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73
“그거 들었어요? 요즘 한창 인기 있는 그 염색약인지 뭔지를 만든 게 이 에탐 가문의 어린 가주라면서요?”
“정말요? 그, ……드래곤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거 말고도 애완동물 용품 사업에도 힘을 쓰고 있다고 하던데…….”
“이상한 짓을 한 건 아니겠죠?”
“저도 써 봤는데 아주 좋더라고요. 보세요, 이 머리카락. 아주 예쁘게 염색이 됐어요.”
“어……? 그러고 보니 머리 색이 조금 더 생기 있게 바뀌신 것 같아요.”
영애들이 모여 서로 다투며 입담을 나눴다. 오랜만에 열린 커다란 연회에 떠드는 목소리들은 퍽 신이 나 있었다.
색색의 머리카락들이 여기저기 가득했는데, 덕분에 연회는 전에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색을 뽐내고 있었다.
“에탐 공작가에서 열리는 연회라니, 굉장히 오랜만이지 않나요?”
“그러게요.”
“생각보다…… 드래곤이라는 게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맞아요, 사실 제가 기르는 고양이가 그, 캣 푸드 중에 츄르? 라는 걸 아주 좋아한답니다. 얼마나 날뛰는지 몰라요.”
“어, 사실은 저도……. 에탐 가문이 주관하는 사업이라는 걸 알기 전에 구매해서 사용했었는데 만족해요!”
“드래곤은 무섭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별일도 없었고요.”
“음, 그러게요.”
영애들이 서툴게 입술 끝을 올리며 미소 지었다.
별지기가 남긴 영향력은 아직도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지만, 그뿐이었다.
에이린이 노력한 만큼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근데 세상에, 황태자 전하께서도 이 파티에 참석하셨을 줄은 몰랐어요.”
“차기 마탑주도 계시는데요…….”
“황태자 전하의 약혼녀이신 릴리안 데이지 영애도 계시고…….”
“다른 에탐 직계 분들도 보이네요.”
“어머, 전전 에탐 가주께서도 오셨네요. 하사받은 다른 영지로 내려가 계신다고 들었는데…….”
거대한 연회장에 가득 찬 인파에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방아를 찧기에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연회에 얼굴을 보이는 일이 극히 드문 인사들이 가득했으니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연회장은 어수선했다.
유명 인사들이 가득한 연회장에 열기와 흥분이 가득 차올랐던 탓이다.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에이린 에탐 가주님과 에르노 에탐 전 가주님, 그리고 루실리온 대신관께서 입장하십니다!”
입장을 알리는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세 사람이 붉은 카펫 위를 느리게 밟았다.
순식간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어수선했던 연회장엔 적막이 감돌았다.
분홍빛의 사랑스러운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졌다. 밤하늘을 닮은 검푸른 빛의 드레스에 들어간 황금색 장식과 수는 그녀의 새하얀 피부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벌꿀을 머금은 듯한 아름다운 황금빛 눈동자는 동글동글 사랑스러웠다.
드래곤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는 나이가 들어 진중함까지 더해진 에르노 에탐이었다.
그는 제 딸의 오른쪽 손을 가볍게 붙잡은 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화사한 미소는 여전히 사람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워서 그를 지켜보는 뭇 귀부인들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뿐이랴.
왼쪽으로는 아름다운 은발의 사내가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눈이 멀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신관을 상징하는 새하얀 제복에 황금빛 자수가 놓인 그 모습에 모두가 눈을 떼지 못했다.
한창때의 영애들이 루실리온을 보며 뺨을 붉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꽃에게 양손을 잡힌 채 에스코트 받고 있는 에이린의 모습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세상에, 저 아이가 원래 저렇게 예뻤었나요?”
“예전에 봤을 땐 예절이라곤 전혀 모르는 아이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예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에이린은 느리게 걸어가 단상 위에 섰다.
“생일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서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가주가 된 뒤로는 처음 여는 연회네요. 부디 편히 즐기다 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에이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 * *
“내 딸에게서 떨어지지 그러나, 애송이가.”
“저도 성년이 되었습니다, 아버님.”
“아버님은 누가 아버님……!”
두 남자에게 에스코트를 당하며 나는 그저 웃었다. 그러니까, 차마 울 수는 없어서 웃었다는 거다.
연회장에 입장하기 전부터 입장하는 내내 양손을 하나씩 붙든 이 두 남자가 쉬지 않고 복화술에 가까운 솜씨로 싸웠기 때문이었다.
‘진짜 대단하다.’
복화술로 싸우는 게 말이다.
실제로 아무도 이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몰랐다. 표정만큼은 화사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사업도 잘됐고…… 사업이 성공한 덕분에 설표도 떼어냈고…… 그리고 모두가 잘해 준 덕분에 돈방석에도 올랐는데…….’
여전히 루실리온과의 관계는 애매한 상태다.
2년이다.
별지기에 대한 일을 아빠에게 보고하고 사업을 시작해서 확장하고 여기까지 정착시킬 때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루실리온이 아빠의 앞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에이린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아버님.]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빠가 검을 뽑아 루실리온에게 달려들었고 그 길로 정원이 반파되었다.
‘……실환가.’
다시 생각해도 통 믿기지 않는 결과물이었다.
‘음…….’
수복을 위해 들어간 예산을 생각하면 약간 눈물이 나오는 수준이다.
어쨌든 그 뒤론 눈만 마주쳤다 하면 아빠는 루실리온을 퍽 사납게 쳐다봤다.
오늘도 루실리온이 제 파트너를 하겠다고 일주일 내내 구애를 하는 걸 아빠가 나 몰래 전부 내치다가 당일에 두 사람에게 에스코트당하는 꼴이 되었다.
“에이린.”
“응?”
고개를 돌리자 루실리온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코앞에 있는 터라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고스란히 눈동자에 담겼다.
‘정말 눈이 예쁘다니까.’
무슨 보석 같았다.
“여기, 뭐 묻었어요.”
그의 손이 내 눈두덩 위를 가볍게 문질렀다.
“아, 고마…….”
“지금, 뭘 하는 거지?”
“먼지가 묻었길래 떼어 줬을 뿐입니다, 아버님.”
“그러니까 누가 아버님이냐고 했을 텐데. 나는 네놈을 인정한 적이 없다.”
“네, 머지않아 인정하게 되실 테니까 미리 부르는 겁니다. 에이린이 안심할 수 있는 좋은 사위가 되고 싶어서요.”
해사하게 웃는 얼굴로 내뱉는 말에 가시가 툭툭 돋아 있는 것도 같다.
어쩌면 저게 정말 천진한 말일지라도 아빠의 화를 제대로 돋우는 말이었지만.
“에이린.”
“응?”
“좋아해요.”
“…….”
루실리온이 얼굴을 불쑥 내리며 작게 속살거렸다.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그래, 네가 죽고 싶은 모양이군. 그래, 원한다면 얼마든지…….”
아빠가 검을 뽑아 들려는 것을 내가 손을 뻗어 가볍게 막았다.
“아빠, 제발. 루실리온 너도 밖에선 적당히 해.”
“네, 안에서 하겠습니다.”
그게 그 말이 아니잖아.
아예 대놓고 들이대기 시작한 루실리온에 심장이 쿵쿵 떨어지는 매일이었다.
‘심장에 안 좋아.’
정말 천사의 탈을 쓴 악마가 따로 없었다.
한숨을 쉬고 있는데 에이린이 서 있는 단상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에이린.”
“리하르트.”
거의 2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몇 번인가 편지를 보냈었지만, 잘 지낸다는 답변 외에 리하르트는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는데.
다시 만난 얼굴은 한층 더 성숙해져 있었다. 못 본 새에 훌쩍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생일 축하해.”
리하르트가 잘 포장된 선물을 내밀었다.
“……고마워.”
“응,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잘 지냈어?”
“응, 너는?”
“나도 잘 지냈지. 매일 늙은이 상대하느라 귀찮기는 하지만 말이야. 요즘은 아버지가 왜 집에 안 오냐고 매일 징징거려.”
툴툴거리는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아마 이렇게 되기까지 아주 큰 노력을 했겠지.
“곧 마탑주가 될 거 같아. 계승식에 초대할 테니까 꼭 와.”
“물론이지.”
“좋아, 자주 보자고. 더 대화하고 싶은데 뒤로 줄이 가득하네.”
리하르트가 짓궂게 웃으며 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무엄하기는, 이런 건 원래 황족이 먼저인 거 아니냐.”
에노쉬가 여전히 툴툴거리며 맨 앞에 섰다.
“생일 축하한다, 반주……. 아니.”
편하게 말을 걸려던 에노쉬가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눈에 힘을 주며 턱을 치켜세웠다.
“생일 축하하오, 에탐 가주. 훌륭한 가주가 되어 나라에 보탬이 되면 좋겠소. 최근 사업도 무척 인상 깊게 보고 있소.”
근엄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어쩐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 감사합니다. 황태자 전하.”
“이건 약소하지만, 나와 약혼녀가 미래의 가신이 될 그대에게 주는 선물이오.”
에노쉬가 고개를 까딱하자 사용인들이 커다란 상자를 들어 내 옆에 두었다.
“별건 아니고 성물이오. 드래곤은 성물을 좋아한다고 들어서.”
“감사합니다.”
내가 활짝 웃으며 대답하자 에노쉬가 팔짱을 끼더니 헛기침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뭔가 놀리고 싶은데 주변 눈을 생각해서 입을 열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에이린! 생일 축하해!”
“저리 비켜, 샤르네. 에이린은 내가 먼저 끌어안을…….”
“뭐래, 바보들이.”
에노쉬가 멀어지자 곧장 달려온 샤르네가 에이린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 못 본 새 정말로 훌륭한 레이디가 되었다.
“덕분에 무사히 졸업했어. 에이린이 신경 써 줬지?”
“…….”
그냥 긴 잠에 들기 전에 테렘에게 샤르네를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했을 뿐이다.
“덕분에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재밌게 잘 다녔어. 이건 선물.”
쪽.
샤르네가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어느새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곤 훌쩍 물러났다.
“아, 에이린. 우리도 있어!”
“맞아, 준비했어.”
칼란과 실리안이 냉큼 끼어들어 선물을 쭉 내밀었다.
“젠장. 언제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서는…….”
칼란이 울 것같이 새빨개진 눈으로 코를 훔쳤다.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돌리는 그 모습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미안, 요즘 자주 저래. 네가 커 가는 게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무섭다나, 뭐라나.”
“실리안 에탐!”
“어쨌든 생일 축하해.”
실리안이 담백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제게 붙어 있으려는 샤르네와 칼란의 뒷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며 멀어져 갔다.
그 뒤로도 크루노 에탐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생일을 축하해 주고 선물을 주곤 떠나갔다.
‘으아, 지겨워.’
피곤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려니 음료가 담긴 차가운 잔이 뺨에 닿았다.
순간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자 루실리온이 빙긋 웃고 있었다.
“슬슬 시선이 돌아가는 거 같은데 잠깐 나가서 쉴까요? 에이린.”
“아, 응.”
차가운 잔을 내게 넘겨주며 루실리온이 자연스럽게 내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가 에스코트하듯 나를 데리고 테라스로 나가 문을 잠갔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기분 좋은 공기에 난간에 기대어 가볍게 웃자 루실리온이 내 뺨을 가볍게살짝 문질렀다.
“에이린.”
“응?”
“이러다간 아버님의 방해에 평생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뭘?”
루실리온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내가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자 루실리온이 내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달빛이 은은하게 내려앉아 그의 은발이 한층 더 반짝거렸다. 루실리온이 내 손을 가볍게 붙잡은 채 한쪽 무릎을 꿇었다.
“에이린, 저랑 결혼하지 않을래요?”
“……루실리온?”
“좋아해요. 평생 당신을 제 몸보다도 더 아낄 테니, 내 남은 모든 인생도, 그 이후의 삶도 전부 에이린에게 줄 테니까…….”
“…….”
“에이린의 인생도 제게 주세요.”
새하얀 빛의 고리가 마치 반지처럼 내 손등 위에서 둥둥 떠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마지막 선택의 시간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