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
언제나처럼 내가 서재에 도착했을 때 서재의 문은 빼꼼 열려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긴 이용객이 거의 없어서 늘 뽀얀 먼지로 방치되어 있었으니까.
‘어……?’
분명히 며칠 전에 잘 닫아 놓고 갔던 것 같은데?
의아한 낯으로 서재에 들어가자 책장 근처를 느긋하게 둘러보고 있는 낯선 인물이 보였다.
‘……누구지?’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여기에 있다는 건 방계나 직계 중 한 명이라는 얘기인데.
‘처음 보는 사람이네.’
이 별채는 방계와 직계라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계가 굳이 별채를 이용할 일은 없다. 본 저택의 서재가 훨씬 좋고 방이나 시설도 비교할 수 없을 테니까.
남자는 내 시선을 느낀 듯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도 나를 파악하듯 살짝 고개가 가볍게 기울어졌다.
“혹시 신성 마법에 대해 적힌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자못 다감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빙긋 웃는 입가의 미소가 꽤 다정스레 느껴졌다.
천하의 나도 잠시 넋을 잃을 정도였다.
내가 굳어서 대답하지 못하자 그는 금세 흥미를 잃은 듯 무심하게 다시 몸을 돌렸다.
아차!
대답해 줘야지.
“쪼기, 1번 구역에 처뻔째 책장 두 번째 칸에 이써여.”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 내게 닿았지만, 나도 마일라가 오기 전에 빨리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내 갈 길을 가려고 했다.
문득,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르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거기까지 떠오르자 눈이 번쩍 뜨이며 걸음이 뚝 멎었다.
에르노 에탐!
그는 이 에탐 가문의 희대의 천재라고 불리며, 에탐 가문의 막내 공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유력한 후계자 후보로 거론되는 에탐의 악동이었다.
사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언뜻 에서 가장 온화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변덕이 심하고 성정이 잔인한 사이코패스였다.
그리고 ‘광폭화’라는 에탐 특유의 고질병이 가장 심한 사람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마력을 억제하는 액세서리를 여러 개 착용하고 있을 정도였다.
‘뭐, 나랑은 상관없으니까.’
왜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차피 내일 쫓겨날 테니.
나는 고아원 목록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아, 찾았다!’
눈을 반짝이는 순간, 책 위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뭘 보고 있니?”
에르노 에탐이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찾은 듯 옆구리에 책 두 권을 끼고 있었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책, 이여.”
나는 더듬더듬 대답하며 혹시나 겁에 질렸다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배시시 웃었다.
그는 제 앞에서 벌벌 떠는 사람을 가장 싫어했으니까.
에르노 에탐의 눈이 먹잇감을 탐색하듯 슬며시 가늘어졌다.
“고아원 목록을?”
그의 타당한 질문과 의심이 가득한 시선에 나는 재빨리 머리를 갸웃했다.
“고……아언이 모에여……? 저어는 그냥 글짜 연습하고 이써여!”
일단 모르쇠 작전으로 가기로 했다.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글자를 짚어 가고 있었으니 억지스럽진 않겠지.
“그래? 덕분에 책은 잘 찾았다. 근데 서고가 꽤 넓은데 잘 아는 것 같구나.”
“자주 와써여.”
“그래?”
다행히 그는 더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진 않았다.
‘내게 흥미가 없는 거겠지.’
그는 흥미가 없으면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가고 있어도 구해 주지 않으니까.
“네, 자주 와써여.”
내 심심한 대답에 그는 흥미를 잃은 듯 인형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곤 이내 몸을 돌렸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책에 얼굴을 푹 묻었다.
“으아…….”
너무 긴장한 모양이다.
심장이 쿵 떨어진 것만 같았다.
한숨을 푹 내쉬며 고아원 주소가 적힌 페이지를 부욱 찢어 주머니에 넣곤 책을 다시 접었다.
고아원 이름은,
……이라는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이름이었다.
고아원 이름을 보고 있으니 그제야 이곳에 대한 정보가 주르륵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 고아원에 미래의 마탑주가 있었던가……?’
그리고 그 미래의 마탑주가 어느 귀족가에서 잃어버린 아이였는데.
‘누구더라……?’
음, 모르겠다.
당장 내일 목이 뎅겅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 남의 사정 신경 쓸 때인가.
책을 잘 정리해 두고 막 서재를 나가려는 찰나였다.
팅-!
데구루루.
무언가가 발끝에 걸렸다. 고개를 숙이자 단조로운 은색 반지였다.
붉은색의 작은 원석이 박혀 있고 고급스러운 각인이 세공된 것이 최소한 싸구려는 아니다.
‘이건…….’
문득 방금까지 이곳에 있다 간 에르노 에탐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거 설마…….’
광폭화를 억제하는 반지인가?
그는 광폭화를 억제하는 귀걸이를 포함해 몇 가지의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등줄기로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이거 좀…… 위험하지 않나?’
나는 급히 반지를 쥐고 서재를 나섰다. 다행히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느린 걸음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저기, 이거…….”
나는 혹여나 그가 폭주라도 할까 봐 두려워 토도도독 달려가 급히 반지를 건넸다.
“아, 찾고 있었는데.”
“책쌍 밑에 이써써여!”
“그래?”
에르노 에탐이 빙긋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혹여나 그의 손끝이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반지를 톡 내려두고 후다닥 손을 뺐다.
그는 변덕스러운 성미에 상당한 결벽증까지 있어서 그가 허락한 이가 아니면 손이 닿는 것을 대단히 불쾌하게 여긴다고 했으니까.
반지를 가볍게 쥔 그가 몸을 돌리다 말고 멈칫했다. 그는 갑작스레 내가 준 반지를 인상을 찌푸린 채 노려보았다.
‘그, 그렇게 더러운 거야……?’
나름 지문도 안 남게 옷자락으로 닦긴 했는데…….
“그럼 저능 바빠서 이만……. 안녀히 게새여…….”
나는 대답 없이 반지만 노려보는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슬금슬금 물러났다.
“하하, 재밌네.”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뒤에서 전혀 재밌지 않아 보이는 낮은 웃음이 들렸다.
나는 복도에서 꽁무니 빠져라 달리지 않기 위해서 그야말로 이를 악물어야 했다.
‘짐승은 도망가면 쫓아온다…….’
‘짐승은 도망가면 쫓아온다…….’
‘짐승은 도망가면 쫓아온다…….’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방에 도착하니 이가 얼얼했다.
그리고 다음 날, 대망의 신년 회의가 돌아왔다.
* * *
‘졸려…….’
나는 아침부터 비몽사몽 손등으로 눈을 벅벅 문질렀다.
밤을 꼬박 새운 탓에 눈앞에 가물가물했다.
밤새 당직 하녀들의 눈을 피해 별채를 돌아다니면서 돈이 될 만한 걸 찾느라 바빴던 탓이다.
별채이긴 하지만, 가문이 가문이다 보니 돈 될 만한 것을 찾는 건 썩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준비는 완벽해.’
오늘 예정대로의 일이 일어나더라도 모든 시뮬레이션을 마쳤다.
위에서 말했지만, 나는 도마뱀 수인이고 아직 어렸다.
어린 수인은 종종 감정이 격해지면 인간화가 풀리곤 했다.
소설 속에서도 엑스트라의 이야기라 자세히 묘사되진 않았지만 바로 여기서 인간화가 풀릴 일이 생긴다는 거겠지.
어쨌든 모든 상황에 대한 계획을 세워 두었다.
첫 번째, 가장 베스트인 것은 인간화가 풀리지 않아서 내가 목숨줄을 연명할 수 있게 되는 것.
두 번째, 수인화가 풀리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미리 탈출구를 봐 두고 곧장 도망가서 짐을 챙겨 이 저택에서 도망치는 것.
세 번째, 내 입으로 직접 나갈 테니까 하루만 유예를 달라고 하는 것.
1번이 가장 좋지만, 2번, 3번도 나쁘진 않다.
“아가씨, 가실까요?”
“웅……!”
나는 마일라와 함께 본 저택에 딸린 커다란 대회의실로 향했다.
그녀는 회의실 앞에 도착하자 쪼그려 앉아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아가씨, 여기서부턴 제가 들어갈 수 없어요. 이름이 적힌 자리를 찾아가셔서 앉아 계시다가 시키는 것만 하시고 나오는 거예요. 인사법은 알려드렸죠?”
“응.”
“네, 저는 요 앞에서 기다릴게요, 우리 아가씨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이따 바, 마이라!”
볼 수 있다면 말이야.
마일라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주먹을 꼭 쥐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걸음을 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