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5
리하르트에게 파편을 건네받고 사흘이 지났다.
이제는 다행히 멋대로 수인화가 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원할 때 수인화와 인간화를 오갈 수 있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이걸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네.’
보통은 부모에게 배울 테지만, 아쉽게도 나는 내 부모조차 모르는 천애 고아 신세였다.
“윽, 또 왔네……?”
“기분 나빠…….”
“얘 꼬리 봤어? 징그러워…….”
“리하르트 걔는 대체 왜 이런 이상한 걸…….”
“걔가 이상한 게 하루 이틀이냐?”
“근데 수인은 사람보다 밑이라고 하지 않았어? 나 예전에 길에서 주워들었어. 주인이나 부모 없는 수인은 노예 같은 거래.”
아픈 곳을 찔러도 쿡쿡 잘도 찌른다.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못 들은 척하며 배식을 받았다.
‘오늘은 리하르트가 늦네.’
고된 훈련을 하러 간다고 했으니 알비온과 일대일 훈련이라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야, 넌 어디서 나타난 거야?”
나는 흘긋 내 옆으로 다가온 아이를 보았다. 덩치가 큰 것을 보아하니 열 살은 되어 보였다.
“몰라?”
“네 주인이 리하르트야?”
나는 음식을 오물오물 씹으며 소년을 향해 빙긋 웃었다.
“윽……. 우, 웃지 말고! 이, 인간인 내가 묻잖아!”
내가 겁에 질리지 않아서 민망하기라도 했는지 소년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소리쳤다.
“응, 근데 내가 대답해야 대?”
“다, 당연하지! 나는 인간이고 너는 짐승이잖아!”
나는 오랜만에 먹는 고기를 오물오물 씹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어른이나 아이는 시대가 바뀌어도 세계가 뒤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니까.’
달라지는 것은 그저 사람의 생김새 정도였다.
“애쉬, 나는 사라미야. 짐승이가 아니라.”
“그, 그런 괴물 같은 꼬리를 달고…… 리하르트 놈이랑 네가 다를 게 뭐야!”
입맛이 뚝 떨어졌다.
나는 포크를 살짝 던지듯 내려놓았다.
“똑가타.”
“뭐?”
“나랑 리하르트는 똑가타, 리하르트가 같은 외토리래써.”
외톨이 같은 아이가 여기서 더 외톨이가 되게 만들 순 없었다.
‘잘못하다가 너희 목숨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고.’
리하르트가 미래에 얼마나 위대한 또라이가 되는지에 대해서 한마디 하는 편이 좋을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뒤에서 작은 손이 내 머리에 툭 얹어졌다.
“말 잘했어, 뱀뱀아.”
뒤에서 닿아 온 손길에 눈이 절로 커졌다.
“리하르트……?”
“응, 내 뱀뱀이.”
그놈의 뱀뱀이라는 말 좀 어떻게 해 주면 좋겠는데.
“야, 뚱돼……, 아니다. 이 말은 안 쓰기로 했지.”
리하르트가 작게 읊조리다가 이내 제 입을 한 차례 때리는 것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야, 비루먹은 고릴라.”
돼지와 고릴라의 싸움인가.
“한 번만 더 내 뱀뱀이한테 손대면 죽는다. 다음엔 쓰레기통에 영영 처박힐 줄 알아.”
리하르트가 냉큼 내 손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소년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너, 다친 데 없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설전을 벌인 것뿐이니 당연히 다친 곳은 없었다.
리하르트는 입을 꾹 다문 채 성큼성큼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나와 마주 선 채 대뜸 내 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나를 확 끌어안았다.
“……다치지 마.”
누군가 이렇게 걱정해 주는 게 얼마 만이더라. 나도 모르게 한숨과 함께 대답을 흘리고 말았다.
“응.”
“내 옆에서 떠나지도 마. 넌 내 가족 같은 거잖아. 그러니까 내 옆에 있어.”
“미아내, 네가 안 와서 밥만 머그려고 해써.”
“다음부턴 빨리 올게. 오늘은, 망할 원장님이 그동안 못한 걸 한다고 날 굴리고 굴려서…….”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리하르트를 보니 확실히 여기저기 꼬질꼬질하다.
흙 위에서 한두 번 구른 게 아닌 것도 같다.
그래도 그 와중에 상처 하나 없는 것을 보면 알비온이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갖췄는지 알 것 같았다.
‘알비온이 엄한 성정이 있기는 하지…….’
다시는 아이들이 제 목숨을 지키지 못해서 죽어 가지 않도록.
알비온은 그런 소망을 담아서 허름한 시골 동네에서 제국 여기저기를 밤마다 떠돌며 부모 잃은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알비온이 곧 수도로 떠나는 날이 오지…….’
그때, 알비온도 여주인공과 인연이 생기게 된다.
수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서 임시로 호위기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여주인공이 이 새싹의 시간 고아원을 지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서 리하르트는 여주인공을 처음 만나지.’
이야, 이렇게 생각하니까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여주인공이랑 한 번씩 인연을 맺네.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저 잘 깔린 레일을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삶이란, 얼마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까?
‘어……? 수도……?’
알비온이 수도에 가면 그때 나랑 리하르트도 따라가면 되는 거 아닌가?
수도에만 가면 콜린 공작가에 소식을 알리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은행도 일단 수도에 가장 크게 있고 무엇보다……, 거기엔 에르노 에탐이 있을 테니까.
파편 돌려 주러가야지.
‘오, 완벽……?’
나는 왼손바닥 위에 주먹을 내리치며 눈을 번쩍 떴다.
“뱀뱀아?”
한참이나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있던 리하르트가 천천히 몸을 뗐다.
“우리 여행 가쟈!”
“여행? 어디로?”
“수도!”
“나도 좋은데, 원장님은 허락하지 않을걸.”
“갠차나, 몰래 가. 언쟝님이랑 가치가!”
“……원장님이랑 같이?”
“응!”
리하르트가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어차피 안 될 걸 뻔히 알지만, 장단을 맞춰 준다는 기색이 강했다. 곧 사실이 되겠지만 말이다.
‘우리 리하르트, 미친 또라이 말고 훌륭한 또라이가 되자.’
또라이라는 것엔 변함이 없겠지만 말이다.
리하르트가 나를 책상 의자에 앉히곤 분주하게 이불을 펴기 시작했다.
원장에게 대거리까지 해서 얻어 낸 이불 두 채였다.
알비온은 나를 여자아이들이 묵는 방에 두고 싶어 했지만, 리하르트 때와 비슷하게 상황이 특수했던 터라 결국 묵인하고 말았다.
“뱀뱀아, 이리 와.”
리하르트가 화사하게 웃으며 내게 두 팔을 벌렸다. 정말 심장 떨리게 하는 외모였다.
내가 의자에서 내려와 이불로 다가가자 소년이 나를 눕히고 두툼한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 주었다.
“꼬리는 불편하지 않아?”
“웅.”
꼬리는 생각보다 조절하기가 쉬웠다. 앉을 때도 딱히 배기는 것은 없었다.
“널 만나서 다행이야.”
“…….”
“넌 내가 태어나서 만난 행운 중에 가장 큰 행운이야.”
소년이 화사하게 웃으며 이불 틈 사이로 손을 맞잡아 왔다.
[아, 얘랑 같은 반이라고? 진짜 운 더럽게 없다, 최악이야…….] [야, 나는 걔랑 짝꿍이거든? 진짜 개빡쳐.] [야, 난 너 같은 더러운 게 내 누나라는 사실이 역겹고 끔찍해, 알아?] [널 낳는 게 아니었는데……. 널 만들고, 널 낳은 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실패야!]문득 떠오르는, 더는 내게 생채기조차 내지도 못하게 된 오래된 기억과 손에 닿는 온기에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잘 자, 에이린.”
흐리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내 정신도 깊이 가라앉았다.
* * *
“……내 뱀뱀이는 의외로 대담하네.”
마부석의 의자 밑에 함께 숨은 리하르트가 내게 말했다.
오늘 이른 아침, 알비온이 한동안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며 새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다.
고아원의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으니 오늘이 알비온이 떠나는 날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곧장 리하르트를 끌고 마부가 잠시 화장실을 간 틈을 타서 마부석 밑에 몸을 숨겼다.
중간쯤 갔을 때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었다.
‘이번에 알비온이 가는 이유는 지하에서 벌어지는 옥션 때문이었지.’
제국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그 옥션은 사람도 사고팔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예 제도는 겉으로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전쟁의 악습이 만연하듯 지하에는 그런 저열한 행위를 즐기는 인간들이 흘러넘쳤다.
‘그리고 거기에서…… 여주인공을 만나지.’
아, 왜 여기에 여주인공이 있냐면…… 잠깐 쇼핑을 나왔다가 납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귀엽고 예쁘게 생긴 여주인공을 납치한 놈들은 하필 지하 경매에 팔 물건을 탐색하던 범죄자들이었고…….
‘당연하게도 알비온이 여주인공을 구하지…….’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 보면 모든 세계관이 여주인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만 같다.
‘지금쯤이면 여주인공은 저택 사람들이랑 다 친해졌겠지.’
분명히 모두에게 귀염받고 있을 거다.
나도 여주인공처럼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만 출발하지.”
한창 망상에 빠져 있을 때 알비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리하르트는 황급히 서로의 입을 틀어막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출발하겠습니다!”
마부가 의자에 앉았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코앞에 리하르트가 있었다.
소년은 어쩐지 발갛게 물든 얼굴로 고개를 돌려 사내의 신발 뒤꿈치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덜컹-
이윽고 마차가 출발했고…….
나는 지옥을 맛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