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0
나는 그제야 미래의 대신관을 떠올렸다.
“……뭐야?”
리하르트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미래의 대신관을 노려보았다.
미래의 대신관이 천천히 로브를 벗었다.
그러자 숨겨져 있던 새하얀 백발이 흘러내리며 새파란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미소년이 두 명…….’
넋을 잃을 듯한 기분에 살짝 정신이 아득했다.
“그쪽은…?”
“나? 뱀뱀이 주인인데. 넌 뭐냐?”
음, 틀린 말은 아닌데.
“주인님의…….”
미래의 대신관이 나를 흘긋 보았다.
“강아지? 같은 거예요.”
미래의 대신관의 눈이 초승달처럼 곱게 접혔다.
‘강아지?’
언제부터 그런 게 됐는데?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보자 그가 아차 한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입술을 열었다.
“멍멍.”
아니, 내가 언제 강아지 흉내 내라고 했냐고.
내가 입을 떡 벌리자 리하르트가 나를 조금 더 힘껏 끌어안았다.
“나는 네 주인이 될 마음 없는데.”
“저도 그쪽 강아지가 될 마음은 없는데요.”
“뱀뱀이의 주인은 나니까 뱀뱀이한테 속한 건 전부 내 거야. 근데 난 네가 싫으니까 나가.”
“싫은데요.”
그는 여유롭게 로브를 한쪽에 벗어놓으며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저 여유, 이 애가 정말 9살이 맞는 걸까?
“셋이 지내기엔 무리가 없어 보여요, 주인님. 저는 주인님 침대 옆 바닥에서 자도 괜찮아요.”
그가 침대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카펫이 깔려 있기는 하지만 불편할 것이 분명했다.
‘침대가 커서 애들 셋이 자기엔 충분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렸다.
“당장 나가! 원장님이 우리한테 준 방이야!”
“그럼 주인님도 데리고 나가죠.”
“뱀뱀이는 왜!”
“주인님이랑 제가 떨어질 순 없어요…. 그렇죠? 주인님.”
화사하게 웃는 미래의 대신관을 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네.’
나이는 비슷한 또래인데 리하르트가 조금 더 감정에 솔직했다.
“주인님 곁에 있게 해 주세요.”
그가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얘들 내가 다섯 살인 건 알고 있는 거겠지?’
자기들보다 키도 훨씬 작은데 양쪽에서 날 붙들고 뭐 하는 거야.
“나는…….”
꼬르르륵-
우렁찬 뱃소리가 들렸다.
“……배고파.”
소리를 듣자마자 물밀듯 밀려오는 허기에 기력이 쭉 빠졌다.
내가 흐느적거리며 휘청휘청 걸어가 침대 위에 무너져 내리자 리하르트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뱀뱀아!”
“배고파…….”
“죽으면 안 돼! 그, 금방 밥 달라고 할게!”
“응.”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밥 안 먹는 정도론 죽지 않는데.
리하르트가 급히 방을 나서려다가 내 곁에 오도카니 서 있는 미래의 대신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거기서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 내 뱀뱀이한테 손대면 가만 안 둔다!”
리하르트가 쏜살같이 방을 벗어났다.
“로브 벗겨 드리겠습니다.”
미래의 대신관께서는 리하르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곤 친히 로브를 벗겨 주셨다.
나는 일부러 그를 가만히 두었다.
소설에 따르면 미래의 대신관께서는 놀랍게도….
“…….”
엄청난 결벽증이 있으셨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 로브를 벗기던 아이가 움직임을 뚝 멈췄다.
소설 속에서 그는 인간도 싫어하지만, 수인은 거의 혐오하는 수준이었다.
신전은 ‘인간 우월주의’의 사상을 주입하는 곳이었으니 거기서 자란 미래의 대신관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도 당연했지만.
‘꼬리를 봤으면 알아서 떠나겠지.’
그가 꿋꿋하게 쫓아오는 걸 눈감아 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어차피 제풀에 지쳐서 떨어져 나갈 것이 분명했거든.
“……주인님.”
“응.”
“수인이셨나요?”
“응.”
“…….”
나는 흘긋 그를 보았다. 그는 물끄러미 내 옷 아래로 드러난 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두 대.”
“네?”
“나 도마뱀이라 징그럽자나, 그러니까 가두 대.”
“…아뇨.”
그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징그럽지 않아요, 주인님.”
그가 무릎을 꿇고 침대에 엎드린 나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수인은 처음 보는 거라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거짓말.’
신전에서 수인을 무슨 취급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주인님.”
“나 네 주인 아닝데.”
“처음으로 제게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거기에 사흘째 있었거든요.”
누가 봐도 수상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데 쉽게 접근하기는 힘들었겠지.
‘그래도 사흘이라니…….’
미련하기 짝이 없다.
“왜?”
“네?”
“왜 거기 이썼어?”
“어떤 괴물과 내기를 해서요, 사흘 안에 누군가가 저를 주워 가면 제 승리였어요. 오늘이 사흘째였고 주인님이 절 주워 주셨어요.”
아니야, 정확히는 네가 쫓아온 거잖아.
“그러니까 주인님이에요.”
활짝 웃으며 하는 말에는 논리라곤 전혀 없어서 말문이 턱 막혔다.
근데 이 미래의 대신관 이름이 뭐더라?
“이름이 모야?”
“……루실리온. 루실리온이에요.”
“루실리온.”
대체 누구랑 무슨 내기를 했느냐고 묻고 싶었다.
‘이런 내용이 소설에 있었던가?’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장면은 없었다.
꼬르르륵-
또다시 배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민망함에 몸을 웅크리며 배를 움켜쥐었다.
‘…요즘 배가 너무 자주 고픈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다.
그 탈피를 한 날 이후로 식사량이 조금 늘어난 것도 같고 금세 배가 고파지는 것도 같았다.
“배고파…….”
“몇 시간 전에 스콘을 그렇게 드셨는데요?”
그렇다, 나는 무려 커다란 스콘을 두 개나 먹었다.
“응, 요즘 배가 마니 고파.”
“그렇군요. 수인은 성장기에 열량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본체의 크기에 따라서 식사량이 달라지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난 쪼끄만 도마뱀인데?”
나는 손가락을 작게 모으며 말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조금 이상하네요.”
그는 뭔가 생각하는 듯 잠시 조용해졌다.
슬슬 침묵이 불편해질 때쯤 다행히 리하르트가 식사를 든 종업원과 함께 돌아왔다.
* * *
“이 마차를 타야 한다고?”
“웅.”
“정말 내 가족이 있는 곳이야…?”
“웅.”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하르트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마차가 화려해도 너무 화려했다. 금으로 도배라도 한 듯 눈이 시릴 정도였다.
‘이렇게 화려한 마차를 보내다니….’
리하르트의 경계심만 한층 높아졌다.
“…뱀뱀아, 혹시 누가 사탕이라도 주면서 내 아빠라고 했어?”
리하르트가 마차를 코앞에 두고 나를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가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꼬맹이가 날 바보로 아네.’
리하르트는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연신 마차와 나를 힐긋거렸다.
“아냐.”
“…뱀뱀아, 혹시 내 아빠가 사기꾼이야?”
“…아냐.”
“……그럼 사채업자?”
“……아냐.”
리하르트는 이상한 상상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하는 재주가 있구나.
‘뭐, 그만큼 안 믿기니까 그렇겠지.’
약간 소설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고아인 줄 알았던 내가 사실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자?!’ 같은 느낌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나 같아도 안 믿겠다. 갑자기 저런 번쩍번쩍한 마차를 끌고 와서 네 아빠 보러 가자고 하면….
‘확실히 수상하네.’
나는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징짜야.”
“…진짜 저 마차의 주인이 정말 내 아빠야?”
“웅.”
“……거짓말, 저렇게 대단한 집에서 날 왜 버렸겠어?”
“가쟈.”
나는 대답 대신 작은 손으로 리하르트의 손가락 두 개를 붙잡아 조심스럽게 당겼다.
“…이상해, 이제 와서 날 왜 찾는대?”
“가서 직접 무러바.”
“……매정한 뱀뱀이.”
그렇게 축 처진 목소리로 말해도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잖아도 나도 머리가 아프다고…….’
리하르트랑 약속을 지키려면 한동안 그 저택에 있어야 하는데, 명분이 부족했다.
내가 내걸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는데 마땅히 생각나는 것도 없다.
‘콜린 공작이 워낙 수완이 좋았어야지…….’
콜린 공작은 조연인 데다 언급되는 일도 많이 없어서 도움을 줄 만한 것도 리하르트를 찾아주는 것 외엔 없었다.
“얼른.”
나는 리하르트의 등을 꾹꾹 떠밀었다.
리하르트가 못 이긴 척 마차로 다가가자 기사로 보이는 이가 리하르트를 정중하게 들어 마차에 올려 주었다.
“아가씨께서도 이쪽으로…….”
“응.”
막 올라타려는데 멀찍이 떨어져 망설이고 있는 루실리온이 눈에 들어왔다.
‘쟤는 저기서 뭘 하는 거야?’
나는 마차에 엉거주춤 올라타다 말고 루실리온에게 손을 뻗었다.
“이리 와, 가쟈.”
로브 아래로 드러난 눈동자가 놀란 듯 커져 있었다.
“…저도 가도 되나요?”
“…안 가게?”
자기가 졸졸 쫓아왔으면서 갑자기 왜 저래?
“…아뇨, 갈 거예요.”
루실리온이 빠르게 걸어와 내 손바닥 위에 제 손을 올렸다.
“…….”
“…….”
뭐야, 설마 나한테 올려 달라는 건가?
‘양심도 없지.’
내가 멀뚱히 손바닥 위에 올라온 손을 바라보다가 양손으로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힘껏 잡아당겼다.
루실리온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