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51
“아빠, 고모랑 삼촌들은 다 돌아갔죠?”
“대부분은 본인들 가문으로 돌아갔지. 여기 남아 있는 건 크루노 에탐과 하이엘 에탐뿐이야.”
아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험체…, 아니 신사업을 여는 덴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사업 때문에 그러냐?”
“네.”
“하지만 사람의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게 무슨 효용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신기하기는 하지만…….”
“사람뿐만이 아니에요. 옷감도 더 쉽고 빠르게 염색할 수 있고 조금 더 가공을 거치면 음식의 색을 변하게 할 수도 있어요!”
지금이야 별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아마 곧 굉장히 유행할 사업이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이 시대는 특히나 자기 PR이 중요하고 또 눈에 띄는 게 중요한 시대가 아니던가.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 미용에 크나큰 관심이 있었다.
조금 더 아름다운 옷을 추구하고 훨씬 더 예쁜 화장품이나 립스틱을 찾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머리색을 바꿀 수 있다? 이건 획기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보통 염색을 하기 위해서는 비싼 마법 약품을 사거나 아니면 몸에 좋지 않은 독한 약물로 머리색을 빼거나 감출 수밖에 없었다.
다만 독한 약물을 사용하면 머리에 두드러기가 나고 각질이 많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심했다.
하지만, 이 염색약은 달랐다.
원래 세계에서 을 처음부터 정주행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이 세계엔 특수한 돌이 있었다.
그 돌을 갈아 거기에 진흙을 섞고 열을 가하면 비율과 온도에 따라서 각종 다양한 색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머리에 펴 바르고 1시간 정도가 지나면 어느 정도 지속력이 있는 염색약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제 칼란이 색만 분리할 수 있는 뭔가를 개발해서 식용이 가능하게 되면 그걸 식용색소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지금도 천연이야 존재하기는 하지만……’
가격을 떠나 그 양도 적고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옷감을 물들이는 것도 더 쉬울 거고 지금보다 조금 더 다양한 색을 추구할 수도 있겠지.
게다가 지금은 옷감 원료의 색을 염색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옷감의 색을 희게 만드는 표백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도 흰색으로 염색을 한 번 해 버리면 훨씬 간단해졌다.
염색한 위에 또 다른 색으로 염색을 해서 무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색 조합도 가능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내가 생각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너는 엄연히 말하자면 나보다 더 많은 세계를,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오지 않았니.”
“아빠…….”
“그러니 내 시야와 네 시야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에이린.”
아빠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네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지금 이 모든 사태가 네 탓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론이 좋지 못해서 지금 네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 것은…….”
아빠는 최대한 말을 돌려가며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무던히 단어를 골랐다.
하지만, 오늘을 비롯해서 며칠간 아빠와 대화를 하고 루실리온과 에노쉬, 그리고 릴리안과 리하르트와 대화를 나눈 뒤로는 괜찮았다.
로랑도 여전히 나를 아껴주었고 테렘도 괜찮다.
고민하고 걱정하며 아카데미에 있을 세 사람에게 보낸 편지도 무사히 답장이 왔다.
이걸로 충분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하기를 바란 적은 없으니까.
“괜찮아요.”
나는 아빠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사업은 이름 모를 누군가로 시작할 거예요.”
“…에이린, 그렇게 되면.”
“평생 밝히지 않겠다는 거 아니에요. 다들 제가 드래곤이라 무서운 거잖아요.”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나도 내 주변의 누군가가 드래곤이라고 한다면 엄청 무서웠을 거다.
내 머릿속의 드래곤은 화를 아주 잘 내고 무서운 능력이 있고 또 굉장히 제멋대로인 성격에 신에 필적하는 강한 존재라고 하니까 말이다.
지금도 사실…….
“저는 원하면 얼마든지 싫어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세상에서 없앨 수 있어요.”
눈을 뜬 순간, 나는 내게 그만한 힘이 있음을 깨달았다.
내뱉는 숨마다 힘이 가득했고 생각만 하면 뭐든 이뤄질 것 같다는 감각은 한층 선명해졌다.
제대로 시도해 본 적이 없지만, 아마도 나는 커다란 몸체로 돌아가 나라 하나를 없애버리는 것이 꿈같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무언가가 끊어질 것 같았다.
영영 평범하게 살지 못하게 되겠지.
“분명 지금까지처럼은 지낼 수 없을 테니까요.”
“…….”
아빠는 내게 그렇다는 둥 대답을 하는 대신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널 존중한단다.”
“응, 하지만 아빠 외의 누구도 절 존중해 주지 않게 될 거예요.”
“……그렇겠지.”
아빠는 내 단호한 눈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순순히 긍정의 답을 돌려주었다.
“그러니까 제가 있을 자리는 제가 만들 거예요. 다행히 저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많으니까요.”
아빠의 입가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일단, 이 사업을 엄청나게 성공시켜서 번창시킨 다음에, 이 사업을 벌인 게 저라는 걸 알릴 거예요.”
“…그래?”
“네, 그러면 다들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될 테고 필요한 사람으로서 여겨줄 거예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나는 평범하지 않은 존재가 될 것이다.
주변의 사람이 하나둘 생을 마감하게 될 때쯤에는…….
“자선사업도 많이 하고 번 돈으로 열심히 사람도 도와주고 물론 저랑 아빠도 호의호식하면서 살아야죠.”
내 말을 듣던 아빠가 살짝 상체를 숙이더니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맞부딪혔다.
아빠가 맞부딪힌 이마를 가볍게 문질렀다.
“잊지 말렴.”
“뭘요?”
“네가 몇 살이 되든, 네가 어떤 존재가 되든, 네가 무슨 잘못을 하든, 설령 세상에 네가 혼자만 남더라도…….”
아빠의 황금빛 눈동자가 눈앞에 존재했다. 그 황금 속으로 어쩐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 아주 오래된 걱정을 들여다보듯, 아빠는 아주 먼 미래를 더듬듯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너는 내 딸이란다, 에이린.”
“……!”
늘 들었던 말인 것 같은데도 한결 다르게 들리는 느낌에 눈이 절로 커졌다.
“늘 말하잖니. 네가 언제나, 행복하길, 누구보다 행복해지길, 누구보다 건강하게 자라길.”
아빠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나는 늘 바라고 있단다. 그게 설령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는 일이 되더라도 말이다.”
이것은 지금 내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주 먼 미래에 혼자가 될지도 모르는 내게 남기는 말일지도 모른다.
“응, 그럴게요.”
나도 마주 웃었다.
“네가 정답이란다.”
아빠가 느릿느릿 이마를 떼고 굽혔던 허리를 펴며 말했다.
“네? 뭐가요?”
“공포를 주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는 법이지.”
“……네.”
“가주로선 아주 좋은 자세란다.”
아빠가 내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잘했다.”
와, 아빠가 칭찬해 줬어.
어쩐지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기분에 나는 활짝 웃었다. 아빠가 마주 웃었다.
“힘낼게요!”
“그래, 기왕이면 사업 하나를 더 벌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사업이요?”
“그래, 한 가지 사업보단 상반된 종류의 두 가지를 함께 진행해서 네 필요성을 조금 더 어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얘기지.”
“아하……, 생각해 볼게요!”
“그래, 그럼 나는 슬슬 나갈 일이 있어서 가보마.”
“네, 아빠!”
나는 폴짝 뛰어 아빠를 확 끌어안았다.
“사랑해요, 아빠.”
“…애교가 늘었군.”
“싫어요?”
“싫을 리가. 네 오라비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아카데미에 묶어둘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아빠가 짓궂게 말했다.
“저도 어린 시절의 그 여자에 대해 뭔가 더 기억나는 게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아빠가 몸을 돌려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 멀어졌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젖혔다.
“그 사람이 날 가짜 아빠한테 넘겨줬던 곳은 어딘지 알 것 같은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오늘 밤에 가봐야겠다.’
나도 알고 싶기는 했다. 왜 그날, 그 사람은 나를 개망나니에게 넘겨줬을까?
강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왜 그 사람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던 걸까?
엄마는, 나를…….
어떻게 가지게 된 걸까?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드래곤을 가졌다는 건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인가?
생각하다 보니 한숨이 푹 흘러나왔다.
‘창조자면 뭐해, 모르는 게 더 많은데.’
정말 유명무실이란 이럴 때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 보자.”
어차피 밤은 금방 돌아올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