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6
갑작스러운 부름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한 번쯤은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서 오기는 했는데…….
‘괜히 왔나?’
역시 에르노 에탐의 품에 안겨서 오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너!”
“네!”
“감히 내 질문에 대답도 안 하고 그렇게 도망을 가느냐?!”
“가, 가고 시퍼서 그런 거 아닌데…….”
하지만, 너무 무서웠고 속으로 소원을 빌었더니 갑자기 다른 곳에 와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래, 가출해서 속 썩이니 좋더냐?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면 되지 뭐하러 도망을 가서는 그런 고생을 해? 어? 지하 옥션에는 또 왜 끌려가고!”
“…….”
후두두 쏟아지는 잔소리와 질타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화가 엄청 난 거 맞잖아.’
괜한 호기를 부렸다는 생각에 속이 답답했다. 그냥 아빠 옆에나 붙어 있을걸.
“에탐 가문의 핏줄은 내 허락 없이 외출이 금지된 거 몰랐느냐!”
“네, 네에…….”
알 리가 없잖아.
“…뭐?”
“모, 모라써여…….”
호통을 듣고 있으니 괜히 억울해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잘모태써…… 히끅.”
늘 하던 대로 내 잘못이라고 고개를 숙이려는데 서러움이 물씬 솟았다.
나도 모르게 도마뱀 모습으로 바뀌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왔는데, 여기서 또 혼이 나고 있으려니 서글펐다.
“재송…, 히끅.”
나는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애써 손등으로 벅벅 문질렀다.
“왜, 왜 울고 그러느…….”
“주인님.”
곁에 있던 카일로가 결국 보다 못해 미르엘 공작을 제지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뻣뻣하게 굳어 버린 제 주인이 지금 말을 이을 상태가 아님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던 탓이다.
“아가씨.”
카일로가 한쪽 무릎을 꿇곤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내 눈가를 살살 닦아 주었다.
“가주님께서는 걱정했다고 말씀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히끅.”
저 성질머리가 어떻게 그렇게 해석되냐고 묻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들자 인상 좋은 낯의 카일로가 빙긋 웃었다.
“제가 제때 해석을 해 드릴 것을 그랬군요. 가주님의 말씀은 익숙하지 않으면 항상 번역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허튼소리 말고 당장 그 입 다물지 못하겠느냐!”
“그렇게 낱낱이 내 속내를 까발리면 부끄러우니 조용히 해 달라는 겁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라! 이런 솜털 같은 게 대체 뭐라고 내가 무슨……!”
“솜털같이 귀여운 아가씨께서 큰일을 당하실 뻔하신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겁니다.”
커다란 호통에도 굴하지 않고 카일로가 꿋꿋하게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시끄럽다! 너! 한 번 더 가출했다가 이런 소리가 내게 들려오면 그땐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도 못할 줄 알아라!”
카일로에게서 내게 화살을 돌린 미르엘 공작이 내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얼굴이 엄청 빨개…….’
귓불까지 달아오른 것을 보아하니 화가 엄청난 것이 분명했다.
‘카일로 괜찮은 건가.’
내가 심각한 낯으로 카일로를 보자 그는 단정한 낯으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서 한 번 더 나가셨다가 이번과 같은 일을 당하실 게 걱정되니까 앞으론 어디 나가실 때 기사를 대동해서 나가시랍니다. 아니면 차라리 집에서 움직이지 말고 말씀만 하시라는군요.”
저기서 어떻게 이런 해석이 나오는 거지?
내가 입을 벌린 채 카일로를 보자 카일로가 내 뺨을 가볍게 닦아 주며 속삭였다.
“이제 눈물이 그치셨네요. 가주님의 곁에 있으면 자연히 번역기가 생긴답니다.”
“와…….”
“와는 무슨, 이 못생긴 솜털 같은 녀석!”
“귀여운 솜털이라십니다.”
“푸핫…….”
잔뜩 벌게진 낯으로 분노하는 미르엘 공작이나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제멋대로 해석하는 카일로를 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하하하!”
내가 배를 부여잡고 까르르 웃어젖히자 미르엘 공작이 눈이 커졌다.
“거, 거… 웃음이 나오냐! 이 요망한 것이 아주! 어디 버릇없이 어? 내 앞에서 웃고 그래! 확 입술을 똑 떼 버릴까 보다!”
콰앙-!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굉음과 함께 광풍이 불어닥쳤다.
카일로가 타이밍 좋게 나를 품에 안았던 터라 나는 바람에 좀 놀란 것 빼고는 멀쩡했다.
“뭘 뗍니까?”
에르노 에탐이 정확히 미르엘 공작의 집무실 책상을 두 동강을 냈다.
검이 정확히 미르엘 공작의 코앞을 스친 터였다.
“아, 실수.”
“이, 이눔 시키가 진짜! 이 미친 것아! 패륜도 이런 패륜이 없다! 아비한테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두 번 실수했다간 아비를 죽이겠구나!”
“두 번 실수했으면 두 번 사셨겠지요.”
“뭐, 뭐……?”
애초부터 죽이려고 했다는 말을 저렇게 하네…….
그가 실수하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라는 의미가 아닌가. 미르엘 공작이 뒷목을 붙잡았다.
“그러게 왜 남의 따님의 소중한 신체 부위를 뗀다고 합니까? 나는 깨질 것 같아서 제대로 만지지도 못하는걸.”
민망한 말이 여과 없이 들려왔다. 절로 고개가 푹 숙어졌다.
“말이 그렇지, 내가 언제 진짜 뗀다고 했느냐!”
“맞습니다, 공자님. 가주님께선 아가씨가 웃으면 기분이 술렁거리니 준비도 없이 웃지 말라고 하신 것뿐입니다.”
카일로가 살기가 흘러넘치는 폭풍 사이에서도 웃는 낯으로 꿋꿋하게 해석을 내놓았다.
“내놔.”
검을 검집에 넣은 에르노 에탐이 카일로에게 다가왔다.
카일로가 순순히 에르노 에탐에게 나를 넘겼다. 나는 익숙하게 그의 품에 안기며 엉망이 된 집무실을 살폈다.
“아, 집무실 책상과 망가진 집기는 에르노 공자님의 예산에서 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카일로의 말에 에르노 에탐의 미간에 균열이 생겼다.
불만스러운 기색이 역력했으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주님, 아가씨께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하.”
엉망이 된 집무실 가운데에서 미르엘 공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쩌면 이 집안의 실세는 사실 카일로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 솜털!”
한참이나 조용하던 미르엘 공작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불렀다.
“네……?”
“너, 그때… 내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던 미르엘 공작이 카일로를 한 번 보더니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윽박질러서 미안했다.”
그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이 절로 커졌다. 설마 그가 사과나, 그 엇비슷한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탓이다.
“…….”
“네가 범인이 아니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고 그저 진실을 확인하고자 했을 뿐이다.”
“……네.”
나도 모르게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수인인 것을 숨긴 건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다.”
“…….”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같은 핏줄도 아닌데 에탐 가문에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 신전을 통해서 그 개망나니와 친자 검사를 할 거다.”
“네….”
아니라고 판정되면 결국 쫓겨나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에탐 가문이 아닌 다른 저택에서 살게 되거나…….
“그, 그렇다고 해서!”
미르엘 공작이 축 처진 나를 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네가 쫓겨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알아라. 개망나니의 실수였든 어쨌든, 어떤 이유에서든 네가 에탐 가문에 들어온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 말이다!”
“친자 검사는 형식상 필요할 뿐이고 쫓아낼 마음은 전혀 없으며 너는 여전히 에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군요.”
카일로의 번역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일로 네놈!”
미르엘 공작이 막 검을 뽑아 들려는 순간 나는 힘 빠진 얼굴로 웃고 말았다.
“다행이다아…….”
나는 에르노 에탐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감사해여, 하라부지.”
내가 힘없이 웃어 보이자 미르엘 공작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입꼬리가 움찔움찔하는 듯하더니 그가 매서운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럼 내가 너같이 작은 솜털을 쫓아내기라도 할 줄 알았느냐.”
미르엘 공작이 살짝 누그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그렇긴 했지만…….’
여기서 그렇게 말했다간 또 괜한 잔소리를 들을 것 같다.
나는 살살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카일로가 어쩐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카일로한텐 덤벼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화는 끝난 것 같으니 가지.”
에르노 에탐이 날 대신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근데 이 사람은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거지?’
딱딱하게 굳은 것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아, 그리고 네게도 선생이 배정됐으니 그리 알거라.”
“선샌밈이여?”
“그래, 에탐 가문의 아이가 멍청한 건 두고 볼 수 없지. 정규 교육 과정을 밟을 테니 그렇게 알도록.”
“윽…….”
공부는 싫은데.
20년을 넘게 죽도록 공부했는데 여기서까지 또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훌륭한 에탐의 일원이 되려면 필수다.”
미르엘 공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개소리니 그냥 넘기거라.”
에르노 에탐이 시원스럽게 초를 쳤다.
역시 아빠가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