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7
“……저 아이가 정말로 에탐 가문의 차기 후계자라는 말인가요?”
“정말로 통탄할 얘기네요.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그렇지…….”
“멀쩡히 현 에탐 가주의 두 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애초에 드래곤이라는 건 언제 폭주할지도 모르는 아주 무서운 종족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도 되는 건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에는 호의가 담겨 있지 않았다.
호기심도 없었으며 오로지 그들이 품었을 의문만이 날카롭게 흘러나왔다.
사실 이게 당연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드래곤이 모든 인간에게 사랑받는다는 것 자체가 꿈같은 얘기였으니까.
그런 꿈속에서 살던 내게 드디어 꿈에서 깰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묵묵히 이야기를 듣다가 아빠를 흘긋 보았다. 아빠는 내 옆에 우뚝 서 있었지만, 평소완 다르게 굳은 낯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빠도 싸우고 있는 걸까?’
사실은 아빠가 나를 원망하고 있었으면 어쩌지?
원망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거라면? 괜한 생각이 드니 말을 할 기분도 아니었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아빠는 다행히 따라와 주었다.
나는 적당한 공간에 섰다. 사람들은 마치 내게 닿고 싶지 않다는 듯 내 주변에서 제법 멀찍이 떨어졌다.
주변이 휑해진 기분에 나는 조금 숙연해졌다.
“무서워서…….”
“괜히 폭주라도 하면 어떡해요? 드래곤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폭군이 다름없었대요.”
“기분이 나쁘면 사람을 죽였다던데…….”
“쉿, 다들 이러다 저 드래곤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호기심 위에는 늘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마 내 특성 때문에 두려움이 호기심의 아래에 눌린 것뿐이겠지.
‘피곤하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피곤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나오지 말걸.
‘에노쉬랑 릴리안도 바뀌었겠지?’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괜찮아.’
괜찮을 거다.
이런 시선은 늘 익숙했고 아르마는 곧 이걸 해결해 주겠다고 했으니까 기다리면 되겠지.
웅성거리는 소음들 사이에 있으려니 예전처럼 머리가 무거워졌다.
‘불행하지 않아.’
아빠도 있고 돌아가면 로랑도 있을 거고 아빠가 날 경멸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 모든 추억이 전부 강제력에 의한 거였으면 슬프긴 하겠지만.’
아르마가 전부는 아닐 거라고 했으니 그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 그리고 릴리안 데이지 영애께서 입장하십니다!”
우렁찬 소리에 나는 흠칫 어깨를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에노쉬는 괜찮을 거야.’
에노쉬는 처음부터 날 별로 좋아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분명히 괜찮을 거다.
‘그런데 왜 고개를 들 수 없는 거야.’
겁쟁이도 이런 겁쟁이가 없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에이린.”
그때였다.
머리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들자 에노쉬가 코앞에서 짓궂게 웃고 있었다.
“너 뭐하냐?”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인, 사?”
“인사는 무슨, 못 본 새 더 희멀건 반죽이 되어서는……. 어때? 나 황태자 됐다.”
에노쉬가 턱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축하해……?”
“너, 내가 황태자 안되면 얼굴도 안 볼 거라면서 반응이 그게 다냐?”
“아.”
내가 그랬지, 참.
“아, 됐고. 너한테 할 말 아주 많으니까 넌 오늘 집 돌아갈 생각은 하지도 마.”
“어…?”
“알았어?”
에노쉬의 사나운 시선에 나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래.”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조금 애매했다.
‘다행이다.’
에노쉬는 그래도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날 싫어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필사적으로 에노쉬를 살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고마워.”
“뭐가?”
의아한 기색의 그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크흠.”
멀리서 황제 폐하가 에노쉬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다. 에노쉬가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그를 보다가 나는 뺨을 가볍게 문질렀다.
“다행이다.”
“뭐가요?”
작게 중얼거리는 순간, 어느새 곁에 선 릴리안이 내게 물었다.
“릴리 언니.”
“오랜만이에요, 에이린.”
“…응, 오랜만이에요.”
화려하게 물이 오른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입가가 절로 허물어졌다.
원래대로였다면 악역으로 끝났을 그녀는, 이제 누구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원래 나는 참석할 수 없는데, 떼를 써서 왔어요. 에이린이 보고 싶었거든요.”
“저도요…….”
“거짓말.”
릴리안이 짐짓 서운한 듯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에노쉬와 오랫동안 함께한 탓인지 그녀도 사뭇 짓궂어진 것도 같았다.
“진짠데.”
“그런데 왜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어요?”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가 가볍게 웃음을 베어 물었다. 이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일이다.
“…사정이 있었어요.”
“우리가 걱정한다는 걸 언제쯤 에이린은 알아줄는지. 종종 속상해요.”
릴리안이 다소 과장된 목소리로 서운함을 표출했다.
황제와 황태자가 나타나니 웅성거리던 목소리도 사라졌다. 미래의 황태자 비가 곁에 있는 탓인지 흘긋거리는 시선도 덜했다.
“이젠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정말요?”
“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야 해요. 에노쉬가 황태자가 되고서도 당신이 오면 국혼을 진행하자고 했으니까요.”
“저요?”
“네.”
릴리안이 웃었다.
“나도 동의했고요.”
“……아.”
어쩐지, 왜 이미 성년식을 훌쩍 넘기고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건가 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걸까?
“그래서, 에이린.”
“네, 릴리 언니.”
“왜 그렇게 울적한 표정이에요. 그리고 왜…….”
릴리안의 입술이 아름답게 호선을 그렸다.
“에탐 가주께선 사랑스러운 딸이 날카로운 혀에 상처 입도록 놔두고 계시는지…….”
릴리안의 시선이 나를 비켜 아빠에게로 향했다.
“여쭤도 될까요?”
나를 대할 때의 웃음기 섞인 다정한 시선이 아닌, 서늘할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
아빠는 자신을 지칭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지만 입을 열어 대꾸하지는 않았다.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것이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아빠, 괜찮아요?”
“……그래.”
“분위기가 이상하네요, 평소에도 이곳은 혀에 칼을 문 사람들이 웃는 낯으로 춤을 추는 공간이었지만…….”
릴리안이 낮게 중얼거렸다.
“지금은 그 칼이 에이린에게 전부 향한 느낌이네요.”
그녀는 손을 뻗어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
순식간에 품에 안기게 된 탓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릴리안이 내 뺨을 두 손으로 붙잡고 코앞에서 가볍게 눈꼬리를 휘었다.
유혹이라도 하려는 것만 같은 행동에 눈을 크게 떴다.
“오늘은 에이린을 황성에 맡기고 가시는 건 어떠신지요? 에탐 공작님.”
아빠는 가만히 나를 보았다.
“오늘은, 그러는 게 좋겠군요.”
아빠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릴리안이 내 손을 가볍게 붙잡고 나를 이끌었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갈까요?”
릴리안의 말에 나는 급히 아빠를 보았다.
“아빠, 저는…….”
“미안하다, 내일 보자꾸나.”
아빠는 내 눈을 피한 채 다소 서늘하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나는 숨을 멈춘 채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싫어…….’
아빠는 내 아빤데, 대체 왜…….
두근.
두근.
심장박동 소리가 귀에 크게 들렸다. 아빠가 멀어지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자 호흡마저 가빠졌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옷자락을 꾹 쥐었다.
‘이건, 각인 때문인가?’
만약 각인이 깨어지면, 나는 이곳에는 있을 수 없게 되는 건가?
“에이린.”
그때, 릴리안이 나를 불렀다.
“…….”
“에이린, 정신 차려요. 그렇게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 이 사교계에선 순식간에 먹잇감이 된답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차분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아주 조금 현실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릴리 언니.”
“늘 아무런 얘기도 해주지 않더니 이제는 좀 기댈 마음이 들어요?”
어느새 그녀는 나를 응접실로 밀어 넣고 있었다. 내가 짧게 숨을 뱉자 그녀가 웃었다.
“주인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커다란 손이 눈을 가볍게 눌렀다.
듣기 좋은 미성은 앳된 티라곤 사라져 이제는 어엿한 성인 남성의 것이 되어 있었다.
“우셨나요?”
물어오는 목소리에 나는 그저 숨을 삼킨 채 고개를 저었다.
“루시…….”
내 부름에 그가 천천히 눈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눈앞에 불쑥 얼굴이 들어왔다.
“뭐? 울었다니……. 너 울었어? 어떤 새끼가……. 아니, 어떤 놈이….”
“…리하르트?”
“오랜만이야, 내 울보 용용이.”
“용용이 아니라니까…….”
네 것도 아니고.
웃으며 덧붙이자 리하르트가 손을 뻗어 내 뺨을 가볍게 훑었다.
“알아, 에이린인 거. 그래도 웃으니까 좋잖아.”
몸을 돌리자 그리워했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참 오랜만의 모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