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53
“으아아악!”
퍽!
퍽!
퍽!
나는 비명을 지르며 열심히 쟁기질을 했다. 으어억, 짜증 나. 땅은 왜 이렇게 돌이 많은지 모를 일이다.
‘하아…….’
쟁기를 가지고 열심히 돌을 솎아내고 던져내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줄줄 쏟아졌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눈앞이 뱅글뱅글 도는 기분에 숨도 퍽 가빴다.
‘이렇게 체력 없는 드래곤도 없을 거야.’
미리미리 운동해 둘 걸 그랬다.
드래곤에게도 운동 부족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알까?
“진짜 성격 나쁜 사람이었어.”
나는 쟁기를 바닥에 박은 채 몸을 기대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만히 있으려니 어제 그 퍼플이라는 이름의 드래곤과 헤어지기 직전의 장면이 떠올랐다.
* * *
“부탁이 뭔데요…?”
“뭐 간단하단다. 이 목록에 있는 걸 구해다 주면 돼.”
그녀가 내게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종이를 살펴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전부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무언가였지만, 구하려고 한다면 구하는 게 썩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거만 구하면 되나요?”
“그래, 이것만 구하면 되지. 단!”
그녀가 웃었다.
“드래곤의 능력은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 조건이다.”
“네?”
“그리고 전부 너 스스로 해낼 것. 마법을 써서도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누군가를 협박해서도 안 되고 마법으로 겁을 줘서도 안 된다.”
어깨가 멈칫 굳었다. 생각지도 못한 조건이었다. 내가 당황해 눈을 끔뻑거리자 그녀가 웃었다.
“어렵다면 언제든지 포기하고 내 말동무해 주면 된단다.”
“……합니다, 할 거예요.”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해내야지 어쩌겠는가.
“그래? 그럼 다 한 뒤에 내 이름을 부르렴. 그러면 네 앞에 나타날 테니까 말이야.”
“알겠어요.”
“너는 인간을 위해 움직이는 거겠지?”
모습을 감추기 직전, 퍼플은 마지막에 내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하다가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지.”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별을 알지 못했다. 끝이 오고 마지막이 오면 세상에 남는 것은 나뿐일 거라는 것도 몰랐지.”
“…….”
“인간과 어울리는 것은 그리 추천할 만한 일이 아니란다.”
“…선배님께서 신경 쓸 일은 아니에요.”
퍼플의 말에 나는 짤막하게 대답하곤 몸을 돌렸다. 다시 돌아봤을 때, 그녀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 * *
짧은 상념에서 벗어난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가 제시한 목록을 다시 꺼냈다.
구깃구깃 접혔다가 폈는데도 종이에는 한 점의 구겨짐이 없었다. 뭔가 마법을 걸어 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다시금 차오르는 분노에 종이를 콰드득 구겼다.
까다로워도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저것들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해서 온갖 서적을 다 찾아봐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일었다.
‘아냐, 이걸 하면 알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오백 년을 버릴 순 없었다.
아무도 오백 년을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중한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단 한 번밖에 없을 소중한 시간이니까.
“저, 저기…….”
열심히 쟁기질을 하는 동안 한참을 서성거리던 몇몇 사용인이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얼마 전에 로랑도 내게 자기가 하겠다고 매달리기에 다른 일을 하러 보낸 참이었는데 말이다.
“아가씨.”
“응?”
“그, 이런 궂은일이 필요하시면 저희가 해도 괜찮습니다.”
“아냐, 내가 할 거야.”
내가 해야 되고.
“걱정해 준 거야? 고마워.”
생긋 웃자 하녀의 얼굴이 발갛게 확 달아올랐다. 그녀가 당황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래도…, 밭이 너무 넓어서 혼자 하시기엔 힘드실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이상한 무를 500개나 심어야 하니까 당연히 넓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망가질 것을 대비해서 100개 추가로 한다고 생각하면 이 밭도 빠듯할 것이다.
“나 혼자 해야 돼. 그런 약속이야.”
나는 손등으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다시 쟁기질을 시작했다.
“그, 그럼 저희가 돌을 좀 골라내는 것도 도와드리면 안 될까요…?”
울상인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뭔가 괴롭히는 것처럼 보일까?’
그렇지 않아도 미움받고 있는데, 여기서 더 점수가 깎일 걸 생각하니 제법 마음이 아팠다.
“이건 내가 해야 해서…….”
그 드래곤이 어디까지를 타인의 도움으로 간주하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최소한 재배에 필요한 모든 일은 직접 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그럼, 바깥에 던져두신 돌을 좀 치우고 음식이나 물을 좀 가져다드리는 것은 괜찮을까요?”
“아, 응. 그건 괜찮을 것 같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안절부절못하던 이들의 얼굴이 한층 펴졌다.
‘잘릴까 봐 그런가?’
하긴, 가주가 노동을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겁에 질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래서 고용주는 난감하다니까.’
나는 다소 분주해진 이들을 두곤 다시 쟁기를 쥐고 열심히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산성도 5.6에서 5.8은 뭔데…….’
마도구 중에 산성도 측정기가 있다고는 들었다.
“으아……, 더는 못하겠다.”
돌을 치우는 하녀들이 물과 가볍게 먹을 음식을 가져다준 뒤에도 한 시간쯤 일을 더 했다.
그리고 그게 내 한계였다. 팔다리가 바들바들 떨려서 정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것도 설마 마법으로 치료하면 안 되는 건가?’
정말 알려 주려는 건 맞겠지?
괜히 괴롭히려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한들, 결국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갓 태어난 사슴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걸어가려는데 순간 몸이 크게 기울어졌다.
“악!”
넘어진다.
내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뻗어온 팔이 나를 단단하게 붙잡았다.
“아빠?”
“…가 아니다만.”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크루노 삼촌?”
“그래.”
“와,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지.”
몸에 힘이 풀려서 절로 웃음이 비실비실 흘러나왔다. 내가 고개를 젖히자 크루노 삼촌의 미간에 금이 갔다.
“……오늘은 애들이 없네요?”
“있다, 잘 지내고 있어. 새끼도 낳았다.”
크루노 에탐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설핏 웃자 그가 나를 품에 번쩍 안아 들었다.
“제, 제가 걸을 수 있어요!”
“정말?”
크루노 에탐이 짓궂게 물었다.
“음, 사실 아니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그냥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
“와, 언제 이렇게 강해졌어요? 나를 안고 가시네.”
달리기만으로도 나를 쫓아오지 못하던 체력 고자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나도 조금 달라져야지.”
그가 말하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긴다. 설핏 웃는 낯 아래로 그의 여유로움이 보였다.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나는 팔을 뻗어 삼촌의 목을 끌어안았다.
“또 무슨 일을 벌이는 거냐? 이 사고뭉치야.”
“일 벌이는 거 아닌데. 삼촌은 내가 뭐만 하면 일을 벌인다네.”
“…퍽이나.”
코웃음을 치는 목소리에 나는 입술을 툭 내밀었다. 너무 하네.
“또 혼자서 짊어져야 하는 일이냐?”
나직하게 묻는 목소리엔 비웃음보다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를 보다가 꾹 입을 다물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게 맞는 모양이군.”
“으, 진짜 내 말 너무 안 믿는 거 아니야? 삼촌 밉다.”
“미움을 받아서 널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차라리 그러고 싶구나.”
크루노 삼촌의 말에 눈이 절로 커졌다. 입술 끝이 절로 허물어졌다. 나를 위해 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까, 나도 열심히 하고 싶은 거야.
“위험한 일이냐?”
“전혀 아니에요. 귀찮은 일이지.”
“기댈 수 없는?”
“응, 기대면 안 된대. 아니었으면 나도 삼촌이랑 아빠한테 후다닥 달려가서 도와달라고 했을 거예요.”
내가 목소리를 높이며 과장된 낯을 하자 크루노 에탐이 픽 웃었다.
“알겠다.”
어느새 문 앞에 도착했다. 삼촌은 나를 침대에 앉혀주곤 손을 뻗어 머리를 꾹 눌렀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하도록 해. 너는 늘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니까 말이야.”
“네.”
“그러면서도 무모하게 혼자서 하려고 하고.”
“잔소리 그만.”
내가 귀를 틀어막자 삼촌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은 일하지 말고 좀 쉬거라.”
“네에.”
“아, 맞다. 삼촌. 티안 메이플의 푸른 철, 신록의 거울, 새하얀 그란 푸르스, 붉은 광산에 사는 설표 중에 혹시 아는 거 있어요?”
얘기를 듣던 크루노 삼촌의 표정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나가려던 그가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