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60
“이 길을 쭉 들어가면 붉은 광산이오.”
수인국의 왕이 숲까지 안내해 주며 말했다. 어두컴컴한 숲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제법 스산한 소리를 흘렸다.
나와 리하르트는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젖혔다.
숲인데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졌다. 안쪽에서부터 아주 뜨거운 기운이 넘실대는 것만 같다.
우리는 잠시 말문이 막혀 제 자리에 멈춰선 채 왕을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여길 들어갔다간 애가 쪄 죽겠습니다.”
리하르트가 퍽 사나운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그래도 왕이라고 제법 경어를 쓰는 리하르트가 퍽 기특해서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자 리하르트의 뺨이 확 달아올랐다.
“뭐, 뭐, 뭐야. 에이린…….”
고개를 푹 숙이는 리하르트의 모습에 나는 짧게 숨을 뱉었다.
‘이건 나쁜 짓인가.’
어쩌면 괜한 희망을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리하르트의 모습을 보다가 슬쩍 손을 뗐다. 헛된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퍽 잔혹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두려웠다.
리하르트의 말을 거절했을 때, 달라질 우리의 관계가 무서웠다. 친구로도 남아 있을 수 없게 될까 봐.
“에이린?”
“아, 응?”
“왜 그래? 정말 여기 들어갈 수 있겠어?”
“응, 잊었나 본데…….”
나는 리하르트를 보며 씩 웃었다.
“나, 드래곤이야.”
이런 열기는 애초부터 간지럽지도 않았다.
사실 별로 그렇게까지 뜨겁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리하르트는 내 말에도 별로 안심되지 않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이 숲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지. 수인 중에도 극히 일부요.”
“근데 설표는 추운 곳에서 사는, 그러니까 눈이 내리는 곳에서 사는 동물이 아닌가요?”
“보통은 그렇지.”
“보통은…….”
“그 설표는 조금 독특하다오.”
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사정이 있으니 저기에 있는 것이겠지. 알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설표에게 이걸 전해 주면 좋겠소. 그럼 내가 보낸 줄 알 것이오.”
“이건…….”
“주기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식료품과 생필품이지.”
왕이 내민 커다란 보따리를 본 리하르트가 그것을 가볍게 톡 건드리자 보따리가 둥실둥실 허공에 떠올랐다.
“괜찮아?”
“당연하지.”
리하르트가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그럼 들어갈까?”
“응. 내가 먼저 갈게.”
“다녀올게요. 감사합니다, 왕님.”
“천만에. 우리가 진 빚을 이렇게라도 갚는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기회를 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하오.”
왕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부담되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말하지. 그때는 정말 미안했소.”
왕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어쩌면 이런 사람이 왕이라서, 저번 사태는 그렇게 둥글게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요, 정말 잊었고 이제는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니까요.”
사실 잘못한 게 왕도 아니었고 말이다.
“에이린, 가자.”
리하르트가 삐딱하게 선 채 나를 불렀다. 뭔가가 퍽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다.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어? 리하르트.”
“기분 나쁜 일? 아니, 왜?”
“표정이 좋지 않아서.”
“아……, 아무것도 아니야.”
리하르트가 뺨이 붉어져선 얼굴을 문질렀다. 손등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른 그가 냉큼 내 손을 잡고 어둑한 숲으로 들어갔다.
숲에 발을 들이자마자 훅 끼쳐오는 열기에 잠시 숨통이 막혔다.
“리하르트, 괜찮아?”
“응, 마법 썼어. 너한테도 썼고.”
그 말에 눈을 깜빡이니 정말로 우리 주변에 새하얀 기체가 일렁이고 있었다.
“열기를 아예 다 막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거야.”
“응, 고마워.”
사실 그렇게까지 뜨겁게 느껴지진 않지만 나는 그냥 그가 주는 호의를 조용히 받기로 했다.
이 또한 그가 달라는 기회 중 하나였을 테니까.
“굉장히 깊네.”
숲은 대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뜨거웠다.
숲 안으로 들어온 뒤로는 바람도 제대로 불지 않았고 고인 열기는 식물을 순식간에 죽여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식물들은 그동안 봤던 어떤 나무보다도 더 싱싱했다.
나중에 돼서는 에이린도 조금 벅차서 뺨에서 땀이 뚝뚝 흐를 지경이었다.
“에이린, 업어 줄까?”
“응? 아니, 괜찮아.”
“힘들면 업어 줄게. 체력을 벌써 떨어뜨리면 좋지 않아.”
리하르트는 냉큼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등을 내보였다. 그의 뺨에도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여기에 얹혀 가긴 미안한데.’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순순히 그의 등에 업혔다. 넓은 등은 편안했고 동시에 열기로 인해 뜨끈했다.
엉거주춤 업히자 그가 벌떡 일어났다.
“에이린.”
“응?”
“편해?”
“응, 고마워. 리하르트.”
“……응.”
업히느라 어쩔 수 없이 그의 귓불에 바람이 닿았다. 리하르트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성큼성큼 앞으로 걸었다. 그걸 볼수록 마음은 더 좋지 않았지만.
“고마워, 리하르트…….”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속삭였다.
리하르트는 어쩐지 조금 아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시뻘건 절벽과 아래로 뻥 뚫린 광산이 보였다.
아주 깊은 광산이었다. 다행히 한쪽으로 계단이 나 있었는데, 오래된 듯 나무가 제법 낡아 보였다.
“저기 괜찮을까?”
“한 번 강화마법 걸어둘 테니까 문제없을 거야.”
리하르트가 무언가 주문을 외우자 나무 계단 위로 무색투명한 막이 씌워졌다.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더 업혀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걸을 수 있어.”
“그래?”
“응.”
“알겠어, 가자.”
리하르트가 순순히 나를 내려놓더니 앞장을 서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손을 붙잡자 리하르트가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아주 길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심각한 열기가 몸을 녹일 것만 같았다. 숨이 턱턱 막혔다.
‘대체 여기서 설표가 어떻게 산다는 거야?’
아니 설표가 아니라 사람이라도 살기 힘들 것 같았다.
“리하르트 괜찮아?”
“응……, 근데 좀. 힘드네.”
아래에선 뜨거운 열기가 쉬지 않고 올라왔다. 이 밑에 화산이라도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활화산이.
우리는 광산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정말로 뭘 채광한 흔적이 있기는 했다.
각종 광물을 채굴하는 장비도 즐비해 있었고 한쪽에는 동굴 같은 것들도 여러 개 뚫려 있었다.
아마 저기서 그 철 같은 것을 채굴한 게 아닌가 싶었다.
‘여기서 철 채굴하다가는 손이 다 녹을 것 같은데.’
화상을 입는 수준으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땅을 밟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인데 철은 얼마나 뜨겁겠는가.
“이거 제대로 알려 준 거 맞아? 그 왕이 우릴 놀린 거 아니고?”
리하르트는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텅텅 빈 광산에 발을 굴렀다.
“제대로 알려 준 거겠지. 아빠가 편지도 썼다는데.”
그렇게 진정성 있는 사과까지 했는데, 나를 속였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인기척이 없잖아. 이런 데서 설표는커녕 사람이 살기도 힘들 거야.”
리하르트가 지극히 옳은 말을 했다. 나도 그 생각엔 동의한다.
그때였다.
크르르릉-!
어딘가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쪽에서 들린 게 아니라 사방에서 들렸다.
굴에서 흘러나온 울음소리인 듯 광산 여기저기에 뚫린 구멍에서부터 스산한 울음이 들려왔다.
“방금 들었어?”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리하르트에게 말하자 리하르트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어, 이쪽인가 봐. 에이린.”
리하르트가 바로 근처에 있는 동굴을 가리켰다. 우리는 손을 잡고 곧장 동굴로 뛰어들었다.
“윽…….”
먼저 발을 들인 리하르트가 눈을 크게 뜨곤 나를 품에 확 끌어안았다.
“미친…….”
리하르트가 급히 손가락을 튕겼다. 숨이 턱 멎을 것 같았던 공기가 조금은 편해졌다.
“리하르트, 고마워. 근데…….”
너무 힘껏 끌어안겨 진 탓에 다른 의미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리하르트의 눈이 커졌다.
“으아아악!”
리하르트가 급히 나를 놓고 후다닥 물러났다.
“미안해!!!”
큰 소리로 사과하는 그를 보며 나는 작게 웃었다.
“아니, 미안할 건 없어. 단지 숨이 조금 쉬기가 어려웠을 뿐이라서.”
내 말에 리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근슬쩍 손을 내민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손, 잡을래?”
“응.”
나는 리하르트가 내민 손을 맞잡고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굴의 끝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믿기지 않는 것을 목격했다.
뜨거운 열기의 가장 안쪽에는 공터처럼 넓은 방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곳에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새하얀 눈이 가득 내려, 추위가 단번에 몰려올 정도로…….
아름다운 설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