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59
천진한 얼굴로 물어오는 힐 로즈먼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숨이 멎었다.
“숨소리도 빠르고 심장 박동도 엄청 빨라요.”
통통 튀는 듯한 가벼운 말투였으나 왜 이렇게 등허리를 섬뜩하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전에….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몸에 손가락을 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짝 다가와 있는 것도 아니다.
살짝 고개를 돌려 거울을 확인해 보니 내 표정은 분명히 살짝 뻣뻣하게 굳어 있기는 했지만 겁에 질려 있지는 않았다.
“서, 선샌밈이 기여서여…….”
내 말에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제가 귀엽다고요?”
“네에…….”
귀엽게 생기긴 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라든가, 푸들처럼 곱슬거리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이라든가, 동글동글한 안경을 쓴 순해 보이는 눈매라든가 말이다.
‘소설에선 저 안경을 빼고 앞머리를 까 넘기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던데…….’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다고 해서 궁금하긴 한데 직접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치, 칭찬 감사합니다. 아가씨도 무척 귀여우세요. 그 꼬리도 말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지금은 꼬리를 내놓고 있었지.
내가 슬쩍 꼬리를 아래로 축 내리며 숨기려고 하자 힐 로즈먼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숨기세요, 귀여우신데.”
“귀엽다구여……?”
이 꼬리가?
딱히 귀여운 것 같지는 않은데.
“네, 무척 특이한 색이시네요. 제가 파충류를 아주 좋아하는데, 이런 색은 정말 처음 봐요.”
힐 로즈먼트가 말했다.
파충류라니, 무슨 동물이라도 대하는 듯한 말투에 내가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은 간단히 커리큘럼에 대해 얘기만 나누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 할까요……?”
“네에.”
내 대답에 그는 안심했다는 듯 소파 맞은편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헤프게 웃는 얼굴을 보면 정말 그 미치광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내게 사전 정보가 없었으면 정말 속았을 거야.’
그나마 그가 누구인지 알아서 다행이었다.
‘근데 왜 여주인공이 아니라 나한테 온 거지?’
나보다는 광폭화를 진정시키는 능력을 지닌 여주인공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정해진 이야기였다.
“아, 아가씨…….”
“네?”
“호옥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꼬리를 좀 만져 봐도 될까요?”
내 꼬리로 뭐 하려고?
하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내가 떨떠름하게 그를 보자 그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두 손을 모아 잡았다.
“정말정말 너무 궁금해서 그래요……, 제가 도마뱀 수인은 만나 본 적이 없어서…….”
그래도 싫은데.
망울망울한 눈망울은 안타깝지만, 괜히 꼬리에 이상한 짓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갑자기 도마뱀으로 변해도 곤란하고.’
마일라가 술수를 쓴 걸 보면 거기에 명월이 얽히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시른데여.”
“아…….”
“실레에여. 알져? 선샌밈은 학생의 몸에 손대면 안 대여. 아빠가 안 대여 시러여 하지 마세여, 하래써여.”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힐 로즈먼트의 눈에 순식간에 망울망울한 눈물방울이 매달렸다.
그는 마치 크게 혼이라도 난 사람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어요….”
“네에.”
서럽게도 눈물이 후두두 흐르는데 괜스레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아냐, 쟤한테 틈 줬다가 죽은 사람이 몇인데.’
나는 힘주어 고개를 저었다.
“훌쩍, 훌쩍.”
아이씨, 마음 안 좋게 왜 저렇게 울어?
정말 세상 사람들이 다 마지막까지 그를 찰떡같이 믿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렇게 너드남, 초식남처럼 생긴 애를 도대체 누가 죽어 가는 사람을 살려 줬다가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죽이는 놈이랑 같은 인간이라고 의심하겠는가.
“선샌밈, 울지 마세요.”
나는 하는 수 없이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 하나를 꺼내 그의 눈을 꾹꾹 눌러 닦아 주었다.
“아가씨…….”
“그래도 꼬리는 안 대여.”
“……흑.”
“선샌밈, 슬프게 운다고 해서 다 해결대지 아나여.”
내 말에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머찐 얼굴로 울면 다 해결댈 거라고 생각하면 안 대여.”
물론, 대부분은 그걸로 해결됐겠지. 보통 멋진 얼굴이 아니니까.
“울어서 뭔가가 해결대는 사람은, 환경이 갖춰진 축복받은 사람들뿐이에여. 그쳐?”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순, 힐 로즈먼트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잠시 뒤통수라도 한 대 얻어맞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금세 허술한 가면을 뒤집어썼다.
이 말은 정확히 힐 로즈먼트가 늘 그의 앞에서 살려달라고 비는 상대에게 읊조리던 말이었다.
그리고 을 읽었던 내가 이 미친놈에게 유일하게 공감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울어도 해결되는 게 없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했다.
우는 것으로 해결이 되는 사람은 주변에 좋은 부모가 있거나 좋은 친구가 있거나 좋은 사람이 있을 때뿐이다.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선 우는 것조차 사치인 사람들도 있다.
“울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까 선샌밈도 울지 마세여.”
“…….”
그래도 소설을 볼 때 늘 의문이었던 건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도 힐 로즈먼트는 항상 누군가를 속일 땐 눈물을 흘렸다는 거다.
물론!
예쁜 얼굴로 울면 나도 뭐라도 해 주고 싶긴 하지만…….
‘윽, 모르겠다.’
대체 무슨 오글거리는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선.’
어차피 여기는 그곳도 아니고 나는 아이도 아니니까.
괜히 부끄러워져서 허둥지둥 그가 가져온 커리큘럼 자료를 몇 개 살폈다.
솔직히 뭔 소린진 잘 모르겠지만, 힐 로즈먼트가 커리큘럼에 대한 자잘한 사족까지 붙여놔서 이해하는 것이 크게 난해하진 않았다.
너무 유치한 놀이형 학습을 전부 제외하니 조금 지루해 보이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저, 이거 할게여! 선샌밈.”
그가 가져온 커리큘럼 중에선 가장 어려운 것처럼 보였지만…….
……라고 적어 둔 사설 문구에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누가 사교육에 미친 대한민국 사람 아니랄까 봐….
이 아름다운 북유럽 배경의 세계에 와서도 이런 공부를 고르고 있는 스스로가 조금 우습긴 했다.
‘그래도 잘 해내면 칭찬을 받을 테니까…….’
이 정도면 미르엘 공작도 인정해 줄 것이다. 나중에 귀여움이 좀 사라지더라도 귀족 영애로서의 ‘쓸모’가 나를 이곳에 남게 해 주겠지.
게다가 나는 이 세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으니까 말이다.
제대로 아는 거라곤 여기가 이라는 소설이 연재되었던 것과 같거나 혹은 비슷한 세계라는 것 정도였다.
“선샌밈……?”
“아, 네. 아가씨.”
힐 로즈먼트가 묘한 낯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 요거여…….”
“이건, 어려울 텐데요.”
그는 살짝 풀린 눈으로 대답했다.
“응, 그래도 할래여.”
“왜요?”
“네?”
“굳이 어려운 걸 하시려는 이유가 있나요?”
힐 로즈먼트가 이상한 것을 물어왔다.
“그래야 나중에 쓸모가 있지 않을까여?”
게다가 일반 놀이 학습 같은 건 내가 배우기엔 좀 공감성 수치를 불러일으킬 것만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걸로 가실까요?”
그는 어느새 눈물이 마른 얼굴로 해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에서도 본성을 드러내기 전까진 좋은 선생님이었으니까.’
나중에 아빠한테 말해서 쫓아내더라도 그때까진 열심히 수업이나 배우자.
“그리고… 울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럼 아가씨의 꼬리는 친해지면 만지게 해 주시는 걸까요?”
이렇게 돌직구로 나오겠다고?
힐 로즈먼트의 뻔뻔한 말에 내가 일단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만족스럽게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오늘 즐거웠어요. 아가씨.”
“네, 안녕히 가세여! 선샌밈!”
“네.”
그가 빙긋 웃으며 막 몸을 돌릴 때였다.
“그러고 보니 문득 아가씨와 같은 색의 비늘을 가진 도마뱀에 대해 생각이 났어요.”
“어, 진짜여?”
“네, 조금 더 알아보고 알려드릴게요.”
역시 난 진짜 도마뱀이 맞았구나.
루실리온이 도마뱀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해서 대체 뭔가 했었는데, 다행이었다.
‘정보 길드의 길드장이 하는 말이니까 맞겠지.’
힐 로즈먼트가 강아지처럼 허술하게 웃어 보이곤 문을 열고 나갈 때였다.
“우와아아악!”
쿵-!
문지방도 없는 방에서 제 발이 서로 꼬여 그가 앞으로 대차게 고꾸라졌다.
“…하, 하하……. 바닥에 뭔가 있었네요…….”
아무것도 없거든.
“하하, 실례 많았습니다. 아, 아가씨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끄억!”
일어나던 힐 로즈먼트가 이번에는 뒤로 자빠졌다.
‘이쯤이면 미끄럼방지 신발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던 힐 로즈먼트는 앞으로 한 차례 더 고꾸라진 뒤에야 멀쩡히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이마에는 벌건 혹이 봉긋 솟아오른 후였다.
‘진짜 이상한 콘셉트야…….’
왜 저런 멍청한 캐릭터로 콘셉트를 잡았는지 모르겠다.
‘하긴, 그래서 누구도 마지막까지 의심하지 못했지만.’
나는 한숨을 쉬며 빼꼼히 열린 방문을 닫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내 인생 어떻게 되려는 거지?’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설마 나를 향한 힐 로즈먼트의 흥미가 한층 더 깊어졌을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