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3
“에이린을? 난 솔직히 가주니 뭐니 관심 없어서 상관없는데……, 일단 얘 에탐이 아닌 거죠? 아버지.”
“글쎄.”
“글쎄라니, 가능성이 있어요?”
“검사를 해 보진 않았지.”
칼란이 에르노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이곤 꾸물꾸물 에이린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지금 뭘 하는 거지?”
“에이린이 같이 자자고 해서 자려고요.”
“……남자와 여자는 같은 방을 쓰면 안 되는 거 모르나?”
“여동생이잖아요.”
“피는 안 이어졌지.”
“방금까진 검사를 해 보지 않았다면서요.”
순식간에 말을 바꾸는 에르노 에탐의 말에 칼란이 냉큼 에이린의 팔을 붙잡았다.
혹시나 강제로 떼어질까 봐 겁을 먹었던 탓이다.
“아버지……?”
“실리안.”
“아버지도 주무시게요? 근데 에이린의 옆자리는 빈 곳이 없어서요.”
실리안이 자연스럽게 에르노 에탐을 스쳐 지나 에이린의 빈 옆자리에 누웠다.
“야, 넌 왜 들어와?”
“형 나가고 에이린이 나한테도 같이 자자고 했거든.”
“너는 얘가 돌아오든 말든 관심도 별로 없었잖아.”
숨을 죽인 칼란의 말에 실리안이 코웃음을 치며 에이린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어쨌든, 전 동생님이 가주가 되어도 상관없어요.”
“가주? 아버지 에이린을 가주로 만드시게요?”
“아마도. 그러면 함부로 사라지지도 않을 테니.”
“아…….”
실리안이 낮게 탄식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혈통 문제가 꽤 걸릴 것 같긴 하지만, 에르노 에탐은 늘 한다고 한 건 어떻게든 이뤄냈으니까.
“나쁘지 않네요.”
마찬가지로 가주 자리에는 전혀 관심 없던 실리안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 맞다. 아버지 남대륙어 읽을 줄 아세요?”
“왜?”
“수인은 환경이 갖춰져야 성장기도 맞이하고 잘 자란다고 해서요.”
에르노 에탐이 칼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대륙에서 수인에 관한 책을 좀 공수했거든요. 도마뱀에겐 열대우림이나 습한 늪지가 좋대요.”
“……그렇군.”
에르노 에탐이 가볍게 턱을 문질렀다.
“남아도는 부지를 철거해 보도록 하지.”
에르노의 시선이 눈을 감은 칼란 에탐과 뒤척이는 실리안 에탐에게 닿았다.
“너무 오래 붙어 있지 마라.”
“왜요?”
실리안의 반문에 에르노의 입이 닫혔다. 할 말을 잃은 듯 조용해진 그 모습에 칼란 에탐이 한쪽 눈을 슬쩍 떴다.
“…어쨌든.”
에르노가 제 턱을 몇 차례 문지르더니 이내 에이린의 방을 빠져나갔다.
* * *
‘멍청한 짓을 하는군.’
마차에 앉은 에르노 에탐이 낮게 혀를 찼다.
아이들끼리 같이 잘 수도 있는 노릇인데 그걸 가지고 이상한 말을 내뱉은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피곤하군.’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서 신경을 곤두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그는 최근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칼란과 실리안 땐 이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두 아이가 워낙 자기 의지가 강했던 것도 있지만, 딱히 걱정할 것도 없었다.
한 대를 맞으면 열 대를 되돌려 주고 오는 성격들이니 걱정할 필요가 있을 리가.
황실에 도착한 그가 시종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향하며 귀걸이의 구슬을 매만졌다.
아이가 돌아오고 광폭화는 상당히 안정되었다.
‘귀걸이 때문인가……?’
파편이 세 개가 더 늘어났으니 늘 술렁거리던 감정이 차분해졌다.
‘……아니면.’
균형의 파편과 돌아온 에이린 때문일까?
‘남쪽 지방에 별장을 한 채 알아보는 것도 좋겠군.’
아이는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듯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가 막 응접실로 들어설 때였다.
“아, 에탐 소가주 왔나?”
“……벌써 노망이 오시면 곤란하실 텐데요. 소가주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지.”
아름다운 금발에 짙푸른 바다를 보는 듯 새파란 눈동자를 가진 30대 중반의 사내였다.
“여전히 까칠함은 달라지지 않았군. 오랜만에 보는 친우에게 너무 싸늘한 것 아닌가?”
“친우는 무슨…….”
에탐은 짧게 혀를 차면서도 순순히 남자가 가리키고 있는 소파에 앉았다.
“그래, 최근 사고를 크게 터뜨렸다고 들었는데…… 감사를 표하지.”
“감사받을 건 없습니다, 내 따님을 건드려서 처리한 것뿐이니.”
황제는 마치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은 것뿐이라는 듯 빙긋 미소만 띠었다.
“공교롭게도 내 막내아들도 그 일에 휘말렸던 터라, 자네가 한 차례 쓸어 준 것이 큰 도움이 됐네. 나머지는 황실에서 처리하도록 하겠네.”
“…공을 황실에서 다 처먹겠다는 소리를 참 고상하게도 돌려 말하는군요, 폐하.”
“자네 입담은 여전히 거칠고 말일세. 혀끝이 날카로워 때때로 내가 검을 뽑아 버릴까 두렵기만 하다네.”
“그 휘청거리는 검이 제 머리카락은 스칠는지.”
대놓고 보이는 비소에 황제가 눈썹을 크게 들썩이더니 가만히 찻잔을 기울였다.
“뭐, 공짜로 먹겠다고 하진 않겠네. 바라는 게 있으면 가감 없이 말해 보게나.”
“에탐 가문의 족보에 내 따님의 이름을 올릴 수 있게 해 주시면 됩니다.”
기다렸다는 듯 에르노 에탐이 입을 열었다.
“도마뱀 수인을 한 마리 기르는 모양이지. 하하, 요즘은 수인을 기르는 게 유행인가 보군?”
무슨 애완동물이라도 기른다는 듯한 말투에 에르노 에탐이 웃는 낯으로 입술을 뗐다.
“유행?”
“그래, 얼마 전에 콜린 공작도 수인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내게 승인을 요청했었지.”
황제가 제법 유쾌한 듯 턱을 매만졌다.
“겨우 짐승이 인간처럼 걷고 말할 수 있다는 것뿐인데 그걸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여길 수 있다니 신기한 일이야.”
황제의 말에 에르노 에탐의 미간에 균열이 생겼다. 그가 짧게 혀를 찼다.
“폐하, 제가 그나마 차리고 있는 예의를 집어치워야 절 불쾌하게 하시는 일을 관두실 건지요.”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이네. 자네들을 비난할 마음은 없어.”
황제는 여상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예전엔 자네도 내 말엔 제법 동의하지 않았던가. 그런 자네가 이렇게 바뀐 게 신기해서 그럴세.”
에르노 에탐의 입가에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기분이 상했군.’
기분이 나쁠수록 미소가 환해지다니, 정말 미친 인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의 변화를 가만히 보던 황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 보니 이것에 대한 감사 인사도 해야 했군.”
“이것?”
“그래, 자네의 첫째 아들이 준 약 덕분에 막내 아이가 괜찮아졌네.”
“아아…….”
“정신을 차린 아이가 자꾸 에탐 가문에서 약을 가져오라고 해 사람을 보낸 것이었는데……, 뭔가 나 몰래 약속을 했을 줄은 몰랐지.”
에르노 에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약속을 한 것은 아마 에이린이 분명했다. 철창 근처의 흔적을 보아 같이 갇혀 있었을 확률이 높았으니 말이다.
“몸이 약한 아이였던 터라 방치했으면 최악의 상황까지 갔을 텐데 덕분에 살았어.”
“아, 네.”
에르노 에탐이 영혼 없이 대답했다.
“역시 에탐 가문의 핏줄은 달라도 뭐가 다르군. 어떻게 그런 병이 돌 걸 알았나?”
“내 따님께서 알려 준 겁니다.”
“……뭐?”
“폐하께서 짐승 취급한 그 아이가 알려 준 겁니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만면에 차오른 환한 미소에 황제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여성이었다면, 상대가 적의를 가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푹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랬군.”
“병을 의도적으로 퍼뜨린 것 같다던데 범인은 찾으셨는지요.”
“반귀족파 놈들이지, 찾고 있네. 아직 수뇌부를 찾지 못했을 뿐이지.”
에르노 에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아이의 이름은 뭔가?”
“에이린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황제의 얼굴이 굳었다.
“……뭐라고?”
“에이린 에탐이라고 말했습니다.”
“……허, 참.”
황제가 난감한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가볍게 턱을 문지르곤 고개를 저었다.
“자네 부탁이라면 다 들어줄 생각이었네만 이번 건 들어주기가 어렵겠어.”
“……저와 척을 지겠다는 말을 고상하게 돌려 말씀하시는 건지.”
에르노 에탐의 표정에서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살기등등한 시선이었다.
“자네는 좀 황제에 대한 공경을 표해 줄 순 없는 건가?”
“폐하께서 저에 대한 예의를 갖춰 주신다면 못 할 건 없지요.”
“다른 게 아니네, 그 아이 도마뱀 수인이고 다섯 살인 에이린이 맞나? 은색 비늘을 가진 돌연변이.”
“…맞습니다.”
“그 아이라면 이미 입양을 승인했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에르노 에탐은 아주 드물게도 상대의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곱씹었다.
“가주님께서 오셨었습니까?”
“아니.”
“테렘이 그렇게까지 눈치 빠르게 일을 처리할 것 같진 않은데요.”
“물론, 아니었네.”
황제가 질질 말을 끌었다.
에르노 에탐의 인내심이 막 한계까지 달했을 때였다.
“콜린 공작이 정확히 이틀 전에 승인을 받아 갔네.”
황제가 긴 침묵 끝에 짧은 한숨과 함께 대답을 해 주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기가 바짝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