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58
“어서 오시게.”
배에서 내리자마자 수많은 인파가 항구에 가득했다.
모두 수인들인 듯 보였다. 어떤 이는 완벽하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어떤 이는 귀와 꼬리가 달랑거리기도 했다.
그뿐이랴, 아예 얼굴이 짐승의 모습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아예 동물 모습으로 직립보행을 하면서 말을 하는 사람도 보였다.
수인에 따라서 인간화를 할 수 있는 이들이 있고 아닌 존재가 있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그런 듯 보였다.
그리고 내가 배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을 가로막은 것은 굉장히 눈에 익은 사람이었다.
“아……. 예전에 그 왕님?”
수인국의 왕이었던, 하샤트였다.
그는 퍽 소탈한 차림새로 팔짱을 낀 채 나를 맞이했다.
“많이 자란 모양이군.”
“아, 네. 덕분에.”
적당히 인사치레를 받아주자 사방에 있던 인파들이 주섬주섬 무언가를 들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아!!”
동시에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렸다.
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아주 화려하게 휘날렸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환대에 저도 모르게 입을 떡하니 벌렸다.
‘아니, 이게 뭐야.’
이런 환대가 필요했던 건 아니라고.
‘아빠가 미리 연락을 해 놓는다곤 들었는데…….’
그게 왜 이런 이상한 환영 인사로 이어지느냔 말이다. 내가 부끄러움에 얼굴을 확 붉히자 리하르트가 내 앞을 살짝 막아 주었다.
“에이린, 괜찮아?”
“응……. 그냥 조금 수치스러워서 벽에 머리 박고 죽고 싶은 정도…….”
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온 동네에 소문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아빠가 설마…….”
“아, 그쪽에서 그대의 입국 서류와 체류 허가 요청을 했지. 이건 우리 나라에서 준비한 환대라네.”
“아하…….”
다행히 아빠의 손길이 닿은 것은 아니라니 마음이 놓이긴 했다. 타국까지 그런 민폐를 끼칠 순 없으니까 말이다.
“그대가 와주어 기쁘군. 정식으로 가주직을 이어받았다지.”
“아, 네.”
“솜털 하나 다치지 않도록 대접하라는 편지를…….”
편지를?
왕이 말끝을 흐리며 설핏 웃었다. 그 눈빛이 아주 의미심장했다.
불안한 쪽으로 말이다.
“한 서너 통은 받은 것 같네.”
“서너 통이요?”
“아니, 한 대여섯 통은 되었던 것도 같고.”
왕이 제 턱을 문지르며 퍽 호쾌하게 말했다. 무슨 편지를 어떻게 받았는지 참 무서워지는 발언이었다.
“드래곤님은 아주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했지.”
“…….”
도대체 내가 수도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 걸까?
음, 생각하기 싫어진다.
“제국 황실에서도 왔다네.”
“……황실에서도요?”
에노쉬, 설마 아니지?
왕이 슬쩍 몸을 비켜섰다. 그러자 화려하기 짝이 없는 마차가 내 앞에 섰다.
“아…….”
참고로 꽃이 가득 달린, 촌스……. 아니 타고 싶지 않은 종류의 마차였다.
너무 화려해서 도리어 조잡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차마 그렇게 말할 용기는 없어서 조용히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한층 더 부끄러워졌다.
마차 안에도 화사한 이국의 꽃이 가득 있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꽃 냄새에 코가 아렸다. 나는 짧은 숨을 뱉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음, 이렇게까지 하라고 하진 않았는데, 다들 그대가 오는 것을 많이 기다린 모양이야.”
“아…, 감사합니다.”
나는 슬쩍 마차에 올라탔다.
후각이 예민한 탓인지 조금 괴로운 탓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곁으로 다가온 리하르트가 내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가 놓았다.
그러자 정말 마법같이 머리가 아픈 것이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맡아지던 냄새가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옳은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후각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려 리하르트를 보자 리하르트가 마주 웃었다.
“이제 불편하지 않아?”
아주 작은 소리로 달싹거린 리하르트의 모습에 나도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마워.”
“천만에.”
우리가 타고 나자 왕도 우리와 같은 마차에 올랐다.
그가 가볍게 나와 리하르트를 번갈아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반려를 찾으셨소?”
“…아.”
내가 슬쩍 리하르트의 눈치를 보며 대답을 망설이자 리하르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제가 그녀에게 플러팅을 하는 중이거든요.”
“오, 쟁취하는 건 아주 멋진 일이지.”
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도전이 부디 성공하길 빌겠소.”
“감사합니다.”
왕이 리하르트에게 가볍게 웃어 보이곤 나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에는 진지함이 있었다.
저도 모르게 긴장해서 허리를 쭉 폈다.
“그래, 그대의 아버지에게 받은 편지를 보면 그대가 내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팔짱을 낀 왕이 미간을 찡그리더니 마차의 창문을 열며 말했다.
‘역시 냄새가 심하기는 한가 보네.’
하지만 창문을 열어도 비슷할 거 같기는 했다.
지금은 리하르트 덕분에 냄새가 나지 않지만, 바깥에도 흐드러진 꽃들이 한가득했으니까 말이다.
후끈한 더위를 식혀 줄 바람이 선선하게 들어와 마차의 공기를 순환시켰다.
“네, 혹시 붉은 광산에서 붉은 철을, 사 갈 수 있을까 해서요?”
“붉은 철?”
왕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아마 그도 예상하지 못한 말인 모양이었다. 하긴, 타국까지 건너와서 갑자기 특수한 철을 달라고 하는데 흔쾌히 허락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가격은 최대한 책정하는 대로 맞춰드릴 순 있는데… 다만 금액이 클 경우에는 몇 년에 걸쳐서 나눠 갚는 것도 허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구하는 입장에서 들어도 퍽 뻔뻔한 얘기였다.
얘기하는 내내 얼굴이 숙어질 것 같았지만 애써 버티고 왕의 눈을 마주 봤다.
“어느 정도를 원하는지 물어도 되겠소?”
“1톤이요.”
“1톤? 적은 양은 아니군. 붉은 철은 생산량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말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철이나 푸른 철이나 둘 다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격은 최대한…….”
“붉은 철을 어디에 사용하려 그러시오?”
“꼭 필요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게 있는데, 그걸 얻으려면 붉은 철 1톤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흠…….”
팔짱을 낀 왕이 퍽 진지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살폈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침을 꿀꺽 삼켰다.
“꼭 좀 부탁드릴게요.”
“알겠소.”
“그러지 말고 꼭 좀…… 네?”
한 며칠은 계속 거절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생각보다 빠르게.
‘아직 준비한 딜이 더 있는데…….’
수인국에 필요할 만한 것들을 몇 개 알아 와서 그것으로 조금씩 거래해 나갈 예정…… 이었는데.
“알겠, 다고요?”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싶어 조심스럽게 되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고 했소.”
“아, 감사합니다……. 가격은….”
“이건, 그냥 주도록 하겠소.”
왕이 말했다.
“네? 하지만…….”
“이건 그대에게 주는 사과의 의미요. 오래전의 일이지만, 어린 드래곤에게 참 못 할 짓을 했소.”
왕의 말에 나는 잊고 있던 꽤 오래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사이 일이 많아서 거의 기억도 나지 않았다.
“드래곤에겐 가족이 아주 소중하다지. 그것이 그대에겐 찰나,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할지라도.”
“……그래도 그것에 대한 대가는 이미…….”
차르니엘 삼촌이 전부 잘 뜯어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뿐인가, 황제랑 아빠도 움직였을 텐데.
“음, 그건 국가적 보상을 해 준 것이지.”
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그 정도 보상으로 끝난 게 제국 입장에선 아주 관대한 처사였을 거요.”
그건 사실이었다.
이 왕이 먼저 와서 고개를 숙이고 화친을 요청했기 때문에 어쩌면 가능했을 부분이니까.
“그 보상은 나라에 준 것이고 이것은 내가 그대에게 주는 개인적인 보상이오.”
“…감사합니다.”
“다만, 나는 내어 주겠다고 했지만……. 붉은 광산엔 주인이 따로 있어서 말이지.”
왕이 턱을 문지르며 난감한 표정을 했다. 그 때문에 내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따로 주인이라니…….”
“내가 편지는 쓰겠지만, 왕인 내 말도 듣지 않는 편이라 허락은 직접 받아야 할 것이오.”
“주인이 누군데요?”
“설표. 붉은 광산에 설표가 한 마리 살고 있소.”
왕의 말에 눈이 절로 커졌다.
“붉은 철이 필요하다면 그의 허락을 받아 내시오.”
단호한 얼굴로 왕이 말했다. 도움은 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그냥 준다는 거니까….’
어느 정도의 난관을 예상한 것에 비해 다행인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왕이 흡족하게 웃었다. 이내 호탕하게 웃은 그와 함께 탄 마차가 성에 도착했다.
“일단 여독도 풀고 식사도 두둑하게 하시오. 그 후에 길을 알려 줄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뒤를 따라 리하르트가 내리고 리하르트가 내민 손을 잡고 내가 내렸다.
나와 리하르트는 사용인들을 따라 성안으로 발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