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5
에노쉬 샨 오리에드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다.
태어나는 것과 동시에 시한부 판정받을 정도로 연약했다.
의원들은 에노쉬가 태어나는 날에는 세 살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고 세 살이 되는 해에는 일곱 살을 넘기기가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일곱 살이 된 날에는 열 살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했고 열 살이 된 날은 열두 살을 넘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에노쉬는 의원이 말한 날에 죽지 않았을 때마다, 그 말을 한 의원의 목을 베었다.
사실 의원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보통의 아이라면 에노쉬는 이미 죽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권력과 재력의 정점에 선 황제를 아버지로 두고 있었고, 막내 황자를 아끼는 황제는 가만히 앉아 아이의 죽음을 기다리지 않았다.
온갖 좋은 약재와 의원이 오로지 에노쉬에게 붙어 소년의 수명을 하루씩 얼기설기 기워냈다.
그렇게 에노쉬 막내 황자는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열두 살을 넘기지 못했다.
열두 살의 겨울, 해가 넘어가기 며칠 전에 급격히 몸이 약해진 막내 황자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 계기가 아마 이 지하 옥션과 전염병이었지.’
그 이후 손녀를 잃어버릴 뻔한 미르엘 공작과 죽어 가는 아들을 본 황제가 이 지하 옥션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 뒷세계를 적으로 돌린다.
“콜록콜록.”
밭은기침 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급히 고개를 들었다.
“젠장, 여기는 상품을 이렇게 추운 곳에 방치해도 되는 것이냐! 수준 낮은 놈들, 사람을 물건이라고 데려왔으면서 물건을 파는 방법조차 모르는구나. 내 몸값이 얼마나 될 줄 알고.”
강한 척하며 불만을 토하는 에노쉬의 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숨소리는 쇳소리라도 섞인 듯 색색거림이 심했다.
‘얘 죽으면……, 안 되겠지?’
안 된다,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막내 황자의 죽음으로 황제는 미쳐서 전염병을 퍼트린 범인을 잡겠다고 군사를 풀었다.
황제는 높은 포상금을 걸었고 병사들은 포상금을 위해서 거짓 증좌를 만들고 죄 없는 사람들까지 지독한 고문으로 자백하게 해서 전부 처형했다는 것이다.
황제는 그것을 묵인했고 결국 나중에는 성인이 된 여주인공이 쿠데타를 주도하기까지 한다.
내가 처음에 말했던 것 같은데, 이 소설은…….
놀랍게도 용두사망이다.
처음에는 육아물로 잘 가다가 여주가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갑자기 정쟁물로 넘어가더니 여주가 반란군 수장이 되거든…….
아, 에탐 가문을 등에 업은 반란군…….
그러니까 이 얘기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사랑하던 막내 황자가 죽은 충격을 받은 황제는 범인을 알고 현타를 느낀다.
자신이 밤잠 새워 가면서 돌보려고 노력했던 평민이 제 아들을 죽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성군(聖君)이 폭군으로 흑화한다는 말이다.
‘……아냐, 이건 아냐. 절대 안 돼.’
불똥이 잘못 튀어서 같은 철창에 있던 나한테까지 튀면 어떡하라고.
‘근데 진짜 아프긴 한가 보네.’
자세히 보니 목소리만 컸지 입술도 새파랗고 얼굴도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생각을 끝낸 나는 급히 몸에 두르고 있던 로브를 벗어 에노쉬에게 주었다.
몸을 웅크리고 있던 에노쉬가 힐끔 나를 보더니 망설임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손놀림으로 로브로 제 몸을 돌돌 감쌌다.
“멍청한 반죽이지만 눈치는 있구나.”
그거로도 부족한지 에노쉬의 몸은 연신 떨렸다.
‘하는 수 없지.’
나는 조심스럽게 에노쉬에게 다가가 그의 등 뒤에서 허리를 감싸 폭 안았다.
에노쉬가 파드득 몸을 떨더니 몸을 거칠게 비틀어 내 작은 품에서 빠져나갔다.
“미친 것이냐! 역시 네놈, 나를 유혹하기 위해서 어디에서 보낸 첩자이냐! 이, 사특한 것! 콜록! 난 네놈 같은 반죽 따위에게, 콜록콜록!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콜록!”
아니, 그게 아니라고.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침하면서도 진짜 기가 전혀 죽지 않는다.
“춥자나.”
“뭐?”
“춥자나, 너 아파 보이구…….”
에노쉬는 눈을 가늘게 뜨곤 나를 바라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핑계는. 이 몸이 멋진 건 알고 있다. 이런 외모가 흔하진 않지. 하지만, 그렇게 꼬셔도 소용없다. 이 몸은 이미 마음을 준 여인이 있어. 그야말로 고귀하고 아름답고 우아하며 현명하기까지 하다. 네가 아무리 날 사모해도 네게 줄 마음은 한 톨도 없으니.”
‘아니, 관심 없거든.’
말문이 턱 막히는 자기애에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실 외모만 따지자면 리하르트와 왜 떠나지 않고 있는지 모를 루실리온도 에노쉬에게 뒤지진 않는다.
“관심 업써여.”
“뭐? 내게 관심이 없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닌 척해도 다 티가 난다.”
아, 귀찮아.
“나도 조아하는 사람 이써.”
괜한 오해를 더 하기 전에 나는 적당히 말을 덧붙였다.
‘여주인공을 좋아하지.’
다 짜인 각본 위에서 춤을 춘 것뿐이라고 해도 한국에 살던 나는 그게 좋았다.
결국은 어떤 역경이 있어도 해피엔딩으로 향해서 걸어간다는 것도, 이유 없이 여주인공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내 외로움을 여주인공이 대신 먹어 주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뭐야, 그런 거냐?”
콜록콜록!
한창 열변을 토한 탓인지 그의 기침이 한층 더 심해졌다.
“웅.”
“난 또……, 좋다. 다가오는 걸 허락하지.”
“……시른데.”
“뭐?”
“방금 상처 받아써, 시러.”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에노쉬가 당황한 듯 눈가를 잘게 경련하더니 이내 얼굴을 대차게 구겼다.
“너 내가 누군지 아느냐! 감히 이 몸을 살리기 위해서 성심성의를 다해도 부족한 판에……!”
“흥.”
“이 몸이 오늘 죽으면 반드시 네놈이 날 죽였다고 말하고 말겠다!”
흠칫.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가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에노쉬와 눈이 마주쳤다.
오만한 어린 황자가 내게 고개를 까딱였다.
“씨이…….”
나는 불만스러운 낯을 하면서도 다시 에노쉬의 등 뒤에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쬐끄매서 별로 따뜻해지지도 않는구나. 작은 화로도 이것보단 낫겠군. 뭐, 걱정하지 마라. 기사들이 곧 올 테니까. 내가 네 갸륵함을 봐서 너까진 살려 달라고 아바마마께 간청해 보마.”
“안 오면?”
“왜 안 와? 죽기 싫으면 와야지. 근데 너 아까부터 왜 자꾸 반말하느냐? 이 몸이 누군지 아나? 이 몸은…….”
“모르구, 아마 안 올 꺼야.”
소설에서도 오지 않았으니까.
소설에서 에노쉬를 구하는 것은 알비온이다.
‘애초에 에노쉬를 수행하던 병사 중 하나가 반귀족파였으니까.’
이미 에노쉬는 그 벌레에 감염되었을 거다.
여기 오기 전에 기절했을 테니 그때 감염시켰겠지.
그러니까 적어도 몸 상태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구충제를 먹는 것이 좋았다.
‘구충제 제조법은 알고 있어.’
소설에서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고 그 구충제를 개발했던 것은 칼란 에탐이다.
소설에 정확한 비율이 나오진 않았지만, 재료는 나왔었다.
칼란 에탐이라면 분명 재료만 가지고도 만들겠지. 그러려면 최대한 빨리 정보를 전달해야 했다.
‘아직 시간은 있어.’
제조법이 어렵지도 않고 약초가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라 아마 금방 만들 거다.
‘편지도 써야 하는데.’
어차피 옥션 시작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여기 주변으론 사람이 잘 오지 않았다.
‘할 일도 없고.’
상급품은 마지막 순번일 테니 한동안 사람이 오진 않을 것 같다.
나는 한참 고민한 끝에 에노쉬가 돌돌 말아 감고 있는 로브 안쪽에 손을 밀어 넣었다.
“뭐, 뭐, 뭐 하는 짓이냐! 이 수치도 모르는 파렴치한 녀석! 역시 이 몸에게 관심이 없다는 건 다 거짓부렁이렷다?!”
“아냐, 편지야.”
나는 아까 샀던 편지지와 연필을 보여 주곤 바닥에 엎드려 종이를 펼쳤다.
다행히 그놈들은 내가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은 듯 몸수색을 하진 않았다.
“뭐 하는 것이냐?”
“편지.”
“편지? 갑자기 왜?”
“아, 음. 주글지도 모르니까여.”
대충 말을 둘러댄 내가 막 편지를 쓰려는 찰나 눈앞에 당당한 손이 내밀어졌다.
“……모야.”
“이 몸에게도 한 장 줘 보거라. 콜록콜록.”
점점 심해지는 기침 소리를 듣다 못 한 내가 연필과 편지지를 건넸다.
“반죽아, 편지엔 뭐라고 써야 하지?”
대차게 뺏어 간 것과는 다르게 한 글자도 적지 못한 에노쉬가 한층 더 파리해진 낯으로 내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