그렇고 실리안도 그리고 샤르네도 그렇다.
나로 인해 아내와 엄마를 잃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지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로 인해, 가질 수 있는 것 중에 많은 것을 빼앗겼는데… 나를 오로지 사랑해 주는 샤르네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 세계는 결국 내가 은연중에 그렇게 강하게 소원했기 때문에 이뤄진 일이겠지.
“별지기는 내가 잡아서 반드시 이 세계에서 추방할게.”
“…….”
“그러니까 그때까지 조금만 버티렴.”
그렇게 되면, 나는 또 강제력에 의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호의적으로 바꾸게 되는 걸까?
‘그럴 바엔 차라리…….’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아가야.”
아르마의 손이 내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절대로, 너를 버리는 생각은 하면 안 돼. 알겠지?”
“…….”
“네 불행은, 별지기의 힘을 키울 거고 네 영혼은 다시금 별지기의 손에 뺏길 거야.”
그때는 방법이 없다며 덧붙이는 목소리에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낼게요.”
내 대답을 들은 아르마가 활짝 웃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주변은 마치 한기가 도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