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2
“…정말?”
“응, 아직 초기작이라 부작용도 있고 실험도 좀 더 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원작에서 발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개발이었다.
게다가 칼란 에탐은 이제 열한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실리안 에탐이 열 살이었지?
이 나이에 그만한 업적을 이뤘으니 미르엘 공작이 왜 편애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어…? 이러면…….’
내가 여주 역할을 뺏어 버린 게 되는 건가? 그러면 안 되는데.
“아, 하여튼 일어난 거 봐서 다행이다. 너 봤으니까 나는 좀 자러 가야겠어.”
칼란 에탐이 하품을 하며 눈두덩을 느릿느릿 비볐다.
자세히 보니 눈 밑이 거무죽죽한 것이 다크서클이 심각했다.
“오라버니, 졸려?”
“응, 네가 이거 개발하래서 며칠 잠을 못 잤거든. 그 뒤엔 네가 걱정돼서 잠이 안 왔고.”
평이한 어조에 담긴 내용은 내게 있어선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라 나는 잠시 말문을 잃고 말았다.
“…….”
누군가 내 말을 이렇게 순순히 믿어 준 적이 있던가? 누군가 나를 이렇게 맹목적으로 걱정해 준 적이 있던가?
아픈 날에는 늘 혼자였고 그렇지 못한 날에도 늘 혼자였으며 내 말을 그저 온전히 받아들이고 믿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흔한 불행이었다.
세상을 돌아보면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배부르고 등 따습게 좋은 동네에서 좋은 학군에 다니면서 피해망상이나 한다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타인의 불행이 나보다 더 크다고 해서 내게 닥친 불행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편안한 마음으로 그 집에 있었던 적이 없다.
불청객이란 그런 것이니까.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앞으로 집 나갈 땐 꼭 나한테 말해.”
“…….”
나보다 조금 큰 손이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뜨겁고 부드럽다.
멍하니 그 얼굴을 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칼란 에탐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에이린?”
“나랑, 가치 자자.”
간신히 낸 용기였다.
오늘은 어쩐지 혼자 있고 싶지 않았으니까 낼 수 있었던 용기.
나는 타인의 온기가 좋았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이 좋았고 누군가가 끌어안아 주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연애도 여러 번 했다. 애인에겐 이런 투정을 부려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가족에게 바랄 수 없는 애정을 애인에게 갈구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거겠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표정을 숨기고자 고개를 숙였다.
“정말?”
“응?”
“정말 그래도 돼?”
“응….”
“나야 좋지!”
눈을 반짝인 칼란 에탐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활짝 편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방긋 마주 웃었다.
“나, 잠옷만 입고 얼른 올게!”
“으응….”
칼란 에탐이 문을 쾅 열고 나가더니 복도에 떠내려가도록 “내 잠옷 내놔!!”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콰앙-!
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하하…….”
나는 웃음을 흘리며 나도 모르게 몸에서 힘을 풀었다.
눈앞에 실리안 에탐이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는 물끄러미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나도 좀 졸린 것 같기도 해.”
허공에 국어책을 읽듯 말을 내뱉은 실리안이 어색하게 제 뒷덜미를 여러 번 매만지더니 엉성하게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었다.
칼란 에탐과는 다르게 굳은살이 박인 조금은 단단한 손이었다.
그러더니 또 뭔가를 기다리는 듯 멀뚱하게 서 있었다.
‘아, 설마…….’
방금 했던 행동은 칼란 에탐이 내게 했던 행동과 똑같았다.
“오라버니도 나랑 가치 잘…”
“응.”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 단호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나도 잠옷으로 갈아입고 올게.”
“어? 으응….”
두 사람이 모두 나가자 왁자지껄했던 방이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근데 둘 다 여주인공은 어쩌고 나한테 와 있는 거지?’
기억하기론 소설에서 두 사람은 거의 여주인공 껌딱지 수준이었는데 말이다.
“모르게따…….”
내 한 치 앞도 모르겠는데 타인의 걱정까지 할 자신은 없었다.
‘또 잠이 오네….’
그렇게 잤는데도 말이다.
‘일어나면 리하르트에게 편지를 쓰자…….’
루실리온에게도 말을 전해 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에노쉬에게도…….
‘나 너무 일을 치고 다녔나?’
줄줄이 늘어지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냥 돈 많이 받아서 유유자적 살고 싶었던 것뿐인데…….’
뭔가 이상해졌다.
이불에 머리를 박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꿈은 아니겠지.’
나는 손으로 뺨을 힘껏 꼬집었다.
“아파…….”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다.
‘정말 나도 가족이 생긴 건가……?’
도저히 믿기질 않는다. 나는 천천히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입꼬리가 절로 비실비실 올라갔다.
“나도 아빠가 있네…….”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어…?”
“좋은 아침이야, 따님. 좋은 꿈 꿨니?”
그가 엄지로 가볍게 내 뺨을 훑으며 물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바지…!”
“…호칭은 그대로 해도 좋은데.”
“그대로…?”
이게 그대로가 아니었던가?
“그래, 방금 했던 호칭.”
“아……. 아빠!”
“옳지, 내 따님은 기특하기도 하지.”
그가 누워 있는 내 이마를 시원하고 커다란 손으로 덮어 주며 말했다.
“보고 시퍼써여…….”
내가 어리광을 부리며 두 팔을 벌리자 에르노 에탐은 순순히 나를 냉큼 품에 안으며 등을 토닥거렸다.
“에이린, 네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하느냐?”
“아녀……?”
엑스트라의 생일까지는 기억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널 호적에 올리기 위해서 알아봤는데, 네가 그 개망나니의 호적에도 올라가 있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어?”
“널 호적에 넣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구나. 좋아하는 날이 있나?”
“아녀.”
나는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평생 챙겨 본 적도 없는 생일은 전생엔 그저 주민등록번호를 알리는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 와서도 생일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래, 그럼 내가 임의로 넣으마.”
“네.”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날짜가 좋겠구나. 줄 선물도 있으니.”
“선물?”
“그래.”
에르노 에탐은 어느새 파편이 여섯 개나 합쳐진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에르노 에탐의 안색이 좋아 보였다.
‘이게 꿈이라면 이 꿈이 영원히 이어지면 좋겠다.’
나는 에르노 에탐의 품에 안겼다.
“무서운 꿈이라도 꿨나? 어리광이 많아졌구나.”
“시러여……?”
“싫을 리가.”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눈꺼풀이 멋대로 무거워졌다.
“졸리면 자거라. 곁에 있어 줄 테니.”
“네…….”
그가 나를 침대 위에 눕히고 이불을 푹 덮어 주었다.
눈이 가물가물했다. 정신이 느리게 가라앉았다. 나는 에르노 에탐의 온기를 느끼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빠…….”
“그래.”
“왜 나 미어해써여?”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무슨 소리…….”
아이에게 반문하던 에르노 에탐이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아이가 깊은 잠에 빠진 탓이었다.
에르노 에탐은 에이린을 미워한 적이 없다. 만난 뒤로는 늘 다정하게 아이를 대했다.
그러나 방금 그 말에는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단순히 연기를 했다는 것을 원망한다기보단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이다.
“늘 궁금해, 내 따님께선 뭘 그렇게 숨기고 있는 건지.”
광폭화를 억제하는 붉은 열매도,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균형의 파편’도, 터지지 않은 전염병에 대한 치료약 정보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본래의 에르노 에탐이라면 사실 아이를 회유하거나 그도 아니면 진즉 죽여 없앴을 것이다.
변수는 없으면 없을수록 좋았으니까.
“어쩐지 네게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구나.”
평생 살면서 처음 겪는 감각이 새로웠다.
에르노 에탐이 아이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에이린!”
칼란 에탐이 잠옷을 입고 쳐들어왔다가 에르노 에탐의 시선에 냉큼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 여긴 어쩐 일이에요? 지하 옥션 처리로 바쁘다고 하지 않았나?”
“그쪽은 정리됐다. 오후에는 황성에 갈 예정이다.”
“왜요?”
“에이린을 에탐 가문의 족보에 올리기 위해선 황제의 승인을 받는 게 가장 빠르니까.”
귀찮은 절차를 전부 밟고 있다간 밑도 끝도 없을 것이다.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가주가 허락하면 간단하게 처리되는 일이지만, 에이린은 출생 자체가 기록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연고 없는 아이를 귀족가에서 입양하기 위해선 황가의 승인이 필요했다.
본래 사생아인 아이를 속이고 강제로 정략결혼을 시키거나 물건처럼 사용하기 위함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었지만, 이럴 땐 확실히 귀찮았다.
“아, 에이린을 차기 가주로 삼아 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아들.”
뜬금없는 에르노의 말에 칼란의 입이 떡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