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3
여주인공의 방을 나와선 곧장 공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미르엘 공작의 집무실 앞은 두 명의 병사가 지키고 있었기에 나는 꼬리를 쭉 아래로 늘어뜨리며 조심스레 다가갔다.
“안냐세여.”
내 인사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병사가 시선을 내리더니 아차 싶었는지 냉큼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하라부지 이써여?”
“미르엘 공작 각하께선 현재 가신들과 함께 회의실에 계십니다.”
아, 여기에 없구나.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여기까지 왔건만, 제법 힘 빠지는 소식이었다.
“그나저나 시녀는 대동하지 않으셨나요?”
“아.”
깜빡했다.
에르노 에탐이 나가고 나도 곧장 방을 빠져나갔던 터라 시녀를 부를 시간이 없었다.
“까먹으셨군요?”
“헤헤…….”
내가 멋쩍게 머리카락을 긁적이자 병사가 마주 웃어 주었다.
보통 군인이나 병사라고 하면 무척 딱딱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박한 외모의 사내였다.
그가 한참이나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가씨, 혹시…… 꼬리를 한 번만 만져 봐도 괜찮을까요?”
“이봐, 필립!”
옆에 있던 사나운 인상의 병사가 그의 어깨를 쳤다.
“아, 어려우면 괜찮습니다!”
“……내 거?”
“네.”
“징그럽지 아나?”
“…전혀요? 귀여우신데요.”
“……그래?”
병사가 도리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죄송합니다, 얘가 파충… 그, 그런 종류의 생물을 아주 좋아해서요.”
“아아, 난 갠차나. 쪼아!”
내가 폴짝 뛰어 몸을 돌려 꼬리를 바짝 세워 주자 냉큼 장갑을 벗어 던진 필립이라는 병사가 내 꼬리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와……, 왜 도대체 어째서… 부드럽지…….”
푹신푹신하다고 중얼거리던 필립이 이제는 양손으로 꼬리를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세상에, 이런 꼬리는 난생처음인데, 폭신하고 귀여운 사람에게 달린 꼬리는 원래 이렇게 폭신하고 부들부들한 것인지. 아니면 폭신하고 부들부들하기 때문에 아가씨께서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대체 어느 쪽이 먼저인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립의 동공이 살짝 풀린 것도 같았다. 이쯤이면 나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
계속 만지니까 기분이 이상한데.
자꾸 누가 발바닥을 매만지는 기분이었다.
‘조금 간지럽기도 하고…….’
그리고….
‘무서워, 필리이입!’
설마 그러진 않겠지만, 내 꼬리를 꼬리탕으로 만들어 먹진 않겠지?
약간 두려운 기분에 움찔움찔 몸을 떨자 곁에 있던 무섭게 생긴 병사가 필립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필립, 아가씨께 무슨 무례냐.”
“헉, 죄…… 죄송합니다아아아…!”
눈을 크게 뜬 필립이 무릎을 꿇더니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제, 제가 잠시 정신을 놔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 아냐…….”
그렇게 말하며 나는 슬쩍 필립에게서 물러나 무섭게 생긴 병사의 곁으로 다가갔다.
쿠웅-
필립의 머리 위로 어쩐지 돌덩어리가 하나 떨어지는 환상이 보인 것도 같았다.
절망스러운 낯으로 필립이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
“으응?”
“회의실에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안야, 방해대자나.”
“음, 제 생각엔 좋아하실 거라고 봅니다.”
좋아한다고?
그 미르엘 공작이?
나는 짧은 팔을 꼬아 팔짱을 끼곤 잠시 고민하는 낯을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의 고집을 못 이겨서 그렇지.’
사실 에르노 에탐만 없었으면 난 진즉에 집에서 쫓겨났을 거다.
‘물론 사과는 해 줬지만…….’
솔직히 좀 많이 놀랐고 카일로의 번역을 듣고 좀 믿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좋아하느냐’에 대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바로 내일 있는 일이라 지금 물어봐야 할 텐데…….’
약속을 취소하는 것도 1분이라도 빨리 말해 줘야 기분이 덜 나쁘다고 하지 않던가.
“그럼 갈래.”
“제가 모시겠습니다. 필립, 여기 제대로 지키고 있어.”
“알겠어, 케얀…….”
필립이 우울한 얼굴로 읊조렸다.
그 모습이 무슨 풀 죽은 레트리버 같은 느낌이라 하는 수 없이 급하게 배가 고플 때 먹으라고 에르노 에탐이 채워 준 통통한 간식 주머니를 뒤질 수밖에 없었다.
“요거 주께.”
애를 달래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가진 게 사탕뿐이라서…….
“저, 주시는 겁니까?”
“웅.”
“감사합니다…….”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무섭게 생긴 병사, 케얀을 따라갔다.
“필립이 저래 보여도 아래로 여동생이 많아서요. 나쁜 마음은 아니었을 겁니다.”
“응, 아라.”
“요즘 미르엘 공작 각하께서 도마뱀 인형을 만들고 있는 건 알고 계십니까?”
“도마뱀 인형……?”
그것참 괴랄한 취향이네.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자 케얀이 설핏 웃었다.
“이쪽이 회의실입니다.”
“응, 고마어.”
“그리고 아가씨.”
“응?”
“저도 꼬리 한 번만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웅. 필립처럼은 안대.”
“그렇게 분별없이 굴진 않습니다.”
케얀이 한쪽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장갑을 벗더니 내 꼬리를 두어 번 진지한 얼굴로 만지곤 깔끔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응.”
케얀이 허리를 숙였다가 일어나는 때였다.
팔랑팔랑-
무언가가 그의 가슴팍에서 팔랑거리며 떨어져 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뭐지?’
손바닥만 한 작고 빳빳한 종이였다.
“케얀, 요거…….”
내가 주워 주려는데 케얀의 손이 그야말로 바람 같은 속도로 날아와 사진을 낚아채 갔다.
너무 빠른 속도라 앞머리가 휘날렸다.
‘……뭐지?’
사진, 이었나?
케얀을 보니 표정에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실례했습니다.”
“갠차나…….”
여기선 영상석으로 찍은 사진을 실물의 그림처럼 출력할 수 있는 ‘사진’이 있었다.
게다가 흔히 한국에서 말하는 움짤같이 ‘움직이는 사진’이 있기도 했고.
‘값이 비싸다곤 들었지만…….’
그래도 마탑에서 그걸로 꽤 쏠쏠하게 벌고 있다고 들었다.
‘뭐, 가족사진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그래도 저렇게까지 재빨리 가지고 사라질 건 또 뭔지.
약간 섭섭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웅, 잘 가. 케얀.”
케얀은 내가 회의실에 내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려달라고 하고 허락을 받아 들어갈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크흠, 들어와라.”
회의실 안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곤 회의실 안에 발을 들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십수 쌍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쿵, 쿵, 쿵.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내리누르며 종종걸음으로 미르엘 공작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여, 하라부지.”
“오냐.”
그의 책상 위에는 뭔가 나뭇조각 같은 것이 놓여 있었는데, 그 모양새가 어쩐지 대단히 도마뱀을 닮아 있었다.
아직 색을 칠하진 않은 것인지 나무색 그대로였다.
내가 그 나무 조각상을 보는 것을 알아챘는지 미르엘 공작이 슬쩍 제 서류로 덮어 버렸다.
“어쩐 일이냐.”
“제가 부탁이 이써서여……. 근데 안 바쁘세여?”
“부탁?”
그는 자연스럽게 나를 안아 무릎에 앉히더니 물었다.
‘뭐지?’
너무 자연스러웠는데.
나는 혹시나 열심히 먹고 있는 호랑이 막대 사탕이 묻지 않도록 슬쩍 입에서 사탕을 빼냈다.
“그 사탕은 뭐냐?”
“언냐가 주셔써여.”
이제 슬슬 너무 달아서 먹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지만 말이다.
“흠…, 사탕을 좋아하느냐?”
“쪼끔여?”
“그렇군…….”
그가 뭔가를 낮게 중얼거렸다.
미르엘 공작의 가슴팍에 머리를 댄 채 고개를 들자 나를 보고 있는 많은 가신들이 보였다.
‘어…….’
왜 저렇게 보는지 모르겠다.
자꾸 빤히 보는 것도 민망해서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배시시 웃었더니 그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 시원하고 달콤한 건 좀 좋아하십니까?”
서로 민망해서 시선만 교환하는 사이 미르엘 공작과 가까이 있던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수염을 매만지며 내게 물었다.
“시언하구 달콤한 거여?”
“네, 아이스크림이라고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한 간식인데…….”
헐, 아이스크림?
그런 게 여기에도 있단 말이야?
‘하긴 여기 한국이랑 세계관 좀 짬뽕이었지.’
예전에 읽으면서도 작가가 귀찮은 게 많았나보다 생각했었다.
“조아해여!”
내가 앞으로 몸을 쭉 빼며 눈을 반짝이자 노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커, 커흠…….”
노인이 조금 당황한 듯 뺨을 긁적이더니 이내 마저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중으로 아가씨께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내가 활짝 웃자 노인이 어딘가에서 슬쩍 둥근 구슬을 꺼냈다.
“……솜털아.”
“네?”
“그런 거 나도 많다.”
뜬금없이 미르엘 공작이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