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72
“하지만, 그게 네 탓은 아니야. 그건 그 여자의 선택이었다. 그뿐이야.”
그녀의 말에 나는 설핏 미간을 찌푸렸다. 알고는 있다. 이제 와서 뭐 어쩔 수 없다는 사실도, 그저 진실을 알고 싶었던 것뿐이라는 것도.
‘아빠한테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모르겠네.’
결국, 내가 죽인 것이지 않은가.
“그 인간은 널 포기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아이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했겠죠. 제가 드래곤이라는 건 몰랐을 거예요.”
그저 아이를 낳으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는 달랐을 거고.
“생각보다 알고 싶은 과거가 대단하진 않지? 이걸 왜 알고 싶어 했는지 나로선 이해가 안 되지만.”
그녀가 청화무를 아삭 씹어 먹으며 말했다.
정말로 성의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 행태였다.
“그래도 몰랐으면, 평생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엄마의 죽음에, 내가 왜 그 개망나니에게 가야 했고 그 서러운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했을 것이다.
“후회는 안 해요.”
이 일로 아빠가 날 싫어하게 돼도 어쩔 수 없다.
‘노력이야 다시 하면 되니까.’
내 말을 들은 퍼플이 어깨를 으쓱였다.
“신기한 일이야. 내가 널 처음 구했을 때 너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는데.”
퍼플이 눈을 가늘게 뜨곤 나를 보았다.
“애 그만 괴롭혀라.”
설표가 내 뒤로 다가와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며 사납게 말했다.
“어머, 고양이는 언제부터 기르기로 한 거니?”
“다 늙은 도마뱀보단 내가 낫지.”
“자의식 과잉이라고 아니?”
두 사람 사이로 마력이 스파크처럼 튀었다. 평소라면 말렸겠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기분이 아니다.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왜 이런 간단한 것에 굳이 사람의 품을 들이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과거를 보는 건 꽤 힘이 소모되는 일이야. 별달리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니란다. 뭐, 네가 탐나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녀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핏 웃었다.
“야.”
몸을 돌리고 가려는데 설표가 나를 불렀다.
“네 잘못 아니니까 괜히 땅굴 파지 말아라.”
“알아요.”
“……알기는 무슨.”
정말로 알고는 있었다.
내 잘못은 없다. 나는 살고자 했을 뿐이고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는 데에 내 의지가 담기진 않았을 테니까.
태어난 게 죄라는 생각은, 이제 하지 않기로 했다.
“아빠랑 얘기하러 가는 것뿐이에요.”
어쨌든 긴 시간 알고 싶어 했을 죽음에 대한 진상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 * *
“저게 진짜 어린 도마뱀이라니 믿기질 않네.”
“도마뱀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뭐, 그래서……. 언제까지 숨어 있으려고 그러시는지. 고귀하신 분께선.”
설표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시선을 들었다. 그러자 돌연 하늘에 눈부실 정도로 새하얀 빛이 생기더니 아르마가 툭 튀어나왔다.
“이야, 살다 살다 신님을 또 목격할 줄은 몰랐는데. 무슨 일이신지요?”
“음, 찾아갈 게 있어서 왔다. 그거.”
장난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고고한 얼굴로 허공에 뜬 채 아르마가 검지를 들었다.
“내놔라.”
“이거요?”
설표가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린 검은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아 흔들었다.
“그래, 내가 계속 찾아다니던 거다.”
“역시, 악의가 제법 넘실거리길래 잡아 뒀는데 이게 그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은 존재군.”
“내가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캬아아악!
검은 고양이가 발톱을 세운 채 앞발을 휘두르며 날카롭게 울었다.
“찾느라 고생했다, 별지기.”
아르마가 작은 손으로 검은 고양이의 목덜미를 낚아채며 말했다. 고양이가 연신 하악질을 해댔다.
그의 주변으로 시꺼먼 무언가가 꾸물꾸물 흘러나왔다.
“으, 더러워.”
설표가 손을 가볍게 털며 뒤로 물러났다.
“별지기 따위가 감히 허락도 받지 않은 내 세계에 침범하다니.”
“캬아아악!”
“이제 인간의 형태도 취하질 못하는군. 그러게 적당히 포기했어야지.”
검은 고양이의 목을 붙잡은 아르마가 가볍게 그것을 흔들었다.
“나는 저 애들이 내 세계에서 충분히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틈에 네가 끼어들 자리는 없겠지.”
“웃기지 마라―! 저것은, 저것은 내 것이다! 내가 키우고 내가 정화해 내가 만든 완벽한……! 캬아아악!”
고양이의 몸에서 사람의 얼굴 같은 것이 튀어나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지만, 아르마가 고양이의 목을 세게 쥐는 것만으로 그는 다시 고양이가 되어 비명을 내질렀다.
“내 아이들 앞에서 드디어 면을 세울 수 있게 됐어.”
아르마가 서늘하게 중얼거렸다. 아르마가 한껏 힘을 주자 고양이의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기 시작했다.
“상대가 나빴어. 내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살아 나갈 수 있었겠지만.”
“크아아아악!”
“애초부터 네가 가져갈 건 없었다.”
아르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양이가 검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와, 무서워라.”
설표가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저게 없으면 당신도 태어나지 못했을 텐데 매정한 거 아닙니까?”
“내게도 주어진 사명이 있다. 저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지. 그리고 그 사명을 방금 완수했지.”
아르마가 천진하게 웃었다.
사명은 완수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저 아이가 스스로 살아가는 것과 자신이 손에 쥔 아이의 영혼을 무사히 탄생시키는 것뿐이다.
“이 기쁜 소식을 예쁜이에게 전달해야겠군.”
“고약하기는.”
아르마가 두 사람을 흘긋 흘겨보더니 이내 모습을 감췄다.
* * *
“아빠, 바빠요?”
“아니, 대충 다 끝냈단다.”
“응, 앞으론 내가 잘할게요. 이제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돼요.”
내 말의 숨은 뜻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아빠는 잠시 말이 없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궁금한 건 다 알게 됐니?”
“응.”
“근데 왜 표정이 좋지 않지? 누가 널 괴롭혔나?”
“제가 아빠를 슬프게 한 게 맞는 것 같아서요.”
“왜? 네 엄마가 널 잉태하는 바람에 죽은 것 같아서?”
아빠의 말에 절로 몸이 굳었다.
나는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데 아빠는 내가 망설이는 지점의 핵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끄집어냈다.
“……네.”
아빠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는 뭔가 하나 착각하고 있구나. 에이린.”
“네?”
“그녀의 몸이 약해져 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녀도 나도.”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쭈뼛거리다가 아빠의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붙였다.
“그녀는 널 낳기로 했고 널 낳기로 한 그녀의 선택을 나는 존중하기로 했다. 이 얘기는 했던 것 같은데.”
아빠가 턱을 괸 채 심드렁하게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을 얘기하는 것처럼.
“내가 알고 싶었던 건 네가 왜, 내가 아니라 그 개망나니 놈한테 가야 했는지, 그리고 태어나지 않았던 네가 어떻게 무덤 속에서 태어난 것인지…… 그게 궁금했던 거다.”
아빠가 말했다.
짧은 한숨을 쉰 그가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헝클어뜨리더니 이내 가볍게 웃었다.
“사실은…….”
나는 아빠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방금 퍼플에게 들은 이야기까지 전부.
얘기를 다 들은 아빠는 잠시 아무런 말도 없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고생했구나.”
아빠가 나를 품에 힘껏 끌어안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군. 마음고생이 심했겠구나.”
아빠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이제 행복해지렴.”
아빠가 나를 품에 안은 채 작게 속삭였다.
“행복해지렴, 네가 할 일은 그뿐이구나.”
‘따뜻해…….’
다정한 품에 얼굴을 묻고 있노라니 기분이 좋았다. 내가 서툴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가 웃었다.
“그래, 이제 나도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면 제대로 일을 물려받아야지.”
“……네에.”
“그리고 함께 많이 지내자꾸나.”
아빠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언제까지나 내가…….”
아빠가 내 이마에 제 이마를 가져다 대더니 가볍게 문질렀다.
“네 곁에 있을 순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빠.”
“물론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인 건 알지.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올 이야기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에 내가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자 아빠는 퍽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네 오라버니들이 곧 졸업하고 돌아온다더구나. 네가 말한 사업들, 진행할 거지?”
“네.”
내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저 답답하게 생각했던 이야기를 시원섭섭하게 털어낸 것뿐인데 어쩐지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끝인가…….’
나는 짧게 숨을 뱉었다.
별지기의 일은 아직 남아 있지만, 내가 행복해지기만 한다면 문제없을 거라고 했으니 괜찮겠지.
‘이걸로 된 거겠지.’
나는 아빠의 손을 힘껏 붙잡았다. 그러자 아빠가 마찬가지로 힘주어 내 손을 맞잡아 왔다.
머지않아 끝이 올 것 같았다.
이 지독하고도 질기게 이어진, 기나긴 인연에도 종장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흘러들어 왔다.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