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4
생각지도 못했다.
도마뱀은 탈피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내가 도마뱀이면 뭐 하는가. 도마뱀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데 말이다.
‘아, 탈피 때문에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은 건가?’
탈피를 하는 데엔 영양분이 꽤 소모된다고 들었으니 인간화를 하고 있으면 곤란했던 것이 분명했다.
“……도마뱀?”
알비온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내게 다가왔다.
리하르트의 손바닥 위에 있는 탈피의 흔적을 보고 바짝 긴장한 나를 보더니 그는 낮게 탄식했다.
“넌……, 수인이군.”
그는 오랜 시간 전쟁터를 구른 영웅답게도 내 정체를 너무나도 빠르게 눈치챘다.
“도마뱀이 신기한 구석이 있다고 했더니……. 하지만 도마뱀 수인이 이렇게 작았던가?”
그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내가 엄청 작기는 하지.’
수인은 기본적으로 같은 종에서도 가장 우세한 종에서 태어나곤 했다.
즉, 같은 도마뱀이라고 하더라도 가장 크고 오래 살아남은 강력한 종에서 이어진 것이다.
“나도 도마뱀 수인을 본 적이 있다. 2m는 훌쩍 넘었지. 혼종인가?”
그 중얼거림에 나는 속없는 사람처럼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 외엔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워, 원장님. 뭐라는 거야. 얘가 내 뱀뱀이라고?”
“그래, 아직 아성체조차 되지 못한 새끼로 보인다.”
알비온은 그렇게 말하며 이불을 내 몸에 꼼꼼히 감싸 망토처럼 묶어 주었다.
“뱀뱀이가 사람…….”
리하르트의 턱이 떨어질 것 같다. 한참이나 할 말을 찾던 나는 한참 만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아내, 놀라써? 사람이 되구 시펐는데, 잘 안 대써…….”
“……정말 네가 뱀뱀이야?”
“으응, 나는 에이링이야.”
뱀뱀이 같은 이상한 이름 좀 제발 치워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눈동자……, 뱀뱀이 맞네.”
그러니까 에이린이라고…….
“뱀뱀이가 사람이 됐어.”
눈을 크게 뜬 리하르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코앞까지 다가와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마치 로봇이 변신 합체도 된다는 걸 알게 된 소년의 눈빛이다.
“부모가 찾고 있을 텐데 코모도 가문에서 왔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디에서 왔지? 내가 알기로 도마뱀 수인의 가문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나는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차마 에탐 가문에서 도망쳤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돌아가도 좋은 꼴도 못 볼 테니까.’
리하르트를 콜린 공작가에 되돌려주고 나는 리하르트의 빈 자리를 차지하고 이 고아원에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해 봐야겠다.
내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젓자 리하르트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고아원까지 왔잖아! 사정이 있겠지. 여기서 키우면 되잖아.”
“수인은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
“내가 하면 되겠네, 보호자. 내가 주웠으니까 얜 내 거야.”
리하르트가 내 손을 꽉 붙잡았다.
내 앞을 가로막은 작은 어깨를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알비온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리하르트가 으르렁거리며 이를 드러냈다.
“내 거라고, 원장님.”
“리히트, 네 마음은 알겠지만 수인은 성인이 되려면 부모가 필요하다. 수인은 인간과 다르게 성장하기 위해선 특정 조건이 갖춰져야 하니까.”
“하지만…….”
리하르트가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억울함에 분통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다.
‘여기서 쫓겨나면 나도 곤란한데.’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가, 갈 곳이 업써여.”
“……설마, 유기당한 건가?”
아니,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내가 짐승처럼 느껴지잖아.
아니 물론, 반은 짐승이기는 한데…….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알비온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감히…….”
그의 목소리가 서슬 퍼렜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아동학대를 견디질 못하지…….’
딸을 잃어버린 트라우마 때문에 그는 유독 아이에 예민했다.
“원장님, 내가 잘할게. 수업도 잘 나가고 훈련도 꼭 참가할게. 밥도 투정 안 부리고 잘 먹으면 되잖아. 다른 애들한테 멍청한 돼지들이라고도 안 할게.”
리하르트가 두 손을 모아 잡고 원장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알비온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애들한테도 약하고.’
알비온이 당황한 듯 리하르트를 내려다보았다.
“응? 내가 잘 돌볼게. 먹을 게 없으면 내 거 나눠 주면 되니까…….”
나는 리하르트의 행동에 기뻐하면 좋을지 슬퍼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훈련에 제대로 참여할 건가?”
“응! 할게.”
“……아이 한 명 정도 늘어나는 건 문제가 없다.”
그는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린.”
그가 조금 낯선 이름을 혀끝에서 굴렸다.
타인에게서 듣는 진짜 내 것이 아닌 이름이 낯선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네.”
“옷을 가져다주마, 잠시 있거라. 리하르트, 넌 밖으로 나와라.”
“왜?!”
“에이린은 여자애니까.”
“……아.”
리하르트가 그제야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푹 숙인 머리가 어쩐지 잘 익은 벼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일단……, 고아원에 정착하는 건 성공한 거겠지?’
생각지도 못한 가출이 이런 식으로 이뤄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도……, 돈이 있으니까.’
나는 손목을 두 번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은행용 팔찌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이런 기능이 있는 걸 알아서 다행이지…….’
책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아십다…….”
조금 더 에탐 가문에 있고 싶었는데 말이다.
나는 주변을 서성이며 옷자락을 매만지다가 얼마 뒤 알비온이 가져다준 옷으로 갈아입으려는 때였다.
“……어?”
꼬리가 다시 자라났다.
“어……?”
게다가 인간화를 했는데도 꼬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알비온이 내가 수인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는지 깨달았다.
‘대체 왜 이건 아무도 지적해 주지 않은 건데?’
나는 당황스러운 시선으로 거울에 비치는 내 꼬리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치마 안쪽으로 꼬리를 꾹꾹 눌러 넣고서야 나는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다.
* * *
꼬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라지질 않았다.
인간화는 됐는데 되다만 인간화라서 이젠 아예 고아원에서 벗어나는 것도 난감한 일이 되었다.
“뱀뱀이가 말도 할 줄 알다니 신기하다.”
“……나 에이링이야.”
물론, 리하르트와 알비온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라서 고맙기는 했지만.
그뿐일까, 아무리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는 꼬리에 내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자 알비온은 한쪽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춘 채 진지하게 위로까지 해 주었다.
[본래 어린아이는 인간화가 서툴 수 있다. 조만간 수도에 가서 한 번 정보를 얻어 보겠다.]물론 도움은 되지 않았다.
“응, 근데 내가 뱀뱀이라고 불렀으니까 넌 뱀뱀이야. 내가 널 살렸잖아.”
이를 드러내며 희게 웃는 아이를 보며 나는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사흘째 같은 말을 하고 있었고 리하르트도 사흘째 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또라이는 떡잎부터 또라이 기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랑 뒷산 가자.”
“하지만, 리하르트 조금 이쓰면 훈련이자나.”
“……훈련 다녀와서 가면 되잖아. 내가 1등으로 끝내고 나올게.”
“그 뒤엔 밥 머거야 대.”
“…….”
리하르트가 불만스럽게 입술을 툭 내밀었다.
하지만 제 입으로 약속한 것이 있는 터라 더 고집을 부리진 않는다.
“뱀뱀아, 그러면 내가 예쁜 거 구경시켜 줄까?”
“이쁜 거?”
“응, 산책하다 보면 가끔 줍거든.”
리하르트가 제 책상 서랍 안쪽 깊은 곳에서 허름한 나무 상자를 꺼냈다.
“자, 이리 와 봐.”
아직 채 개지 않은 푹신푹신한 이불 위에 앉은 리하르트가 나무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나무 상자를 열자 안에서 뭔가가 반짝반짝 빛났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것들이 안에 가득했다.
색색의 작은 스테인드글라스의 파편부터 반짝이는 돌, 조개껍데기 등이 가득했다.
“예쁘지?”
그 안에서 각자의 빛을 뽐내는 것들은 확실히 작은 별 무리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응.”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줄게. 넌 내 뱀뱀이니까.”
나는 홀린 듯 상자 안을 가볍게 손으로 훑었다.
‘이건…….’
그리고 그 안에서 푸른빛을 띠는 조각을 발견했다.
‘……왜 이게 여기에 있는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것을 살포시 쥐었다. 조각을 코앞까지 가지고 가자 한층 더 확실해졌다.
‘정말 그게 맞잖아?’
내가 한참이나 물끄러미 조각을 내려다보고 있자, 리하르트가 불쑥 다가왔다.
‘이게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약간 이해할 수 없는 기분에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게 마음에 들어? 그거 줄까?”
리하르트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절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가지는 편이 좋겠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걸 내가 주면 너는 뭘 해 줄래?”
“그냥 주는 거 아니어써……?”
“물론 그래도 되지만, 그건 내가 제일 아끼는 거니까……. 뭘 해 줄래?”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
여기서 그런 건 딱 하나밖에 없었다.
“부모님을 만나게 해 주께….”
“……뭐?”
“내가 리하르트의 부모님을 차자 줄게!”
내가 힘주어 입을 열자 리하르트가 눈을 크게 뜨더니 천천히 입가를 허물어뜨렸다.
“내 걱정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서 그렇게 숨을 죽여 가며 서럽게 우는데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좋아.”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어차피 그의 부모는 원래 찾아 줄 생각이었으니까 말이다.
“대신 실패하면 뱀뱀이는 평생 내 옆에 있는 거야, 알았지?”
잘 나가다가 이야기가 어쩐지 이상한 곳으로 빠졌다.
리하르트가 짓궂게 웃었다.
“너도나도 외톨이니까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주는 거야, 어때?”
그 애절한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약속했다!”
리하르트의 얼굴이 한껏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