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63
‘네가 방금 대놓고 다 얘기했잖아!’
누구나 다 들을 정도의 소리였다.
황제의 측근은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인지 사용인들은 그다지 반응이 없었다.
다만 그들은 에노쉬의 눈짓을 무시한 루실리온에게 경악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납치라니요…? 누가 감히 한 제국의 황자를…….”
황자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은 릴리안 데이지뿐이었다.
“그게 아니라, 영애…….”
당황한 에노쉬가 엉거주춤 일어나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내 얼굴을 확 일그러뜨리며 루실리온을 보았다.
“너……! 조금 귀여워해 준다고 감히 주제도 모르는 하찮은 평민이……! 여봐라, 이놈을 당장 끌고 가서 저 가벼운 혀를 잘라……!”
“죽은 뒤에 솔직해져 봐야 닿지도 않을 겁니다.”
“뭐……?”
“죽기 전에 솔직해지시라는 겁니다.”
나는 급히 루실리온에게 다가가 그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야, 왜 그래!”
“아……, 죄송합니다……. 혹시 불쾌하셨나요? 죄송해요…….”
내가 잔뜩 굳어져 따지자 루실리온의 표정이 순간 흐려지더니 그가 급히 무릎을 꿇고 내 손등에 뺨을 문질렀다.
“미워하지 마세요, 주인님.”
민망해질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루실리온의 모습에 조금 당황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미어하진 않구…….”
“정말인가요?”
“웅, 언능 이러나.”
“감사합니다.”
활짝 웃은 루실리온이 내 손등에 입을 맞추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에노쉬를 흘긋 보았다.
“전하, 필사적으로 되어도 얻을 수 없는 게 인간의 마음이라는데… 죽어 가는 마당에 자존심만 세워서 어디에 쓰실 건가요?”
루실리온이 나를 품에 안았다.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자, 잠깐…, 어, 언니! 저 이틀 뒤에도 올 건데 언니도 올래여?!”
“…내가요?”
릴리안 데이지가 나를 한 차례 보더니 에노쉬를 흘긋 보았다.
에노쉬는 무슨 생각에서 헤어 나오듯 천천히 고개를 들어 루실리온을 노려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그 표정을 본 릴리안 데이지가 입을 꾹 다물었다.
“미안하지만, 저는…….”
“영애가 시간이 된다면, 함께해 주면 좋겠어.”
에노쉬가 릴리안 데이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에노쉬의 말에 릴리안 데이지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에노쉬가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오만하고 고오한, 저 이르게 철든 소년이 자신을 굽힐 줄은 몰랐다.
‘부끄럽고 어떻게 대할 줄 몰라서 철벽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릴리안 데이지가 나를 흘끔 보았다. 내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황자 전하께서 초대해 주신 곳이니 물론 가겠습니다.”
에노쉬가 무슨 말을 덧붙이려고 하기에 내가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가 못마땅하게 날 보더니 입을 다물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가께여!”
나는 급히 루실리온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자 그가 재빨리 몸을 돌렸다.
‘피곤해…….’
사랑의 큐피드 역할은 예정에 없었는데 말이다.
‘모르겠다.’
어차피 망가진 원작, 될 대로 되라지.
* * *
“뭘 그렇게 열심히 보니, 따님.”
“아빠? 약초 책 바여!”
황제가 준 책을 한 차례 눈으로 훑은 에르노 에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요즘 마차 바퀴가 닳도록 황성을 오가더구나. 황자가 마음에 들었니?”
화사하게 묻는 얼굴에서 어쩐지 불온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내 착각일까?
“칭구니까여.”
“친구…….”
“네!”
“꼭 친구가 남자에 황족일 필요가 있을까?”
에르노 에탐이 한층 해사한 얼굴로 다정하게 물었다.
‘……심기가 불편한 것 같은데.’
그동안 그와 함께 지내본 결과 에르노 에탐의 웃음은 확실히 그 종류가 다 달랐다.
정말 기분 좋아서 웃는 경우도 물론 있었지만, 대개는 기분이 나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 웃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물론, 따님이 하고 싶으면 해야지. 강요하는 건 아니란다.”
“네…….”
나는 요즘 에노쉬를 살릴 수 없을까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판타지 세계관인 만큼 분명히 뭔가 특수한 약초가 있을까 싶었던 터다.
‘소설 내용에선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고…….’
내가 말이 없자 에르노 에탐이 침대에 앉았다. 침대가 크게 출렁거렸다.
그가 침대에 엎드려 데굴데굴 구르는 나를 제 무릎에 앉혔다.
“아빠, 에노시는 죽나여?”
“2황자 말이니?”
“네.”
“…….”
에르노 에탐은 단번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분명히 머잖아 죽을 거라고 솔직하게 말해 주었겠지.
하지만, 그는 달라졌다.
그는 내게 어떤 대답을 해 주려고 할 때 긴 침묵을 가질 때가 많아졌다.
그것이 애정임을 알기에 가끔은 속이 간질간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꿈 같네…….’
누군가 내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단어 하나하나를 고심해 준다는 것이 너무나도 꿈만 같았다.
그 사람이 내 아빠라는 사실조차….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매년 고비를 잘 넘겼다더구나.”
한참 만에 흘러나온 에르노 에탐의 상냥한 거짓말에 나는 그저 눈을 감았다.
원작이 이대로 진행된다면 에노쉬는 이번 해 겨울에 죽을 거다.
만약 내가 전해 준 약이 아주 약간 도움이 되었다고 해도 내년을 넘길 순 없겠지.
제대로 증상이 발현하지도 못하고 사라진 기생충은, 에노쉬의 병을 단순히 조금 악화시키는 것이었다.
“식물도감을 보고 있던 건 그 아이의 병을 고치고 싶어서니?”
“네.”
“내 따님이 약초학에도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쪼끔여.”
사실 약초는 아주 좋아했지만, 전생의 내가 그 이외에 다른 취미를 갖지 못했던 탓이긴 했다.
“에노시는 무슨 병이에여?”
“2황자는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거라서 어느 의원도 그 병의 이름을 밝혀내지 못했더구나.”
실제로 에서도 병의 이름이 나오진 않았던 것 같다.
‘식물도감을 들여다본다고 답이 나오진 않겠지.’
내 표정이 꽤 우울해 보였던 걸까?
에르노 에탐이 나를 바로 앉히곤 내 이마에 가볍게 제 이마를 맞대고 가볍게 문질렀다.
“따님.”
“네….”
“어쩔 수 없는 일에 네가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할 필욘 없단다. 나도 한번 수소문해 보마.”
“정말여?”
“그래.”
“간사함미다….”
짤막한 팔로 에르노 에탐을 꽉 끌어안자 그가 나직하게 웃으며 등을 토닥거렸다.
“많은 걸 혼자 끌어안을 필욘 없단다. 넌 쑥쑥 자라기만 해 주면 돼.”
“……네.”
“그러고 보니 혹시 콜린 공작을 알고 있니?”
“헉…, 네.”
리하르트,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분명히 보통 화가 난 것이 아닐 거다. 편지라도 까먹지 말고 쓸걸…….
요즘 너무 정신도 없고 바빠서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낮게 신음했다.
“따님, 그놈……, 아니 그 인간이 죽으면 네게 곤란한 일이 있을까?”
“네……?”
“혹시나 해서 묻는 거란다. 세상엔 혹시 모를 사고가 많이 일어나니까 말이야.”
그거 죽이겠다는 거잖아.
‘갑자기 왜……?’
에르노 에탐이 설핏 웃으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 안 대여…….”
일단 리하르트를 다시 고아로 만들 수도 없고 내 아빠가 살인자인 것도 싫잖아.
에르노 에탐의 손길이 우뚝 멈췄다.
“……안 돼? 왜?”
“치, 칭구인데… 아빠가 업쓰면 슬프자나여…….”
“아, 그래. 그러면 적당히 숨만 붙여 놓은 채로…….”
그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그는 작게 중얼거린다고 한 말이지만, 내 귀에는 아주 또렷하게 잘만 들렸다.
“아빠, 아저씨랑 무슨 일 이썼써여?”
“아저씨……?”
“네.”
“흐음.”
에르노 에탐의 어깨가 살짝 우쭐한 것도 같았다.
그러나 이내 에르노 에탐은 조용해졌다.
짧게 한숨을 내쉰 그는 어린애처럼 인상을 찌푸리곤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아빠?”
내가 바짝 고개를 들이밀자 에르노 에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는 짧게 한숨을 쉬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내가 우리 따님을 입양하고 싶어서 황제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갔는데 콜린 공작이 널 입양하겠다고 절차를 이미 마쳤다더구나.”
“……네?”
콜린 공작이 그랬다고?
분명히 리하르트와 남매가 되지 않겠냐고 제안을 듣기는 했지만, 내가 거기에 답을 하진 않았었다.
그때 대답하지 못한 건 아마도 내가 에르노 에탐에게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죽이거나 사지 불구로 만들어 양육권을 박탈할 예정인데 어느 쪽이 마음에 드니?”
그가 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듯 웃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