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7
여주인공이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도 이 촛불 같은 목숨을 아직 건사하고는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생각해 본 결과 여주인공이 나타난 일은 내게 좋은 일이었다.
‘동경하던 여주인공의 동생이 될 수 있는 거니까.’
생각해 보면 성덕도 이런 성덕이 없지 않은가.
“언니!”
“에이린!”
복도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여주인공에게 달려가자 여주인공이 두 팔을 활짝 벌려 작은 품을 내게 내어 주었다.
겨우 두 살 차이인데도 여주인공은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컸다.
“내 동생 너무 귀엽다아…….”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녀가 대단히도 ‘여동생’을 좋아한다는 것에 있었다.
‘하긴 소설엔 매번 남자들만 나오긴 했지.’
친구도 남자, 역하렘인 만큼 주연급의 다양한 남주인공도 당연히 남자, 서브도 당연히 남자….
‘그러고 보니 여주인공은 동성 친구가 없었네.’
헉, 그렇다는 건 내가 여주인공의 유일한 첫 동성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라는 걸까?
“에이린은 어쩜 뺨이 이렇게 잘 부푼 밀가루 같지?”
어, 그거 칭찬이지?
행복한 표정으로 내 뺨을 조물조물하고 있는 것을 보니 싫어하는 쪽은 아닌 것 같지만.
“언냐 오늘 모 해?”
“오늘은 오후에 할아버님 독대가 있어. 그거 말고는 자유!”
“우아, 그러쿠나.”
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는 척을 했지만, 여주인공이 무엇을 하러 가는진 어렵지 않게 알았다.
‘광폭화를 진정시키러 가는 거겠지.’
에탐의 피가 짙을수록 누구나 광폭화의 위험이 있다.
특히 직계는 가장 피가 짙은 만큼 늘 광폭화의 불안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러니 여주인공은 주기적으로 에탐 가문의 일원을 만나러 다니곤 했다.
원작에서 갑작스럽게 에탐 가문에 떨어져 밉보이던 여주인공이 초반에 에탐 가문과 급격히 가까워지게 된 계기도 이것이었다.
“이짜나, 언냐.”
“으응, 왜? 내 동생.”
여주인공이 나를 제 품에 끌어안은 채 머리와 뺨을 연신 부비부비 만졌다.
“언냐, 아바지 따님 하구 싶지?”
“어…? 아니?”
“그러면 내가 도와…… 어……?”
“딱히……, 외삼촌의 딸이 되고 싶진 않아. 하지만 여기에 있으려면 보호자가 필요하대서.”
여주인공이 어쩐지 조금 심드렁한 낯으로 말했다.
‘어…….’
뭐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음, 생각해 보면 막 좋아했던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심드렁했다는 묘사가 나온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새삼 신기한 얼굴로 여주인공을 보았다.
‘서로 좋아하게만 하면 되잖아?’
나는 퍽 심각한 낯으로 턱을 문질렀다.
여주인공은 혼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는 내가 좋은지 아까부터 나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어쩐지 속을 묘하게 간지럽혀서 나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아, 그러고 보니…… 곧 그 사건이 벌어질 때가 아닌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일명 ‘유물 도난 사건’.
이건 여주인공이 온 뒤 에탐 가문에서 발생한 첫 번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여주인공은 본격적으로 가문의 인정을 받고 에르노 에탐의 관심을 받으며 가문에 스며들게 된다.
‘유물 도난 사건’이 뭐냐면, 말 그대로 머지않아 누군가가 에탐 가문에서 드래곤의 유물을 훔쳐 간 사건을 말한다.
그 때문에 에르노 에탐이 또다시 폭주가 일어날 뻔하는데 그것을 여주인공이 막아 준다.
그 계기로 에르노 에탐은 여주인공에게 크게 흥미를 가지게 되고 여주인공이 그에게 입양되는 것이다.
이번에 도난당하는 것은 에탐 가문의 세 개의 유물 중 두 번째 유물, ‘균형의 파편’이다.
그리고 그 유물의 소유자가 바로 에르노 에탐이었다.
이것이 바로 에르노 에탐이 안하무인으로 굴어도 미르엘 공작이 그를 쫓아내지 못하는 이유였다.
균형의 파편.
말 그대로 어긋난 것의 균형을 이루게 해 주는 물건으로 초반에 에르노 에탐의 불완전한 정신을 지탱해 준다.
균형의 파편은 보통 그 대의 드래곤의 피를 가장 짙게 이어받은 자를 선택한다.
드래곤이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은 계약자를 지키기 위해 내어 준 물건인 만큼, 가장 불안정한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모든 유물은 주인을 선택한다.
첫 번째 유물 ‘업화의 염’은 다음 대 에탐 가문의 가주를 주인으로 선택한다.
두 번째는 말했다시피 균형의 파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유물은 ‘드래곤의 구슬’인데 이 유물은 모든 주인을 거부했다.
때때로 여주인공에게는 잠깐씩 힘을 빌려주긴 했지만, 결국 여주인공을 주인으로 선택하진 않았다.
“에이린?”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내가 넋을 놓은 채 가만히 있었던 탓인지 여주인공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으응, 아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분명히 에탐 가문 내부의 도움으로 누군가가 유물을 훔쳐 가는데…….’
이상하게 소설을 그렇게나 읽었음에도 범인이 누군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군가 그 부분만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이 사건은 여주인공이랑 에르노 에탐이 가까워지는 계기인데.’
다른 건 몰라도 이 사건만큼 방해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
‘이번에는 저번처럼 죽거나 정말로 폭주하는 게 아니니까…….’
만약 폭주하더라도 분명히 여주인공이 광폭화를 안정시켜 줄 것이다.
“따님.”
‘그러니까, 굳이…… 내가 막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다.
“네, 아바지.”
“거기서 뭐 하니?”
“언냐랑 노라써여!”
“푸딩, 먹을까 하는데 어떠니?”
“헉.”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푸딩? 이건 못 참지.
다른 건 몰라도 이 에탐 가문의 푸딩만큼은 내가 죽어서도 절대 잊지 못할 맛이다.
“언냐, 가자.”
당연히 같이 가는 줄 알고 여주인공과 손을 맞잡으려는데 몸이 허공으로 덜렁 들렸다.
“아바지?”
“따님, 저 애는 가주님께 가야 할 거다. 그렇지 않니?”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미르엘 공작과의 독대가 있다고 했지.
아쉬운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자 여주인공이 인상을 찌푸린 채 에르노 에탐을 노려보고 있었다.
“언냐?”
“아, 응. 맞아. 곧 할아버님을 독대할 시간이야. 푸딩은 다음에 같이 먹지 않을래? 기왕이면 둘이서.”
햇살 같은 여주인공이 내게 권유했다. 그 환한 미소에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조아!”
“그래, 그럼 다음에 연락할게.”
“응! 언냐 안뇽.”
나는 손을 살살 흔들었다. 보면 볼수록 여주인공은 정말 천사 같은 것 같다.
“따님.”
“넹, 아바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다소곳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아빠 바보 딸이지.’
그가 나가라고 하지 않았으니 아마 연극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따님은 저 여자애가 좋니?”
“네? 네!”
여주인공이니까 싫어할 수가 없잖아.
“나보다 더?”
“……네엥?”
“나보다 더 저 여자애가 좋냐고 물었단다.”
나는 옆구리에 낀 호랑이 인형을 한층 더 힘주어 안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의도지?’
설마 나를 떠보려는 건 아니겠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녀! 에이링은 아바지가 쩨일 쪼아여! 아바지가 채고에여.”
“……흠.”
“정말이에여!”
지금 내 역할은 아빠 바보 딸을 연기하는 거니까 말이다.
“그러냐.”
“네!”
그가 가볍게 웃으며 언제나처럼 내 뺨을 쓰다듬었다.
“네가 날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걸 잊지 말렴. 넌 내 딸이란다.”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 말에 눈이 절로 커졌다.
‘이렇게 말하면 진짜 같잖아.’
어차피 흥미가 가시기 전까지의 잠깐의 유희면서.
에르노 에탐은 정말 나쁜 남자가 맞아.
‘그래도 지금은 조금 위험했어. 심장 떨어질 뻔했어.’
나는 연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순간 홀려서 내 위치를 잊을 뻔했다.
이번 사건만 지나면 분명히 여주인공이 에르노 에탐의 마음에 들어차게 될 거다.
“네, 아바지.”
나는 활짝 웃으며 순종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날 먹은 푸딩은 이상하게도 어쩐지 지금까지 먹었던 것보다 맛있진 않았다.
* * *
평화롭다.
입을 달싹달싹 벌려 가며 마일라가 주는 푸딩을 받아먹으며 든 생각에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을 나가기 위해서 짐을 싸고 있던 내가 이렇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게 썩 믿기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오늘?”
막 푸딩을 다 먹었을 때 들려온 갑작스러운 마일라의 질문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오늘 무슨 날이던가?
‘원작에선 딱히 별말 없었던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으며 나는 마일라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오늘은 그냥 에르노 에탐에게 푸딩을 얻어먹은 뒤로 딱 사흘이 지난 날이었다.
“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일라가 눈을 반짝일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는 나와 함께 식사를 했고 그와의 식사 후에는 여주인공과 정원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원작에서 오늘은…….
‘도둑이 유물을 훔쳐 가는 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