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2
평일 오후의 분수대가 놓인 아담한 공원은 화목한 가족들과 연인으로 인산인해였다.
투박한 돌을 깎아 만든 분수대 근처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와, 엄마! 엄마! 엄마! 이거 봐요, 나 왕사슴벌레 잡았어! 엄청나죠? 제가 잡았어요!”
“그러다 넘어진다, 조심히 오렴. 엄마가 다 봐 줄게. 그래.”
“이거 봐요! 엄-청 크죠? 아빠, 아빠!”
“그러게, 역시 우리 아들. 천재가 따로 없는데? 하하, 안 그렇소? 여보.”
“그러게요.”
도란도란한 가족이었다.
겨우 곤충 한 마리를 채집했다고 한껏 신이 나서 달려온 아이를 아비는 덥석 안아 품에 안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아이가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아이는 간지럽다는 듯 까르륵 웃음을 터뜨렸고 어머니는 여동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품에 끌어안은 채 흙투성이가 된 소년의 뺨을 부드러운 천으로 털어 주었다.
‘…….’
나는 한참이나 그 장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이를 몇이나 먹어도 결국 저렇게 단란한 가정을 보고 있으면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저 조금 부러웠다.
그리고 생각하게 될 뿐이다. 내게도 저런 가족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그저 잠시 잠깐 행복한 상상에 잠겨 보는 것이다.
전생에서도 그랬다. 가끔 공원이나 놀이터에 앉아 지나가는 가족들을 보곤 했다.
‘어휴, 언제까지 이럴 건지.’
나도 참 아직 제대로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싶다.
슬슬 알비온에게 돌아가자고 하기 위해서 리하르트 콜린의 뺨을 톡톡 두드리려는 때였다.
리하르트 콜린의 시선은 여전히 그 가족들에게 닿아 있었다.
다시 한번 소년의 시선을 따라 다시 고개를 돌리자 가족들이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군것질거리를 사러 가고 있다.
“가끔 생각해.”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내 부모는 왜 날 버렸을지. 평범한 인간은 마법사를 싫어한다고 하던데, 그 때문이었을까?”
소년은 짧게 숨을 뱉었다.
“그럼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날 왜 낳았을까? 차라리 갓난아기 때 죽여 버리지. 그랬으면…… 그랬으면, 나는 적어도…….”
리하르트 콜린의 말에 내 눈이 절로 커졌다.
늘 내가 스스로에게 읊조렸던 생각을 타인의 입으로 듣게 될 줄은 몰랐던 탓이다.
나는 느릿느릿 양쪽 앞발을 둘 다 뻗었다.
내가 손을 뻗는 것을 본 리하르트가 천천히 상체를 숙여 내게 얼굴을 바싹 가져다 댔다.
톡.
앞발이 리하르트의 양 뺨에 아슬아슬하게 닿았다.
“혹시 너도 꼬리 없다고 버림받았어……?”
그러니까 꼬리는 잘린 거고 다시 날 예정이라니까.
하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한 척 가만히 있었다.
“왤까? 너는 도마뱀 주제에…… 마치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 너도 나처럼 천재일지도 모르겠다.”
살짝 뜨끔하는 말에 시선을 스리슬쩍 피했다.
“괜찮아, 언젠가 날 버린 놈들과 날 사고판 놈들에게 전부 복수할 거니까.”
리하르트는 애써 의연하게 말했다.
나는 작은 머리를 움직여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말라고? 뱀뱀아, 설마 너까지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소년이 황당한 듯 언성을 높이며 내게 쏘아붙이다가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냉큼 입을 다물었다.
“아니, 참…… 나도 도마뱀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었다.
콜린 공작 부부는 결코 리하르트를 일부러 버린 것이 아니다.
평소 콜린 가문에 악감정이 있던 시녀 중 하나가 저택에 몰래 숨어들어 왔다가 가문 사람들이 정신없는 틈을 타서 리하르트를 훔쳐 노예 상인에게 팔아 버린 것이다.
콜린 공작 부부가 사실을 알자마자 사람을 풀어 찾아 헤맸지만, 이미 한 해적단의 노예로 팔렸던 리하르트를 찾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결국 성인이 될 때까지 찾지 못할 거야.’
그게 옳은 일인가?
나는 누구보다 외로움을 잘 안다. 누구보다 부모의 부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정답을 알면서도 원작의 흐름이 그렇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건 옳은가?
‘……그럴 리가 없잖아.’
다시 인간이 되면 콜린 공작가를 찾아가자.
‘아들 얘기라고 하면 설령 함정이라고 생각한들 오겠지.’
그러면 분명히 리하르트 콜린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러면 미래의 또라이 같은 성격도 좀 바뀌려나?’
나는 다시 한번 리하르트의 뺨에 앞발을 착! 하고 올렸다.
오로지 앞만 보고 있던 리하르트의 시선이 꿈결에서 벗어나듯 아주 천천히 내게 닿았다.
나는 앞발로 공원의 입구를 쿡쿡 찌르며 가리켜 보였다.
그리고 앞발로 눈을 가리며 열심히 누군가를 찾는 시늉을 했다.
‘가자, 알비온이 너 찾으면 오랬어!’
물론, 알아들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뛰는 시늉도 해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가족들을 앞발로 가리키고 그의 손바닥 위에서 뒷발로 우뚝 서서 짧은 앞발로 내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가족을 찾아 줄게, 날 믿어.’
어디까지나 도마뱀…… 아니, 보디랭귀지였다.
“……뭐라고 하는 거야?”
전달은 전혀 안 된 모양이지만 말이다.
힘이 쭉 빠졌다. 나는 뒷발에 힘을 빼고 흐물흐물 무너져 내려 그의 손바닥 위에 늘어졌다.
‘인간화 방법이 분명히 있기는 할 텐데.’
그러나 의 실제 여주인공은 수인이 아니었고 나중에 등장하는 수인은 너무 당연하게 인간화를 했으니 인간화를 하는 방법 따위는 소설 속엔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다행히 리하르트는 벤치에서 내려와 순순히 공원을 벗어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알비온의 냄새(?)가 느껴졌다.
다행히 리하르트는 내가 손짓과 발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 순순히 움직여 주었다.
* * *
“뱀뱀아, 밥 먹자.”
히끅.
내가 펄쩍 뛰자 리하르트 콜린이 내 몸을 붙잡고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오늘은 하나라도 먹어 봐. 책을 보니까 단백질 섭취는 필수래.”
리하르트 콜린이 아예 채집 상자에 나를 집어넣고 애벌레 두어 마리를 함께 넣었다.
‘으아아아악!’
꼬물꼬물 움직이는 애벌레를 피해 채집통의 벽에 달라붙었다.
‘싫어, 싫어, 싫다고!’
식사는 다행히 리하르트 콜린이 과일을 주고 있어서 해결할 순 있었다.
처음에는 곤충이나 애벌레 따위를 잡아 와서 내밀었던 터라 얼마나 기겁을 했는지 모른다.
나는 허겁지겁 채집통을 타고 오르며 고개를 붕붕 저었다.
‘저렇게 꿈틀거리는 걸 어떻게 먹어!’
내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자 리하르트 콜린은 수려한 미간을 설핏 찡그렸다.
“너무 과일만 먹어도…….”
나는 이제 목이 떨어져 나가라 고개를 저었다. 꿈틀거리는 애벌레가 슬슬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허겁지겁 채집통의 가장자리를 붙잡고 늘어지자 리하르트가 한숨을 쉬며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냉큼 그의 손바닥에 올라가 팔을 타고 기어올라 어깨에 앉았다.
이것도 좀 앉아 봤다고 편해진 것도 같다.
“고기를 좀 먹어 줘야 하는 거 아냐?”
고기는 좋지만, 살아 있는 애벌레 고기는 싫다고!
“뭐, 어쩔 수 없네. 싫다니까. 넌 내가 아니면 다른 데도 못 가겠어. 나 같은 주인이 세상에 어딨어?”
“…….”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말고 옆에 있어. 나 아니면 다들 너한테 저런 벌레나 먹일 거야.”
리하르트는 그렇게 말하며 잘게 조각낸 사과를 손가락에 올려 내게 내밀었다.
나는 날름 그것을 쏙 먹었다.
“근데 뱀뱀아, 이 등에 있는 건 뭐야?”
‘등? 내 등에 뭐가 있는데?’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등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고 노력이 곧 결과라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내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리가.
“뭔가 엄청 조그마한 게 있어.”
‘조그마한 거? 그게 뭔데?’
내 고개가 또다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말을 할 수 없으니 모르는 걸 물을 땐 항상 이렇게 행동으로 하게 됐다.
‘겨우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누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데, 그건 말 못 할 짐승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날개……인가? 뭔가 너무 작아서 그냥 콩알 같기도 하고…….”
리하르트가 뭉툭한 손끝으로 내 비늘 위를 도도독 긁었다.
깜짝 놀라 비늘이 오소소 날을 세웠다.
“미안, 놀랐어?”
조금 놀라긴 했는데…….
이상하게 그가 만진 부근이 예민했다. 살짝만 건드려도 약간 근육통이 오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건 없었는데……. 너 진짜 돌연변이가 맞기는 하구나.”
이런 혹(?)은 처음 봤다고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흠칫 굳어 버렸다.
설마…….
‘암은 아니겠지……?’
걱정이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