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54
“그 이름은 어디에서 들었지?”
“네?”
“전부 흔히 쓰이지 않는 것들이다. 게다가 신록의 거울이라는 단어는 이제 거의 잊혔을 텐데.”
크루노 에탐의 말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가 이것들 중 하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보단 불쾌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왜요? 뭔가 문제가 있나요?”
“신록의 거울을 대체 어디서…….”
그는 말끝을 흐렸다가 이내 짧은 한숨을 토했다.
“됐다, 네 일이니까 분명히 또 뭔가 있었겠지. 대체 어디서 이런 소문을 들어오는 건지 모르겠군.”
그는 나를 포기한 사람처럼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어깨를 으쓱이곤 팔짱을 꼈다.
“신록의 거울은 신전이 보유한 성유물 중 하나다.”
“성유물이요?”
그런 걸 구해 오라고 하네.
“그래, 삿된 자가 손을 대면 금이 가고 부서진다는 거울로, 누군가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들 하지.”
“……귀한 거네요?”
“그래, 보는 것도 어려울 거다.”
“그렇구나…….”
그런 걸 구해 오라고 하다니 대체 그 드래곤은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한 걸까?
‘설마 망하라고 고사 지내는 건 아니겠지?’
일부러 불가능한 미션만 준 거라면 그거야말로 사람 기분을 바닥에 가라앉게 할 것 같았다.
‘아냐, 그래도…….’
방법이 없다.
“뭣보다 그 거울의 위치를 아는 건 대신관 뿐이지.”
그러면 루실리온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눈을 반짝거리자 크루노 삼촌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것처럼 코웃음을 흘렸다.
“정식으로 대신관이 된 자에게 입으로 전해지는 내용이다.”
“……네?”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스쳤다.
현 대신관인 루실리온은, 전 대신관을 쫓아내고 자리를 차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식으로 대신관직을 양위받은 것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사기였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크루노 삼촌이 말했다.
“사, 사기라뇨. 나름 정당한…….”
“사기였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는데.”
어딘가 기록이 남아 있겠지. 그것도 아니면…….
“찾아가서 알려 달라고 하면……!”
“죽었다.”
“……네?”
“대신관은 나이가 제법 있었고 병도 있었지. 운동을 거의 안 했거든.”
“아…….”
그거참 현실적이고 서글픈 이유였다.
“그래서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다.”
“……네에.”
말문이 턱 막힌 터라 이제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게 됐다. 그럼 이제 신록의 거울이 있는 곳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건가?
‘입양각에도 이런 얘기는 없었는데.’
신록의 거울이니 뭐니 알게 뭔가.
세계를 창조를 했다는 나도 모르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불만스럽게 입술을 툭 내밀고 있자 크루노 에탐이 나를 보았다.
“티안 메이플은 고대어에서도 소수만 사용했던 마어(魔語)다. 꽤 잊혀진 단어긴 하지만……. 요즘도 쓰는 놈들이 있다면, 마탑 쪽이겠지.”
생각지도 못한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나는 크루노 에탐의 의외의 면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삼촌 생각보다 똑똑했구나.”
“……간다.”
크루노 에탐이 대번에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홱 돌렸다.
“삼촌!”
나는 펄떡 뛰어올라 삼촌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사랑하는 천재 삼촌, 이렇게 가면 안 됩니다.”
“이, 이거 안 놓나! 가주가 어디서 체통 없게!”
나보다 더 새하얗게 질린 크루노 에탐이 다리를 탈탈 털었다. 물론 나는 다리를 꽉 붙잡은 채 삼촌의 다리에 덜렁덜렁 매달렸다.
“당장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을……!”
“넵!”
삼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다닥 침대에 다소곳이 앉자 크루노 에탐의 눈이 확 가늘어졌다.
그가 짜증 난다는 듯 혀를 차더니 나를 다시 보았다. 당황한 표정이 퍽 재밌었다.
“붉은 광산은 알지만, 그 안에 설표가 산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수인국에 사방이 붉게 보일 정도로 열기가 가득한 광산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수인국…….”
아주 전국 일주를 넘어 세계 일주를 시키네. 내가 질린 낯을 하며 고개를 푹 숙이자 크루노 에탐이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전부 네가 할 생각을 하지 말고 사람을 시켜.”
“안 돼요. 직접 해야 한단 말이에요.”
“대체 왜?”
“그런 약속이에요.”
“네가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걸 그놈은 알고 있나?”
“그놈이요?”
고개를 기울이자 크루노 에탐이 퍽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네 아버지 말이다.”
“아뇨, 근데 삼촌처럼 무슨 일이 있구나 짐작은 하지 않을까요? 아빠는 모르는 게 없으니까…….”
나는 뺨을 살짝 긁적이며 말했다. 크루노 에탐의 표정이 퍽 심각했다.
“하지만……. 진실을 알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걸요.”
그 사람만이 이 모든 일의 진실을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란 푸르스는 뭐에요?”
“참 누군지 몰라도 오래된 고대어를 종류별로 잘도 알고 있군. 그란 푸르스는 이 제국의 국목(國木)이다. 그란 푸르스는 이제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오래된 단어지. 지금은 파룬 나무로 불린다.”
그걸 삼촌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신기하네. 내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자 삼촌은 어딘가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취미가 고대어책을 읽는 거였다.”
“……아하.”
어쩐지 어울려서 의미심장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크루노 삼촌이 불쾌한 표정을 했다.
“당장 그 불손한 얼굴 치워라.”
“맨날 얼굴 치우래.”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크루노 삼촌이 냉큼 나를 노려보았다.
“네가 지금 거울을 보던가.”
나는 흘끗 삼촌을 보곤 헛기침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국목이면 하얀색 그란 푸르스도 있어요?”
“있다.”
“어디에요?!”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려나 싶어 눈을 반짝이자 크루노 에탐이 창밖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고개를 돌리자 멀리 황성의 높이 솟은 첨탑이 보였다.
“황성.”
“황성이요?”
그러면 에노쉬에게 살짝 부탁해 볼 수 있는 걸까?
수확만 내가 직접 하면 되는 거겠지. 협박하지 않고 부탁으로 얻어 낼 수 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 나무도 열매를 맺어요?”
“파룬 열매는 식용이 아니다.”
“아……, 그러면…….”
그 열매는 더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새하얀 국목은 오래된 탓인지 병에 든 탓인지 꽃을 피우지 않은 지도 꽤 됐다고 들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열매도 맺을 수 없다.
그 망할 드래곤, 정말 나 엿 먹으라고 불가능한 일만 던져 준 거 아니야?
애초에 청화무 토지 산성도를 자라는 내내 유지한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갑자기 내리는 비나 건조해지는 날씨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비닐하우스 같은 걸 설치해야 하는 걸까?’
근데 이 시대에 비닐로 쓸만한 게 있던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지금까지도 마법에 의지하면서 살아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법으로 하면 해결될 일들을 마법으로 할 수 없게 되니 제법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늘 뭐든 가능할 것만 같았는데 말이야.
‘아냐, 포기하면 안 되지.’
어떻게든 해내야지.
지금껏 아빠가 뭔가를 바란 적이 있던가? 늘 아빠는 한 걸음 물러서 있는 느낌이었다.
“하나씩 해 봐야겠어요.”
일단 청화무다.
“고마워요, 삼촌.”
“…고마우면 앞으론 사라지지 마라.”
크루노 에탐이 내게 말했다.
“아이들이, 널 많이 그리워했다.”
“아이들이요? 아…….”
나는 서툴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약속. 이제 아무 데도 안 가요.”
어떻게든 버텨내고 말 것이다.
“그래, 무리하지 말아라.”
“네에.”
“다음에 한번 놀러 오고.”
“네.”
크루노 삼촌이 방을 나섰다. 나는 짧은 숨을 뱉으며 종이와 펜을 꺼내 일정을 정리했다.
“할 수 있어.”
그 드래곤이 정말로 나를 괴롭히려는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한들, 불가능한 일을 내어주진 않았겠지.
‘이렇게 믿는 수밖에 없어.’
그렇지 않으면 의욕이 꺾일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 * *
“완서어엉!”
나는 제법 번듯하게 선 비닐하우스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고생하며 시장을 한참이나 돌아다닌 끝에 제법 그럴싸한 밭을 만들 수 있었다.
‘마도구가 있어서 다행이야…….’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쑥쑥 자라야 한다.”
나는 아직 싹도 자라지 않은 땅 위를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아가씨, 콜린 공자님이 오셨습니다.”
“아, 응. 몸만 씻고 금방 간다고 해 줘!”
리하르트에게 며칠 전에 편지를 썼는데 다행히 리하르트는 흔쾌히 달려와 주었다.
이렇게 늘 고맙게 부탁을 들어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몸을 씻고 로랑에게 새 옷을 받아 갈아입은 뒤 나는 곧장 응접실로 뛰어 내려갔다.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앉아 있던 멀끔한 낯의 리하르트가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환하게 웃었다.
“에이린, 보고 싶었어.”
리하르트가 두 팔을 벌렸다.
“얼마 전에 봤잖아.”
“그래도.”
나는 가볍게 그의 몸을 마주 끌어안고 놓아주었다.
“와 줘서 고마워, 리하르트.”
“천만에.”
씩 웃은 리하르트가 나를 에스코트해 소파에 앉혀주곤 그 맞은편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