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39
에르노 에탐이 전혀 관심 없던 지하 옥션까지 발걸음을 한 것은 그저 한순간의 변덕이었다.
“곧 지하 옥션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늙은이는 혹여나 아가씨께서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리셨을까 걱정이군요.”
집사장 카일로의 쓸데없는 말 때문에 시작된 변덕.
‘공작의 입김이 들어갔겠지.’
그의 아버지인 공작은 솔직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카일로에게 은근한 뉘앙스를 풍겼겠고 오랜 시간 보좌해 온 카일로는 주인의 의향을 어렵지 않게 눈치채고 자신에게 말을 전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걱정되면 그 하마처럼 무거운 엉덩이를 직접 움직이라고 전하지 그러나?”
예민함을 숨기지 않고 입을 열자 카일로는 가증스럽게도 눈을 크게 뜨곤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설마요, 그저 늙은이의 주책이었습니다, 공자님.”
“……나가.”
“혹시 몰라 표는 미리 구해 두었습니다.”
카일로가 탁자 위에 가면과 표를 내려놓고는 정말 아무런 일도 아니었다는 듯 몸을 돌렸다.
에르노 에탐이 침대에 널브러져 누운 채 팔로 눈을 가리며 짧은 숨을 뱉었다.
얼마 전, 잃어버린 유물을 찾았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파편을 찾은 것과 동시에 안정되어야 하는 몸이 계속해서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열은 조금 가라앉았지만, 그뿐이다.
자꾸만 빠르게 심장이 뛰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게 되고 정신을 차리면 이미 사라진 아이의 싸늘한 방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머리가 아프군.’
이젠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사라진 것이다. 자신을 뒤로하고 도망을 갔다.
결론을 내리자면 그냥 그뿐이었다.
그렇다면….
‘잊으면 그만인 것을.’
찾겠다곤 했지만, 아이는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본래라면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에르노 에탐은 귀찮은 것이 싫었다. 흥미가 진심이 되는 것도 즐기는 편은 아니다.
다만, 그래도….
아이가 막 사라진 처음에는 찾는 것이 싫지 않았다.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연중에 아이만큼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겁을 먹었다면 데리고 와서 달래 보고자 했고 오해하고 있다면 오해를 풀어 주고자 했다.
만난 지 겨우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아이와 하던 놀이.
‘그사이 정말 정이라도 든 건가?’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있다가도 그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그 아이가 있을 때는 머릿속도 깨끗하고 또렷한 데다 광폭화의 증상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저조한 기분이 좀처럼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이다.”
그가 느리게 손을 뻗어 근처 티 테이블에서 붉은 드래곤 가면을 손에 쥐며 읊조렸다.
도대체 몇 번째 ‘마지막’일지는 그조차 세어 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테이블의 위에는 새 검은 호랑이 인형이 세 마리가 성의 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 * *
지하 옥션은 아니나 다를까 지루했다. 강자와 약자가 명백한 불쾌한 공간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저열한 행위와 품평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역시 괜히 왔군.’
에르노 에탐이 막 후회를 하는 참이었다.
“그리고 무려, 돌연변이 도마뱀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그야말로 잘 자라면 미색이 아주 뛰어날 도마뱀이었지요.”
우스꽝스러운 낯을 한 피에로의 그 한마디에 절로 몸이 바로 세워졌다.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감각이 흘렀다. 피에로의 입술이 달싹인다.
에르노 에탐은 확신이 들었다. 저 피에로가 말하는 ‘도마뱀’이 제가 찾는 아이일 것이라는 확신이.
“도마뱀…? 그딴 징그러운 건 남대륙에도 널렸네.”
“그렇게 흔한 도마뱀이 아닙니다. 무려 은빛 비늘의 도마뱀입니다. 인간화가 서툰 새끼였습니다. 머리카락은 분홍색인 것이…….”
우지끈-
그가 팔을 올리고 있던 팔걸이에 선명한 금이 갔다.
그가 손을 까딱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우 가면을 쓴 안내원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뒤로.”
“예?”
콰득-
에르노 에탐의 손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빠른 속도로 안내원의 목을 틀어쥐었다.
“방금 말한 아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동공이 풀린 에르노 에탐의 서늘한 낯을 본 안내원이 질겁하며 버둥거리다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느리게 손을 풀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안내원이 거의 기듯이 앞으로 향했다.
에르노 에탐의 황금빛 눈동자가 열기를 머금은 채 일렁였다.
“어, 여, 여기에 분명히 있었는데…….”
“…….”
“여, 여기에 있던 아이들 어디 갔어! 네놈들 제대로 감시도 안 한 거냐!!”
안내원이 급히 뛰어가며 다른 안내원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에르노 에탐이 짐승의 우리 같은 시커먼 철창을 물끄러미 보았다. 쇠창살의 몇 개가 비어 있었다.
아이들이 몸을 빼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그 아래로 분홍색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었다.
그가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을 주우려는 때였다.
“붉은 드래곤 가면……, 당신이군요.”
바로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그가 미간을 좁히며 몸을 돌렸다.
허공에서 떨어진 듯 갑작스럽게 등장한 상대는 로브를 쓰고 있었으며 표정 없는 새하얀 가면을 얼굴에 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작은 키와 앳된 목소리를 보아 어린아이임을 짐작게 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이가 마치 보이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제 할 일을 하느라 바빴다.
평소라면 호기심이 앞섰겠으나 그는 지금 기분이 별로였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이의 흔적을 지금껏 방문한 곳 중 최악의 장소에서 발견하고 말았으니까.
“여기 있는 놈들의 뇌에만 바람구멍이 뚫린 줄 알았더니, 경비에도 바람구멍이 크게 뚫려 있던 모양이지. 이런 어린애까지 들어오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어.”
“이거 받으세요.”
표정과 무늬조차 없는 새하얀 가면을 쓴 소년이 볼록한 편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유치한 그림이 그려진 편지 봉투였다.
“나는 더러운 건 만지지 않는 편이라.”
“곤란하네요, 전달해 달라고 부탁받았는데.”
앳된 목소리가 잠시 난감함에 젖어 들더니 이내 에르노 에탐에게 조금 더 가까이 편지를 내밀었다.
평소라면 받지도 않고 태워 버렸을 편지를 받은 것 또한 변덕이었다.
“그럼, 이만.”
소년이 두어 걸음 물러나는 듯하더니 이내 주변과 동화된 것처럼 모습을 감췄다.
그는 느리게 시선을 내려 편지를 보았다.
삐뚤빼뚤 엉망인 글씨체는 글인지 그림인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손바닥만 한 편지 봉투 한 면을 가득 채운 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르노 에탐이 홀린 듯 편지 봉투를 열었다.
올록볼록한 것이 만져져 편지 봉투를 손바닥 위에 뒤집자 새파란 조각이 툭 떨어졌다.
그가 가지고 있는 유물과 정확히 똑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제 조급하게 편지지를 열었다.
한 글자에 손 한 마디는 되는 것 같은 커다란 크기였다. 그 탓에 편지지가 네댓 장은 사용된 듯했다.
유려한 문체는 아니었다. 외려 역사서를 읽는 듯한 딱딱한 문투였다.
하지만 군데군데 찍힌 말 줄임표와 찍찍 그어진 선을 보고 있으면 아이가 얼마나 고민했을지가 눈에 보였다.
“내게서 떠나고 싶었으면…….”
그가 편지를 움켜쥐었다.
“미련을 보이지 말았어야지, 따님.”
유물을 훔쳐 가게 그냥 두었던 것처럼 누가 죽든, 누가 아프든, 제 유물이 어떻게 됐든 신경 쓰지 않았어야지.
이렇게 떠나서도 이쪽 생각을 했다는 걸 보여 주면 눈감아 줄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쪽이군.”
에르노 에탐이 철창 밖으로 빠져나온 아이들의 흔적을 따라 발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