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29
‘진짜 미친 외모다…….’
콜린 공작은 그야말로 오랜 시간 얼음에 갇혀 있던 얼음 정령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내였다.
차가운 하늘색의 머리카락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설원에 눈이 내린 듯 새하얗게 옅어졌다.
리하르트와 비슷한 머리카락이었다. 이렇게 보니 생김새도 굉장히 닮았다.
이 사람을 누가 유부남으로 볼 거야.
‘하지만, 눈이 너무 차가워.’
기대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저 저 사기꾼을 어떻게 죽여 버릴까만을 고민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이해는 되지만, 등줄기는 섬찟했다.
“말 안 하나?”
“아……, 머리가 길구여……, 보라색 눈동자구…….”
내가 정신을 차리고 말하자 그가 계속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미친, 정말 죽겠는데.’
여기서 한 번이라도 오답을 내는 순간 송장이 될 것이 분명했다.
“보라색…… 머리카락이구… 아저씨를 닮아써여……. 리하르트도 머리카락이 아래루 갈수록 색이 옅어여…….”
거기까지 말하는 순간 무감정한 그의 눈에 처음으로 빛이 돌았다.
“……뭐라고?”
“네?”
“방금, 그 애 이름을 뭐라고 했지?”
“리하르트…….”
“머리카락이 아래로 갈수록 색소가 옅다고?”
“네…….”
그는 그 말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천천히 소파에 앉는다.
“거기 앉아 보아라.”
“네엡.”
나는 순순히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더 기억나는 건?”
“어…… 오른쪽에 은색의 귀거리를 차구 이써여. 이렇게 긴 거…….”
손가락 하나를 쫙 펼쳐 보이며 말하자 이번에는 콜린 공작의 무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혹시 이것과 닮았나?”
차분한 인상의 사내가 조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내게 보여 주었다.
“네! 요거에요.”
“…….”
그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다시 귀걸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애는.”
“네?”
“그 애는 어디에 있지?”
“수도에 이써여.”
“당장 위치를…….”
나는 초조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의 옷자락을 급히 붙잡았다.
“아야…….”
너무 급하게 붙잡느라 소파 테이블에 무릎을 세게 박아 버렸다.
“무슨 짓을…….”
“저가 내일 데꼬 올게여. 오늘은 안 대여…….”
“……왜지?”
“리하르트 화나쓸 거라서…….”
“화? 대체 왜?”
말도 없이 내가 나갔으니 엄청 화가 났을 것이 분명했다.
“어…, 저가 사시른 리하르트 몰래 나와써여.”
“…뭐라고?”
“그래서 달래 줘야 해여.”
나는 입가를 허물어뜨리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러자 콜린 공작은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조용해졌다.
“내일 오께여.”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가 수려한 미간을 확 찌푸렸다.
“리하르트는 아직 아저씨를 만날 준비가 안 대써여. 저가 데꼬 올게여.”
“……넌 그 애가 어떻게 내 아이라는 걸 알았지?”
음, 뭐라고 말하는 편이 좋을까?
“소문이여.”
“소문?”
“돈 마니 준다는 소문 드러써여.”
사실이었다.
그는 몇 년째 대대적으로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포상금을 걸고 수소문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태껏 그를 찾아온 이들은 순 사기꾼들뿐이었다.
돈을 노린 사기꾼들은 때때로 자신의 자식까지도 둔갑시켜 데리고 오곤 했다.
“돈…….”
그는 내 말에 헛웃음을 터뜨리듯 얼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하, 그딴 건 얼마든지 주마, 그 아이만… 그녀와 함께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말에 나는 서툴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내일 바여.”
“넌, 누구지?”
“에이링이에여.”
내 대답에 그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조용했다가 말을 바꿔 물었다.
“그 아이와 무슨 관계지?”
어, 리하르트와 내 관계라고 하면 뱀뱀이와 주인……?
“애완…동물?”
날 처음 주웠을 때 펫으로 키운다고 했으니, 리하르트 입장에선 아마 그런 게 아닐까?
“……뭐?”
콜린 공작은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반문했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애완동물이에여……!”
“…….”
일단, 도마뱀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는 어쩐지 큰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내일, 마차를 보내지.”
콜린 공작은 충격받은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나를 보다가 한참 만에 꺼낸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게 축객령을 내렸다.
돌아오는 길, 병사가 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내게 꼬치꼬치 캐물어서 조금 귀찮았다.
그뿐이랴, 내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미래의 대신관께선 강아지처럼 내게로 곧장 달려와 엉겨 붙었다.
나는 어쩌다 주워버린 그까지 챙겨 다시 숙소로 향했다.
* * *
자, 이제 어쩐담?
밖에 나갔다가 웬 사람 하나를 주웠고 리하르트는 잔뜩 골이 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관 앞에 선 나는 고개를 돌려 로브를 둘러쓴… 아마도 미래의 대신관이 될 예정인 소년을 보았다.
“날 구지 쫓아오는 이유가 이써?”
“네.”
“먼데?”
“주인님이시니까요.”
“나는 주인이 아냐.”
“먹을 걸 주셨어요, 그러니까 주인님이세요.”
나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해사하게 웃는 소년을 보았다.
‘소설에선 이렇게 순박한 애가 아니었는데.’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게 분명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리하르트는 어차피 내일 집으로 떠날 테니까….’
상관없으려나?
다만, 이 애를 고아원으로 데려가도 되는지가 의아하긴 했다.
나는 일단 짧게 심호흡하고 조심스럽게 여관방으로 들어갔다.
“있찌, 잠깐 요기서 기다리고 이써.”
“왜요?”
“안에 칭구한테 설명해야 대.”
“……네.”
미래의 대신관께선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달칵.
떨떠름한 기분을 안고 방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식탁 의자에 석상처럼 앉아 있는 소년이었다.
내가 들어가자 그는 눈을 크게 뜨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뇽, 리하르트…….”
“어디 갔다 와?”
“잔깐… 산책…?”
“산책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웅…. 길을 잃어써.”
“나한테서 도망간 거 아니고?”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린 리하르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잔뜩 흥분한 얼굴로 다가온 리하르트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너도 날 버리려고?”
“…아냐, 안 버려.”
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다시 와짜나. 요기 빵도 사써…….”
나는 오는 길에 리하르트의 화를 조금이라도 풀어 볼 요량으로 산 스콘을 꺼내 들었다.
내가 리하르트의 품에 슬쩍 스콘을 안겨 주자 소년의 눈매가 살짝 누그러졌다.
“…일어났는데 네가 없어서 놀랐어.”
“편지 썼는데…….”
“…응, 봤어. 그래도….”
리하르트가 나를 품에 끌어안았다. 달아오른 흥분을 달래는 듯 뜨거운 숨이 목덜미에 닿았다.
잔뜩 긴장하기라도 했던 듯 손끝은 차가웠고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걱정된 거겠지.’
누군가에게 버려진다는 것이 리하르트의 트라우마일 것이다.
내가 누군가와의 약속을 잡고 그 기다리는 시간 내내 혹시나 나를 골려 주기 위해 약속을 잡은 게 아닐지, 또 속은 게 아닌지 매번 불안해했던 것처럼.
“미아내.”
“아냐, 다음엔 같이 가자. 혼자는 싫어. 넌 내 옆에 있어 주기로 했잖아.”
“응.”
나는 손을 뻗어 리하르트의 머리를 두어 번 톡톡 두드렸다.
“내일은 가치 가자.”
“어디를?”
“찾아써!”
내가 리하르트의 손을 붙잡으며 말하자 리하르트가 살짝 굳은 낯으로 나를 보았다.
“…뭘?”
“가족! 리하르트 아빠!”
“…내 아빠를 찾았다고?”
“응.”
“……지금, 거기에 다녀온 거야?”
“응.”
“…날 버린 가족한테 날 돌려보내려고? 내가 귀찮아서, 날 버리려고?”
“응! ……응?”
가족을 찾았다는 말을 어떻게 저렇게 해석을 할 수 있지?
나는 당황을 숨기지 못한 채 주먹을 움켜쥔 리하르트를 보았다.
배신감에 가득 찬 소년의 얼굴은 그야말로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너도 결국 내가 귀찮았던 거야…….”
차오른 눈물을 보던 나는 멍하니 그에게 손을 뻗었다.
리하르트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소매로 눈을 벅벅 닦았다. 나는 급히 다가가 리하르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이거 놔.”
“아냐.”
“뭐가 아니야, 날 버린 가족 따위 필요 없어! 다 필요 없다고! 너랑 내가 가족이잖아! 서로 가족이 되어 주기로 했잖아! 약속했잖아!”
리하르트의 생각지도 못한 분노에 나는 잠시 침묵을 유지한 채 천천히 그에게 다시 다가갔다.
내가 다가갈 때마다 리하르트는 뒷걸음질을 쳤다.
[너도나도 외톨이니까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주는 거야, 어때?] [내 옆에서 떠나지도 마. 넌 내 가족 같은 거잖아. 그러니까 내 옆에 있어.]잠시 잊고 있던 기억이 스쳐 지났다.
‘내가 상처를 줬구나.’
별것 아닌 말이라고 생각했던 말이 아이에게는 지나친 진심이었다.
‘그냥 어린애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트라우마를 가진 리하르트는 나를 주운 것으로 가족이 생겼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버린 거 아냐.”
“거짓말.”
“나도…, 가족두 리하르트 버리지 않아써.”
나는 리하르트의 양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리하르트, 내일 혼자 가는 거 아냐, 나랑 가치 갈 꺼야.”
“……같이?”
“웅.”
“같이 가서 나만 버리고 뱀뱀이는 돌아가게? 그런 거라면 싫어.”
요 녀석, 제법 예리하네.
“…….”
그럴 생각이긴 했는데…….
내가 대답이 없자 리하르트의 눈에 다시 망울망울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뱀뱀이는, 나 버리는구나…….”
강아지처럼 귀가 머리 위에 있었다면 축 늘어졌을 것이 분명한 모습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냐?”
“으응.”
“가족을 찾아도 계속 같이 있는 거야?”
“……우응, 리하르트가 적응하 때까지는.”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콜린 공작을 설득해야만 가능한 일이긴 한데…….
“내가 평생 적응하지 못하면…?”
“어…….”
“그럼 평생 있는 거야?”
“아마도…….”
그렇게 되는 건가?
“정말이지?”
눈을 반짝이는 리하르트는 언제 축 처졌었냐는 듯 눈을 반짝 빛냈다.
“으응….”
“약속했어?”
“응…….”
뭔가 좀 낚인 것 같은 건 내 착각이겠지?
달칵.
때맞춰 문이 열리더니 기다렸다는 듯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대화는 마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