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2
“너와는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 잠깐 시간 괜찮나?”
리하르트를 놓아주자마자 다정함이 자취를 감췄다.
‘에르노 에탐은 거짓말이긴 해도 늘 나한텐 다정했는데…….’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흠칫 놀라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시간이 없나?”
“아, 아녀!”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만 하지.”
“네.”
“싫어, 나도 있을 거야! 내가 네 주인이잖아. 뱀뱀이 또 어디로 가려고……!”
“주인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소년이 양팔에 매달렸다.
“얼른 가께.”
내가 두 아이를 토닥토닥 달래며 은근슬쩍 뒤로 살짝살짝 밀었다. 그러곤 은근슬쩍 문밖으로 밀어냈다.
“올치, 착하다! 그치?”
“내가 좀 착하긴 한데….”
“주인님이 그러라고 하시면 하겠습니다.”
“응, 둘 다 여기서 기다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병사가 당황한 듯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문을 닫아 주었다.
“이제 대써여!”
나는 활짝 웃으며 그에게 토도도 다가갔다.
협상의 시간이었다.
“저 아이를 어디서 찾았지?”
“고아언이여.”
“…….”
그는 답답한 듯 얼굴을 한 차례 쓸어내리더니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죄책감과 안도감, 후회와 절망, 그리고 기쁨이 뒤섞인 표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했다.
“고아원…, 좋은 생활을 하진 못했겠군.”
콜린 공작이 낮게 중얼거렸다.
차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던 건 실제로도 리하르트가 고아원에서 제법 겉돌던 탓이다.
“마법사의 자질을 타고난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박대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소설에선 어린아이일수록 자신과 다른 이질적인 기운을 더욱 잘 느낀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도 알비온이 있었으니까….’
아이들의 소소한 괴롭힘이나 따돌림은 있었을지언정 알비온은 차별하지 않았다.
“그래도 조은 선샌님을 만나써여.”
“좋은 선생?”
“네, 그러니까 리하르트는 갠차나여.”
어린 나이에 받은 상처는 물론 쉽게 사라지진 않겠지만, 가족이 생겼으니 얼마든지 메워질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걸로 또라이로 진화할 확률은 낮아지겠지.’
리하르트는 단지 호기심이 많은 순수하고 순박한 아이였다.
‘분명 조금 더 훌륭한 어른이 될 거야.’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구 이제 아조씨두 이짜나여.”
“…….”
“아조씨, 고아언에는 슬픈 아가들이 많아여.”
“무슨 소리지?”
“리하르트가 대단해서 개롭힘을 쪼끔 당하긴 했는데 그건 리하르트가 너무 대단해서에여. 잘쌩겼구, 또 마법두 쓰구…….”
나는 리하르트의 장점을 열심히 손가락을 접어 가며 말했다.
그러니까 괜히 고아원에 보복하려는 생각 하지 말라고.
그의 피도 눈물도 없는 성정이라면 사실 제 아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고아원 하나쯤은 망하게 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물론 알비온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알비온도 ‘아이’에 한해서는 도를 지나치는 경향이 있었다. 암살이라도 하려고 하면 난감해질 것이다.
“그르니까 아가들한테 하내지 마세여.”
“…너도 아이가 아니냐.”
“아, 맞다, 그래찌. 마자여.”
그는 나를 괴상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이내 턱을 괸 채 한참이나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원하는 게 돈이냐?”
“아녀.”
“그럼?”
“쪼꼬만 집이여.”
나는 손바닥 두 개를 겹쳐 보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콜린 공작가에서 지내게 해 달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과한 제안인 것 같고 돈은 많으니까…….
수도에 작은 집을 해 달라는 것으로 보상을 정했다.
그러면 리하르트랑도 원하면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나도 굳이 고아원에 들어가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에르노 에탐도…….’
아니, 그게 아니라. 원작도 어떻게 진행되는지 다 볼 수 있으니까!
‘여주인공이 자라는 모습은 봐야지.’
응응, 한때는 동경하던 사람이니까 말이야.
‘게다가 은행도 수도에 있고…….’
다른 지역에도 은행은 물론 있긴 하지만, 수도가 가장 보안이 뛰어났다.
‘난 아직 어린애잖아.’
작은 영지나 마을 등에서 은행을 자주 오가는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을 거다.
“집?”
“네, 쪼끄만 거요.”
1층짜리 작은 목조 건물 정도면 딱 좋지 않을까 싶었다.
‘수도 집값이 얼마나 하더라.’
아는 게 없어서 난감하다.
“왜지?”
“어…….”
댁네 아드님이 나랑 같이 있자고 해서요?
“어….”
“내가 먼저 말하지.”
“네?”
“어제 온종일 제국법에 대해서 알아봤다.”
“네에….”
갑자기 제국법에 대해서는 왜?
리하르트가 사망 처리되어 있어서 말소된 신분을 다시 살리는 방법이라도 알아본 걸까?
그렇다고 해도 나한테 그걸 왜 말해?
“네겐 미안한 말이지만….”
아, 역시 집은 좀 주제넘었나?
“법적으로 ‘애완동물’을 호적에 올릴 방법은 없었다.”
“……네?”
“변호사와 황성 내에서 법률을 제정하는 이들에게도 물어봤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네……?”
내가 지금 제국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콜린 공작이 외국어를 내뱉고 있는 걸까? 나조차 내 동공이 잘게 떨린다는 게 느껴졌다.
“어…, 근데여……?”
진지하게 나를 호적에 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조금 황당했다.
‘그것도 애완동물로……?’
콜린 공작도 정상은 아닌 게 분명했다. 이 소설에 정상인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본래 수인은 ‘가문’에 속해 있거나 ‘주인’에게 속해 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건 아나?”
“……어떠케.”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콜린 공작의 서늘한 시선이 내게 닿았다.
“저가 수인인 걸 어떠케 아라써여……?”
한 번도 티를 낸 적도, 말한 적도 없었다. 꼬리는 로브가 철저하게 가려 주었을 것이다.
“네가 가진 마력은 수인 특유의 마력이다. 역시 마력을 갈무리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새끼 수인이었군.”
“……마력?”
그런 게 있었던가?
꼬리만 숨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그럼 대체 왜 에탐 공작가는 내가 수인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최근에 첫 성장기를 겪은 것 같은데, 맞나?”
“성장기…?”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콜린 공작의 얼음장 같은 표정이 한층 심각해졌다.
“아, 그 탈피…….”
최근 있었던 ‘성장’이라고 할 만한 사건은 탈피했던 사건 정도뿐이다.
내가 탈피를 해서 느낄 수 있게 된 걸까?
“그 로브가 어느 정도 막아 주고 있는 모양이지만, 마력에 예민한 마법사라면 충분히 눈치챌 거다.”
“…….”
마력을 어떻게 숨길 수 있는데? 나는 당황한 얼굴로 내 몸을 이곳저곳 살폈다.
내 눈에는 수인 특유의 마력은커녕 마력의 티끌도 보이질 않는다.
“네게 집을 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주인 없는 수인은 그리 좋은 결말을 맞지 않는다.”
“…….”
“가장 좋은 건 네 가문으로 돌아가는 거겠지. 무슨 수인인지는 알고 있나?”
“도마뱀이에여….”
“도마뱀? 도마뱀 수인은 제국에 없다. 코모도 가문이라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남쪽의 아주 먼 섬에서 가끔 교류를 나오는 종족뿐인데…….”
콜린 공작이 말끝을 흐리더니 나를 가만히 보았다.
“그들은 피부가 가무잡잡한 것이 특징이지.”
나는 슬쩍 내 팔을 내려다봤다. 가무잡잡하다고 말하기엔 너무도 새하얗고 뽀송뽀송해 보인다.
‘알비온도 코모도 가문에 대해서 말하긴 했는데…….’
두 번 말을 꺼내지 않은 것으로 봐선 아마 내가 그 가문의 출생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을 확률이 높았다.
“알고 있나? 제국은 수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냉정한 말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 떨렸다.
소설에서도 수인에 대해서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수인은 세계에 겨우 3%를 차지하고 그마저도 대부분 남쪽 대륙이나 남쪽 섬 같은 곳에서 외따로 살고 있었다.
본래 내가 죽는 걸 제외하면 나중에 남대륙에서 수인 황태자가 여주인공에게 첫눈에 반하는 때 잠깐 수인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
거절하겠다는 말을 굳이 이렇게 밉게 말해야 하나.
하긴, 간신히 만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한테 도마뱀 따위가 붙어 있으면 싫을 법도 하지.
“알게써여.”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한 나는 벗었던 로브를 다시 뒤집어썼다.
‘알비온한테 돌아가면 되지.’
알비온이라면 분명히 수인의 마력이라는 그것도 갈무리하는 법을 알려 줄 거다.
“돈은 대써여, 칭구를 데따준 거뿐이니까. 안뇽히 계세여.”
솔직히 기분도 좀 상했고.
내가 미련 없이 소파에서 폴짝 뛰어내리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네가 리하르트의 형제로 들어간다면 문제는 없다.”
“…….”
예상하지 못한 말에 걸음이 우뚝 멈췄다.
“‘애완동물’을 호적에 올릴 순 없어도 그 아이의 남매로 만들어 주는 건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