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3
“갑자기, 왜여……?”
제 허리춤에도 오지 않을 작은 아이가 기대감이라곤 전혀 없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
똑바로 시선을 마주한 채 아이는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찬가지였다.
겁에 질렸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한 번 피하질 않았다. 여전히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아이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내로라하는 병사도 그가 가만히 쳐다보면 시선을 피하곤 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대화할 때만큼은 반드시 눈을 마주쳤다.
기대감이 있었나?
아니.
아이에겐 별다른 기대감이 없다. 환하게 웃고 어린아이처럼 서툰 발음으로 말하지만, 그 눈에는 기대감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넌 우리 콜린 가문의 은인이다. 그리고 내 아들이 널 무척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그 외의 이유가 필요한가?”
“…….”
제 말에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더니 이내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을 했든 아무것도 묻지 않겠다는 것처럼.
“도마뱀이라면 무슨 색의 비늘을 가지고 있지?”
“하양색 가튼 은색…, 거기에 분홍이 쪼끔 섞여써여.”
“……그렇군.”
콜린 공작은 남대륙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는 터라 수인의 생태계도 꽤 아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런 색의 비늘을 가진 도마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돌연변이인가?’
때때로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비늘과 피를 머금은 듯한 붉은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도마뱀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돌연변이는 신의 사자로서 대접하는 곳도 있고 악마의 하수인이라고 박대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넌 내게 평생의 은인이다. 은인을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보낼 순 없지.”
“……생각해 보께여.”
아이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언뜻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비쳤던 것은 작은 미련과 망설임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애는 누구지? 너와 리하르트 말고 한 명이 더 있던데.”
“아…….”
아이가 난감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다가 뺨을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애완…동물이요……?”
“…….”
요즘 아이들 사이엔 그게 유행인가?
되묻고 싶은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그는 간신히 억눌렀다.
‘…유행에 뒤처져선 안 되겠지.’
간신히 만난 아들에게 “이런 것도 몰라”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콜린 공작이 생각했다.
* * *
“뱀뱀아-!”
“주인님께 멋대로 안기지 마셨으면 합니다.”
“내 뱀뱀이한테 내가 안기겠다는데 네가 대체 뭔 상관이야? 너야말로 내 집에서 당장 안 나가?”
“주인님 외엔 다 필요 없다고 하더니 겨우 일주일 만에 ‘내 집’이 됐나 보죠? 지조도 없기는.”
나는 침대에 널브러져서 두 아이가 싸우는 것을 가만히 구경했다.
‘옷이 날개라더니….’
둘 다 번듯한 옷을 입으니 귀공자가 따로 없다. 본래도 빛나는 원석이 장인의 손길을 통해 보석으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얘네 둘은 왜 맨날 싸우는 거야.
그리고….
‘얘는 정말 언제 신전으로 돌아가는 거지?’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째였다.
‘알비온도 감감무소식이고…….’
한창 원작이 진행 중인 걸까?
‘지금쯤이면 옥션이 한창이었나?’
지하 옥션.
뒷세계를 주름잡는 정보 길드 ‘명월(明月)’이 운영하는 제국에서 가장 커다란 뒷세계 경매장이다.
뒤로도 연줄이 엄청나서 황실도 알면서도 묵인하는 곳이기도 했다.
‘여주인공이 납치당하면서 에탐 가문에 의해 크게 한바탕 뒤집힐 예정이고…….’
나는 차분히 소설 내용을 더듬었다.
‘그다음에, 전염병이 돌던가?’
분명히 이 병에 미르엘 공작이 걸렸었다.
그렇게 서서히 공작위에서 물러나면서 에르노 에탐에게 권력을 이양하려고 하는데…….
제법 매정하게 거절했었던 기억이 났다.
원작에서 에르노 에탐은 정말 지독하게도 미르엘 공작이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
생각났다.
이번 전염병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미르엘 공작이다.
그는 이 병에 걸렸다가 여주인공의 각성한 능력으로 병의 진행을 늦추지만 그뿐이었다.
수년 뒤, 그는 여주인공을 노리는 악역과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싸우고 광폭화를 하기 직전 검 끝을 자신에게 향한 채 눈을 감는다.
그때 여주인공에게 내재된 드래곤의 피가 개화하면서, 그녀는 ‘정화’의 힘을 개방하게 된다.
광폭화를 더욱 완벽하게 억누르며 독 등을 정화하는 힘이었다.
‘그 전염병은…….’
사실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전염병조차 아니다. 치료도 무척 간단했다.
그건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생화학 무기 같은 것이었다.
귀족을 저주하는 ‘반귀족파’가 각 귀족가의 시종 시녀로 숨어 있다가 동시에 균을 살포하면서 전염병으로 퍼졌다.
이 일로 귀족가의 피해가 아주 컸다. 죽은 귀족도 많았고 눈이나 팔다리를 잃은 귀족도 있었다.
그뿐이랴, 타액 등으로 감염되기도 해서 시종들도 많이 죽어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가 몸에 똬리를 틀고 앉아 숙주의 몸을 기어올라 뇌에 자리 잡는다.
어떤 귀족은 미치광이가 되어 사람을 물어뜯었고 어떤 귀족은 끓어오르는 열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횡사했다.
벌레는 구멍이 있다면 어디든 침투할 수 있다. 그래서 빠르면 하루, 늦으면 최대 열흘의 잠복기를 가졌다.
뇌에서 가장 먼 다리로 침투했을 때 뇌까지 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략 열흘이니까.
그사이 제 몸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몇몇은 무식하게 검으로 그 부위를 파거나 찔러서 벌레를 꺼내기도 했었다.
말했다시피 이 생화학 무기는 간단하게 예방하고 또 처치할 수 있었다.
‘구충제만 먹으면 되거든.’
요는 벌레만 없애면 사라지는 병이었다는 거다.
사태의 원인이 벌레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여주인공이 치료법의 실마리를 눈치채면서 황실과 사교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게 최초 감염자인 미르엘 공작을 치료하기엔 간발의 차로 늦었다.
‘대체 왜 벌레를 구충제로 해결하겠단 생각을 못 한 걸까.’
온갖 천재들이 다 모여 있는 에탐 공작가에서!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는데,
의 설정에서 지금 이 시대에 구충제가 없다.
그리고 여주가 돋보이기 위해선 뭔가 대단한 사건 해결이 필요했었을 테고.
‘……그 장면은 나도 재밌게 봤었지.’
그때는 쾌감으로 느껴지고 내가 사랑받기 위한 과정을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활자가 내 세상을 뒤덮은 현실이 되니 확실히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알고 있는데 원작을 위해서 모른 척하기엔 이미 그들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으아아아!
‘조심하라고 편지, 써야겠지?’
생각하며 루실리온이 준 ‘균형의 파편’과 리하르트가 준 균형의 파편을 합치자 에르노 에탐이 잃어버린 것과 같은 크기가 됐다.
이것도 전달해줘야 한다.
‘어떻게 전달해 주느냐가 문제네.’
직접 가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주인님?”
눈앞에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자 루실리온이 눈매를 사르르 휘며 웃었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뱉었다.
“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어떤 사람한테 줄 꺼가 잉는데 내가 가묜 위험해서.”
그 말에 루실리온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입꼬리를 둥글게 말아 올렸다.
“제가 다녀올게요.”
“……응?”
“제가 가면 되잖아요, 그런 잡일은 저한테 시켜 주세요.”
인간의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투명할 정도로 새파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고마어.”
자, 문제는…….
내 글씨가 무척 삐뚤빼뚤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크기 조절이 잘 안 된다. 다섯 살짜리 손이란 이렇게나 불편하다.
“뱀뱀아, 산책 가자.”
리하르트가 꼬물꼬물 기어와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기차나…….”
“안 돼, 산책은 매일 한 번씩 해야지.”
꼬르르륵-
우렁찬 뱃고동 소리에 내가 황급히 배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뱀뱀아, 배고파?”
“…….”
당황스러움에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2시간 전에 배가 빵빵해질 정도로 식사를 했던 참이었으니까!
“뱀뱀아?”
“…….”
“뱀-뱀아.”
부끄러우니까 부르지 좀 말래?
“에이린.”
어느새 리하르트가 코앞에 턱을 괸 채 엎드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밥 더 달라고 할까?”
리하르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덟 살짜리 외모가 왜 이렇게 눈이 부시냐고.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배가 고팠던 탓이다.
‘먹고 편지지 사러 갔다 와야지.’
어쩐지 답답하기도 하고 말이다.
* * *
일주일 만에 돌아온 알비온은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았다.
‘……문법이 완벽하군.’
짧은 쪽지에서 기이한 점을 발견한 알비온의 눈이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