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1
“끙…….”
아무래도 내 힘으론 무리인데.
그 순간 그가 한차례 허공을 밟는 듯하더니 이내 마차에 성큼 올라탔다.
“얘는 왜 가?!”
“어…….”
“주인님의 강아지니까 탑승할 수 있죠.”
루실리온은 어딘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그거 아니라고.
“내 뱀뱀이는 강아지 안 키우거든?”
“절 키우고 계신데, 무슨.”
마주 앉은 둘은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내 양손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뱀뱀아, 여기 앉아!”
“주인님, 이쪽에 앉으셔야죠.”
푸른 눈동자가 부드럽게 접혔다. 그럴 때마다 자수정빛 눈동자가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그냥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 여기 앉을래.”
그 순간 루실리온이 나를 품에 끌어안더니 그대로 나를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에 앉혔다.
그러곤 느리게 내 발치에 앉으며 정말 순종적인 강아지처럼 빙긋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여기에 앉을게요.”
‘얘가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어.’
본래는 이렇게 순진무구하지 않았다.
신전은 황실만큼이나 지저분한 곳이었다. 새하얀 색을 숭배하는 만큼 그들이 깨끗할 것이라는 착각이 만연하지만, 실제론 아니었다.
그들이야말로 인간만을 찬양하는 차별주의로 똘똘 뭉친 집단이었다.
수인을 돌봐 준다는 핑계로 노예처럼 이용하고, 신성력을 타고난 아이들을 훈련시켜 신전의 꼭두각시로 만들기도 했다.
신전 내에서도 알력 다툼과 생존 싸움은 끝이 없었다.
그리고 루실리온은 그 난장판인 신전에서 당당히 제힘으로 대신관의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었다.
그러니 웬만한 능구렁이보다도 더 시커먼 속을 가지고 있을 터다.
‘물론 지금은 아직 어린애지만.’
에서 어린 신관 후보생으로 신전에 들어간 루실리온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신실한 신관을 연기했다.
그렇게 10년의 교육 끝에 신전의 윗사람들이 안심하고 루실리온에게 대신관의 자리를 넘긴 그날, 신전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썩은 윗선을 전부 도려내고 숙청에 들어간 것이다.
그때, 신전에 종사하던 절반의 사람이 죽거나 쫓겨났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그는 이렇게 명명되곤 했다.
‘새하얀 빛의 악마.’
그의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체조차 남지 않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야말로 그는 신전의 폭군이었으며 악마였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신전 내부의 입장이고 외부에서 볼 땐 바람직한 변화였다.
루실리온이 대신관의 자리에 앉은 직후부턴 횡령을 비롯하여 학대, 차별 등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으니까.
‘아, 모르겠다.’
적당히 때가 되면 돌아가겠지.
나는 덜컹덜컹 움직이는 마차의 창밖을 멍하니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바짝 긴장한 리하르트의 표정이 오늘따라 어쩐지 평소답지 않다.
‘알비온한텐 편지를 썼으니까…….’
만약 잠깐 들른다면 분명 확인하겠지.
나는 그에게 남기고 온 편지를 떠올리며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이윽고 마차는 콜린 공작저에 도착했다.
* * *
“이쪽입니다.”
벌써 소문이 돌았는지 콜린 공작저의 사용인들이 우리 셋을 열심히 흘긋거렸다.
우리는 혹시 몰라서 로브를 푹 뒤집어쓰고 왔는데,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눈에 띄면 나도 곤란하니까….’
일단 숨어다니는 신세니까 말이다.
‘…손에 땀 차.’
나는 떨떠름한 눈으로 붙잡힌 양손을 보았다. 오른손은 루실리온이, 왼쪽은 리하르트가 당당히 차지했다.
리하르트는 긴장한 것이 분명한 낯이었다. 가족 따윈 필요 없다고 말했어도 분명 본심은 그게 아니었겠지.
“들어가시면 됩니다.”
우리를 안내해 준 기사가 응접실의 문을 정중하게 열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조씨, 안뇽하세여.”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로브를 슬쩍 벗었다.
“……그래.”
그는 어쩐지 조금 곤란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다시 시선을 옮겨 내 양손을 붙잡고 있는 두 아이를 번갈아 보았다.
로브를 쓰고 있는 탓인지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그렇다고 어느 쪽이 진짜 아들이냐고 묻지도 못하는 행동에서 난감함이 느껴졌다.
리하르트는 어쩌면 아비가 자식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도와줄까.’
나는 왼손을 꾹 붙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리하르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리하르트, 로브 벗구 인사해야지.”
“…….”
고개를 들지 않고 있던 리하르트가 한참 만에 천천히 머리에 쓴 로브를 뒤로 젖혔다.
머리를 푹 숙이고 있던 리하르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아이를 본 콜린 공작의 눈이 커졌다.
“……아.”
얼음장 같던 차갑기만 한 표정에 감정이 깃들었다.
그는 단지 고개 숙인 아이의 머리통을 본 것만으로도 제 자식을 알아본 것 같았다.
“…리하르트.”
그 서늘한 온기가 담긴 목소리에 리하르트의 어깨가 크게 움찔했다.
“리하르트, 내 아들……. 한 번만 날 봐 주겠느냐…?”
천천히 걸어온 그가 카펫 위에 무릎까지 꿇어앉으며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두 손을 리하르트의 뺨을 향해 뻗었다.
“…….”
“…….”
서로 다른 두 쌍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닿았다.
“왜…….”
잔뜩 멘 듯, 한껏 가라앉은 리하르트의 목소리가 목을 긁듯이 흘러나왔다.
목이 뻐근하기라도 한 듯 리하르트는 제 목을 버릇처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왜…, 날 아기 때 그렇게 버려 놓고…, 이제 와서 찾아요?”
“…….”
날이 선 말이었다.
그리움보다 그간 쌓인 분노와 원망이 더 큰 탓에 리하르트는 눈을 매섭게 치켜떴다.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고 어떻게든 그것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듯 입술까지 앙다문 채였다.
“네겐 분명히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결코… 나와 그녀는 너를 버린 게 아니다.”
냉혈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찌르면 붉은 피가 아니라 푸른 피가 흐를 것 같다는 수식어를 가진 콜린 공작이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아이의 뺨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쌌다.
감히 손을 대는 것조차 조심스럽다는 듯이.
“너를 하루도 그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나도, 그녀도… 매일매일 너를 찾아 헤맸어.”
서늘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애정과 온기는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이 거대했다.
나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그 장면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런 게 가족이지.’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헤어진 부모·자식도 많을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보다 사랑하는 부모가 훨씬 많을 것이다.
이렇게 꿈만 같은 재회를 하는 가족도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단지 나는….
언제나처럼 조금 운이 없었을 뿐이다.
그래, 내게 닥친 것은 분명히 아주 작은 불행이었을 뿐일 거다.
‘그래, 뭐. 내가 운이 없었을 수도 있지.’
그래도 이렇게 가족도 재회하고 좋네.
“너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단다. 아픈 시간을 보냈을 네겐 분명히…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래도 얘기를 들어 주겠니?”
“…….”
리하르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얼굴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정말 괜찮으냐고 묻는 표정이었다. 콜린 공작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하르트의 아빠자나, 하고 시픈 대로 해. 우린 갈까?”
“안 돼! 옆에 있어…. 옆에 있어, 뱀뱀아……. 있기로 했잖아!”
리하르트가 기어코 눈물을 후두두 떨어뜨리며 내 손을 필사적으로 잡아 왔다.
‘여기서 울면 내가 울린 것 같은 느낌이 되잖아.’
슬쩍 고개를 돌리자 콜린 공작의 눈이 한층 크게 뜨여 있었다. 거의 날 잡아먹을 듯한 눈이다.
나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리하르트의 손을 잡고 루실리온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
콜린 공작은 아주 차분하게 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불신이 가득하던 리하르트의 얼굴은 종국에는 서늘하게 가라앉아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놈들 반드시 잡아서 찢어 죽일 거예요.”
‘……어? 이게 맞는 거야?’
보통 울면서 “아빠! 역시 날 버린 게 아니었군요!” 하면서 달려드는 것이 먼저 아닌가?
“이미 내가 처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겨 둘 걸 그랬군.”
“잔인하게 죽였어요?”
“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 거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애틋한 부자지간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상한 쪽으로 합심해서.
‘그래도 뭐……, 잘 해결된 건가?’
다정한 눈빛으로 리하르트를 보고 있는 콜린 공작의 눈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이 보였다.
어느새 품에 안은 아이가 소중하고 소중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그는 리하르트를 놓지 않았다.
“네 어머니도 널 많이 보고 싶어 한다. 몸이 아파서 여기엔 나오지 못했지만…….”
그가 리하르트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볍게 가져다 대며 말했다.
“오늘은 일찍 쉬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 무척 기쁠 거란다.”
“……네.”
리하르트가 입가를 허물어뜨리며 웃었다.
그 순간, 콜린 공작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태생부터 서늘한 시선에 나는 바짝 긴장했지만, 눈을 피하지 않은 채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자 콜린 공작의 표정이 살짝 이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