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8
“두 사람이 친구인 줄은 몰랐군.”
“친구 아닙니다.”
“칭구 아닝데여.”
나와 에노쉬가 동시에 내뱉은 대답에 황제가 도리어 조용해졌다.
“아바마마, 반죽이랑 어떻게 친구를 합니까?”
“반죽 아닝데.”
“반죽 맞아, 못생긴 반죽.”
에노쉬가 코웃음을 쳤다.
아니, 나도 나름 귀엽게 생긴 것 같은데 대체 왜 맨날 못생겼다는 거지?
‘이 세계관 기준으론 못생긴 편인가?’
나는 손가락으로 뺨을 가볍게 꼬집으며 눈치를 살폈다.
딱히 반죽처럼 보들보들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에노쉬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바마마, 제가 피곤합니다. 나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 어머니가 널 많이 보고 싶어 하더구나.”
“……다음에 찾아뵙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말만 하면 그녀가 이쪽으로 올 테니 편한 날에 말만…….”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나가시라고 했잖습니까! 제발 좀 나가세요, 짜증 나니까…….”
에노쉬가 차마 손에 쥔 걸 내던지진 못하고 부들부들 몸을 떨자 황제도 어쩔 수 없이 몸을 물렸다.
‘정말 아끼나 보네.’
저 황제가 꼼짝을 못하는 걸 보아하니 말이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에노쉬가 죽었다고 흑화까진 하지 않았겠지.
“그래, 너 이건 가져가거라.”
황제가 약초 도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일 또 오마.”
“…….”
황제의 말에도 대답하지 않던 에노쉬는 그가 나가고도 한참이나 침묵했다.
“다들 이 몸이 아프니까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게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
한참 만에 쉰 목소리로 힘없이 입을 연 에노쉬의 말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를 뵈러 가는 것 정돈 나도 할 수 있다고. 이래선 정말…… 죽을 날만 받아 놓고 기다리는 것만 같다.”
에노쉬가 제 머리채를 쥐어 잡으며 말했다.
절망이 가득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긴 아프다고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나을 병도 깊어질지 몰랐다.
“아, 편지 전해써?”
“편지?”
“응, 릴리…라고 하는 사람에게.”
“……아니, 전하지 못했다.”
“왜?”
“전해 봐야 쓸모없어질 테니까.”
빛이 꺼진 거무죽죽한 눈동자에 담긴 것은 자포자기였다.
겨우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을 작은 어린아이가 짊어지기엔 죽음이란 너무나도 큰 무게였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듯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에노쉬는 아주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랑 놀까?”
“뭐?”
“내가 자주 여기 오께. 맨날 나랑 놀자.”
“너는 참 이상하다, 이 몸이 무섭지도 않냐? 반죽이라 그런 감각도 죽은 건가?”
“나는 에이링이야! 에이링이라고 불러 줘.”
“싫다, 반죽.”
“……똥고집.”
내가 불만스럽게 읊조렸다.
“어휴, 다음에 또 오께.”
“그러든가 말든가.”
코웃음을 친 에노쉬가 고개를 홱 돌렸다. 얄밉기 짝이 없는 그 모습에 나도 입술을 툭 내밀며 몸을 돌렸다.
나는 황제가 준 책을 힘겹게 들고 뒤뚱거리며 에노쉬의 방을 나섰다.
에노쉬의 이야기는 에서 자세히 다뤘었다.
마지막에서야 그는 제 마지막을 보러 온 여주인공에게 까칠한 성격에 대한 한 마디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서 진짜 많은 독자가 ‘타도 에노쉬’에서 ‘내새끼복지좀’ 하는 느낌으로 눈물바다가 됐었다. 댓글창에 ‘ㅠㅠ’만 올라와 터져 나갈 것 같았더랬다.
그래서 에노쉬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에노쉬는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에노쉬는 ‘병약한 폭군 황자’ 따위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몰랐으면 나도 물론 싫었겠지만…….’
알고 나서도 싫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건 에노쉬가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었으니까.
“볼 일은 다 봤느냐, 따님.”
“……아빠?”
책을 품에 끌어안은 채 어깨를 이용해 에노쉬의 방문을 닫아 주려는데 옆에서 뻗어 나온 손이 내 책을 채 갔다.
놀라서 고개를 들자 에르노 에탐이 나를 내려다보며 다른 손으로 문까지 닫아 주고 있었다.
“그래.”
“요긴 어떠케 와써여?”
“음…….”
내 질문에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슬쩍 눈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마침 황성에 볼일이 있었다.”
“아하…….”
그런 것치곤 뭔가 복장이 집에서 갓 나온 것처럼 한없이 가벼운데.
‘……하긴 아빠 성격상 일부러 복장을 제대로 차려입지 않은 걸까?’
황성에 들어올 때는 예의를 갖춘 정복을 입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이건 뭐지?”
“음, 선물 받았어요.”
누구한테 선물 받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가자꾸나.”
나는 에노쉬를 뒤로하고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 * *
“안녕하세요, 아가씨. 오늘부터 아가씨의 가정교사로 배정받은 로즈먼트 가문의 장남 힐 로즈먼트라고 합…… 우와아악!”
에노쉬를 만나고 온 다음 날, 가정교사가 찾아왔다.
어딘가 한껏 허술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허리가 반으로 접힐 정도로 고개를 푹 수그리며 인사를 건네던 소년이 몸을 휘청거리다가 이내 앞으로 훅 고꾸라졌다.
“죄, 죄송합니다아……. 으아악, 어디 안 다치셨나요?”
코앞까지 굴러온 그를 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르륵.
소년의 코에 피가 후두두 떨어지더니 이내 쌍코피가 터져 나왔다.
나는 당황해서 주변에 있는 손수건을 그에게 건넸다. 소년이 급히 그걸 받아 제 코를 능숙하게 꾹 눌렀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퍽 익숙한 모양새였다.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에 동글동글한 인상의 소년은 제 얼굴만큼이나 동글동글한 안경을 끼고 있었다.
겨우 10대 중반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어린 나이로 보였는데 교사로 왔다는 것이 신기했다.
흔하기 짝이 없는 연갈색 머리카락에 녹음을 붙잡아 세공한 듯한 녹색 눈동자가 유독 시선을 사로잡았다.
‘엄청 허둥지둥하네…….’
약간 좀 모자라 보이는 그가 선생이라는 것도 살짝 의심스러웠다.
“하하, 제가 운동신경이 전혀 없어서요……. 아무것도 없는데도 자주 넘어지곤 합니다. 죄송합니다.”
“웅, 아녜여……. 선샌밈, 며쌀이에여?”
“아, 전 올해 열네 살이 되었습니다. 아래로 아홉 살짜리 귀여운 동생이 있어요.”
입가를 허물어뜨린 소년이 퍽 사랑스럽게 웃었다.
척 보기에도 제 동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눈에서 애정이 뚝뚝 떨어졌다.
‘근데 로즈먼트 가문?’
왜 어디서 들은 것처럼 익숙한 거지?
내 교사로 온 거니까 아마 에서는 나오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겨우 엑스트라에게 열네 살 천재 설정을 줬다고?’
작가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으로 힐 로즈먼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소설 중반에 여주인공에게도 가정교사가 배정되지 않았던가?
‘여주인공이 사교계를 데뷔하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 지금 시점보다도 조금 더 이후일 확률이 높았다.
분명히 그때도 굉장히 천재인 시골 남작 영식이…….
정확히 같은 대사를 내뱉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나는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생각났다. 그 힐 로즈먼트가 어떤 존재인지.
저렇게 호구처럼 굴지만 사실은…….
뒷세계에서 그들을 통하지 않는 사업이 없다는 ‘명월’의 숨은 길드장이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오는데.’
여주인공한테 안 가고 왜 이쪽에서 나오느냐고!
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숨을 바짝 삼켰다.
어벙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지만, 그야말로 범죄자 중의 범죄자였다.
제가 원하는 결말을 위해서는 수백이 죽든 수천이 죽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그야말로 의 쓰레기 중의 쓰레기.
에르노 에탐이 귀여워 보일 정도로 어릴 때부터 타고난 사이코패스였던 그는 이미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제 부모를 죽이고 열 살이 되던 해에 ‘명월’의 길드장을 죽이며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의 작가조차 그를 ‘악마’라는 한마디로 정의했을 정도였다.
“…….”
인생이 왜 이러는 걸까?
“아가씨?”
“네, 네에…….”
얘는 리하르트처럼 조금씩 달라질 애가 아니었다.
이미 흑막 최종 단계인 인간이라고!
“커리큘럼은 아가씨와 제가 상의해서 짜면 된다고 해서요. 제가 일단 기본 커리큘럼을 짜 왔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아, 네…….”
막 시골에서 상경한 소년처럼 굴고 있었지만, 이것도 전부 연기일 뿐일 거다.
‘왜…… 여기에 온 거야?’
약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주인공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겨우 나한테…….
“아가씨는 대단히 사랑스러우시네요.”
“……아, 감사합미다. 선샌밈도 머리카락이 이뿌네여…….”
천연 곱슬인 듯 머리카락은 마치 푸들처럼 빵실빵실했다.
“머리요……?”
“네.”
“와아, 머리카락 칭찬은 처음 받는 것 같아요. 저는 너무 곱슬곱슬해서 싫어하거든요.”
“전 조아해여, 귀엽구…….”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열심히 입술을 달싹였다.
“근데, 아가씨.”
가만히 웃으며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힐 로즈먼트가 내게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까부터 왜 이렇게 겁에 질린 토끼처럼 발발 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