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6
“세상에, 에이린…. 이 하늘색 드레스 너무 예쁘다. 정말 천사 같아…….”
마차를 타러 1층으로 내려오자 샤르네가 나를 품에 확 끌어안으며 읊조렸다.
‘샤르네가 더 예쁜데.’
여주인공은 원래 이렇게 마음씨도 착한 걸까?
‘나는 여주인공이 할 일을 다 뺏었는데.’
질투도 하지 않는 것이 대단했다. 나는 샤르네를 볼 때마다 미안했는데 말이다.
게다가 만날 때마다 맨날 예쁘다고 해 주니까 정말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어? 꼬리는?”
“요기 밑에 숨겨써.”
“왜에……? 귀여웠는데…….”
“고마어.”
샤르네가 상냥하게 말해 줬지만 이 징그러운 꼬리는 여주인공이나 아빠 정도만 귀엽게 봐 줄 것이다.
높은 사람을 만나러 황성에 가기 때문에 일부러 꼬리는 안으로 숨겼다.
공작가 사람들은 나를 이해해 줬을지 모르지만, 밖으로 나가면 수인을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
공작가 안의 사람들은 아빠가 무섭기 때문인지 그래도 많이 유해졌지만, 바깥은 아니었다.
‘욕먹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절대로 사고 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보이지 않게 주먹을 꼭 쥐었다.
“따님.”
“네, 아빠.”
“가기 싫으면 가지 않아도 된다.”
에르노 에탐이 다섯 번째 같은 말을 했다.
오늘 아침에 함께 식사를 하자며 데리고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들은 말이었다.
‘내가 황성 가는 게 그렇게 싫나?’
내가 수인이라는 게 조금 부끄러워서 그런가?
‘수인은 노예 아니면 물건 정도로 취급한다고 했으니까…….’
아무래도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았는데 함부로 돌아다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약속한 거고…….’
뭣보다 미르엘 공작이 허락했다.
그리고 오지랖인 것을 알긴 하지만, 소설과는 달랐던 에노쉬가 신경 쓰이기도 했고.
“갠차나여, 아빠. 저가 눈에 안 띄게 다닐게여…!”
나는 주먹을 꼭 쥐며 자그마하게 말했다.
에르노 에탐이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미간을 설핏 구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눈에 띄지 말거라.”
역시 당장 내보내기엔 조금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내가 좀 더 노력해야지.’
바깥에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네!”
어서 멀쩡하게 인간화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특히 황제가 말을 걸면 그냥 무시하고 마차 타고 집에 오거라.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어, 네!”
황제가 날 유독 싫어하는 건가?
“알게써여!”
그가 심각한 표정을 하더니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허공에서 나타난 새까만 사람이 에르노 에탐의 손바닥 위에 도마뱀 그림이 그려진 귀여운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따님.”
“네?”
“배고프면 이거 먹거라. 내 손가락 외엔 다른 건 물면 안 된다. 알겠니?”
부끄럽게 대체 무슨 얘기를 꺼내는 거야.
내가 당황해서 손을 허공에 휘젓자 에르노 에탐이 허리춤에 간식 주머니를 달아 주었다.
‘물론 요즘 배가 엄청 고픈 건 맞는데…….’
어제 여주인공이랑 식사를 한 뒤에도 배가 고파서 끙끙거리는데 에르노 에탐이 또 따로 식사를 챙겨 주었다.
“네…….”
딱 한 번 실수로 도마뱀일 때 물었던 것뿐인데!
‘배고파…….’
눈앞에 소시지가 아른거렸다.
아득!
[이런….] [꾹!]멍하니 우물우물거리고 있던 나는 비릿한 혈향에 눈을 번쩍 떴고 정신을 차려 보니 에르노 에탐의 손가락을 물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문득 떠오른 기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확실히 좀 기억에 남을 법도 하다. 너무 열심히 깨물었네.
나는 애써 기억을 털어냈다.
“조심히 다녀오렴.”
“네!”
“가서 사고 치지 말고!”
불쑥 들려온 미르엘 공작의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에르노 에탐의 뒤에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앉아 있느라 바쁘신 무거운 엉덩이를 어쩐 일로 여기까지 움직이셨답니까.”
“너는 좀 만날 때마다 비꼬는 걸 관둘 순 없는 거냐? 이 패륜 놈아.”
“칭찬도 고상하게 하시는군요, 가주님께선.”
“크흠, 그냥 황성 가서 사고나 치지 말라고 하러 왔다!”
“네엡…….”
“어디 가서 맞지 말고! 맞을 거면 이걸 던져라. 책임은 이 내가 질 테니.”
미르엘 공작이 던지듯 내게 무엇을 넘겨 주었다. 작은 구슬이었다.
“널 함부로 만지려고 하면 던져라.”
“…이게 모에여?”
“폭탄이다. 작지만 강력하지.”
“네…?”
이걸 던지는 게 사고를 치는 거 아니고……?
애초에 이걸 나한테 왜 주는데.
주머니에 들고 다니다가 갑자기 폭발이라도 하면 어떡하라고?!
섬뜩한 얼굴로 시선을 들자 미르엘 공작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대로 조용히 나도 사라지라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이번엔 여주인공도 같이 가는데…….
‘그렇게 위험한 물건은 아닌 건가?’
미르엘 공작이 나는 버려도 여주인공을 버릴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사탕 준다고 해도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되는 건 알지.”
“네.”
“그래, 황제를 만나면 대화도 하지 말고 일단 이거부터 던지고 보거라. 책임은 할애비가 지마.”
미르엘 공작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황제가 뭘 하는 사람이길래 다들 이러는 걸까?’
소설에선 딱히 자세히 나온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으음…….’
아니면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내 기억은 어쩐지 자기 떠오르고 싶을 때만 떠오르니까 말이다.
“다뇨게씁니다. 아빠. 하라부지.”
허리를 꾸벅 숙인 나는 몸을 돌려 도도도 샤르네에게 달려갔다.
샤르네가 활짝 웃으며 나를 꽉 끌어안더니 뒤쪽을 보면서 짓궂게 웃었다.
“언냐?”
“아, 가자.”
내 부름에 단숨에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그녀가 마차에 올랐다.
우리가 탄 마차는 빠르게 황성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샤르네 에탐 영애, 그리고…….”
“에이링이에여.”
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눈을 동그랗게 뜬 젊은 집사가 이내 낮게 탄식하며 웃었다.
“네, 에이린 아가씨.”
“제 사촌 동생이에요. 2황자 전하와 안면이 있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요.”
“네, 얘기를 들어 알고 있습니다.”
얘기를 들었다고?
누구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는데?
‘오늘 내가 온다는 얘기는 전해 듣지 못했을 텐데?’
살짝 고개를 돌려 여주인공을 보자 여주인공도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이린, 주변에서 잠깐 놀고 있을래? 황자 전하의 치료를 진행해 보고 허락받은 뒤에 부를게.”
“웅? 알게써.”
커다란 황성을 구경하는 것도 신기했기 때문에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멀리 가면 안 된다!”
“곧 시녀를 한 명 보내겠습니다.”
“네에.”
나는 두 사람의 말에 대답하곤 몸을 돌려 천천히 복도를 거닐었다.
‘와, 진짜 금이네.’
사방의 장식품들이 전부 황금이었다. 이거 몇 개만 가져다가 팔아도 평생 먹고사는 덴 지장이 없지 않을까?
‘물론 돈이 있기는 하지만…….’
돈은 있어도 있어도 부족한 거 아니겠어?
‘진짜인가?’
슬쩍 주변을 훑어본 나는 장식품 하나를 와앙 깨물었다.
“윽…….”
느낌이 왔다.
이건 진짜다. 황성의 기둥이나 자잘한 장식품 전부가 황금이었다.
“요기는 모지?”
살짝 열린 문틈으로 고개를 쓱 들이밀자 익숙한 잉크와 종이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도서관인가?’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건 누구든 들어가도 된다는 걸까?
별달리 갈 곳도 없었기에 나는 누군가에게 이끌리듯 슬쩍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
공작저의 도서관도 컸지만, 여기도 상당히 컸다.
‘약초 관련 책이 있으려나?’
예전부터 약초에 관한 책에 제법 관심이 있었다.
키가 작아서 아래 칸만 볼 수 있었는데, 다행히 내 눈이 닿는 곳에 약초 책이 있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이었다.
다만, 내 머리보다 살짝 높은 곳에 있어서 꺼내기가 버거워 보였다.
게다가 책도 얼마나 크고 두꺼운지 내 몸만 했다.
‘그래도 궁금한데…….’
어떻게든 꺼내 보기 위해서 까치발을 한껏 떼고 손을 휘저었지만 닿을 기미가 없었다.
“어휴…….”
“이게 보고 싶나?”
누군가가 내가 보려고 했던 책을 아주 가볍게 뽑아 갔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자 웬 30대 중반의 남자가 보였다.
금발과 푸른빛의 짙은 눈동자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소설 속 사람들은 하나 같이 왜 잘생기고 예쁜 걸까?’
역시 판타지 소설이라 그런 걸까?
이 정도 평균을 하고 있어야만 에선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지, 비중 있는 조연일 수도 있잖아?’
근데 이런 외양의 사람이 있었던가?
설핏 고개를 기울였지만, 딱히 떠오르는 내용은 없었다.
‘하긴 그렇게 주·조연을 자주 만날 수 있을 리는 없지.’
사실 지나가는 엑스트라도 꽤 잘생겼으니 이 사람도 그런 게 아닐까?
“네.”
“어린 게 벌써부터 신기한 걸 보는구나.”
“풀이 조아서여.”
주세여- 라는 의미로 손바닥을 잘 모아 겹친 양손을 쭉 내밀자 그가 눈썹을 쓱 치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