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4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기세 좀 죽이게.”
공기가 찌릿찌릿할 정도로 날카로운 기세에 황제의 한숨이 깊어졌다.
당장이라도 뛰쳐나오려는 그림자들을 손으로 제지하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 에르노 에탐을 보았다.
“최근 콜린 공작이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네.”
“쓸데없는 잡소리는 사양입니다.”
“얘기를 듣게.”
참다못해 눈을 매섭게 뜬 황제의 엄포에 에르노 에탐이 인상을 쓰면서도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생각 이상으로 자신은 흥분해 있었다.
‘……겨우 호적이 뭐라고.’
대체 이렇게까지 감정이 흐트러질 수가 있단 말인지.
아이가 사라졌을 때도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어차피 아이는 품에 있으니 호적 따위 아무래도 좋을 텐데…….
술렁거리는 감정이 아무리 생각해도 익숙하질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가 간신히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붉게 점멸하던 눈동자가 천천히 제 색을 되찾았다.
“콜린 공작의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데 큰 역할을 한 게 그 에이린이라는 아이라고 들었어.”
“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 아이는 갈 곳도 없었고 콜린 공작의 후계자도 그 아이를 좋아했기 때문에 입양을 결정했다고 내게 말했지.”
황제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그는 이야기를 듣고 콜린 공작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지금….”
“그때는 별생각도 없었고 콜린 공작이 내게 부탁하는 경우가 흔한 것도 아니니 빚을 지워 놓자 싶어 허락했다네.”
“…….”
“그러니까 이미 승인을 해 버렸으니 이 일은 내 손을 떠났네.”
“그렇게 좋아하시는 권력 남용을 하면 되지 않으신지요.”
“소가주, 나보고 이유 없이 말을 번복하는 황제가 되라고 하는 건가? 게다가 늦게 온 자네의 잘못이 없다곤 말할 수 없지.”
황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말은 저렇게 해도 황제는 이 상황이 퍽 즐거운 것이 분명했다.
“콜린 공작과 합의를 보고 다시 온다면 재승인을 내려주는 건 어렵지 않지.”
“하….”
그가 가볍게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더니 이내 깔끔하게 마음 정리를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이해해 줘서 다행이군.”
황제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공작위가 하나 비게 되면 큰일이 생깁니까?”
“뭐?”
“아니, 청원을 올렸던 공작이 우연히 사고로 실종이 되거나 하면 자연히 승인도 없던 일이 되겠군요.”
“……이, 이보게. 에탐 소가주.”
“조만간 다시 오겠습니다.”
에르노 에탐이 의미심장한 말만 흘리곤 사라졌다.
귀족가에 피바람이 부는 지옥의 시작이었다.
* * *
“……아주 가지가지 하는군.”
최근 콜린 공작은 갑작스러운 지독한 암살 시도에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뜬금없이 밤에 찾아오기 시작한 불청객이 한둘이 아니었다.
매일 경비를 그렇게 강화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원을 짓밟는 불청객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다행히 그는 뛰어난 마법사였고 훌륭한 기사와 병사들이 있었던 덕에 실제로 죽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간신히 찾은 제 아들의 방과 그의 부인이 지내는 방에 몇 겹의 방어 마법을 걸어놓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청객들은 그의 부인이나 아이의 방엔 방문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콜린 공작의 방에 와서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을 뿐이다.
꽤 상당한 실력자들이 단체로 덤비는 터라 콜린 공작도 꽤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웬만하면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는 콜린 공작이 오죽하면 오늘 정보 길드 ‘명월’까지 방문했을 정도였다.
무슨 추잡한 일이라도 기꺼이 해 주는 그들은 돈만 주면 동료의 목숨이라도 팔아넘길 수 있는 족속들이었다.
그가 가장 혐오하는 족속들이지만, 답답한 지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구명줄이기도 했다.
‘대체 어디에서 뻗어 나온 놈들인지…….’
콜린 공작이 속으로 혀를 차며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식사와 음료, 어느 쪽을 원하시나요?”
“달의 이면을 보러왔다.”
“……저런. 지금은 그 상품을 개시할 시간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개시할 시간이 아니더라도 개시하게 만드는 게 자네가 할 일이 아닌가? 잠시 기다리지.”
콜린 공작의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제법 짙었다.
그는 퀭한 시선을 애써 감추려 노력하며 제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요 며칠 낮에도 밤에도 신경이 곤두서서 미칠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를 모르겠군.’
오죽하면 어제 콜린 공작은 암살자들과 대치하면서 대화까지 시도했었다.
[대체 누가 사주한 거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말을 하도록 해라!] [그러게, 왜 남의 걸 훔쳐?]돌아온 말은 싸가지 없는 한마디의 대꾸였다.
‘훔치긴 내가 뭘 훔쳤다는 거지?’
콜린 공작이 빈 식탁에 앉아 검지로 탁자를 연신 두드렸다.
‘이번에 남대륙 신사업 건을 뺏긴 유틀리 백작가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이가 사라졌다고 말했더니 응접실을 반파로 만들었던 그 의문의 고아원 원장인가? 그것도 아니면…….’
머릿속에 최근 있었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그 많은 생각의 끝은 언제나처럼 최근 가장 신경 쓰이는 아이에 관한 것이었다.
‘에이린, 그 아이는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 아이 때문에 리하르트의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펑펑 울음을 터뜨리던 리하르트의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 한편까지 아파진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아이를 찾고 암살자가 뭘 노리는지도 알아야겠지.’
톡. 톡. 톡.
초조한 손끝이 연신 식탁을 두드렸다. 잠시 후, 처음 자신을 맞이했던 점원이 다가왔다.
“고객님, 달의 이면이 준비되었습니다.”
“가지.”
표정을 감춘 콜린 공작이 우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술집의 뒤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발을 딛는 순간, 그는 이미 전혀 다른 공간에 있었다.
“……공간이동 마법이군. 상당히 고위급이야.”
“달의 이면으로 가는 길을 누구나 안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점원의 설명에 콜린 공작이 입을 다물었다.
‘마법을 쓸 수 없는 장치도 되어 있군.’
철저하게 의뢰인을 제 수중에 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가 느리게 주변을 보았다.
어둑어둑하고 넓은 방이었다.
사방에는 십수 개의 촛불만이 넘실거리는 붉은빛으로 방을 밝히고 있었다.
창문도 없는 방의 중앙에는 오로지 소파 테이블과 넓은 소파가 양쪽으로 마련되어 있을 뿐이었다.
뒤쪽으론 책상이 있었는데 서류가 늘어진 것을 보아하니 업무 공간인 모양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미카엘 콜린 공작 각하.”
새까만 가면을 쓰고 목소리까지 변조된 로브까지 뒤집어쓴 사내가 말했다.
쇳소리가 가득 섞인 듣기 싫은 음성이었다.
“명월의 주인은 꺼림칙한 게 많은 모양이군,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으니.”
“하하, 죄송하군요. 워낙 적이 많으니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리죠.”
콜린 공작이 입을 다문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철저하군.’
상대가 남성이라는 것 이외의 어떤 것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아니, 성별조차 그가 로브의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키와 골격을 보고 넘겨짚은 것뿐이니 확신할 순 없었다.
“그래서 고귀하신 분께서 이 어두운 곳까진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최근 암살 시도를 당하고 있다. 여기에 명월이 연관되어 있나?”
“암살 말입니까?”
그의 로브가 살짝 흔들리는 듯하더니 이내 뚜렷하게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의뢰는 받은 기억이 없군요.”
“정말인가?”
“네, 괜한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쇳소리 사이로 설핏 웃는 기색이 서렸다. 콜린 공작이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을 내렸다.
‘명월이 아니면 그만한 실력자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온 거지?’
황제의 그림자들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실력이다.
하지만, 황제가 이런 시도를 했을 리는 없다. 이번에 빚도 졌으니 차라리 제게 직접 불만을 말했을 거다.
“그럼 첫 번째 의뢰는 이걸로 하지. 내 집에 자꾸 쳐들어오는 불청객들을 누가 뿌렸는지 알고 싶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덤으로 호위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앞으론 밤에 편히 주무셔도 되겠군요.”
“덤이라니, 전부 돈으로 받아 갈 생각이면서 제법 웃기는 말을 하는군.”
“하하, 무료 봉사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첫 번째라 함은 두 번째도 있으신 건지요?”
듣기 싫은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에 그러잖아도 예민한 정신이 한층 민감해졌다.
콜린 공작이 이리저리 튈 것 같은 감정을 내리누르며 가볍게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자 이곳까지 그를 안내했던 점원이 차 한 잔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새빨간 빛을 띠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해지는 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