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0
‘추워…….’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몸은 춥고 그나마 몸을 둥글게 감쌀 꼬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추워.’
또다시 그렇게 생각한 순간 기다렸다는 듯 무언가 포근한 것이 몸을 휘감았다.
난로에 들어간 듯한 따뜻한 온기에 휩싸여 한참이나 그 품에서 어리광을 부리던 나는 한참 만에 이 모든 감각이 전혀 낯설다는 것을 깨닫고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깜빡.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서 자수정이 반짝였다.
“오, 눈떴구나.”
“꾸우욱-!”
자수정이 아니라 사람의 눈이었다.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는데, 이상한 울음소리가 새어 나갔다.
“도마뱀도 우네?”
‘……도마뱀?’
나 아직도 설마 도마뱀이야?
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에 작은 거울이 있었다.
‘진짜 아직도 도마뱀이네…….’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핑크빛이 도는 은색 비늘을 몸에 두른 기묘한 도마뱀이 내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엄청 작다.
‘말도 안 돼…….’
아직도 사람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줄은 몰랐다.
‘대체 어떻게 하면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는 거야?’
눈을 질끈 감고 아무리 몸에 힘을 줘 봐도 영 돌아갈 기미가 없었다.
‘설마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덜컥 겁이 났다.
그 순간 소년이 코앞까지 얼굴을 불쑥 들이밀더니 내 머리를 검지로 살살 쓰다듬었다.
“죽었으면 실험체로 쓰려고 했는데 살아서 다행이네.”
“…….”
오소소 소름이 돋는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 타다다닥 뒷걸음질을 쳤다.
“뭐야, 어디 가?”
나보다 두어 살 더 많아 보이는 소년이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색소가 옅어지는 특이한 머리카락에 짙은 자수정빛 눈동자를 품은 소년.
흔히 보기 힘든 장발은 마치…….
‘……누구를 떠올리게 하네.’
예를 들어서, 새싹 고아원에 있을 것이 분명한 서브 남자 주인공 중 하나인 ‘리하르트 콜린’이라거나.
‘……는 무슨, 얘 리하르트 콜린이잖아?!’
흔하지 않은 장발과 흔하지 않은 머리 색, 그리고 흔하지 않은 문양이 새겨진 드롭 귀걸이까지!
누가 봐도 엑스트라에게 줄 만한 설정들이 아니다.
그리고 엑스트라 외에 이런 외양을 가진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딱 한 명뿐이었다.
리하르트 콜린.
에탐 가문에 에르노 에탐이 있다면, 마탑에는 리하르트 콜린이 있다.
이 소년이야말로 미래의 마탑주가 될 장대한 서사시가 예정된 두 번째 또라이였다.
에르노 에탐은 그나마 이름을 살짝 참고한 ‘싸패 에탐’ 정도의 귀여운 별명이 붙었지만, 독자들이 칭하는 리하르트 콜린은 그냥 ‘또라이’였다.
왜냐하면…….
그냥 또라이였기 때문이다.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이 원작은 본래 17금 육아물이었다는 사실을.
물론, 저 또라이 짓에도 이유가 있긴 했다.
그는 어린 시절 노예 상인에게 이리저리 팔려 다녔고 성인이 되어선 그것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연관된 이들의 3대를 멸족하러 다녔다.
‘……그래도 어릴 땐 꽤 멀쩡했나 보네?’
묘사에서 봤던 것보다 인상이 훨씬 순했다.
하긴, 소설에 한창 등장할 때엔 거의 청소년기를 지나 성년이 되기 직전 무렵이었다.
리하르트가 콜린 가문에서 잃어버린 막내아들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하지만, 여주인공을 제외한 많은 주조연들에겐 서글픈 서사가 있고 여주인공이 그것을 감싸 안는 스토리로 전개됐다.
나중에 리하르트 콜린의 또라이 같은 성격도 조금 바뀌기는 한다.
그러니까…… 그냥 또라이에서 여주인공 중심의 또라이로 말이다.
“내가 아니었으면 넌 죽었을 거야.”
그가 생글 웃으며 내게 손을 뻗었다.
책상 앞에 앉아 살짝 턱을 괸 모습이 정말 묘사에서 봤던 것보다 더 예뻤다.
종종 뒷모습만 보면 여자랑 헷갈릴 때도 많다고 들었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외모였다.
“내가 널 살렸으니까, 넌 내 거야. 그러니까 앞으론 내 옆에 있어.”
그가 조금 더 내게 손바닥을 내민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여 그의 손바닥에 올라갔다.
내가 그의 손바닥에 올라가자 리하르트 콜린의 표정이 화악 밝아졌다.
‘꼬리가 없으니 조금 불편하네.’
있던 신체가 없어진 기분이 미묘했다.
“꼬리가 없어서 다른 도마뱀한테 괴롭힘이라도 당한 거야? 자기랑 다른 걸 배척하는 건 인간이나 파충류나 똑같구나.”
리하르트 콜린의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내가 널 강하게 키워 줄게. 다음에 가서 복수해. 꼬리가 없어도 건강하게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야.”
그러고 보면 그도 수많은 편견 속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남들보다 특출나게 머리가 좋았고 남들보다 특출나게 아름다웠고 남들보다 특출난 재능이 있었고 남들과는 다르게 부모가 없었다.
‘그러게, 다를 게 없네. 소설 속이나…… 현실이나.’
시대를 막론하고 장소를 막론하고 결국 어딘가에선 미운 오리 새끼가 탄생하는 법이다.
나는 작달막한 손을 뻗어 작고 차가운 발바닥을 리하르트 콜린의 뺨에 착, 올렸다.
두어 번 토닥토닥 두드리자 리하르트 콜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야, 너 되게 신기하네. 마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 꼬리가 없어서 머리가 좋아진 걸까?”
음, 근데 얘 아까부터 착각을 하나 하는 것 같다.
“불편할 텐데 꼬리 모형이라도 만들어 줄까?”
내 꼬리, 다시 자랄 거거든.
아마도.
‘도마뱀이니까 자라겠지?’
나는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아, 그 전에 이름을 정해야 할 텐데…… 뭐가 좋을까?”
이름이 있는데 또 이름이라니.
하지만, 지금은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내가 가만히 있자 리하르트 콜린은 한참이나 고민하는 듯하더니 눈을 반짝였다.
“피부가 은색이니까 흰돌이?”
나는 경악한 얼굴로 리하르트 콜린의 손바닥에서 뒷걸음질을 쳤다.
“어어, 야. 너 떨어진다?”
나는 급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싫다고……? 그럼, 음. 은색이니까 실버……?”
“…….”
누가 알았을까.
이 또라이의 작명 센스가 바닥을 친다는 사실을.
내가 경악한 듯 움직이지 않자 리하르트 콜린도 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멋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뱀뱀이……?”
“…….”
거세게 날아온 어퍼컷에 나는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오, 이건 마음에 드는구나. 그럼 이걸로 하자! 잘 부탁한다, 뱀뱀아.”
그렇게 나는 뱀뱀이가 되었다.
* * *
“아, 귀찮아. 또 훈련 시간이야.”
‘훈련을 거의 매일 하네?’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뭐라고 생각했는지 또라이……, 아니 리하르트 콜린이 덧붙였다.
“나한텐 전혀 쓸모없는 건데 말이야. 뱀뱀이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리하르트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이 고아원에 온 지도 무려 사흘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인간화에는 실패했고 이 고아원과 리하르트 콜린에 대한 의외의 면을 발견하게 됐다.
이 고아원은 현재 성마대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행방이 묘연해진 전쟁 영웅, 알비온이 운영하는 고아원이었다.
평생을 평민으로 살아왔던 그는 성마대전이 일어나며 신의 계시를 받아 영웅이 되었다.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죽여 본 적 없는 사람이 전장의 최전선에서 무언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도 그는 영웅의 성흔을 받은 것을 증명하듯 전장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전쟁 뒤의 상황을 견뎌내지 못했지.’
처참하게 늘어진 시체와 가족을 잃어버리고 통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에 환멸을 느낀 그는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왜냐하면, 그가 영웅이 됐기 때문에 그는 제 아내와 딸을 잃어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그는 전쟁고아를 비롯한 고아들을 모아다가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든 곳이 바로 이 ‘새싹의 시간 고아원’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전쟁터에서 구르며 몸소 배운 모든 지식을 전수해 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이 고아원에서는 십 년 뒤쯤엔 꽤 유명한 인사들이 많이 나오곤 했다.
“난 멍청한 놈들이랑 수업 듣기 싫어.”
“그래도 들어야 한다. 리히트.”
뒤쪽에서 들려온 건조하며 무감정한 목소리에 리하르트 콜린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내 몸도 폴짝 뛰었다가 돌아왔다.
고개를 돌리자 훤칠한 키의 평범한 외양의 사내가 보였다.
밝은 갈색 머리카락에 마치 메말라 죽어 가는 들판 같은 녹색 눈동자를 지닌…….
이 고아원의 원장이자 성마대전의 영웅, ‘알비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