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49
대체 이런 게 어떻게 수도에서 유행으로 번질 수 있는 건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만 모르는 유행이 생긴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애완동물이라고 하는 건 좀…….
내가 당황한 얼굴로 몸을 숙여 가련한 여주인공처럼 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루실리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루실리온이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아 손등에 뺨을 비볐다.
‘아니, 잡고 일어나라고.’
진짜 개도 아니고.
내가 당황한 시선으로 그를 보자 루실리온이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에 드나?”
“어…, 네…….”
면전에 대고 아니라고 할 순 없어서 엉겁결에 고개는 끄덕였지만, 역시 당황스럽다.
“다행이구나.”
에르노 에탐이 뿌듯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따님.”
“네?”
“나는 네 아빠가 맞겠지?”
“네…….”
“다른 아빠가 가지고 싶거나 하진 않고?”
“네? 아니에여.”
무슨 의도인진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빙긋 웃으며 내게 슬쩍 허리를 숙여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럼 됐다, 나머지는 내가 해결하마.”
그러곤 허리를 숙인 자세 그대로 있는 것이다.
‘아…….’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설마…….’
슬쩍 그의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가 떼자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허리를 쭉 폈다.
“밖에 버려져 있던 거라 더러우니 이건 먼저 씻기고 난 후 다시 가져다주마.”
에르노 에탐이 루실리온의 뒷덜미를 잡아 대롱대롱 들어 올려 시종에게 안겨 주었다.
아니, 정말 애완동물 취급하지 말라고요…….
꽈아악-
게다가….
‘얘는 왜 이래.’
루실리온이 도통 내 손을 놓질 않았다. 부루퉁한 표정을 보던 내가 슬쩍 루실리온에게 다가갔다.
“조금 이따 보자…….”
작게 속삭이고서야 루실리온이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순순히 손을 놓았다.
‘그러고 보니, 기다리겠다고 하고 연락도 못 했구나.’
내게 불신이 가득할 만도 하다.
루실리온이 나가자 에르노 에탐이 숨을 길게 뱉으며 천천히 소파에 주저앉았다.
이상하게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낯이었다.
“아빠… 어디 아파여?”
“…아니, 괜찮다.”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싼 것이 멀쩡하게 보이진 않았다.
나는 급히 소파에 기어 올라가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뜨거……!”
불덩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아빠…….”
내가 당황해서 그를 보자 그가 언제나처럼 빙긋 웃었다.
“괜찮으니 너는 방으로 돌아가서 쉬거라.”
“안 대여…. 의사 선샌밈 불러오께여….”
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그가 낮게 신음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광폭화 증상이었다.
‘귀걸이에 달린 균형의 파편이 저렇게 큰데 대체 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빠, 약 있써여…? 저가 언냐 불러오까여…?”
“됐다, 이번 건 광폭화는 아닐 거다. 그냥 조금 쉬면…….”
나는 그의 한 손을 양손으로 붙잡아 이마를 가져다 대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저는 아빠가 아프지 않으면 조케써여…….”
“따님, 괜찮으니….”
“아빠, 아프지 마세여…….”
드디어 생긴 가족이다.
‘처음으로 곁에 있어 달라고 했어.’
간신히 생긴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았다.
‘곁에 있어도 된다고 했어.’
그러니까, 부디 내 가족만큼은 조금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어.’
그 순간이었다.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와 순식간에 에르노 에탐의 몸을 휘감았다.
“……이게 무슨.”
에르노 에탐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몸과 함께 눈꺼풀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내가 배시시 웃으며 그에게 손을 뻗자 그가 당연하다는 듯 내 손을 단단히 맞잡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얘는 대체 언제 일어나는 거야? 벌써 1년이나 됐다고. 야, 재미없으니까 이제 좀 그만 일어나라. 이제 안 괴롭힐 테니까.”
“형, 누나가 아직 혼수상태라잖아.”
“저번에 분명히 손 움직이는 거 봤다니까? 그 뒤에 눈꺼풀도 떨렸었잖아.”
누군가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감긴 눈꺼풀은 다시 열리고 싶지도 않다는 듯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나라고 눈을 뜨고 싶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반항하지 않았다.
“누나는 무슨…… 이런 약골이 무슨 누나야? 아주 집안 기둥 다 뽑아먹겠어.”
“먼저 태어났으니 누나는 누나지,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내년까지도 눈 안 뜨면 그냥 유지 장치 떼 버리자고 하더라.”
“할머니도 너무하시지.”
“할머니는 원래 누나 싫어했잖아. 귀염성이라곤 없다고.”
“그러게 애교도 피웠으면 좀 좋아? 뻣뻣해선. 야, 너 어머니가 거의 무릎 꿇고 빌어서 1년 더 늘어난 거야. 아니었으면 올해까지였다고.”
거짓말.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런 이상한 꿈을 꾸는 걸까?
‘이런 꿈은 꾸고 싶지 않아.’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님.’
“야, 이거 봐. 지금 또 움직였어.”
아빠, 아빠…….
‘따님!’
“눈꺼풀도 떨린다고.”
“정말이네…. 의사, 의사 부를게!”
“야, 누나! 일어났으면 눈 떠 봐!”
날 다시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줘. 이런 끔찍한 꿈을 다시 꾸게 하지 마.
“야, 차미소!”
싫어…….
‘에이린……!’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필사적으로 그 목소리에 매달렸다.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허억, 허억-
막혔던 숨이 트인 듯 입술을 뻐끔거리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뭐지?’
눈을 끔뻑이자 흐릿했던 시야가 한층 더 또렷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나?’
뭔가 불쾌한 꿈을 꾼 것도 같았는데.
무슨 꿈이었지?
‘…근데 나, 뭔가 이상한데.’
몸이 왜 이렇게 뜨거운지 알 수가 없었다. 내뱉는 숨이 마치 화산이 뿜어내는 연기 같았다.
“에이린?”
“어, 눈 떴다.”
“에이린.”
느리게 눈을 한 번 더 깜빡이자 눈앞에 커다란 얼굴이 보였다.
‘아빠……?’
입을 뻐끔거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그제야 내 시야가 얼마나 낮은지가 눈에 들어왔다.
“따님, 괜찮니?”
거인국에 온 난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커다란 침대 위에 납죽 엎드려 있는 기분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끄덕.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자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구나, 갑자기 변해서 놀랐단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였다.
주변을 휙휙 돌아보니 에르노 에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다른 목소리들도 들렸지.’
아까는 에르노 에탐이 시야에 꽉 들어차서 몰랐는데 주변엔 칼란과 실리안도 있었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넙죽 엎드린 모습으로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에이린, 내 말 알아들어?”
하얀 가운을 걸친 칼란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폴짝 일어났다가 다리에 힘이 없어 휘청이며 푹 고꾸라졌다.
“…….”
이불이 아니라 손바닥에.
에르노 에탐의 손이었다. 놀라서 고개를 들자 그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곤 자신이 내민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해야지.”
그가 나를 손바닥에 올린 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에이린, 일단 해열제를 놓기는 했는데… 내가 파충…, 아니, 수인 쪽엔 지식이 없어서…….”
칼란 에탐이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예전에 혹시 이런 적이 있어?”
끄덕끄덕.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에르노 에탐의 손바닥 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칼란 에탐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 잘 모르겠으면…….”
아! 이렇게 하면 되겠다.
문득 떠오른 방법에 내가 앞발로 에르노 에탐을 가리켰다.
“……나?”
그리고 그다음엔 도망가는 시늉을 해 보이기 위해서 일단 손바닥에서 침대 위로 폴짝 뛰어내리는 순간이었다.
우당탕탕-!
무사히 침대에 착지했어야 하는 나는 어쩐지 아직 허공에 있었다.
이번에는 칼란 에탐의 손바닥 위였다.
‘뭐지……?’
당황해서 눈동자를 굴리자 에르노 에탐과 실리안 에탐도 어정쩡하게 내게 손을 뻗고 있었다.
저 멀리 있던 칼란 에탐이 여기까지 순식간에 달려온 것이 가장 신기했다.
실리안 에탐이 잡고 있던 의자는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아.’
나도 모르게 힘 빠지게 웃고 말았다.
괜찮다고 말하기 위해 뒷발로 서서 앞발로 가슴을 통통 두드리려는데 칼란 에탐이 나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아니, 안 떨어질 건데.’
칼란 에탐의 표정이 심각했다.
“에이린, 자살은 사회적으로도 좋지 않아서… 힘든 일이 있다면 일단 우리에게 말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리고 네가 죽는다고 세상 사람들이 널 위해서 후회하고, 어?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거 아니다. 생각보다 다들 멀쩡히 살아갈 거야.”
‘그거 아니라고.’
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칼란 에탐이 눈을 가늘게 뜨곤 나를 유심히 보았다.
“일단 갑자기 이렇게 바뀌어서 너무 힘든 건 알겠지만 그래도…….”
‘그거 아니라고!’
내가 힘껏 고개를 다시 한번 젓자 칼란 에탐이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아니야?”
끄덕.
“정말?”
끄덕끄덕.
‘당연한 소리를.’
나는 콧김을 훅 내뿜었다.
가족까지 생겨서 이제 아쉬운 것도 없는데 죽기는 내가 왜 죽어? 오래오래 길게 살아야지.
그제야 칼란 에탐이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갑자기 뛰어내려서 걱정했잖아.”
나는 앞발로 침대를 가리켜 보였다.
‘안전했다고.’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칼란 에탐이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그럼 뭐……, 다행이고.”
그가 뺨을 두어 번 매만지더니 헛기침을 두 번 하는데 어딘가에서 커다란 손이 뻗어 왔다.
에르노 에탐의 손바닥이었다.
“이리 오렴, 따님.”
“제가 안고 있을래요, 아버지!”
“안 돼.”
“아, 왜요!”
에르노 에탐의 단호한 말에 칼란 에탐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언성을 높이자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손은 너무 작다.”
에르노 에탐이 단호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