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62
“…….”
“안녕?”
우리는 무사히 숲을 빠져나왔다. 원하는 것도 얻어서 이제 왕에게 인사만 하고 바로 떠날 생각이었다.
왕의 옆에서 유유자적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저 남자만 아니었다면.
“당신, 왜, 여기 계시는데요….”
“츄르라고 했던가? 그거 다 먹었거든.”
그 많은 걸?
머릿속에 수많은 양의 캣푸드들이 떠올랐다. 중간에 잠을 한 번 자느라 숲에서 여기까지 빠져나오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겨우 하루 만에 먹을 양이 아니었다.
“음, 신문물이더군.”
옆에 앉은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슬쩍 시선을 내렸다.
그들의 앞에 놓인 접시 위에는 뭔가를 먹은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모양새를 보니 츄르나 캣푸드를 먹은 것 같았다.
그것도 고아하게 스푼으로 떠서 말이다.
‘…모르겠다.’
이 사방이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곳에 앉아서 스푼으로 캣푸드를 떠먹었을 걸 생각하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근데 난 다른 색보단 이 빨간색이 제일 맛있긴 하더라.”
그가 수북이 쌓인 츄르의 껍데기를 탁자 위로 쏟아내며 말했다.
이걸 보고 있노라니 정말로 그가 내어 준 캣푸드를 다 먹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말문도 막혔고.
“이건 어디에서 나오는 물건인가?”
왕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차마 한국이라고는 대답할 수 없어서 머뭇거리며 어색하게 웃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런 물건은 쉽게 알려 줄 순 없겠지. 하지만 위험한 물건이군.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을 홀리게 하니 말일세.”
내가 맡을 땐 이상한 비린내밖에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입에 츄르를 하나 물고 있는 설표가 봉지를 잘근잘근 씹으며 웃었다.
“나 그래서 너 따라가려고.”
“예?”
“내가 그 미친 마녀한테서 너 도와줄게. 대신 넌 나한테 츄르를 제공해주는 거야.”
마법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나?
“줄 테니까 그냥 복제하시는 게…….”
“아, 그건 무리야.”
설표가 손을 휘휘 저었다.
“왜요?”
“마법은 내 특기도 아니고 일단 복제 시도를 해 보긴 했는데 영 마음에 들게 안 나오더라고.”
그는 이미 온갖 방법을 써 본 사람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물건을 우리 나라에도 수출해 줬으면 좋겠군. 값은 섭섭하지 않게 치르도록 하지.”
“아니…….”
입술을 달싹이던 나는 뺨을 긁적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인가?’
사실 상상만으로 만들어낸 물건이라 어떤 품도 들지 않았다. 다만 마력이 조금 빠져나갔을 뿐이지.
‘이건 좀…….’
양심에 찔리긴 하는데, 사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일단 돌아가서 아버지랑 상의해 볼게요.”
“음, 꼭 좋은 소식을 들려주면 좋겠군. 또 생각이 날 것 같거든.”
턱을 문지른 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표 역시 스프링처럼 몸을 튕겨 폴짝 몸을 일으켰다.
“바로 돌아갈 거라면 배를 준비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나도 간다?”
“그…….”
거절하기에는 명분이 없고 설득시키기엔 귀찮다. 집이 좁은 것도 아니니 어렵진 않겠지.
“마음대로 하세요.”
“장담할게, 내가 분명히 도움 될 거라니까? 그 마녀쯤은 얼마든지 무찔러줄게.”
퍽 자신만만한 그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우리는 그렇게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 * *
“이건 내가 마탑주님한테 가져다주고 푸른 철을 받아 올게.”
“응, 고마워.”
슬쩍 고개를 끄덕인 나는 물끄러미 리하르트를 보았다. 함께 하는 내내 리하르트는 누구보다 다정했다.
다정했고 상냥했고 내게 최선을 다해 주었다. 그것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미안했다.
큰 죄책감이라도 끌어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마 이것은 미안함에 대한 생각이겠지.
우리는, 너와 나는, 아마도 네가 생각하는 관계로는 엮일 수가 없는 것이다.
“리하르트.”
“응?”
막 마법을 쓰려던 리하르트가 내 말에 토끼처럼 재빨리 반응했다.
“미안해.”
나는 생각하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설표가 주변에서 기웃거리고 있었지만, 다행히 분위기를 읽을 줄은 알았는지 허튼 말을 하진 않는다.
내 말을 들은 리하르트의 눈이 의아함에 물들었다가 이내 크게 벌어졌다.
“에이린, 나는…….”
“물론 이 답을 아주 느리게 할 수도 있을 거야. 네가 원하는 대로.”
나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 벌어졌던 리하르트의 입술이 꾹 다물어졌다.
“너는 다정하고 상냥하지만, 나는…… 그런 눈으로 널 본 적이 없어. 너는 내 소중한 첫 번째 친구야.”
어렸던 그때, 리하르트가 구해 줬기에 나는 구원을 받았다. 그 다정함에 죽지 않고 버틸 수가 있었다.
“널 좋아하지만…….”
나는 힘주어 입술을 깨물었다가 천천히 말했다.
“네 마음과 같은 좋아함은 아니야.”
나는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머리를 아래로 숙였다.
“좋아해 줘서 고마워, 평생…….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어. 네가 내게 처음이었어.”
어쩌면 애정을 처음으로 느낀 것은 아빠도 아니고 누구도 아닌 리하르트였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해. 나는…… 너와 같은 마음이 될 수 없어.”
“…….”
리하르트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그러자 리하르트가 천천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떻게 해도?”
“……응.”
“……그렇구나.”
그렇게 읊조리는 리하르트의 목소리가 어쩐지 살짝 젖어 있는 것만 같았다.
“알겠어, 대답해 줘서 고마워.”
입술을 깨문 듯,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 있듯 무척이나 먹먹한 목소리였다.
“곤란하게 해서 미안했어.”
“……곤란하지 않았어.”
목이 멘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자 위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났다.
바람이 빠지듯, 아주 작게 흩어지는 소리였다.
“푸른 철은 보낼게.”
“응.”
“한동안은, 널 보기가 힘들 것 같은데…….”
리하르트가 말했다.
“나에게 잠시만 시간을 줄래? 철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전해 줄게.”
“……응, 네가 필요한 만큼, 원하는 만큼 시간을 가져 줘.”
“……그래, 그럼 이만 가볼게.”
툭, 투둑.
바닥으로 둥근 액체가 번지며 흔적을 남겼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리하르트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그가 흘리고 간 것이 분명한 눈물 자국뿐이었다.
“우리, 친구, 계속할 수 있을까……?”
뒤늦게 입술을 달싹여 닿지 않을 물음을 던져본다.
당연하게도 대답은 없었다. 거절을 생각했을 때부터 이미 예상은 한 바였다.
알고는 있다. 생각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조금 더 빨리 확실하게 해야 했음을.
“와우, 남자를 울리는 제법 멋진 여자네.”
리하르트가 사라지고 나서야 설표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나는 짜증스러운 낯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몸을 홱 돌렸다. 마음이 영 불편했다.
“…가요.”
나는 어느새 나를 마중 나온 마차에 올라타며 자리를 떠났다.
자국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 남아 있다가 이윽고 불어오는 바람에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 * *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설표에게 머물 방을 알려 주라고 사용인들에게 부탁한 뒤 곧장 방에 틀어박혔다.
이 중에서 청화무는 다시 돌봐야 할 것 같았다. 부탁한 청화무 중에 제대로 자란 것이 없었다.
애초에 잘 자랐어도 내 손으로 기른 게 아니면 계약위반이었을 테니 다시 심어야지.
남은 것은 신록의 거울과 그란 푸르스의 열매였다.
그란 푸르스의 열매는 에노쉬에게 부탁해야겠고 신록의 거울은 어쨌든 루실리온에게 말해 봐야 할 듯했다.
그란 푸르스에서 어떻게 다시 열매가 자라게 하면 좋을까?
생각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정말 어렵네.’
침대에 털썩 드러누우며 생각했다.
“조금만 자자…….”
아마 피로가 쌓여서 이런 거겠지. 기분도 울적하고 해야 할 일은 제법 막막했다.
‘내일은 루실리온에게 가 보자.’
응, 그러자.
‘그러고 보니 매번 루실리온이 내게 왔지 내가 먼저 찾아간 적은 없는 것도 같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괜히 눈이 가물거렸다. 나는 감기는 눈꺼풀을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감자 이윽고 어둠이 찾아왔다. 나는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