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2
“안 돼, 아가씨께 함부로 손대면 엄벌을 내린다고 했잖아.”
“그래도……, 너무 귀엽잖아. 방금 지나가시면서 흔들리는 토실토실한 양 뺨 봤어? 하윽……, 심장이 아파.”
“너 귀여운 거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주접이 좀 심하다.”
“야, 밀리야.”
“왜?”
“아가씨 뺨이 부드러울까, 밀가루가 부드러울까?”
“이 미친…. 그야 당연히 아가씨 뺨이겠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뭔가 얘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대화가 이상한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근데 정말 단단한 빙벽, 에르노 공자님이 단숨에 녹아들 만해. 저 분홍색 머리카락을 봐.”
빙벽……?
에르노 에탐은 참 오글거리는 이명을 가지고 있구나.
‘역시 판타지 세계관.’
약간 ‘내가 이 세계 최강 철벽 일진짱!’ 이런 느낌인 걸까?
“일전엔 내게 활짝 웃으면서 인사도 해 주셨는데 진짜 후광이…….”
“맞아, 항상 마주치면 인사해 주시더라…….”
“마일라 그년이 못된 거지. 세상에 저렇게 사랑스러운 분께 그런 죄를 뒤집어씌웠으니…….”
들려오는 말에 어깨가 멋대로 들썩거렸다.
‘마일라…….’
에르노 에탐이 내 편이 된 것을 보면 마일라는 분명히 좋은 꼴을 보진 못했을 것이다.
만약 에르노 에탐이 놓아줬다고 한들 결국 결말이 좋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내 편을 들어 줘서 기쁘네.’
나는 허리춤에 있는 주머니를 뒤져 사탕 세 개를 꺼내 나를 힐긋거리며 일하고 있는 시녀에게 다가갔다.
이들은 내가 듣지 못하는 줄 알겠지만, 몇 번이나 말했듯 내 청력은 아주 좋은 편이다.
“안뇽!”
용기를 내어 다가가 활짝 웃자 세 명의 시녀가 꺄악 소리를 지르더니 벽에 바짝 달라붙었다.
“아, 아가씨?”
“여,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저흰 아, 아무 말도 안 했답니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필사적으로 끄덕였다.
“응…!”
그래그래, 아무것도 못 들은 걸로 해 줄게.
“요거 주께! 사탕야!”
“어……, 저희 주시는 거예요?”
“웅! 하나, 하나, 하나!”
나는 세 사람에게 사탕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세 사람이 무릎을 꿇고 사탕을 경건하게 받았다.
‘아니, 무슨 사탕을 무릎까지 꿇고 받아…….’
계급 제도가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걸까?
‘그래도 난 아직 정식으로 호적에 올라가지도 못했는데.’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겠지.
“감, 감사합니다…….”
“곰도리랑 토끼야! 기엽지?”
사탕을 곰돌이 모양과 토끼 모양으로 만들어 놔서 솔직히 먹기도 아까웠던 참이다.
“있자나, 샤르네 언냐 봐써?”
“아, 샤르네 아가씨라면…… 아마 방에 계실 거예요.”
“고마어, 나 가께!”
내가 손을 붕붕 흔들었다.
막 몸을 돌리려던 나는 문득 짓궂은 생각이 들어 검지로 입술을 살짝 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리구……. 나보다 언냐들이 더 기여어.”
속삭이듯 목소리를 작게 읊조리곤 휙 몸을 돌려 누군가 나를 붙잡기 전에 쌩하니 달려갔다.
‘으아, 부끄러워.’
누군가를 칭찬하는 일은 익숙한 일이었는데, 어쩐지 방금은 조금 부끄러웠다.
“꺄아아아악!”
뒤에서 들려온 비명 같은 환호성은 못 들은 걸로 하자.
나는 곧장 샤르네의 방으로 뛰어갔다.
작은 손으로 문을 콩콩 두드리자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나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에 잠시 몸이 주춤했다.
너무 바쁠 때 찾아왔나?
그냥 돌아갈까 싶다가 이미 도착했는데 말도 하지 않으면 기분 나쁠 거라는 생각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언냐, 나 에이링인데…….”
“어? 어?! 에이린?”
“웅…….”
“자, 잠깐만! 자암깐만 기다려어!!”
우당탕탕-!
쿠당탕탕-!
안에서 전쟁이나 나야 들릴 법한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한 10분을 문 앞에서 서성이고 나서야 문이 벌컥 열렸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얼굴과 약간 서툴게 꽂힌 머리핀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드레스를 입었는데 어쩐지 그 모든 것이 살짝 엉성하게 보였다.
“하하, 방에…… 바퀴벌레가 있어서……. 미안. 방금 잡아서 버렸어.”
그녀가 문을 활짝 열었다.
“자, 들어와.”
활짝 웃는 샤르네의 얼굴은 그야말로 사람의 기분을 사르르 녹여 주는 느낌이었다.
방 안은 깨끗했다.
너무 깨끗해서 도리어 살짝 이상할 정도로. 옷장 문이 빼꼼히 열려 있었는데, 그 사이로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액자…인가…?’
무슨 액자가 옷장에 들어가 있는 거지?
내가 옷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샤르네가 자연스럽게 문을 닫고 들어와 옷장 문도 힘주어 꾹 눌러 닫았다.
“모 하구 있어써?”
“내일 황성에서 입궁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생각하면서 쉬고 있었어.”
“황성?”
“응, 거기 2황자께서 몸이 좋지 않으시거든. 그래서 내 능력을 한 번 사용해 볼 수 있느냐고 폐하께서 부탁하셨어. 내일로 세 번째야.”
“아아…….”
벌써 시기가 그렇게 됐구나.
‘에노쉬…….’
황제가 샤르네에게까지 말을 한 것은 에노쉬의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전염병은 빠르게 제압했다고 생각했는데…….’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걸까?
안타깝지만, 샤르네의 능력은 단순히 드래곤의 피가 폭주하는 ‘광폭화’를 잠재우며 진정시키는 것과 ‘정화’이기 때문에 선천적인 병에 효과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 몇 번의 만남으로 샤르네와 에노쉬는 확 가까운 친구가 된다.
……그래, 그냥 그뿐인 이야기다.
이야기의 자극을 위한 조연 캐릭터.
“근데 능력은 한 번도 써 보지 못했어.”
“왜?”
“황자님이 아프셔서 그런지 엄청 예민하시거든. 화도 많이 내시고 조금…… 폭력적이셔.”
누군들 내가 곧 죽을 거라는데 패악을 부리지 않고 배기겠는가.
게다가 에노쉬는 모든 걸 가지고 태어난 황자였다. 삶의 의지도 있다.
그런데 건강을 타고나지 못해서 살아 숨 쉬는 내내 ‘죽음’을 달고 살았다.
의원들은 살아 있는 아이를 향해 언제 죽을 거라는 말을 달고 살았을 것이다.
모든 이들이 에노쉬를 동정했겠지. 아마 에노쉬는 그게 싫었을 거다.
‘에노쉬가 샤르네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도 그거 때문이었지.’
동정하지 않는다고 한 샤르네의 선의의 거짓말 때문에.
“아, 에이린!”
“응?”
“혹시 나랑 내일 같이 황자님 뵈러 가지 않을래? 혼자 가는 건 싫으니까…… 너랑 가면 용기가 날 것 같아.”
“음….”
근데 내일 선생님 온다고 했는데.
“긍데 나 내일 선샌밈 와서 하라부지한테 허락받구 와두 대?”
“좋아! 어, 같이 가고 싶은데 지금 할 일이 있어서 혼자 다녀올 수 있겠어?”
“웅.”
“다녀와서 저녁 식사는 같이하자!”
“조아!”
“난 방이 조금 지저분해서 정리해야 하니까… 조심히 다녀와, 에이린!”
샤르네가 나를 품에 덥석 끌어안으며 말했다.
“으응, 부들부들해….”
샤르네가 내 뺨에 제 볼을 비비적거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이건 선물이야.”
“선물?”
“응, 호랑이 사탕!”
샤르네가 서랍에서 커다란 막대 사탕을 꺼내며 말했다.
귀여운 호랑이 모양으로 만들어진 사탕은 그야말로 먹는 것조차 아까운 모양새였다.
샤르네가 냉큼 껍질을 까 내 손에 쥐여 주더니 입에 물려 주기까지 했다.
“으아악, 진짜 너무 귀여워…….”
뽈뽈대며 돌아다니던 소녀가 어딘가에서 구슬을 꺼내 쭉 내밀었다.
“에이린, 사탕 들고 여기 한 번만 봐 줄래?!”
“응?”
내 얼굴만 한 커다란 막대사탕을 든 채 고개를 갸웃하자 샤르네가 이불 위에 구슬을 내려두더니 그대로 주먹을 쥐곤 침대를 퍽퍽 내리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살짝 무서워져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크, 크흠…….”
여주인공이 당황한 듯 표정을 갈무리하곤 내게 빙긋 웃어 보였다.
“미안, 내가 좀 놀라게 했지? 잠깐 심장이 아파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샤르네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터져 나온 코피에 당황해서 성큼 다가갔는데 피가 한층 더 콸콸 흘러내렸다.
“어, 언냐!! 갠차나…?”
“으응, 괜찮지. 요즘 자주 이래. 호호호.”
그녀가 억지로 웃는 소리를 내더니 손수건으로 제 코를 꾹 누르며 말했다.
‘아니, 당신 피가 철철 난다고.’
딱히 시한부나 병약 여주 설정이 아니었는데 왜 이러는 거지?
나는 당황해서 손을 허공에 허우적대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의사 부르까?”
“아냐, 괜찮아. 금방 나아질 거야. 에이린은 얼른 다녀와! 그동안 의원도 부르고 정리도 하고 있을게.”
“웅…….”
본인이 괜찮다는데 계속 권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던 터라 나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여주인공의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