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8
에르노 에탐의 말에 콜린 공작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콜린 공작이 천천히 닫혔던 입을 열었다.
“이상하군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저 빼곤 세상에 몇 없을 텐데.”
“이상할 것도 많군요.”
에르노 에탐이 다리를 꼰 채 평이하게 대꾸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알린 곳을 제외하면…… 제게 밤마다 불청객을 보낸 인간만 이 사실을 알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요?”
“나로선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군요.”
에르노 에탐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여유롭게 기울이는 척하더니 그것을 그대로 빙글 돌려 카펫에 쏟아 버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공작을 암살하려고 하다니, 이게 얼마나 큰 분쟁으로 번질 수 있는지 생각은 하셨습니까?”
“위험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제가 언제 그랬다고요. 증거라도 있습니까?”
에르노 에탐의 여유로운 반문에 콜린 공작이 조용해졌다.
증거는 없다.
불청객들은 워낙 철저하게 신분을 숨기고 왔고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어떤 물건도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사용하는 단검이나 물건조차 길거리 노점상에 가면 흔히 파는 싸구려였다.
“……심증도 증거가 되는 법이죠.”
“아, 이래서 세상엔 억울한 범인이 끊이질 않는군요.”
에르노 에탐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콜린 공작이 주먹을 쥐었다.
증거도 제대로 없으면서 한 가문의 후계자 후보를 핍박할 순 없었다.
“그래, 일단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대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뭡니까?”
“그쪽이 훔쳐 간 걸 받으러 왔는데요.”
에르노 에탐이 느릿하게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대체 누가 사주한 거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말을 하도록 해라!] [그러게, 왜 남의 걸 훔쳐?]문득 떠오른 기억에 콜린 공작의 표정이 한층 더 굳었다.
‘……아무리 안하무인이라고 한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행동인지.’
물증은 없지만, 확신이 들었다.
그를 지난 열흘간 괴롭힌 불청객이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에 대한 확신이.
“내가 대체 뭘 훔쳤다는 건지 모르겠군. 아내와 아이까지 있는 집에서 감히…….”
사나운 기운이 콜린 공작의 주변을 넘실거렸다.
날카로운 자줏빛 눈동자가 분노를 담은 채 에르노 에탐을 노려보았다.
“내 따님.”
“……뭐?”
“에이린, 내 따님을 그쪽이 멋대로 입양해 갔다고 들었는데.”
“……에이린?”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꽤 찾아 헤매던 이름을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입에서 들은 터라 당황스러웠다.
“에이린이 왜?”
“내 따님입니다. 그쪽이 멋대로 훔쳐 갔고.”
콜린 공작은 잠시 상황을 파악하듯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참이나 할 말을 찾는 사람처럼 긴 침묵 속에 있었다.
‘그 애가 에르노 에탐의 딸이라고?’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에르노 에탐에겐 오로지 두 명의 아이만 존재하며, 그의 부인이 죽은 것과 동시에 더는 후계를 생산하지 않았다.
콜린 공작의 마지막 인내심이 뚝 끊겼다. 그는 차리던 예의를 가볍게 던져 버렸다.
“자네는, 거짓말을 적당히 하는 게 좋겠어. 내게도 귀가 있고 눈이 있네. 자네는 두 아들 외에 아이가 없어.”
에르노 에탐의 눈이 가늘어졌다.
“에이린은 애초에 출생 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그 아이는 리하르트의 남매로 자랄 거다.”
“그래서 그 에이린은 어디에 있는데?”
“지하 옥션에 팔려 간 뒤 실종……. 설마 자네가 데리고 있나?”
에르노 에탐의 얼굴에서도 느리게 표정이 사라졌다.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가볍게 웃었다.
“본래 에탐의 방계 중 한 명의 아이고 내가 입양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누가 중간에 낚아채 갔더군.”
“허튼소리, 이 애는 내 아들과 함께 고아원에 있었다. 정말 자네가 입양할 예정이었다면 이 애가 왜 수도와는 한없이 떨어진 곳의 고아원에 있었던 거지?”
“…….”
“설령 자네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들, 자네같이 오로지 쾌락과 흥미 본위로만 인생을 살아가는 사회 부적응자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군.”
“난 내 따님한테 뽀뽀도 받았다.”
“……뭐?”
비장하게 주먹질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뒤통수에 뿅망치라도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콜린 공작이 반문했다.
“내가 그 아이를 딸로 삼기로 했고 따님이 날 아빠로 삼기로 했어. 근데 콜린 공작, 당신이 뭔데 끼어들지?”
“내가 직접 확인하고 얘기를 들은 게 아니니 그 말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지.”
콜린 공작이 고개를 돌렸다.
‘부모? 웃기지도 않지.’
에르노 에탐은 오로지 즐거움만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질리면 무엇이 되었든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망가지든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 버리는 인간.
“어차피 에이린을 딸로 들인 것도 놀이의 일환이었겠지.”
그가 미르엘 공작에게 반항하기 위해서 온갖 기행을 저지르는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미안하지만, 나는 자네를 신뢰할 수 없고 자네가 아이를 훌륭하게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않는다네.”
그가 단호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암살 시도는 계속해 보게나, 소용은 없겠지만.”
“그 목이 떨어져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한데.”
“해보게, 그 얘기를 들은 에이린이 무슨 표정을 할지 나도 꽤 궁금하군.”
에르노 에탐이 느리게 눈을 내리깔았다.
“그 아이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조만간 호적 정리를 완료하고 정식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도록 하지.”
아이에 대한 권한은 친권자에게 있으니 호적을 빼앗기면 에르노 에탐은 에이린에 대한 아무런 권리도 행사할 수 없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최신 유행이나 알고 있나?”
에르노 에탐의 사나운 시선이 콜린 공작에게 닿았다. 콜린 공작이 서늘한 시선으로 그를 마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요즘 애들은 서로를 애완동물로 부르는 게 최신 유행이더군.”
그 믿기 어려운 황당한 말에 에르노 에탐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 자네가 안 되는 걸세.”
콜린 공작이 대놓고 그를 비웃으며 몸을 돌렸다.
“에탐 공자를 정중히 모셔라, 돌아가신다고 하시니.”
“밤낮 조심하시길.”
서늘하게 가라앉은 에르노 에탐의 말에 콜린 공작의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너무 자극했나.’
그가 조금 피곤한 얼굴로 이마를 문질렀다.
‘다행히 무사하긴 한가 보군.’
아마 연락을 못 한 데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리하르트에게 전해 줘야겠어.’
침울해 있는 아이에게 얼른 소식을 안겨야겠다고 생각한 콜린 공작이 걷는 속도를 높였다.
* * *
“어서 오십시오, 공자님.”
에르노 에탐이 마차 앞에서 걸음을 뚝 멈췄다.
“요즘 애완동물은 어디에서 팔지?”
“…예? 어, 수도에 펫숍 같은 곳이려나요……?”
“인간은?”
“예?”
“쯧, 됐다.”
에르노 에탐이 혀를 차며 마차에 막 올랐다.
마차가 막 수도를 가로지르며 느리게 달리는 때였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던 에르노 에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가볍게 마부가 있는 쪽으로 난 창을 두어 번 두드리자, 마차가 느리게 멈추어 섰다.
“예, 공자님.”
“저거, 데려와.”
“예?”
“저거 데려오라고.”
그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의 고갯짓 끝에 있는 것은 특이한 외양의 소년이었다.
왜 골목길에 주저앉아 있는 것인지도 의아할 정도로 고운 티가 나는 새하얀 머리카락의 어린 소년.
“아시는 아이입니까?”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에르노 에탐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기운이 아주 눈에 익었다.
“그럼 대체…….”
“내 따님의 애완동물로 쓸 거다.”
“…….”
“최신 유행이지.”
“아, 예…….”
마부는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가 시킨 일만 하기로 했다.
높으신 분들의 생각은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닥에 웅크려 있던 아이까지 태운 마차는 다시 빠르게 움직여 에탐 가문으로 향했다.
* * *
“…어, 이게, 모라구여……?”
나는 멍청하게 내 앞에 던져진 것을 바라봤다. 마대 자루에서 얼굴만 쏙 튀어나온 것은 눈에 익은 모양새였다.
배시시-
마대 자루에서 튀어나온 소년이 입가를 허물어뜨리며 웃었다.
누가 봐도 일부러 잡혀 온 것이 뻔한 낯짝이었다.
세상의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새파란 눈동자와 그와 대비되는 새하얀 머리카락은…….
‘루실리온…….’
얘가 왜 여기에 있는데?!
“애완동물이다.”
“……네?”
“요즘 유행이라지.”
에르노 에탐이 어쩐지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