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56
“…….”
남자가 지팡이를 든 손을 천천히 올리더니 그 둥글고 묵직해 보이는 지팡이의 머리 부분으로 리하르트의 머리통을 제대로 후려쳤다.
“악! 왜 때려!”
“스승이 말을 할 때는 끼어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기껏 분위기 좀 잡아보려고 했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아, 분위기는 무슨. 소름 돋았잖아! 쓸데없이 분위기를 잡긴 왜 잡아!”
“아, 네놈 같으면 안 그러겠느냐?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무게 안 잡을 부모가 어디에 있어!”
“미친, 내 아버지 죽이지 마! 멀쩡한 아버지 두고 왜 스승이 내 부모 행세야?!”
리하르트가 씩씩거리며 마탑주, 로 추정되는 사람의 멱살을 붙잡아 짤짤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탑주, 로 추정되는 사람이 리하르트의 머리채를 붙잡아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두 사람은 개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두 사람의 개싸움을 구경했다.
‘음, 맞는 말이긴 하지.’
콜린 공작님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아버지 행세를 하는 건 조금.
나는 가만히 리하르트의 편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탑주, 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를 매섭게 보았다.
“자고로 사제의 연이란 부모 자식의 연보다도 더 깊다고 했지!”
“또 무슨 이상한 말을…… 아악!”
“나는 무려 마탑주다! 마탑주의 사제의 연은 당연히 부모 자식의 연보다 더 진하니 표현상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거지! 나는 네 아버지와 동일한 선상에 위치할 수 있다는 거다!”
음, 이렇게 들으니 마탑주의 말도 또 옳은 것 같고.
나는 마탑주 쪽으로 또 고개를 기울이다가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리하르트가 헛웃음을 흘렸다.
“개소리 마세요! 그리고 애초에 에이린은, 그, 그, 여, 여……, 여자 그것도 아니라고요!”
머리채가 붙잡힌 채 잔뜩 사납게 눈을 치켜뜨며 씩씩거리는 리하르트의 모습에 마탑주, 로 확정된 사람이 입을 꾹 다물었다.
리하르트의 얼굴은 이미 목덜미까지 새빨개져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
그는 붙잡고 있던 리하르트의 머리카락을 살포시 놓고 가볍게 옷 정리를 했다.
“아, 그래?”
대번에 시무룩해진 목소리를 흘리던 마탑주가 소파에 걸터앉으며 퍽 불량해진 모습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그럼 무슨 일이지?”
그 불량한 모습이 정말 마탑주인지에 대한 의문마저 자아냈다.
‘난 이런 설정은 넣지 않은 것 같은데.’
퍽 떨떠름한 얼굴로 마탑주를 바라보던 나는 리하르트를 힐긋 보았다.
리하르트가 퍽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다가 나를 흘긋 보곤 애써 표정을 폈다.
마탑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단, 여기에 앉아. 에이린.”
“아, 응.”
리하르트가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아끌더니 마탑주가 앉은 맞은편 소파에 나를 앉혔다.
“에이린?”
마탑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리하르트가 눈을 매섭게 뜨며 마탑주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마탑주는 그런 리하르트가 아주 익숙한 듯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히죽 웃었다.
정말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었다.
‘리하르트가 왜 그렇게 미래에 비뚤어졌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어쩌면 이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세한 이야기까진 나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속에서 미친 모습의 리하르트보단 차라리 이렇게 바뀐 리하르트가 더 좋았다.
“아!”
한참을 고민하던 마탑주가 손뼉을 거세게 마주쳤다.
짝!
정말로 큰 소리가 났다.
“이놈이 짝사랑하는 그 여자애구나? 부르기만 하면 삼 일 굶은 개처럼 꼬리 흔들며 쫓아가게 하는 그 애!”
남의 치부를 마탑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렸다.
“……아.”
리하르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인 낯에서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다.
“너는 모르지? 네 연락만 오면 얘는 뭐 바쁜 일이고 뭐고 다 제쳐놓고 일단 너 찾으러 뛰어간다니까?”
“아, 네…….”
“세상에, 내 말에는 삼 일 밤낮을 개무시하더니 말이야. 뭐, 그럴 순 있지. 내가 싫을 수도 있잖아?”
“네…? 아, 저기…….”
흘긋 옆을 보자 리하르트의 몸에서 무언가 넘실거리는 것만 같았다.
숙인 고개에는 그림자가 짙게 져서 무슨 생각을 하는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려 이 상황 파악을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를 마탑주를 보았다.
“저기, 제가 부탁이…….”
“근데 아무리 그래도 동고동락한 스승을 버리고 여자친구에게 간다는 건 너무 속상한 일이지.”
마탑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뭐 나쁘진 않아. 이 녀석이 제일 인간다울 때가 널 생각할 때긴 하거든.”
“아……, 그건 감사한데. 저기 제가 부탁이…….”
나는 급히 대화 주제를 돌리기 위해 무던히 입을 열었다.
“아니, 내 얘기를 들어 봐. 저번에는 네게 무슨 일이 났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쿠구구구-!
콰앙-!
보이지 않는 공격을 받은 듯 마탑의 꼭대기 층을 두르고 있는 창문이 산산조각이 나서 산개했다.
“아…….”
“음?”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마탑주의 눈이 똑바로 앞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이나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사방팔방으로 날리는 서류들과 바닥으로 떨어져 쉼 없이 깨지는 집기들 사이에 있으려니 머리가 아팠다.
“어디 해 보자는 거냐? 아들아.”
“내가 네놈 같은 미친 아빠를 뒀으면 진작에 집을 나갔을 거다.”
동공이 풀린 리하르트가 그대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리하르트의 손끝에서 마력이 터졌다.
마탑주가 히죽 웃으며 제 지팡이를 쥐곤 뒤로 훌쩍 물러났다.
한없이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아이코, 우리 짝사랑 상대 울겠네.”
마탑주가 이죽거렸다. 리하르트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바들바들 어깨는 떨리는데 시선이 살짝 내게 돌아왔다.
“리하르트.”
이 이상 싸움을 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았다. 내게도 리하르트에게도 아마도 마탑주에게도.
“엥? 안 덤비게?”
정정한다. 마탑주에겐 아닐지도 모르겠다.
“괜찮아.”
내가 리하르트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주자 리하르트가 몸을 살짝 움츠리더니 흘긋 나를 보다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순식간에 사나운 기세가 사라졌다. 불만스럽게 툭 튀어나온 입술을 보다가 나는 리하르트의 손등을 두어 번 쓸어주곤 몸을 돌렸다.
“마탑주님, 제가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아, 뭔데?”
“푸른 철을, 티안 메이플의 푸른 철을 주세요.”
“뭐?”
마탑주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내 그가 다소 당황한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티안 메이플의 푸른 철이 뭔지는 알고 하는 말이야?”
“네.”
“그걸 달라고? 그 집 마법사가 마도구라도 만들 요량이래?”
“아뇨. 개인적으로 쓸 데가 있어서요.”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최대한 그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게 노력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마탑주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우리 마탑의 가장 귀한 걸 달라고? 그건 차기 마탑주의 애인이 와도 불가능한 일인데.”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퍽 흥미로운 표정이었다.
“그래, 필요할 수도 있지. 얼마나? 우리 리하르트의 여자인 친구에게 어느 정도의 나눔은…….”
“1톤이요.”
여유롭게 말하던 마탑주의 입이 그야말로 하마만큼이나 커다랗게 벌어졌다.
곧 턱이 빠지지 않을까 싶어질 정도였다.
“……뭐?”
“1톤이 필요해요.”
내가 다시 한번 말하자 마탑주는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꾹 누르더니 귀를 파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다소 무례할 정도로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눈까지 비빈 그가 성큼성큼 걸어와 소파에 앉았다.
부드러운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1kg?”
“1톤이요.”
“혹시 무게의 단위를 배우지 못했다던가?”
“1000g이 1kg이고 1000kg이 1톤인 거 알아요.”
“그거 마탑 1년 치 예산이거든?”
“리하르트에게 들었어요. 혹시나 창고에 남아있는 재고가 있다면 판매라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마탑주가 팔짱을 꼈다.
아예 고개를 푹 숙이자 나는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수리 위로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 아마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편 나는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정정할게.”
“네?”
“정정한다고.”
“뭘요?”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차기 마탑주의 애인이 온다면 말이야.”
마탑주의 말에 나는 잠시 이해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입을 헤 벌렸다.
“차기 마탑주의 애인이 온다면, 내가 특별히 푸른 철을 1톤 줄 수 있지. 결혼 기념 선물로.”
“…….”
퍼억-!
내가 이윽고 그 말을 이해했을 때 리하르트의 주먹은 이미 마탑주의 뺨에 꽂혀 있었다.
“커억…!”
“무슨 소리야, 이 미친 스승아!”
그야말로 엄청난 하극상의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