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7
“자, 슬슬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군요. 오늘은 상품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무엇이 있는지 ‘살짝’만 맛보여 드리겠습니다!”
다른 안내원들과는 다르게 눈물을 흘리는 피에로 분장을 한 사회자의 입이 활짝 웃음을 띠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기괴하게 보이는지 몰랐다.
“자, 미색이 뛰어난 자가 한 명 있군요? 저도 살짝 봤는데 남자인 제가 홀딱 반할 것 같았다니까요? 무려 이미 사라진 악마의 후예, 붉은 눈의 일족, ‘파니스’와 똑같은 적안을 가지고 있는 진귀한 품목입니다.”
신이 난 사회자가 한껏 과장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누가 봐도 에노쉬의 얘기다.
“무엄한 놈……, 이 몸이 이곳만 벗어난다면 반드시 엄벌을 내릴 것이다.”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에 에노쉬가 작게 중얼거렸다.
“오오, 적안이라니…. 악마의 눈동자라는 그?”
“설마 사기는 아니겠지?”
“사기라니요, 제가 감히 어떻게 귀하신 고객님들 앞에서 그러겠습니까.”
과장되게 손사래를 친 피에로가 씩 웃으며 또 입을 열었다.
“그리고 무려, 돌연변이 도마뱀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그야말로 잘 자라면 미색이 아주 뛰어날 도마뱀이었지요.”
“도마뱀……? 그딴 징그러운 건 남대륙에도 널렸네.”
“그렇게 흔한 도마뱀이 아닙니다. 무려 은빛 비늘의 도마뱀입니다. 인간화가 서툰 새끼였습니다. 머리카락은 분홍색인 것이…….”
‘저건 내 얘기네.’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말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수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없는데, 이렇게 적나라하게 마주하니 확실히 기분이 이상했다.
“주인님, 이만 가야 해요.”
“아, 응.”
대답하며 다시 붉은 드래곤 가면을 쓴 사람이 있는 쪽으로 잠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주인님.”
“아, 응.”
그놈의 주인님 소리를 좀 관두면 좋겠다.
나는 슬금슬금 그의 뒤를 쫓았다.
루실리온은 어떻게 사람이 없는 곳을 그렇게 잘 찾는지 정신을 차리니 우리는 이미 밖이었다.
“……되게 구조를 잘 아네?”
내가 의심스러운 목소리를 내자 그는 그림처럼 가만히 웃고 있다가 변명처럼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개는 냄새를 잘 맡으니까요.”
은근슬쩍 자기 개 취급하는 것으로 묻어가려고 하네?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루실리온은 다시 웃어 버렸다.
“저기 다시 안 들키고 들어갈 수도 있어?”
“네, 아마도요. 30분 정도라면….”
“그럼 요거, 저 안에 있는 붉은 드래곤 가면을 쓴 사람한테 전해 주 쑤 이써? 전해 주고 바로 도망치면 대.”
에르노 에탐의 성격이라면 목적을 위해서라면 대상이 아이라도 얼마든지 협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네, 물론이죠.”
“그리구 요건 회색 늑대 가면이나 힌색 여우 가면의 사람을 만나면 전해죠. 우린 무사히 도망쳐따구!”
가만히 나를 보던 루실리온이 순한 개처럼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다만, 제가 이곳에 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편이 좋겠어요. 경비가 삼엄해졌습니다.”
“아…… 어쩌지?”
“여기에 제가 보호막을 치고 가겠습니다. 움직이거나 소리만 내지 않으면 들키지 않을 거예요.”
“웅….”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주인님.”
막 몸을 돌리려던 그가 서툰 아이처럼 두 팔을 벌렸다.
“한 번만 안아 주실 수 있나요?”
“……어? 으응.”
뜬금없는 부탁이었다.
내가 엉거주춤 팔을 벌리자 불편할 정도로 허리를 숙인 그가 내 품에 몸을 안겨 왔다.
“주인님.”
“으응?”
“제가 보기에 주인님은, 도마뱀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제 추측이지만요.”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인 루실리온이 훌쩍 물러났다.
“그게 무승 소리…….”
“다녀오겠습니다.”
나 완전히 도마뱀인데…….
루실리온이 내가 수인화를 한 모습을 보지 못해서 그런가 싶었다.
‘근데 신기하긴 하네…….’
정말 무슨 이유로 루실리온이 사방이 막힌 철창으로 떨어진 거지?
‘뭔가 능력이라도 생긴 건가?’
나는 뺨을 긁적이다가 나무에 기대어 주저앉은 에노쉬를 보았다.
슬쩍 이마에 손을 얹자 파리한 낯의 에노쉬가 느리게 눈동자를 굴려 나를 보았다.
“갠차나?”
“감히 이 몸에 함부로 손을 대다니, 괘씸하구나.”
“걱정해 주는 거자나!”
“……흥, 늘 있는 일이니 괜찮다. 그러고 보니 어떤 의사가 그랬다. 이 몸은 올해 안으로 죽을 거라고.”
“…….”
“하지만, 그전에도 마찬가지였지. 내가 태어났을 땐 모두가 한 살이 되지 못할 거라고 했고 한 살을 넘기니 세 살을 넘기지 못할 거랬지. 수년 전엔 내가 열 살을 못 넘길 거라고 한 아둔한 돌팔이도 있었다. 하지만, 난 살아 있다. 틀린 말을 내뱉은 놈들을 전부 죽였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느니라.”
아직 어린 소년은 지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이쪽엔 없다!”
“그게 어떤 놈들인데……! 당장 찾아내.”
사방에선 여우 가면을 쓴 경비병들과 운영 스태프들이 바삐 뛰어다녔다.
“하아… 콜록…….”
“몸도 안 조은데 대체 왜 나온 거야!”
“릴리안 영애가, 평민들이나 먹는 제과점에서 파는 다과가 좋다고 했다. 타오르는 불꽃 같은 꽃으로 장식해 준다고 하지.”
“……그거 사러 온 거야?”
“그래. 로브까지 쓰고 나왔는데 바람이 불어 잠시 날아가 급히 다시 썼지만, 시궁창 냄새가 나는 쥐새끼들이 본 모양이었다.”
“그 정도면…… 조아한다구 솔찍하게 말하는 게 낫지 아나?”
심지어 에노쉬는 입덕 부정기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 듯했으나, 그걸 밝힐 마음은 없어 보였다.
“뭐라고 말한단 말이냐.”
“머……?”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병약한 이 몸을 사랑해 달라고? 내가 진심이 되면 그 영애는 내게 홀라당 빠질 텐데 만약 그러고 내가 어느 날 죽어 버리면 릴리안 영애의 인생은 무엇이 된단 말이냐.”
“……그런다구 그런 스토킹 가튼 편지를….”
“스토킹? 약혼녀에게 그런 편지를 보내는 게 무슨 문제가 있나?”
“약혼?!”
“그래, 그녀는 내 약혼녀다.”
아, 이게 그 유명한 정략결혼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릴리안…….’
왜 이렇게 이름이 낯익은지 모르겠다.
어쩐지 좀 암흑가를 주름잡는 여왕님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그리고 올해는…… 큭…….”
또다시 발작이 시작된 듯 그가 심장께를 부여잡고 고개를 젖히며 뒤통수를 나무 기둥에 비볐다.
“저기, 너 병에 걸려써.”
“알고 있다. 이미 고질병으로….”
“아니! 또 다른 병에도 걸려써! 집으로 도라가면 꼭 칼란 에탐에게 벌레 잡는 약을 내노으라 그래!”
한참이나 심장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던 그가 흐릿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칼란 에탐……? 에탐 가문의 직계 중 첫째가 아닌가. 그를 아나?”
“쪼끔.”
“너는 정말 신기한 반죽이군…….”
“난 에이링이야.”
“에이링?”
얘가 날 놀리네.
“말랑말랑한 이름이네.”
“에.이.린!”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하자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에노쉬가 힘없이 말했다.
“에탐 가문의 그놈은 이 몸에게도 허리 한 번 굽히지 않는 성격이 아주 더러운 놈이라고 들었거늘…….”
그게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파리한 인상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말 빠르게 돌아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못생긴 반죽아, 올해는…….”
에노쉬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어쩌면, 그 망할 돌팔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덜컹, 심장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바짝 얼어붙자 에노쉬가 키득키득 웃었다.
얼굴은 통증에 일그러져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창백한 낯으로 어떻게든 고통을 잊어보고자 하는 일념이 느껴졌다.
병약한 황자.
소설 속에서는 그저 미래의 악역이 생겨나는 이유와 여주인공의 정의로움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용되었을 뿐인 장치.
활자 안에서는 그가 이렇게 괴로워했다는 이야기도, 그가 한 영애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소설을 다 본 나조차도 이 병은 고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에서도 죽음을 맞이하고 치료법 따윈 나오지 않으니까.
‘그래도, 벌레만이라도 빠르게 처치할 수 있으면…….’
그러면 적어도 올 한 해는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올해를 넘기면…?’
내년이 또 고비가 되겠지.
거기까지 내가 뭐하러 신경을 쓰겠어?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까, 다 정해진 운명이니까…… 내 눈앞에만 보이지 않으면 되니까…….
“큭……, 네 멍청한 개는 정말…… 늦는군. 반죽, 널 닮았네.”
괜히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했나?
일단 이 애를 먼저 옮기는 편이 좋았던 걸까?
하지만, 미르엘 공작과 에노쉬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약의 개발이 가장 급했다.
‘안 되겠어.’
어떻게든 에노쉬가 조금이라도 멀쩡할 때 여길 빠져나가야 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바깥의 경비대원에게만 가도 그들은 황자인 에노쉬를 알아보고 조처를 할 것이다.
내가 막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때였다.
뒤에서 뻗어온 무언가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