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3
“수인이나 도마뱀에 관한 자료는 아무리 찾아도 없네.”
리하르트 콜린은 고아원에 있는 온갖 책을 다 뒤져 보고도 부족해서 중앙 도서관에 가서 온종일 도마뱀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곤 지친 낯으로 중얼거렸다.
리하르트가 진지해지니 나도 점점 생각이 이상한 쪽으로 기울어 갔다.
‘정말로 암인가?’
‘설마 위험한 건 아니겠지?’
‘대체 뭐가 있다는 거야…….’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스치고 지났다.
거울에 이리저리 등을 비춰 보려고 해도 사족보행의 모습으로 등을 보기란 영 쉽지 않았다.
“네가 말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시점에서 이미 나는 도마뱀이 아니라고.
“슬슬 저녁 식사 시간이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몰래 빠져나갔던 고아원으로 슬금슬금 돌아온 리하르트는 손을 씻고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밖에서 빵을 사 와서 먹는데, 오늘은 웬일인가 싶었다.
“야, 왔다.”
“그냥 냅 둬, 쳐다도 보지 마.”
“안 봐, 맨날 밥 안 먹는다더니…… 왜 여기 와서 먹는 거야?”
“원장님은 왜 쟤만 저렇게 편애하는지 모르겠어. 맨날 훈련도 안 받고.”
“그냥 꺼림칙해서 그렇겠지. 게다가 노예였다잖아……, 불쌍해서 그렇겠지.”
여기저기서 악의 없는 말이 오갔다.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으려던 리하르트가 얼굴을 확 구겼다.
그가 식판을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인 쪽으로 내던졌다.
타앙-!
“꺄아아악!”
“야, 뭐 하는 거야!”
“꽥꽥 시끄럽네, 멍청한 돼지들이. 더 떠들어 보든가! 왜 내 앞에선 안 떠들어?”
리하르트가 한껏 날 선 시선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오기에 찬 자수정빛 눈동자에서 불이 뚝뚝 떨어졌다.
“뭐? 우, 우리가 뭘 어쨌다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식판을 노려보던 리하르트가 몸을 홱 돌렸다.
성큼성큼 제 방으로 돌아가는 리하르트의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뀨우우…….”
“왜, 너도 내가 꺼림칙해?”
얘 갑자기 왜 이래?
“노예였던 게 뭐 어때서. 내가 밑바닥에서 애완견 취급받았다고 너도 내가 더러워? 난…….”
잔뜩 일그러진 얼굴 위로 망울망울 눈물이 맺혔다.
“씨이…….”
리하르트는 그런 스스로가 수치스러운 듯 소맷자락으로 벅벅 눈가를 문질렀다.
‘애완견이라니…….’
사실 노예가 멀쩡한 인간 취급을 받긴 쉽지 않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리하르트 콜린의 뺨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동정도, 위로도 필요 없어. 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
‘알아.’
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뒷발 서기를 이용해 앞발로 가슴을 통통 두드렸다.
음, 꼬리가 없는 탓일까? 원래 익숙하지 않은 자세라서 그럴까? 오래 서 있기는 조금 힘들었지만 말이다.
“하, 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줄은 아는 거야?”
리하르트가 웃으며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그냥 칭찬해 주니까 하는 행동인 건 뻔히 아는데…….”
아니, 아니거든?
그렇기엔 타이밍이 너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어쩐지 뱀뱀이 너는 내가 누군지 잘 아는 것 같아.”
알고 있다.
소설 속에서 나름대로 비중 있는 캐릭터였던 터라 리하르트의 과거에 대해서 아주 단편적인 정보는 있었다.
“미안, 오늘은 네 밥도 못 준비했는데.”
나는 물끄러미 리하르트를 보았다.
“우리 오늘은 일찍 잘까?”
리하르트가 한쪽에 있는 이불장에서 작은 이불을 꺼내며 말했다.
본래 고아원에선 모두가 함께 자는 게 원칙이었는데, 리하르트는 그 특수한 상황 때문에 알비온이 방을 따로 내준 터였다.
“너도 자.”
리하르트가 나를 작은 손수건 위에 올리고 이불을 덮어 주며 말했다.
작은 온기라도 찾듯 내 앞발을 제 손바닥으로 덮은 리하르트가 꾹 눈을 감았다.
나는 앞발을 꼼질꼼질 움직여 리하르트의 손등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거칠거칠하고 보송보송하지도 않은 파충류의 차가운 앞발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흑…….”
내 의지가 통한 거였을까?
리하르트는 새벽까지 숨죽여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운지 입도 벙긋하지 않은 채로.
그리고 간신히 리하르트가 잠들었을 때쯤, 드르륵하며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사내가 이불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알비온이었다.
“너는 아직 안 잔 모양이군. 야행성 도마뱀 쪽인가?”
명실상부 주행성이거든.
그냥, 애가 서럽게 우는 걸 보니 비슷한 꼴이었던 과거의 누가 생각나서 잠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울었나?”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저번엔 말을 알아듣는 것도 같았는데…… 착각이었나.”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말을 알아듣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아봐야 좋을 것 없단 말이야.
괜히 어디 팔려서 해부나 당하면 어떡해. 인간화하는 방법을 빨리 알아야 할 텐데 말이다.
“마법사는 그냥 태어나지 않아. 마법사의 혈통이 있는 유전자에서만 나온다. 마법사의 아이는 귀하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함부로 버렸을 리가 없지. 나는 리히트의 부모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알비온이 고해성사를 하듯 말하며 젖은 손수건으로 리하르트의 뺨을 닦고 눈을 닦아 주었다.
오래 검을 쥔 자의 서툴고 또 투박한 손길이었다.
그나저나 그래서 요즘 고아원에 자주 없는 거였나?
“마법사의 아이는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가장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건 그렇겠지.
알비온이 그렇게 말하며 차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많은 아이를 내 손으로 키워 독립시켰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어려운 것 같다.”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리하르트의 방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문이 닫혔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이 찾아왔다.
‘에르노 에탐은 잘 지내고 있겠지? 다시 폭주하진 않았겠지?’
아냐, 설마 여주인공이 옆에 있는데 그런 일이야 있겠어?
‘설마 배신했다고 나를 찾고 있진 않겠지……?’
괘씸하다고 죽이기 위해서 찾고 있으면 무서울 것 같은데.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마지막에 죽이려고 손 뻗었을 때의 표정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래도 아쉬워.’
조금만 더 그 품에 있고 싶었는데. 그 다정함이 전부 연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잠시 가족이 생긴 것 같아서 정말로 기뻤었다.
한순간의 꿈이었지만.
‘빨리 다시 인간이 되고 싶다…….’
도마뱀의 몸은 불편해도 너무 불편한 것 같았다.
‘부탁이니까, 다시 인간이 되게 해 줘…….’
그렇지 않으면, 리하르트 콜린도 결국 불행의 늪에 빠져 버릴 것만 같았다.
돌아갈 곳이 있는데도 돌아가지 못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등이 간지러워…….’
팔이 짧아서 긁을 수도 없는 등이 간지러운 느낌에 나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다가 간신히 눈을 감았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 등에서, 이상한 것이 조금씩 크기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잠들기 전 빈 소원이 생각보다 빠르게 이뤄졌다는 것도.
* * *
“으아아악! 뭐, 뭐야!”
“으응……, 시끄러어…….”
“시끄럽긴! 너 뭐냐고! 뭔데 내 이불 속에 들어와 있어?! 그것도 아, 아, 알……! 그런 파렴치한……!”
귓가를 때리는 리하르트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나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밝은 빛에 잠시 눈앞이 캄캄했다.
보이는 것은 내 몸을 푹 덮고 있는 이불과 경악한 시선으로 구석에 주저앉아 나를 삿대질하고 있는 리하르트 콜린이었다.
‘어……?’
시야가 높다.
나는 슬쩍 시선을 내려 아래를 보다가 내 손을 보고 다시 천장을 보고 다시 나와 비슷한 눈높이의 주저앉은 리하르트 콜린을 보았다.
“어?”
목소리도 나왔다.
새하얗게 질린 낯으로 기겁하고 있는 리하르트 콜린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천천히 내 상황을 다시 살폈다.
왜인지 몰라도 자고 일어나니 인간화가 됐다.
그리고 수인화가 되면서 옷가지는 저쪽에 버리고 왔으니 당연히 나는 지금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다.
‘……아.’
그래서 놀란 거구나.
근데 뭐 다섯 살짜리 어린애 몸인데 보이면 좀 어때서.
‘……는 무슨, 내가 알몸이라니.’
나는 나를 덮고 있는 이불을 조금 더 부둥켜안고 당황한 낯으로 입을 뻐끔거렸다.
“너 대체 누구냐고 묻잖아!”
“리하르트 대체 무슨…….”
그리고 방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듯 타이밍 좋게 알비온이 들어왔다.
그는 이불을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있는 나와 윽박지르고 있는 리하르트를 보곤…….
……그대로 얼어 버렸다.
‘아니, 당신이 여기서 얼면 어떡해!’
이런 사태에 내성이 없어서 버퍼링이라도 걸린 모양이었다.
“뱀뱀이…….”
리하르트가 눈을 크게 뜨더니 내게 다가와 이불 주변을 살폈다.
그러더니 뭔가를 발견한 듯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주워들었다.
“아, 안 돼…….”
뭉개진 무언가를 내려다보던 리하르트의 눈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리하르트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너……, 내 뱀뱀이 어쨌어!!”
살짝 시선을 내리자 리하르트의 손에는 도마뱀의 껍질 같은 것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 나 탈피했나?’
아무래도 난 나도 모르게 탈피를 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