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63
“좋은 아침, 에이린.”
“아빠!”
조금 더 자고 싶은 나와 식사는 하셔야 한다는 로랑의 실랑이 끝에 패배한 것은 나였다.
피곤한 얼굴로 식당에 가기 위해 막 방을 나섰을 때 보인 것은 퍽 그리운 얼굴이었다.
사실 안 본 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고 그리운지 모를 일이다.
후다닥 달려가 품에 냉큼 안기자 아빠가 나직하게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다정한 이 손길이 좋았다.
늘 나를 품에 안고 상냥한 인사를 건네주는 것이 스스럼없는 아빠가 좋았다.
만약 내게 자랑할 순간이 있다면,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도 아빠 있다!’
하고 말이다.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많이 바쁜 모양이더구나.”
“네, 조금…….”
설핏 웃으며 대답하자 아빠가 나를 가볍게 내려놓았다.
“식사하러 가는 길이었니?”
“네.”
“같이 가자꾸나.”
“저 기다리신 거예요?”
“그렇지.”
“왜요? 지금 가려고 했는데…….”
“한시라도 빨리 딸이 보고 싶어서?”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입가를 허물어뜨렸다.
“응, 저두요.”
나도 보고 싶었다.
내 말을 들은 아빠가 설핏 웃으며 느리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 옆을 따라 걸으며 짧은 숨을 뱉었다.
“네가 지금 바쁘게 움직이는 이유는, 혹시 나 때문이니?”
“네?”
“혹은 네 엄마 때문이라던가.”
“그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기에도 조금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단다.”
“네……?”
“우리를 위해 네가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아빠는 아주 별것 아닌 일을 얘기한다는 듯 담담하게 입을 열고 있었다.
“너는 네 행복을 찾았으면 한단다. 가뜩이나 평범하지 못하게 자라서…….”
아빠는 말끝을 살짝 흐렸다.
“나는 네게 아주 미안해하고 있으니까.”
“그건, 아빠 잘못이 아니에요.”
나는 퍼뜩 놀라 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빠가 나를 흘긋 보더니 작게 웃었다.
“알고 있어.”
“그런데 왜…….”
“하지만, 부모가 되고 나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쓰이더구나.”
아빠의 말에 입이 절로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나는 잠시 망설인 끝에 고개를 힘껏 내저었다.
“이것도 저것도 제가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고 싶지는 않아요.”
내 말에 아빠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가볍게 흩뜨리더니 설핏 미소를 띠었다.
“그래, 그게 네 의지라면 나는 반대하지 않으마.”
다정한 손길을 받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아마도 제가 헤쳐나갈 문제에요. 제가 스스로 행복해지지 않으면, 끊임없이 제 불행을 바라는 무언가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을 테니까요.”
“…….”
내 말에 아빠가 살짝 입을 벌렸다. 놀란 것이 분명한 그 모습에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자 아빠가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아빠? 왜 그러세요?”
“그냥….”
아빠가 웃었다.
“내 딸이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신기해서 말이다.”
“네에?”
“너도 이제 부모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설 수 있는 나이가 됐구나.”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내 뺨을 한차례 훑으며 작게 읊조렸다.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을 보는 건 꽤 외로운 일이야.”
아빠는 그렇게 읊조린 뒤 성큼성큼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쪼르르 뒤를 쫓아가자 아빠가 쓰게 웃었다.
더는 보폭을 맞춰주지 않아도 되고 더는 돌봄이 필요 없는,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를 보는 눈은 어쩐지 씁쓸하게 보였다.
* * *
아빠와 식사를 마친 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아빠가 역시 걱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자 아빠는 그란 푸르스 나무에 대해서 알아보겠다고 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아빠.”
“천만에. 나는 네 아빠이기 이전에 가신이기도 하다. 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말해도 좋아. 너는 그럴 권한이 있단다.”
“네, 그리고…….”
“또 뭔가 도움이 필요한 게 있니?”
“사, 사랑해요! 아빠! 어른이 돼도 아빠가 제일 좋아요!”
대화의 끝에 그렇게 빼액 소리를 지른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아빠를 모른 척한 채 냉큼 저택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루실리온을 만나기 위해 신전에 도착했다.
문제는…….
“루실리온이 없다고요?”
“네, 최근 순례를 떠나셔서…….”
“순례라니, 무슨…….”
“신도님들을 늘리기 위한 순례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를 도와주기 위한 교환 조건이 신도를 10만 명 늘리는 거였지.
‘어쩐지 전혀 소식을 들을 수 없더라니…….’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런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언제쯤 온다는 소식은 없나요?”
“주기적으로 본 신전에 들르시기는 하니까……. 아, 마침 오늘 돌아오실 주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어보던 그가 대답했다. 나는 냉큼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럼 잠깐 기다려도 될까요?”
“하지만, 예상일 뿐이지 오늘 오신다는 확신은 없어서…….”
“괜찮아요, 저녁까지 기다려 보고 오지 않으면 돌아갈게요.”
“…그러시면.”
내 강경한 태도에 신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돌아가서 아빠 얼굴 볼 자신도 없고.’
나는 신관이 안내해 주는 응접실로 느리게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당신은 또 왜 쫓아왔는데요.”
“츄르 줘.”
“……진짜 싫다. 돈 주고 사 가세요.”
“돈? 돈은 없고 보석은 많아. 근데 내가 마녀도 퇴치해 주기로 했는데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냐?”
대체 내 외출 소식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내가 저택을 나서자마자 따라온 설표는 떠날 기미가 없었다.
“퇴치해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네가 없으면 츄르를 못 먹으니까 퇴치해 줘야 하는 상황이잖아?”
“그건 선생님 사정이고요.”
다 큰 어른이 입술을 툭 내밀고 툴툴거리는 걸 보고 있으려니 기분도 영 좋지 않았다.
“알았어, 어쩔 수 없다. 내가 특별히 보석도 주고 퇴치도 해 줄게. 대신 츄르 많이 줘. 빨간 걸로.”
“네네.”
한숨을 푹 쉰 나는 응접실로 들어가 또다시 능력을 써서 캣푸드를 한가득 만들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캣푸드에 몸을 날리더니 그 사이에 파묻혀 허겁지겁 츄르를 까 입에 물기 시작했다.
‘정말 캣푸드 사업이나 시작해 볼까.’
설표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사업을 열면 대박이 날 것 같았다.
염색 사업이랑 캣푸드 사업이면 이미 세상을 점령한 게 아닐까?
사람과 동물 전부를 내 손안에 넣었으니…….
‘캣푸드는 뭔가 김빠지지만.’
내가 능력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세계에 존재하는 재료로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사업을 하는 보람도 있겠지.
소파에 앉아 기다리다가 영 돌아오질 않아서 소파에 길쭉하게 드러누웠다.
설표는 이미 산처럼 쌓인 캣푸드들 사이에 드러누운 채 편안하게도 잠을 자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걸 보고 있으니 누워있는 나도 잠이 솔솔 몰려왔다. 창문 너머로 내려오는 햇빛이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
깜빡 잠이 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륵, 사륵-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무언가가 천천히 다가왔으나 눈꺼풀이 무거워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꿈과 현실 그 경계선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무방비하게 자고 있으면 곤란한데요.”
부드러운 손길이 뺨을 스치고, 이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넘겼다.
“잡아먹고 싶어지게.”
입맛을 다시는 짐승의 목소리가 이것과 닮아 있을까?
말의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냥 그런 생각만 들었다.
나는 닿아온 온기가 퍽 기꺼워 뺨을 가볍게 문질렀다. 그러자 손이 살짝 뻣뻣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으음…….”
“주인님.”
나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목소리다.
“주인님, 일어나세요.”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이 내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제야 조금 현실감이 느껴졌다. 천천히 눈을 뜨자 새파란 눈동자가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코앞에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내 사랑스러운 주인님.”
“……루실리온?”
“네,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여기에서 이렇게 주무시고 계세요.”
“나, 잤나……? 미안. 기다리다가 조금 햇살이 기분 좋아서…….”
눈을 비비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잔에 물을 따라 내게 내밀었다.
차가운 물을 몇 모금 넘기자 조금 정신이 들었다.
“그래서 어쩐 일이에요, 주인님?”
루실리온이 내 뺨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감싸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