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1
꼬르르륵-
우렁찬 뱃고동 소리에 나는 베개 밑으로 꾸물꾸물 더 기어들어 갔다.
‘그만 좀 울리라고!’
대체 오늘 하루만 몇 번째 울리는 거야.
어제 그렇게 기절하고서 눈을 떴을 때 나를 찾아온 것은 정말 지독할 정도로 끔찍한 허기였다.
오죽하면 내게 인사를 건네던 에르노 에탐의 손가락이 소시지처럼 보여서 깨문 것도 모자라 우물거렸을 정도였다.
문제는 이미 나는 오늘만 해도 두 번이나 식사했다는 거다.
두 번째 식사를 한 지 두 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뱃고동 소리가 멈출 줄을 몰랐다.
“따님, 식사를 더 준비하라고 했단다.”
나는 베개 밑으로 조금 더 파고들었다.
‘미움받고 싶지 않아.’
귀찮게 여겨지고 싶지 않단 말이야. 밥을 많이 먹고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간신히 생긴 가족을 남들과 달라서 귀찮다는 이유로 잃고 싶진 않았다.
“따님.”
나직한 부름에도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배고픔이 사라졌으면 했다.
“에이린.”
자그마한 부름에 시야가 환해졌다. 등을 무겁게 누르던 베개의 감각도 사라졌다.
“내 따님이 왜 이럴까. 밥이 입맛에 맞지 않았나?”
“…….”
“요리사를 다 잘라 보마.”
아니, 그러지 마. 이 미친 아빠가…….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위에서 희미하게 웃음 섞인 숨소리가 들렸다.
“그럼 왜?”
‘너무 많이 먹으면 돼지가 될지도 모르고…… 매번 이렇게 챙기면 귀찮아질 테고… 또….’
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하다가 침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귀엽지 않으면 싫어할지도 몰라.’
내가 보기에도 에이린은 아주 귀여웠다. 하지만 너무 먹어서 뚱뚱해지면 싫어할지도 모른다.
‘이번에 보니까 덩치가 너무 커졌어.’
도마뱀 덩치가 솔직히 성인 남자 손바닥만 한 건 좀 그렇잖아.
여기서 더 크면 어떡해?
‘어떤 도마뱀은 3미터까지도 큰다고 하지만…….’
그러면 반드시 버림받을 게 분명하다.
‘3미터짜리는 나도 키우기 싫어.’
솔직히 징그럽잖아.
“에이린, 내게 간신히 생긴 딸을 빼앗을 생각이니?”
그 힘 빠진 목소리에 나는 번쩍 고개를 들고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데…….’
단지, 변하는 것이 무서웠다.
조금만 살이 쪄도 욕을 먹었던 과거가 자꾸만 발목을 붙잡았다.
“따님이 배가 고픈데도 밥을 먹지 않아서 또 쓰러진다면 나는 요리사들을 전부 쫓아내고 새 요리사를 부를 거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따지자면 다 내 잘못인데 왜 멀쩡한 요리사를 쫓아내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 요리사가 와도 네가 또 먹지 않는다면 나는 또 그들을 자르고 새 요리사를 모집하겠지.”
나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렇게 묻고 싶었다.
입술을 뻐끔거려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너무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에르노 에탐은 내 의문을 금세 눈치챈 듯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지만, 부모란 그런 거라고 누가 그러더구나.”
“…….”
“자식이 잘못했어도 무조건 편이 되어 주고 싶은 것.”
눈이 절로 커졌다.
도마뱀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그의 옷자락을 힘껏 붙잡았을 것이다.
“설령 세상에 아주 끔찍한 일이 생겼는데 그게 내 따님의 잘못이라고 해도 나는 네 잘못이 아니라고 할 거다.”
나는 그의 침대에 푹 묻고 있던 얼굴을 천천히 들었다.
느릿느릿 몸을 돌리자 어느새 그의 손바닥은 지척에 있었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
[엄마. 누나가 시켰어~ 우리보고 하라고. 그래서 해 본 거고. 가지고 싶다고 했단 말이야.] [제가 들었어요, 엄마.] [그래, 알고 있단다. 우리 착한 아들들이 했을 리가 없지. 애초에 이런 곳에 물건을 함부로 늘어 둔 주인 잘못이지.] [이봐요, 어머님. 뭐라고요?] [애들이 몇 푼 하는 장난감을 좀 탐낸 것 가지고, 유난은……. 여기 돈입니다.]떠오르는 기억에 더욱 서러워 눈물이 뚝뚝 흘렀다.
남자아이들이 가지고 놀 법한 장난감을, 누가 훔쳤는지 뻔히 알면서도 어머니는 늘 남동생을 두둔했다.
알고 있었던 거겠지. 정말 누가 훔쳤는지.
그렇게 살면서 늘 듣고 싶었던 말이,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것이 마치 꿈만 같았다.
손바닥을 축축하게 적시는 날 보며 에르노 에탐이 내 비늘을 살살 쓰다듬었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네 편을 들 거다. 그러니 많이 먹고 쑥쑥 자라 주렴.”
‘내가……!’
입술을 뻐끔거렸지만, 말이 나가질 않았다.
‘대화하고 싶어. 아빠랑, 제대로 얘기하고 싶어.’
소망을 머릿속에 담는 순간, 욕망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이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번졌다. 동시에 몸이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높아졌다.
에르노 에탐의 눈이 커졌다.
“내가…….”
목소리가 나왔다.
어느새 나는 에르노 에탐의 무릎에 앉아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에르노 에탐이 어느새 담요를 내 몸에 둘러 주었다.
“뚱뚱해지면 어떠케여…?”
“그럼 통통한 따님이 되겠지.”
“엄청엄청 큰 도마뱀이 되면여……?”
“엄청 큰 따님이 되겠지.”
“막, 못생겨지면여?!”
“못생… 그런 일이 가능한가?”
대답하던 에르노 에탐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 표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물어본 내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불가능한 일은 나도 상상할 수 없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나도 모르게 에르노 에탐의 목에 매달렸다.
“이렇게 눈물범벅이 된 얼굴도 귀엽게 보이니, 내가 따님에게 푹 빠진 모양이다.”
에르노 에탐이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인간으로 돌아왔구나.”
“네….”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니?”
“아버…, 아니. 아빠랑 얘기가 하고 싶다구 생각해써여.”
“생각했다고?”
“네…….”
나는 그의 가슴팍에 안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노 에탐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며 미묘해졌다.
“어제 내가 아팠지 않으냐, 혹시 그땐 무슨 생각을 했니?”
에르노 에탐의 물음에 나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아…….”
약간 부끄러워지는 기억에 나는 얼굴을 파묻은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으면 좋겠다고여.”
“뭐?”
“아빠랑 가족이 다 안 아프구…… 오래오래 가치 살구 싶다구여…….”
아이의 고백에 에르노 에탐의 눈이 커졌다. 그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
‘이건 너무 애 같은 소원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소원이었다.
“에이린.”
“네?”
“그건 이미 이뤄지지 않았니? 앞으로도 그러려면 일단 배고플 땐 밥을 먹어야겠지?”
“…….”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식탁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꼬르르륵-
우렁찬 소리가 다시금 들렸다.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눈앞에 두자 나는 스위치가 망가진 사람처럼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하읍-!”
입 안 가득 차오르는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손은 어느새 다음 음식에 닿아 있었다.
“…….”
“…….”
“…….”
에르노 에탐을 비롯해 식사를 돕던 사용인들도 순간 말문을 잃은 듯했다.
족히 10인분은 되어 보이던 푸짐한 식탁이 순식간에 텅 비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음식을 되는대로 손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먹었던 터라 손이 엉망이었다.
“아….”
푸짐하게 쌓인 접시를 보고 있으려니 말문이 턱 막혔다.
“어….”
혹시 배 속에 걸신이라도 들린 게 아닐까? 그런 게 아니면 대체 이렇게까지 식사를 할 이유가 뭔데.
“이제 조금 배가 부르니?”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는 평범한 1인분을 먹고도 허한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배 속이 꽉 들어차 충만했다.
“네, 배부러여.”
“그렇구나, 앞으론 이 정도 식사를 준비하라고 하마.”
“…갠차나여? 이러케 먹어두…….”
“더 먹어도 된단다. 나 돈 많다.”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용돈을 10억씩 줄 때부터 알아봤고…….
“아, 그리고 일전에 가주님이 말했던 선생이 내일부터 온다고 하더구나.”
“선샌밈이여?”
“그래, 서부에 있는 로즈먼트 남작가의 장남이라더구나. 가주님이 뽑았으니 신원은 확실하겠지.”
“네!”
그렇지 않아도 그냥 집에만 있는 건 싫어서 뭔가 배우고 싶었는데 다행이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렴.”
그가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정한 손길에 절로 입가가 풀어졌다.
* * *
아빠의 온기와 함께 푹 잠을 자고 나니 온몸이 개운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샤르네 보러 가야지.’
여주인공은 뭘 하고 있으려나?
나는 일이 있다는 에르노 에탐을 뒤로하고 뽈뽈뽈 복도를 뛰어갔다.
“어머, 저 애는…….”
“정말로 꼬리가 있네…….”
복도를 가로질러 걷는데 들려온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걸음이 뚝 멈췄다.
‘아, 숨기는 거 깜빡했다.’
이번 인간화에도 꼬리를 숨기는 걸 실패했다.
이상하게 꼬리가 조금 더 길어지고 반짝이는 것 같기도 했다.
“……역시 그렇지?”
“응, 확실히…….”
급히 치마 아래로 꾹꾹 눌러 숨기려고 했지만, 이미 아빠가 날 위해 특수 제작을 요청한 꼬리가 나올 수 있게 마감까지 된 드레스라 숨길 수조차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순간이었다.
“진짜 만져 보고 싶다…….”
욕망을 담은 뜨거운 숨결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탁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