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7
“에르노 에탐!”
“그냥 제왕학을 비롯해서 몇 개만 할 줄 알면 된다. 아, 마법이랑. 책 한 번만 읽으면 해결되는 일이지.”
그게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마법이라는 게 쓴다고 하면 되는 거냐고.
‘……아, 에르노 에탐 천재 설정이었지.’
뭘 해도 평균 이상을 하는 천재.
남들 5년 고생한 걸 한 번 보고 5시간 안에 마스터한다고 했다.
‘허허…….’
나는 현실을 외면하고자 고개를 돌렸다.
“공고를 냈으니 며칠 중으론 일정이 잡힐 거다.”
“네엡…….”
에르노 에탐이 완전히 집무실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빠, 무슨 일 이써여?”
“왜?”
“기부니가 안 조아 보여서여….”
“아, 날파리 한 마리가 잘 안 잡혀서 말이다.”
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날파리?”
“그래도, 뭐… 조만간 해결될지도 모르겠구나.”
“네에…….”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야말로 편지 써야지.’
매일 내 방에 에탐의 사람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와 있는 터라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다.
그가 나를 안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이만 쉬렴, 오늘은 나도 갈 곳이 있거든.”
“아, 네.”
“다음부터는 가주님이 불러도 갈 필요 없다. 늙은이가 노망났다고 생각하렴.”
“어……, 네?”
“네가 싫은 일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공부도 말이다.”
“하지 않는 게 조아여……?”
“아니,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단다. 나중에 생일 선물 받을 때도 필요할 테고.”
생일 선물 받을 때 공부가 왜 필요하지? 의아하긴 했지만,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배우께여.”
내 말에 에르노 에탐이 퍽 기특하다는 듯 내 뺨을 가볍게 매만졌다.
“내 따님은 착하구나. 착한 아이에겐 큰 선물이 있다고 하지.”
“갠차나여.”
선물은 필요 없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그가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아.”
“…….”
내가 놀란 소리를 흘리자 에르노 에탐도 그제야 자신이 한 일을 깨달은 듯 우뚝 굳어 버렸다.
“…….”
그가 당황한 듯 나를 막 침대에 내려놓으려는 때였다.
나도 황급히 그의 뺨에 쪽, 입을 맞추곤 폴짝 뛰어내려 이불 속에 기어들어 갔다.
“다녀오세여…….”
웅얼거리는 내 목소리를 들은 후에도 그는 조용했다.
나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뭔가 싶어서 이불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자 그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한 손으로 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살짝 찌푸려진 미간은 그의 당황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다녀오마, 따님.”
“네에.”
한참 만에 들려온 말에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자 그가 머뭇거리며 몸을 돌렸다.
달칵.
문이 닫히자 그제야 나는 벌겋게 물든 얼굴로 이불을 팡팡 찼다.
‘미쳤어…….’
쪽이라니, 쪽! 이라니….
미친 짓을 했다.
부끄러워서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침대를 쿵쿵 발로 차다가 한참 만에 베개를 한껏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정말, 안 하던 짓을 했어.’
왜 이런 주제넘은 짓을 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기분 나빴던 건 아니겠지?’
민망해하는 것 같아서 똑같이 해 준 것뿐인데, 너무 주제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편지! 편지나 쓰자…….”
나는 급히 미리 준비해 놨던 편지지와 펜을 꺼내 책상에 앉았다.
쿵-!
……그리고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전생을 통틀어 해 본 적도 없는 행동은 정말로, 부끄러웠다.
* * *
쿵, 쿵, 쿵.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자꾸만 이유 모를 충동이 일었다. 에르노 에탐은 결국 걸음을 우뚝 멈추고 말았다.
“…….”
콰앙-!
에르노 에탐이 손을 움직이자 복도의 벽이 산산이 조각났고 공작가 정원에 심어진 굵은 나무 여러 그루가 꺾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와 동시에 경비병들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침입자다……! 당장……!”
“…….”
“집합을…….”
에탐 가문의 1기사단 단장이 범인을 찾기 위해 소리를 높이며 주변을 살피다가 에르노 에탐을 보곤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에르노 공자님?”
에르노 에탐이 다시 한번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원의 땅이 움푹 팼다. 정원사가 보면 7일 밤낮 서글피 울음을 터뜨릴 법한 모습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흙먼지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기사단의 단장이 읊조렸다.
그가 단숨에 벽을 타고 뛰어올라 2층에 있던 에르노 에탐이 부순 벽으로 올라갔다.
“에르노 공자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심장이…….”
“네?”
“심장이 아프군.”
그 말에 1기사단 단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광폭화가 도지시는 건가?’
그거라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갑작스러운 폭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어, 의원을 부를까요? 아니면 샤르네 공녀님을…….”
“…간지럽고 답답해.”
그가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 제 가슴팍에 박으며 말했다.
“예……?”
“심장을 파내 버리고 싶군.”
낮게 읊조린 에르노 에탐의 말에 1기사단장이 당황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렸다.
‘광폭화에 이런 증세도 있었나?’
그는 꽤 오랜 기간 에탐 가문을 섬기고 있었지만, 이런 증상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광폭화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공격하며 타인의 피를 취하는 것이지 자해를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공자님, 일단 진정하시고…….”
“사람을 인형으로 만들 방법은 없는 거겠지.”
“예……?”
“됐다, 도움이 안 되는군.”
이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였나?
1기사단장이 드물게도 표정을 숨기지 못하곤 입을 벌렸다.
낮게 혀를 찬 에르노 에탐이 몸을 돌렸다. 복도를 걸어가면서도 그는 한 번씩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곤 했다.
“…대체 무슨 일인 거지?”
모든 상황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1기사단장만 그 자리에 선 채 한참이나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뒤늦게 달려온 정원사가 절망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는 건 숨길 필요도 없는 얘기였다.
* * *
“……누가 왔다고?”
“에탐 가문의 에르노 에탐 공자입니다.”
“…따로 연락받은 건 없는데.”
콜린 공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버릇처럼 관자놀이를 누르려다 그는 두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미간을 엄지로 가볍게 문질렀다.
명월에게 의뢰한 지 겨우 사흘째였으나 그의 잠자리는 아주 편안해졌다.
기초적인 방어 마법은 걸어놓고 자지만, 일단 명월의 호위 기사들의 솜씨가 훌륭했던 덕이다.
‘길드장의 더러운 소문에도 유명한 이유가 있었군.’
덕분에 콜린 공작 역시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응접실로 안내해라.”
“네, 알겠습니다.”
상당히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으나 제국 유력 공작가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를 문전 박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콜린 공작은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분란을 싫어했기 때문에 괜한 문제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설령 상대가 대단히 예의 없는 방문을 했더라도 말이다.
‘무슨 일이지?’
에르노 에탐이라면 사교계의 미친개로 유명했다.
남들은 후계자가 되고 싶어서 안달인데 그는 도리어 후계자가 되기 싫어서 온갖 반항을 일삼는다고.
에르노 에탐이란 사교계의 이단아나 마찬가지였다.
작년에는 남색을 한다는 소문이 사교계에 쫙 돌았었다.
물론, 그 말에 정말로 속아서 은밀하게 그에게 접촉했다가 다리 사이의 소중이를 잃은 사람도 꽤 되는 모양이었지만.
“사고를 치러 온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군.”
콜린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게 읊조렸다.
그가 응접실로 가자 소파엔 다리를 꼰 오만한 인간이 앉아 있었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킨다는 소문과는 다르게 에르노 에탐은 그 최소한의 예의도 내던진 듯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대화를 대신했다.
‘웃으면 절대 상대하지 말고 피하라고 하던데…….’
이미 에르노 에탐의 만면에 화사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
얼굴만 봤다면 상대가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기별 없는 방문이라 당황했습니다.”
콜린 공작의 말에 에르노 에탐의 입가에 한층 더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저런, 깜빡했습니다. 최근 사랑스러운 것만 보면 기억상실이 좀 와서.”
“……예?”
사랑스러운 것?
‘설마 나를 가리키는 말은 아닐 테고.’
상상만으로도 등줄기에 소름이 쫘아악 돋았다.
“불쾌한 상상은 하지 마시고.”
에르노 에탐이 콜린 공작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한 듯 황당하게 말했다.
“근데 사지가 제법 멀쩡하군요? 아쉽게도.”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콜린 공작이 불쾌함을 참아 가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시비를 걸러 온 건가?’
하지만, 두 가문은 무난하게 사업상의 교류를 하는 것만 제외하면 개인적으론 전혀 엮일 일이 없었다.
“아, 제가 귀가 좀 좋은데 불청객이 꽤 찾아갔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무슨.”
“그래서 사지 중에 하나쯤은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만면에 화사한 미소를 띤 에르노 에탐이 마치 상대를 걱정하는 양 입술을 달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