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5
“언냐, 와써?”
“어? 으응. 왔지…. 나랑 둘이서 먹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샤르네는 한껏 들떴던 기분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뭐, 둘이서 먹겠다고 한 건 분명히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올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샤르네는 에르노 에탐과 두 사촌을 흘겨보곤 에이린의 옆자리에 꾸역꾸역 의자를 끼워 들어가 앉았다.
“사촌 동생아, 굳이 저기 빈 자리 두고 여기에 의자를 밀어 넣는 이유가 뭐야?”
심기가 불편하신 칼란 에탐이 턱을 괸 채 자신과 에이린 사이로 끼어드는 샤르네에게 뇌까렸다.
“우리 에이린이 내가 좋대서. 그치?”
“웅, ……조아!”
에이린이 난감한 듯 한차례 눈동자를 굴리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으아, 에이리이인. 넌 내 치유제야…….”
샤르네가 에이린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여기 오자마자 생겼던 아주 약간 서운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르르 사라졌다.
샤르네는 아이의 품에 안긴 검은색 호랑이 인형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봤던 호랑이 인형이네?”
“응, 저버네 일어버렸는데 아빠가 또 조써!”
“하나만 받았어?”
“응!”
샤르네가 슬쩍 에르노 에탐을 보았다.
턱을 괸 채 아이를 보고 있는 시선이 천천히 샤르네에게 닿았다. 그가 빙긋 웃었다.
‘에이린이 사라진 뒤로 호랑이 인형을 몇 개나 만들어 책상 위에 가져다 놓더니…….’
뭔가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굴던 에르노 에탐이 굉장히 안정적으로 보였다.
‘뭔가 신기하지…….’
샤르네가 물론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애를 대단히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에이린에겐 특히나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마치 누가 강제하는 것처럼…….’
이게 바로 정해진 운명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그게 싫은 건 아니지만.’
신기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본 아이가 사라졌다고 한들 그렇게까지 미쳐 버릴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
“언냐……?”
에이린이 고개를 불쑥 내밀며 기울였다. 샤르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에이린을 끌어안았다.
‘강제고 뭐고 어때, 귀여우면 됐지.’
솔직히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솔직하고 귀엽고 심지어는 신비롭기까지 했으니까.
“왜, 에이린?”
“오렌지 쥬쓰랑 포도 쥬쓰랑 모가 조아?”
“둘 다 좋아! 에이린은 뭘 더 좋아해?”
“음…, 오렝지!”
“그럼 언니도 오렌지 주스.”
히죽거리며 아이의 뺨을 만지려는데 갑자기 에이린이 허공에 대롱대롱 떠올랐다.
“에이린, 뺨에 뭐가 묻었구나.”
굳이 에이린을 제 무릎으로 데려간 에르노 에탐이 여봐란듯이 에이린의 포동포동한 뺨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
“징짜여?”
“그래, 지금은 괜찮아졌단다.”
에르노 에탐이 아예 아이를 끼고 식사를 먹이기 시작했다.
“……저기, 외삼촌. 에이린도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아는데.”
“예?”
“그냥 내가 먹여 주고 싶은 것뿐이니까.”
화사한 웃음과 함께 나온 재수 없는 말에 샤르네가 주먹을 꽉 쥐며 부르르 떨었다.
결국 샤르네는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는 에이린을 구경하며 식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린.”
“응?”
“내일! 둘이서! 재밌게! 놀자!”
샤르네가 부러 단어와 단어 사이를 끊어 말하며 힘주어 말했다.
“……내일?”
듣고 있던 에르노 에탐의 표정이 한껏 어둡게 가라앉았다.
샤르네가 피식 웃으며 에이린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자 에이린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잘 자, 에이린.”
“웅, 언냐, 안뇽…….”
샤르네가 의기양양하게 몸을 돌렸다.
“따님, 내일…… 어디 가니?”
뒤에서 들리는 약간 초조한 목소리에 샤르네가 키득키득 웃었다.
‘아, 아까 주문했던 샘플이 왔을 테니 마켓에 전시해 놓고 와야지.’
아까 마탑으로 ‘움직이는 사진’ 한 장을 긴급으로 주문했다.
샤르네는 도착한 에이린의 움직이는 사진 샘플을 들고 로브와 가면을 챙겨 방을 나섰다.
밤 9시부터 다음 날 해뜨기 전까지 열리는 마켓의 앞에 있는 기계에 포인트 카드를 인식하자 문이 열렸다.
‘좋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내부가 보였다.
겉에서 보면 그냥 작은 오두막처럼 생겼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2층짜리 커다란 건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누가 이런 마켓을 열었는지 궁금하지만…….’
그것조차 궁금해하면 안 되는 것이 이 바닥의 규칙이었다.
샤르네는 신제품 전시 코너에 가서 빈자리에 움직이는 카드를 올려놓고 금액으로 25만 로스트를 적었다.
마탑에서 움직이는 사진의 기본 인화 비용 10만 로스트를 포함한 값이었다.
카드와 판매 안내문을 능숙하게 적은 샤르네가 신제품을 느릿느릿 구경했다.
그중엔 유독 눈에 띄는 도마뱀 인형이 있었다.
“구팔 님 또 새 물건 냈네. 이 사람 거 퀄리티 좋지.”
출품자들은 각자 익명의 이름 하나를 적을 수 있었는데 98이나 샤르네의 닉네임 트리플 A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98은 주로 고퀄리티의 굿즈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손재주가 좋은 여성이려나?’
생각하며 가만히 문구를 읽던 샤르네가 신기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폭신.
샤르네의 눈이 큼직해졌다.
‘폭신……? 폭신……?!’
여기서 난 소리는 아니겠지?
어쩐지 눈이 번쩍 뜨였다, 샤르네가 몇 번이고 꼬리 인형 샘플을 주물럭거렸다.
난생처음 보는 재질의 인형이었다. 그리고 충격일 정도로 부드럽고 쫀득하며 푹신했다.
‘세상에, 나도 아직 꼬리 못 만져 봤는데…….’
에이린에게 큰 실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이린은 꼬리가 드러나 있는 것이 싫은지 종종 숨기고 다니기도 했기 때문에 부끄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실물 99% 재현이라고……?’
겨우 열 개 한정.
한참을 매만지던 샤르네가 눈을 질끈 감았다.
30만 로스트면 인형치곤 절대 저렴한 가격이 아니지만, 이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어차피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한정판 중에 제대로 된 것들은 나중에 프리미엄 가격이 붙기도 해서 본전치기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산다.’
반드시 산다.
이 푹신함을 잘 때마다 끌어안고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줄을 언제부터 서야 하지?’
가끔 심각한 놈들은 마켓이 열리기 하루나 이틀 전부터 줄을 서는 일도 있었다.
한 마디로 그냥 노숙을 한다고 보면 된다.
노숙에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와서 아예 눌어붙어 빵이나 가벼운 수프로 식사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사람을 고용하면 편하겠지만….
‘여긴 대리로 줄 서는 것도 안 돼.’
무조건 본인이 서야만 했다.
저번에 대리로 줄을 서 줬던 어떤 사람은 아예 마켓 출입 권한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와, 새로운 사진 엄청 나왔네.’
에이린의 사진뿐 아니라 어떻게 찍었는지 모를 에르노 에탐과 미카엘 콜린의 사진이 많았다.
이 두 사람이 특히나 이 ‘마켓’의 주요 판매 굿즈들이었다.
‘가격들 봐라…….’
둘 다 사진을 찍는 난이도가 힘겨운 탓인지 화질이 썩 좋지 않아도 무려 40만 로스트부터 시작이었다.
퀄이 낮은 것도 있지만 퀄이 높은 것도 다양하게 있었다.
마탑에서 내놓는 마법 용품은 평민에게까지 어렵지 않게 보급되어서 ‘마켓’의 이용객 중엔 평민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 ‘마켓’만큼은 귀족과 평민 할 것 없이 누구나 조용히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에이린 코너가 좀 더 커지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수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에이린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에이린 굿즈는 항상 물건이 나오면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완판이 됐다.
호기심에 사 가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얼굴만 봐도 귀엽긴 하지.’
샤르네도 오늘 새로 나온 신제품을 비롯하여 두둑하게 구매하곤 새 사진첩을 계산대 위에 올려 두었다.
‘다음 주 마켓에 대비해서 이번 주 지출은 적당히 해야겠어.’
장담하건대, 저 꼬리 인형은 분명히 많은 이들이 노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다음엔 꼭 쿠션만 사야지!’
오늘도 역시 생각지도 않은 지출을 해 버린 샤르네가 입맛을 다셨다.
결연한 마음으로 샤르네는 품에 한가득 물건을 안은 채 재빨리 마켓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