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
내 등장에 회의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우르르 쏠렸다.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었다.
‘사람 많은 거 싫은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침을 꿀꺽 삼키며 내 이름표가 적힌 곳을 찾아 움직였다.
내 자리는 그야말로 넓은 회의장의 구석 중의 구석이었다. 내 위치를 확연히 보여 주는 자리였다.
“저 애는 누구예요?”
“아, 왜 걔 있잖아. 그 개망나니가 밖에서 낳아 온 자식.”
“아……, 용케도 애를 낳았네. 나도 자식 한 명 낳는 게 그렇게 소원인데…….”
“자네가 7년째였나? 에탐 가문은 직계나 방계나 아이를 얻기가 힘드니 말이야. 그러니 그 개망나니 놈이 밖에서 얼마나 아랫도리를 함부로 놀리고 다녔으면 그 힘든 확률을 뚫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적막을 뚫고 내 귓가에 쏙쏙 박혔다.
‘……대체 그 사람은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그냥 망나니도 아니고 ‘개망나니’일 정도면 악명이 자자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 술 냄새 풀풀 풍기며 다녔던 놈의 아이라기엔 제법 번듯한데…….”
“여차하면 자네들이 입양해서 키워 보는 건 어때?”
“입양?”
“그래, 저 애도 저렇게 부모 없이 자라는 것보단 입양이 낫겠지. 가뜩이나 손도 귀한데.”
어……?
세상에, 나 방계에 입양되는 선택지도 있는 건가?
‘아니지, 근데 일단 난 진짜 이 가문의 혈족이 아니잖아?’
오늘 그 사실이 밝혀지면 저 마음도 사라지겠지?
생각하는 와중에 문이 활짝 열렸다. 웅성웅성 떠들던 소리가 뚝 끊겼다.
모두가 숨소리조차 죽인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엉거주춤 의자 옆에 섰다.
“에탐 가문의 12대 가주, 미르엘 에탐 공작 각하 입장하십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문지기의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카펫 위로 풍채가 커다란 노인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금과 은반지를 낀 주먹 위론 핏줄이 돋아 있고 뺨에는 길쭉한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검은 머리카락과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직계 존속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그사이에는 빙긋 미소를 띠고 있는 에르노 에탐도 있었다.
느긋한 걸음으로 퍽 거만하게 걸어들어오던 그는 나를 발견한 듯 걸음을 멈추고 내게 손을 흔들었다.
‘……뭐지?’
내가 마주 흔들어 주지 않으면 끝까지 흔들고 있을 기세다.
“뭐지? 갑자기 저 악동이…….”
“악동은 무슨, 저놈은 그냥 악마…….”
“근데 저 애가 대체 뭔데 손을 흔드는 거야……?”
“뭐긴, 저놈 변덕이 하루 이틀이오? 또 시작된 모양이지.”
그가 끈질기게 손을 흔들자 시선이 내게 하나둘 쏠리기 시작했다. 나도 급히 작달막한 손을 달랑달랑 흔들었다.
그제야 그는 가장 마지막에 왔으면서도 당당하고 느긋하게 미르엘 에탐 공작의 바로 옆에 앉았다.
“신년 회의를 시작하겠다. 다들 마음에 드는 기획안을 가지고 왔길 바라지.”
기획안?
‘이게 다 무슨 소리지?’
당황한 채 눈을 도록도록 굴리고 있는데 문득 머릿속에 소설 속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마일라아아아, 이런 얘긴 없었잖아아아!!’
내가 입을 떡 벌리고 경악에 젖어 있을 때 가장 먼저 호명된 누군가가 바짝 긴장해서 거무죽죽해진 낯으로 가주의 앞에 섰다.
공작은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공작의 앞에 선 남자가 두툼한 서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올 한 해는 새로운 연구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최근 동대륙에서 새로운 식물이 발견되었는데, 이 식물이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특이한 향을 내뿜는다고 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네놈은 기존 연구자료도 읽지 않았느냐?”
성의 없이 서류를 훑으며 얘기를 듣던 공작이 말을 끊으며 서류를 가볍게 툭 던졌다.
“네……?”
그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곤 입을 열었다.
“머리가 꽃밭이로구나. 약초만 연구하다 보니 대가리에도 꽃이 핀 것이냐? 이건 예전에 연구됐던 식물이다, 이 멍청한 아메바 같은 것아. 눈을 발바닥에 두고 사느냐? 하긴, 연구비를 받아 고급 술집을 드나들며 술에 취해 내가 에탐 가문의 혈육이라며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고 가게에서 여자나 희롱하다가 독초나 주워 먹다가 사경을 헤매 내 이름에 아주 대차게 똥칠을 하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쯔즛, 왜? 죽다 살아나면서 정신은 저승에 놓고 왔느냐? 어디 다시 저승 가서 가져오도록 해 주랴?”
“아, 아닙니다!”
“아니다? 오냐, 말 잘했다. 뭐가 아닌지 어디 말해 봐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가주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가주님, 죄송합니다……. 다시 해 오겠습니다.”
눈앞에서 맞이한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폭로와 갈굼의 현장이었다. 그는 패닉이라도 왔는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아니, 저건 근데 혼날 만한 거 아니야?’
술에 취해서 진상을 부리고 희롱까지 했다니 말이다.
그 뒤로도 공작의 앞에 사람이 섰다 하면 털리기를 반복했다.
끝없이 쏟아지는 악담과 수치스러운 과거가 대회의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저 사람들 겨우 1년 동안 무슨 짓을 한 거야?’
갈수록 단상 앞에 서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소년이었다. 이제 열세네 살쯤 되어 보였다.
방계 쪽의 아이 중 한 명인 듯했는데 바짝 얼어붙어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고, 공작 각하……. 제, 제 올해 목표이자 계획은…… 아카데미에서 10위권 이내에 드는 것입니다…….”
“작년 1학기 성적이 87위, 2학기는 128위였으면서, 10위권 이내에 들겠다고? 네가 생각하기엔 이게 현실적이라고 보느냐? 아니면 일단 내뱉어 놓고 지금만 모면하려는 거냐?”
“아, 아닙니다. 그, 그게 노력하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가능할 것도 같다? 하겠다는 것도 아니군. 그럼 스스로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이…….”
“네 이야기는 들었다. 최근에 교사들의 평가가 바닥을 치고 있더구나. 질 나쁜 무리랑 어울리면서 공부는 뒷전이고 동급생이나 괴롭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공작의 말에 아이가 새하얗게 질렸다.
“리암? 돌대가리에도 재활용이 가능한 게 있고 불가능한 게 있단다. 나는 분명 권력으로 남을 찍어누르는 걸 제법 좋아하지만, 그건 내가 이룩한 권력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란다. 내가 없으면 네게는 뭐가 남느냐? 가진 거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동급생을 괴롭혀 자살 소동이 벌어졌다는 하소연이 내 귀에 들어오게 하다니, 네가 제정신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내 집안에서 재활용 불가능한 돌대가리가 나오는 건 사양이로구나. 돌은 불에 타지도 않으니 처분하려면 내가 얼마나 골치가 아플지 네가 알긴 하느냐?”
미르엘 공작이 쉬지 않고 쏘아붙였다.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눈동자를 굴렸다.
저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래퍼를 했어도 유명세를 탔을 것 같다.
“죄, 죄송…….”
“잘 들어라. 한 번만 더 내 귀에 이딴 똥칠하는 소문이 들려왔다간…….”
자못 차분하게 말을 내뱉던 목소리가 대번에 음산하게 깔렸다.
공작의 시선이 느리게 움직여 한쪽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와 여자에게 향했다.
얼굴이 새파란 것을 보아 아마도 저 아이의 부모임이 분명했다.
“개망나니 꼴 날 줄 알아라.”
헉, 명대사가 나왔다.
이 저택에서 가장 큰 욕과 저주가 바로 저 말이었다.
‘개망나니 될 줄 알아라.’
즉, 내 아버지……로 여겨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뜻은 가문에서 쫓겨날 줄 알라는 것이다.
에탐 가문에서 쫓겨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었으니까.
“흡…… 흐읍, 네……, 네에…….”
아이가 차마 엉엉 울지도 못하고 혼이 잔뜩 나선 울먹이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학교 폭력은 안 될 말이지.
그 뒤로도 방계와 직계 아이들의 행렬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도중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 설마 이거 나도 해야 하는 거야?’
순서가 이어질수록 내 등줄기엔 땀이 삐질삐질 흐르기 시작했다.
……어?
어……?
어어……?
뭔가 불길함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다음 칼란 에탐 님, 실리안 에탐 님.”
그 호명에 화려한 외모의 두 소년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올해는 하고 싶은 일이 그다지 없어서요. 올 한 해는 휴식기를 가질까 합니다, 가주님.”
“저도 올해는 딱히 계획 없습니다―, 5서클 앞두고 막혀서 휴식기 가지려고요.”
에르노 에탐을 꼭 빼닮은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과 눈에 확 띄는 붉은 머리카락의 소년이 대차게 포부를 말했다.
‘저 애들이 에르노 에탐의 아들이구나.’
에서 여주인공을 향한 시스콤을 맡고 있던 형제였다.
저렇게 보여도 둘 다 상처가 있어서 여주인공의 해맑음에 속수무책으로 감겼다.
“그래, 적절한 휴식도 필요한 법이지.”
다른 아이들은 그렇게나 털었으면서, 당당한 휴식 선언에도 공작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역시 세상은 돈과 인맥, 그리고 운빨과 재능이야…….’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없네?
“계속해라.”
“네, 다음은 에이린 양, 나와 주십시오.”
“…….”
……망했다.
기어코 바라지 않던 내 차례가 돌아왔다.
“에이린 양?”
“네, 네에…….”
나는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나 공작의 앞에 섰다.
풍채가 크니 위압감이 상당했다.
온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차마 농담으로라도 노인이라곤 할 수 없어 보인다.
공작의 무심한 시선이 내게 닿았다.
“말해 봐라.”
‘계획? ……계획? ……계획?’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제, 제 개핵은…….”
지금 계획은 하나밖에 없는데?
“지, 집을 무사히 나… 나가는 거에여…….”
머릿속이 새하얘진 탓일까?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나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