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0
에르노 에탐이 칼란의 손에서 나를 조심스럽게 데리고 갔다.
“진짜… 내가 얼른 큰다.”
칼란 에탐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곤 억울하다는 듯 웅얼거렸다.
‘근데 네가 크면 일단 나도 클 텐데.’
차마 거기까진 말하지 못한 나는 방긋 웃어 주었다. 도마뱀이라서 웃는 모습이 보일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단 우리가 좀 고민을 해 봤거든?”
‘무슨 고민을?’
대답 대신 고개를 기울이자 실리안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내 앞으로 책 하나를 펼쳐 보였다. 수인에 관해 적혀 있는 책인 모양이었다.
“내가 알아봤는데, 도마뱀은 아열대성 기후에서 사는 게 좋은 것 같더라고. 물론 사막에서 사는 특이 개체도 있고 물에서 서식하긴 하는데…… 에이린이 정확히 어느 개체인지 몰라서.”
음, 확실히 납득이 가는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수인은 그에 걸맞은 환경이 필요하댔지.’
그래서 보통 수인은 성인이 될 때까진 태어나는 곳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수인이 나고 자라는 곳이 가장 수인이 성장하기에 적합한 생태계라고 하니까.
끄덕.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실리안 에탐이 책장을 다음으로 넘겼다.
“그래서 우리가 에탐 가문에 남는 부지를 좀 철거하고 네가 지내기 편한 곳을 만들려고 하거든? 아, 가주님 허락은 받았어.”
그 미르엘 공작이 허락을 했다고?
도대체 내가 기절하고 얼마나 지난 거지? 그렇게 오래 잠든 기분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말인데 혹시 어떤 느낌이 좋은지 그림책 보고 골라 줄래?”
그가 펼친 책장에는 도마뱀의 서식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좋아하는 기후 있어?”
따뜻한 건 좋지만 더운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하지만, 그가 보여 주는 도마뱀 서식지는 대부분 뜨거운 쪽이었다.
‘수영은 자신 없고…….’
나는 책에 얼굴을 바싹 들이밀면서까지 자세히 살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은 없었다.
‘어디라도 다 답답할 것 같은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실리안의 표정에 실망감이 깃들었다.
“없어……? 여기 아열대가 도마뱀 사이에서 제일 인기가 많던데.”
절레절레.
습하고 더운 게 최악이다. 한국 여름 최악이었다고. 온몸에 들러붙는 찝찝한 기분이 얼마나 싫은데.
“그럼 여기 사막은…?”
도리도리.
거긴 너무 더워. 분명히 숨도 못 쉬다 죽을 것 같다. 바싹 말라서.
“이렇게 물이 있는 곳도……?”
늪지대와 호수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힘주어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긴 내가 살 곳이 아니야.
“이상하네, 도마뱀들의 서식지는 대부분 이런 쪽이라던데…….”
그리고 등이 너무 간지럽다.
‘이상하네.’
저번보다 몸이 조금 더 커진 것도 같고.
등이 간지러워서 몸을 비틀며 손바닥을 한 바퀴 데굴 구르자 에르노 에탐이 설핏 웃으며 내 이마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머리는 괜찮은가?’
내가 앞발로 내 머리를 툭툭 두드리다가 에르노 에탐을 가리키자 그가 제 손으로 이마를 한 차례 쓸더니 미간을 좁혔다.
이제야 이상함을 깨달은 사람처럼 한참이나 말없이 서 있다가 느리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똑똑.
그때였다.
정갈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에르노 공자님, 아가씨의 애완…동물을 준비시켰습니다.”
시종의 말에 망설임이 느껴졌다.
‘아, 역시 기절한 지 얼마 안 됐구나.’
그나마 다행이었다.
또 일주일씩 지난 건 아니라서 말이다.
“애완동물이요? 그게 뭐예요?”
“아버지, 에이린에게 무슨 동물을 사 주신…….”
때맞춰 문이 열리고 루실리온이 들어오자 의문을 표하던 칼란과 실리안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목격한 사람처럼 조용해졌다.
두 소년이 당황한 낯으로 한층 멀끔해진 루실리온을 보다가 에르노 에탐을 보았다.
“아버지……?”
“최신 유행이라더군.”
“예……?”
“너희도 너무 집에만 있어서 몰랐던 모양이구나.”
에르노 에탐이 두 아들을 방구석 폐인으로 만들며 내려보았다.
“유행에 뒤처지기 싫다면 너희도 밖에 나가서 사회생활도 하고 그러는 게 좋겠구나.”
“…….”
“…….”
두 소년이 황당하다는 듯 에르노 에탐을 바라봤다.
“주인님.”
루실리온이 에르노 에탐의 손에 앉은 나를 발견하곤 사르르 눈매를 접어 가며 내게 다가왔다.
그 순간 칼란 에탐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버지, 어디서 굴러먹었을지 모를 이런 여우 같은 새끼한테 무슨 에이린을 맡겨요!”
“맞아요, 얘도 남자라고요.”
“거세하면 그만이지.”
언제나 웃고 있던 루실리온이 드물게 어깨를 움칫 떨더니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역시 동성의 애완동물이 좋았나?”
“그거면 나쁘진 않았겠네요.”
“기운이 깔끔하고 제법 반반해서 데려왔는데…….”
진지하게 고민하지 말라고.
이 사이코패스 같은 인간들…….
“꾸우욱!”
내가 배에서 힘을 끌어모아 힘껏 울자 네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꽂혔다.
“방금 따님이 울었나?”
끄덕.
에르노 에탐이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빙긋 웃으며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도마뱀의 생태에 대해 보고 계셨나요?”
“그래, 너… 근데 얘가 어떻게 에이린인 줄 알았어?”
칼란 에탐의 반문에 루실리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인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애완동물이 어디에 있나요?”
“헛소리 말고.”
루실리온이 웃는 얼굴로 제 뺨을 몇 차례 긁적였다.
“주인님께서 일전에 절 주워 주셨거든요.”
“에이린이 널 주웠다고?”
“네, 그 후에 지하 옥션에서 주인님을 잃어버려서…… 다시 길거리 생활을 하는 도중에 아주 우연히, 주인님의 아버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게 정말 우연이 맞아?
나는 반문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에르노 에탐을 보니 놀란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분명히 알고 데리고 온 거다.
‘……대신관은 미래를 점칠 수도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걸 이용했을 확률도 높았다. 물론 먼저 연락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긴 하지.
“……우연이 여러 번 이어지면 고의라던데.”
“필연이죠.”
루실리온이 여우처럼 샐그러지게 웃으며 대답했다. 에르노 에탐도 어딘가 심기가 불편한 표정이었다.
‘괜히 데려왔다고 생각하는 표정인데?’
루실리온이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저런 도마뱀 생태 도감은 필요 없을 겁니다.”
루실리온이 내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 순간 에르노 에탐이 내가 올라탄 손을 뒤로 물렸다.
“…….”
루실리온의 표정에 아쉬움이 짙어졌다.
“필요 없다니?”
“주인님께선 아마도 평범한 도마뱀이 아니시니 말이에요.”
“……도마뱀이 아니라고?”
“네.”
루실리온이 허리를 숙여 작아진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렇죠?”
나야말로 황당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난 누가 봐도 도마뱀이잖아.
길쭉한 꼬리에 납작하고 긴 몸, 그리고 손바닥만 한 크기까지…….
‘어?’
그때는 리하르트의 작은 손에 딱 맞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에르노 에탐의 커다란 손바닥과 크기가 비슷했다.
‘그사이 커진 건가?’
루실리온은 고개를 젓다가 석상처럼 굳어 버린 나를 보고 뭔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빙긋 웃었다.
“아, 그런 거구나.”
루실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린이 도마뱀이 아니면 다른 개체라는 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군요.”
실리안 에탐이 검을 뽑아 루실리온의 턱 밑에 가져다 댔다.
“우리가 천한 네놈과 말장난하자는 것으로 보이는 건가?”
아니, 걔 일단 신이 인정한 가장 신성한 사람이긴 한데…….
‘쟤는 도대체 왜 내 주변을 자꾸 맴도는 건지.’
“전 단지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그 이후에는 직접 알아내셔야 할 것 같지만요. 제가… 아직은 이 이상 말할 수 없는 터라.”
루실리온이 검지로 제 입술 위를 꾹 누르며 자그마하게 말했다.
‘제약인가?’
신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만큼 남들이 모르는 걸 많이 알 수 있었지만, 루실리온은 그만큼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말이 적었다.
미래를 예언하는 대로 내뱉으면 안배된 운명이 모두 망가질 테니, 특수한 제약이 걸려 있을 터였다.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기억하는데…….’
무슨 대가인지 잘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어쨌든 잘 부탁드립니다. 주인님.”
에르노 에탐이 코웃음을 치곤 루실리온을 지나쳐 방을 벗어났다.
“아, 저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제 예상이 맞는다면 아마 이번 성장기가 지나면 배가 많이 고프실 듯합니다.”
“……성장기라고?”
“……네, 모르셨나요? 성장통 때문에 자주 아프실 수도 있습니다.”
에르노 에탐이 나를 손에 품은 채 느릿느릿 제 방으로 향했다.
“네게는 묻고 싶은 게 아주 산더미와도 같구나.”
“…….”
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몸을 둥글게 말고 꼬리로 몸을 감싸며 눈을 감았다.
“내 따님 덕분에 머리가 아프지 않다.”
“…….”
“네가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건 분명하구나.”
읊조리는 목소리는 어쩐지 무척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듣고 있다 보니 내 힘도 풀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단다.”
‘피곤해.’
그의 목소리에 뭐라고 대답이라도 하고 싶은데, 어쩐지 자꾸만 잠이 왔다.
이윽고 시야가 암전됐다.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던 에르노 에탐이 느리게 걸음을 멈췄다.
“쫓겨난 개망나니 새끼를 좀 찾아야겠다. 죽이진 않았을 테니 살아 있겠지.”
“예, 소가주님.”
허공에서 ‘테렘’ 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찾아서 아이가 생기게 된 이유, 과정, 상대 여자까지 전부 속속들이 조사해 와라.”
“예, 알겠습니다.”
에르노 에탐이 아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등에 이상한 게 있군.’
비늘 위로 톡 돋아난 것은 작은 꽃봉오리처럼 보이기도 했고 거스름처럼 보이기도 했다.
“……설마, 아니겠지.”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보던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불안한 기운이 그의 등줄기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