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61
“이게 뭐야? 눈?”
리하르트가 발끝으로 눈 위를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 뽀득뽀득 소리가 제법 사실적이다.
“갑자기 이게 가능해?”
리하르트는 눈을 반짝 빛내더니 의아한 낯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보면 그가 마법사라는 사실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마법사는 학문을 추구하고 호기심을 못 참는 종족이라고 들었는데 정말인 것 같다.
[누가…….]설원의 한복판에 있는 높다란 바위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감히 허락도 없이 내 땅을 밟지?]얼음에 인격이 깃들어 말을 한다면 이렇게나 차가운 울림이 되는 것일까? 절로 등줄기가 쭈뼛해졌다.
“그, 설표님?”
조심스럽게 부르자 바위 위에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강한 추위였지만, 리하르트의 덕분인지 내가 드래곤이기 때문인지 괴롭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보급품을 가지고 왔는데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하르트가 가지고 온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보급……, 아아. 벌써 그런 때가 되었지. 늘 오던 곰 새끼는 어쩌고 네놈들이 왔지?]서늘하기만 했던 목소리에 설핏 감정이 깃들었다. 그게 좋은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부탁드릴 것도 있어서 제가 왔어요.”
[부탁?]“네.”
[…….]위에서 떨어지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생각하는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민망해질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뭐야? 갑자기 왜 말이 없어졌어?”
기다리던 리하르트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과 동시에 쿵-! 눈앞에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사람보다 수 배는 더 커 보이는 거대하고 새하얀 표범이었다.
새하얀 털은 눈 속에 묻히면 그것이 눈인지 설표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희었다.
점박이처럼 박힌 표범 무늬만 아니었다면 정말 눈과 혼연일체가 되어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너는…….]표범이 나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더니 이내 못볼 걸 본 것처럼 얼굴을 팍 일그러뜨리다가 다시금 성큼성큼 다가와 커다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워진 설표의 얼굴은 입을 쩍 벌리면 나를 한 번에 잡아먹을 수 있을 것처럼 아주 거대했다.
[이미 저물어버린 시대의 산물이 왜 여기에서 돌아다니지?]“네…?”
[너 도마뱀 아니냐?]도, 도마뱀은 아닌데.
큰 부류에서 보면 도마뱀이라고 해도 크게 이상할 건 없을 것 같긴 한데…….
“도, 도마뱀은 아니고…….”
내가 당황해 더듬거리며 말하자 설표가 얼굴을 바싹 들이밀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더니 그 반듯한 얼굴을 대번에 와락 구겼다.
[비린내 나는 거 보니까 도마뱀 맞잖아. 으, 코만 버렸네. 근데 세상에 남은 도마뱀이라고는 그 되먹지 못한 괴팍한 파충류밖에 없을 텐데.]설표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어쩐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마 퍼플이라는 이름의 드래곤을 말하는 거겠지.
내게 이 말도 안 되는 미션을 준 그 드래곤.
[그놈이 언제 새끼를 깠던가?]설표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건 아니고요…….”
[그렇지? 그런 성격 괴팍한 놈의 애를 누가 갖겠어. 쯔즛, 히스테리나 부리는 노처녀 같으니라고.]막역한 지인 사이라도 되는 걸까?
단어 선택이 하나같이 저질스럽다.
[그래서, 도마뱀이 나한텐 무슨 볼일?]“붉은 광산에 있는 철과 저기…… 설표님의 눈물이 필요해서요.”
[붉은 철? 그건 뭐하게, 아니, 내 눈물은 왜? 이런 걸 요구하는 놈은 그 변태 노처녀 파충류밖에 없는데.]정확히 맞췄는데 차마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려웠다.
내가 어색하게 웃자 그는 내 상황을 어렵지 않게 깨달은 듯 노골적인 비웃음을 흘렸다.
[또 그 노처녀의 놀잇감이 된 불쌍한 꼬맹이가 생겼네.]설표가 앞발을 그루밍하며 여유롭게 말했다.
[안 돼.]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일을 굴러가게 하고 싶지 않거든.]“네?”
설표가 말했다.
그 말은 즉…….
[가져가, 붉은 철. 저기 어디에 가득 쌓아 놨으니까.]설표가 앞발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설원 한가운데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반색하며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설표가 한층 짓궂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쩌냐?]“네?”
[눈물은 좀 어려울 것 같은데.]설표의 말에 몸이 절로 멈칫 굳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설표의 눈물이었는데…….
“어려운 이유가 있을까요?”
[눈물은 어떨 때 나지?]“슬플 때요……?”
[그렇지. 근데 나는 슬프지 않아, 슬플 일도 없고. 세상에 있는 슬픈 이야기는 대부분 다 봐서 감흥도 없지.]설표가 앞발을 핥았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정말로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이야기…….”
[아니면, 엄청 맛있는 걸 먹었을 때도 눈물을 찔끔 흘릴 때가 있었지.]“맛있는 거…….”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고양이, 맛있는 거…….
‘츄르 같은 것밖에 안 떠오르는데.’
그렇다고 슬픈 이야기를 많이 아느냐고 하면 딱히 그것도 아니었다.
‘드래곤의 능력을 쓰면 안 된다는 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지?’
환심을 사는 것에도 능력을 쓰지 말라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내가 인간을 이용하고 돈이나 능력을 이용해서 사람의 마음을 강제하려는 걸 방지하게 하려는 것이었나?
‘상상해 볼까?’
원하는 물건은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리하르트, 내려가서 붉은 철을 가져다줄 수 있어? 1톤……. 마법으로 될까?”
“당연하지. 다녀올게.”
조심스럽게 묻자 리하르트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리하르트를 보던 나는 그대로 눈 위에 털썩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아, 나는 이렇게 버티고 있어도 안 낚인다.]“쉿, 잠시만요.”
츄르랑 캣푸드라면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을 만들고 싶다고 상상하는 것과 동시에 몸에서 마력이 훅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뭐, 뭐야?!]후두두두!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츄르를 비롯한 다양한 캣푸드에 설표가 깜짝 놀란 듯 두어 걸음 물러났다.
나는 개중에서 가다랑어포 맛 츄르를 잡아 뜯어 그에게 내밀었다.
[감히 호의를 베풀었더니 이런 괴상한 마법을 쓴다고……! 네놈은 당장 내 영역에서…… 음?]설표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입을 쩍 벌리고서 츄르를 봉지째 덥석 입에 물었다.
봉지를 입에 넣고 쭙쭙 빨아먹는 그 모습에 움찔 한 걸음 물러나자 설표의 눈이 확 커졌다.
털이 쭈뼛 서더니 이내 몸을 부르르 떤 설표가 나를 보더니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렸다.
[뭐야, 이거.]퍼엉-!
설표의 몸이 순식간에 연기에 휩싸이더니 이내 바닥에 주저앉은 웬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 위에는 설표의 둥그런 귀가 쫑긋거리고 있었다.
나는 되는대로 급히 가져온 유리병을 뻗어 설표의 뺨에서 떨어지고 있는 눈물을 냉큼 받았다.
‘이게 통하네…….’
가끔 이런 소설에서 고양잇과 동물에게 츄르를 줬더니 미쳐서 날뛰었다, 라는 묘사가 있었던 기억이 나서 그냥 도전해 본 거였는데…….
‘역시 소설은 옳아.’
없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됐다.”
이쯤이면 목표는 달성한 거겠지.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거 모냐고…….”
“츄르……인데요.”
“이런 미친 음식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거야? 말도 안 돼…….”
츄르를 입에 물고 있는 사람을 보는 기분은 미묘했다. 거기에 대고 차마 고양이들 간식이라곤 할 수 없어서 설핏 고개만 끄덕였다.
“너…….”
눈을 동그랗게 뜬 그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좋은 도마뱀이구나…….”
츄르에 이렇게까지 된다고?
사실 빙의할 때 가장 필요한 물건은 다른 것도 아니고 츄르가 아니었을까?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에요.”
나는 눈물이 담긴 병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여기 있는 건 다 드릴게요.”
“이것만?!”
“네?”
능력 조절이 제대로 안 돼서 설원의 반이 츄르로 뒤덮였는데 무슨 소리야…….
“이건 무엇이냐.”
그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캔에 든 캣푸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건 이렇게 먹는 거예요.”
캣푸드를 종류별로 설명하는 내내 그는 계속해서 츄르를 먹고 있었다.
입에 츄르를 문 모습이 정말 고양이 같았다.
“에이린, 다 가져왔어.”
“아, 응. 그럼 저흰 이만 돌아가 볼게요…….”
“웅, 조심히 가라.”
그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참고로 어디로 가냐?”
“이제 제국으로 돌아가요.”
“그래? 잘 가~”
근데 이건 왜 묻는 거지?
어쨌든 원하는 것은 전부 얻었다.
나와 리하르트는 다시 왔던 길을 헤쳐 돌아갔다. 설마, 이 설표가 나를 따라올 줄은 전혀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