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60
느긋하게 복도를 거닐던 힐 로즈먼트가 큭, 참지 못하고 튀어 나간 웃음 한 조각을 내뱉었다.
“재밌네.”
아주 재밌어서, 토가 나올 정도였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어떻게 유쾌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맞은편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힐 로즈먼트는 언제나처럼 살짝 눈을 내리깔고 자연스럽게 그를 스쳐 지나가려고 했다.
우뚝.
상대가 정확히 그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만 않았어도.
“……당신, 누굽니까?”
“아, 오, 오늘부터 에이린 아가씨의 가정교사로 근무하게 된, 히, 힐 로즈먼트라고 합니다아…….”
바짝 긴장한 척 몸을 한껏 움츠린 힐 로즈먼트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정교사요……?”
의구심이 느껴지는 앳된 목소리였다.
루실리온의 고개가 설핏 기울어졌다. 힐 로즈먼트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피 냄새가 진동하는 가정교사가 있다고요?”
비웃음이 서린 한 마디에 힐 로즈먼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모르겠지만, 내겐 당신에게 들러붙은 수많은 원혼이 보이는데요.”
“무, 무슨 말씀이신지…….”
“악귀도 당신보단 낫겠는데.”
루실리온이 힐 로즈먼트를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훑었다. 힐 로즈먼트도 루실리온을 천천히 살폈다.
‘……신전 쪽 인간인가?’
그를 한눈에 꿰뚫었다는 것은 상당히 고위급의 신력을 가지고 있는 자임이 분명했다.
“지금 능력을 쓰면 있는 곳을 들킬 것 같아서…….”
손가락을 잠시 움직이던 루실리온이 손에서 힘을 빼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주인님께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단순히 뇌를 청소하는 정도론 끝나지 않을 겁니다.”
“주인님…?”
“에이린 말입니다. 고귀하신 분.”
“아하.”
힐 로즈먼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곤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문제를 일으키는 건 그의 예정에 들어 있지 않았다.
“두고 보겠습니다.”
그보다 서너 살은 더 어릴 것 같은 소년은 어느새 오만한 표정을 지운 채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루실리온이 멀어지자 느릿하게 허리를 편 그가 등을 꼿꼿하게 세웠다.
힐 로즈먼트의 입술이 찢어질 듯 호선을 그렸다.
“크, 크하하하!”
광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린 그가 등허리를 한껏 꺾었다.
텅 빈 복도엔 인기척이 없었다.
징그러울 정도로 입꼬리를 끌어올린 그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큭큭, 웃음을 흘렸다.
‘최근에 신전에 유력한 대신관 후보 하나가 실종됐다고 하더니…….’
그가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제게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에 숨어 있었네? 일이 재밌게 돌아가잖아.”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윽고 그야말로 광소로 번졌다.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한참이나 웃음을 터뜨리던 힐 로즈먼트가 동글동글한 안경을 벗곤 천천히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안경에 가려져 둥글둥글하게 보였던 눈매가 살짝 사나워지고 이마가 드러나며 분위기가 날카롭게 변했다.
“게다가 저런 빛의 은색의 도마뱀이라면…….”
실제로 보니 돌연변이 도마뱀 따위가 아니라는 건 알겠다.
그리고 도마뱀이 아닌 것 중에 도마뱀으로 오해받는 부류는 자신이 알기론 딱 한 종류밖에 없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그걸 도마뱀이라고 친다면 도마뱀이겠지.
제 방으로 돌아간 그가 책장 한쪽에 꽂혀 있는 남대륙어로 적힌 수인 사전을 꺼내 들었다.
팔랑팔랑―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책장의 거의 끄트머리에 가서야 그의 손길이 천천히 멈췄다.
“…역시.”
어디선가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은색이 아닌 빛에 반사되면 옅은 분홍빛이 도는 비늘.
갓 태어났을 때는 평범한 도마뱀처럼 보이지만, 성장기가 조금만 지나도 그것이 일반적인 도마뱀이 아니라는 사실은 금세 드러날 것이다.
“드래곤.”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미 수천 년도 전에 멸족했다고 들었는데…….”
이미 긴 세월에 희석되어 용의 본능만이 피를 타고 흐르는 줄 알았더니 그 안에서 설마 ‘진짜’가 태어났을 줄은 몰랐다.
“아하하하, 재밌어, 재밌어! 재밌다고!! 겨우 돌연변이 도마뱀 정도를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많은 도마뱀 수인을 봤고 다양한 돌연변이도 만나 보았다.
하지만, 오늘 만난 그것은 돌연변이가 아니었다.
“인생이 이래야 재밌지! 아, 젠장, 젠장. 가지고 싶다. 진짜 드래곤이라니……. 내 컬렉션에 추가하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단정하게 입은 셔츠를 단숨에 풀어 헤친 힐 로즈먼트가 전율하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 해츨링도 되지 못한 새끼 드래곤이라니, 각인은 내가 받아 가겠어.”
드래곤은 세상에 태어나 딱 한 번의 각인을 한다.
갓 태어난 아이가 부모에게 각인하듯, 처음 태어날 때 드래곤의 새끼는 처음 본 생물을 부모로 삼으며 각인을 했다.
그러나, 척 보기에도 방금 본 드래곤은 각인이 되어 있지 않았다.
‘태어날 때 곁에 부모로 삼을 생명체가 아무도 없었다는 거겠지.’
그러면 드래곤은 성장기를 지나 해츨링이 될 때 두 번째로 각인을 할 것이다.
부모를 정하는 것이다.
부모를 정해서 그 부모가 주는 애정을 듬뿍 받으며 드래곤은 성장기를 맞이한다.
부모를 정한 드래곤은 제 부모를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
부모를 정하지 않으면 드래곤은 성장하지 않는다.
부모가 애정을 주지 않으면 드래곤은 성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드래곤에게 부모는 절대적이었다.
드래곤은 사랑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했다.
부모가 죽이라는 이를 죽이고 부모가 살리라는 이는 살린다.
좋은 부모를 만나면 훌륭하게 성장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때로는 악룡이 되어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기록도 있었다.
‘오래전, 에탐 가문의 초대 가주가 가장 강력한 드래곤을 소유해 긴 전쟁을 끝냈다고 들었지.’
드래곤의 피는 에탐 가문의 고질병인 광폭화를 진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가지고 싶어…….”
그가 품에서 에이린이 쥐여 주었던 손수건을 꺼내 느리게 입을 맞췄다.
“하, 그것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만으로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전율했다.
배신하지 않고 의심하지도 않는 오롯이 애정만을 바라는 충성심 강한 아이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가 느리게 드래곤의 설명이 적힌 부분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힐 로즈먼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선명한 녹색 눈동자가 욕망으로 번들거리며 히죽 휘어졌다.
* * *
“……네 이놈!”
“오랜만입니다, 황자 전하. 무사하셨네요.”
만나자마자 삿대질을 하는 에노쉬의 앞에 루실리온이 언제나와 같은 해사한 얼굴로 서서 예를 갖췄다.
“무사? 하찮고 멍청한 놈! 네 눈에는 내가 지금 무사한 것으로 보이냐?”
“네.”
“뭐? 온몸이 퍼즐처럼 박살 나서 간신히 맞춰졌다. 내 네놈의 목을 잘라 성밖에 전시해 두겠어! 얼굴은 보기 좋으니 눈알을 파서 보석을 처박아 주마!”
“칭찬 감사합니다.”
“네놈이 보기엔 이게 칭찬을 들리느냐? 이 뇌도 없는 것.”
“하하.”
에노쉬의 욕설을 해탈한 노인처럼 허허실실 웃으며 무심하게 받아치는 루실리온도 상당한 멘탈의 소유자가 아닐까 싶었다.
“콜록콜록.”
에노쉬가 손수건에 마른기침을 하며 색색거리는 숨을 몇 차례 흘렸다.
“반죽! 네 녀석은 허락도 없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 뭘 하려고 온 거야! 이런 놈을 데려와서는 날 혈압으로 죽이기라도 하려는 것이냐!”
“온다구 해짜나여. 그냥 놀러 왔는데 안 대여?”
“뭐…?…”
“날도 조은데 가치 산책해여. 정원에서 다과도 먹구.”
“……나가고 싶어도 이 머리가 멍청한 돌덩어리만큼 굳은 꼰대들이 날 내보내 주지 않을 거다.”
그럴 줄 알고 에노쉬에게 오기 전에 이미 허락을 받았지.
“후후.”
내가 히죽히죽 웃자 에노쉬가 징그러운 걸 보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더니 내게 베개를 내던졌다.
퍽―
뒤늦게 들린 소리에 고개를 들자 옆에 있던 루실리온이 자연스럽게 날아온 베개를 붙잡고 있었다.
“아.”
휙.
그러더니 가볍게 팔을 움직여 정확히 베개가 날아온 곳으로 도로 내던졌다.
퍽―
“헉…….”
에노쉬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깃털 베개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이…… 무엄한 놈이 감히!”
몸을 부르르 떤 에노쉬가 침대에 있는 베개를 양손에 쥐고 내게 힘껏 내던지기 시작했다.
‘아니, 왜 난데?!’
베개를 던진 건 루실리온이라고!
내가 아닌데!
턱, 턱, 텁.
‘그리고 얘는 왜 이렇게 이걸 잘 막는 건데?!’
루실리온이 내 앞에 날아오는 베개를 단숨에 붙잡아 물 흐르듯 가볍게 다시 에노쉬에게 날려 보내고 있었다.
퍼엉―!
그와 동시에, 최고급 깃털 베개가 허공에서 펑 소리를 내며 터지더니 깃털들이 눈처럼 쏟아졌다.
그렇게 쏟아진 깃털은 정전기에 의해 우리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세 사람이 모두 살아 있는 거위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