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6
“……미쳤군.”
마부석의 의자 밑에 웅크리고 엎드려 있던 우리가 발견된 것은 마차가 출발하고 두 시간쯤 되었을 때였다.
생각보다 마차는 낡았고 또 거칠었으며 힘들었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재송함미다.”
“…….”
내가 순순히 사과를 건넸지만, 리하르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당장 돌아가라.”
“안 대여.”
내가 냉큼 고개를 젓자 알비온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그가 이번에 어디를 가는지 아는 만큼 그의 분노는 타당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내가 물러날 이유가 되었던 건 아니지만.
“차, 찾을 사람이 이써여…….”
“찾을 사람?”
“네…….”
“말하면 내가 찾으마, 수도는 위험하다. 이만 돌아…….”
“제가 가야 대여.”
콜린 공작가에 설명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아마 이런저런 추궁이 들어올 테니 그에 걸맞은 대답도 생각을 해 두어야 했다.
“에이린, 나는 놀러 가는 게 아니다.”
알비온은 한참 만에 한쪽 무릎을 꿇고 나와 시선을 마주한 채 내 어깨를 붙잡았다.
“저두여. 언장님 말 잘 들을게여…….”
“위험하다.”
“……제가 아라여.”
나는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안다니……, 무엇을?”
“언장님 따님이 어디에 있는지 아라여.”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알비온의 기세가 사나워졌다.
“……너.”
동공이 세로로 찢긴 것처럼 보일 정도로 사나워진 시선에선 살기가 풀풀 풍겼다.
리하르트가 흠칫 놀라 내 앞을 가로막았다.
“원장님, 지금 내 뱀뱀이한테 뭘 하는 거야!”
“비켜라, 암살자일 수도…….”
내가 암살하긴 뭘 암살해.
알비온도 말을 하다가 멈칫한 것이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깨달은 것이 분명했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알지?”
“도마뱀일 때, 우연히…….”
“내 집무실에 들어왔었나?”
으응, 그렇게 오해해 주면 고맙긴 하지.
나는 망설이는 척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때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겠군.”
뭘 중얼거렸는진 모르겠지만, 알아서 오해해 주는 것이 기꺼웠던 터라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딸아이는 이미 죽었다. 내 눈앞에서 적군의 검에 찔려서.”
이것이 그가 어린아이에게 집착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가호를 받은 영웅인 그를 막기 위해서 적군은 그의 가족을 인질로 삼았다.
그리고 그는 눈앞에서 딸을 잃고 적군에게 크게 당해 시체조차 잃어버렸다.
“응, 근데 바로 죽진 않아써여.”
전쟁이 끝나고도 그녀는 근처 수도원의 병원에서 몇 년간 살아남았다.
다리를 잃고 침대에서 움직일 수 없는 신세였지만, 그럼에도 남길 수 있는 것은 있었다.
그러니까 소설을 본 내가 알고 있는 건…….
“정확히는 저가 언장님 따님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라여.”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사실 이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아픈 상처를 이런 일로 이용하고 싶진 않았다.
본래라면 수년 뒤에 여주인공이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을 알비온에게 전달해 주게 된다.
내가 끼어들 틈은 없다는 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살고 싶었다.
정말로 소설 속의 두 줄짜리 엑스트라처럼 한심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아랐는지는 비미리에여.”
알비온은 한참이나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주먹을 몇 차례 쥐었다가 폈다.
거짓일 확률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믿어 보고 싶은 절박함이 보였다.
“그 말이 거짓이라면…….”
“주겨도 대여.”
“……!”
내 말에 알비온이 얼굴을 확 찌푸렸다.
그는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내 어깨를 가볍게 붙잡았다가 놓았다.
“그런 말은, 농담이라도 하지 말아라. 내 영역에 들어온 이상, 넌 내 원생이니 반드시 지킨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가 흐리게 웃고 말았다.
“널 믿으마.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지. 하지만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한다면 막을 수밖에 없다.”
“아니에여.”
“…둘 다 마차에 타거라.”
간신히 허락이 떨어졌다.
리하르트가 나를 조심스럽게 이끌었다.
* * *
“소식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분홍색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동자라면 흔하지 않으니 분명히…….”
“그 흔하지 않은 걸 지금 한 달째 못 찾고 있다면 내가 네놈의 무능을 탓해야 할까?”
“……죄송합니다. 아직 아가씨께서 도마뱀으로 계실 확률도 높기 때문에…….”
“그럼 전 세계 도마뱀을 다 잡아서라도 해결해야지? 내가 네놈들의 목구멍으로 돈을 처넣어 주는 건 그걸 위해서잖나?”
에르노 에탐의 날 선 목소리에 바짝 긴장한 부하가 주먹을 꼭 쥐며 고개를 푹 숙였다.
황금색과 붉은색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눈동자에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똑똑.
정확히 두 번 울리는 노크에 에르노 에탐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접니다.”
“들어와라.”
칼란 에탐이 안으로 들어오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살짝 눈짓을 하자 울 것 같은 얼굴로 서 있던 부하가 눈치를 살살 살피며 후다닥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뭐냐.”
“샤르네가 왔습니다.”
“……필요 없다고 했을 텐데.”
“그 애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를 보고 기절이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에이린의 이야기가 흘러나온 뒤에야 에르노 에탐이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적어도 인간의 형상은 유지해 주세요.”
그가 덧붙이며 손짓하자 밖에서 상황을 살피던 실리안 에탐이 여주인공, 샤르네를 데리고 들어왔다.
“손잡아도 되나요?”
“그러든가.”
늘 여유롭던 에르노 에탐에겐 어울리지 않는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겨우 그 아이가 뭐라고…….’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말랑거리던 아이가 제 손아귀에 없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이상하게……, 외삼촌께는 제 능력이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아요.”
손을 잡고 능력을 사용하던 샤르네가 이상한 얼굴로 읊조렸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10분만 있으면 눈 색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에 반해, 그는 두어 시간을 붙잡고 있어도 다음 날이면 다시 원상 복구가 되었다.
“얼른 약을 개발해야 하는데….”
칼란 에탐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칼란, 은행 쪽은 확인해 봤나?”
“아, 네. 하지만 개인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고 제법 강경해서요.”
“그래서?”
“그래서, 한바탕 뒤엎었더니 은행 방문 기록이나 계좌 열람 여부 정도는 알려 준다고 하더군요.”
“그래?”
“네, 그 아이가 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으니…….”
칼란 에탐이 사납게 웃었다.
“죽기 싫으면 연락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
“……근데 의외네요, 이번에도 아버지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실리안 에탐이 슬쩍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장난이다.”
장난이었다.
분명히 그렇게 시작했을 텐데, 대체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에르노 에탐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간삼미다, 아바지!] [요거…… 아바지 달마써여! 요게 조아여.]단순히 아이가 쥐고 있었을 뿐인 반지에서 감지했던 청량한 느낌을 찾기 위한 흥미. 그것이 기점이었다.
아이는 이것이 유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의 연극에 기꺼이 발을 들였다.
연극이었다.
딸을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빠와 아빠를 좋아하는 딸의 연극.
아이는 순순히 잘 따라와 주었다. 오랜만에 즐거운 촌극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지? 진심이 된 건.’
그는 제 손을 붙잡고 꼬물꼬물 만지고 있는 죽은 누나의 아이를 보았다.
[아바지가…… 나 때무네 하라부지한테 혼나니까여……. 아바지 혼내지 마세여…. 혼나는 거 시러….] [아바지 조으면 저두 다 조아여!] [아바지……, 하내지 마……. 무셔여…….]쪼그마한 것이 잘도 말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아버지가 아닌 것도 알고 있으면서 꽤 여우 같은 면도 있는 건가, 그런 생각도 했었더랬다.
그러나 아이가 자신을 구하고 필사적으로 살리기 위해서 애를 쓴 걸 본 순간, 그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저도 모르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간삼니다, 아바지! 아바지가 채고! 천재! 머쨍이! 머찐 마완님!] [아녀! 에이링은 아바지가 쩨일 쪼아여! 아바지가 채고에여.]아이의 저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가슴 한구석에 기묘한 감각이 피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짧은 유희가 저에게만 유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훌쩍 떠나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아이가 작정하고 숨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이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의미가 됐다.
“어느 쪽도 짜증 나는데.”
작게 중얼거린 그가 샤르네가 붙잡고 있던 손을 거칠게 잡아 뺐다.
“앗, 외삼촌! 아직…….”
“이만 됐다, 효과는 없는 것 같으니.”
그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 제 두통과 몸에서 들끓는 열기에 짧은 한숨을 뱉었다.
“파편을 훔쳐 간 범인은 아직도 못……, 하. 노망난 늙은이께서 오시는군.”
“아비에게 말을 누가 그따위로 하느냐! 이 식충이 같은 녀석. 아주 폐인이 다 되어선 아비에게 못 볼 꼴을 보이는구나.”
“그럼 오시질 마시지요. 제가 가주님과 놀아드릴 기분은 아닌지라.”
에르노 에탐은 아예 미르엘 공작이 있는 쪽으로는 시선도 두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미르엘 공작은 한참이나 자리에 우뚝 선 채 망설이는 듯하더니 결국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그……, 크흠. 그 아이는 아직도 못 찾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