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66
시녀 로랑이었다.
내가 맨날 두고 다녀서 나를 찾으러 다니는 데만 선수가 된 그녀는 오늘도 나를 발견해 냈다.
“미아내, 로랑.”
“아니에요, 그러실 수도 있죠. 제가 조금 더 임팩트 있게 기억되지 않은 게 실수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냐, 아냐…….”
그리고 로랑은 내 아픈 부분을 엄청나게 자극했다.
“나 편지 쓸게, 펜이랑 종이 주면 안 대?”
“네,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아가씨가 이제 절 버리고 도망가지만 않으신다면요.”
“안 가께…….”
뒤끝이 길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사실 그녀가 내 전담으로 재배정된 게 벌써 석 달짼데, 나는 맨날 루실리온이랑 이리저리 돌아다니곤 했으니 말이다.
‘근데 루실리온은 대체 언제 나갈 생각인 거지?’
이러다가 정말로 눌러앉는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아, 편지 쓰는 김에 리하르트에게도 써야지.’
돌아온다던 애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솔직히 화가 많이 났을 것 같았다.
‘답장이 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내가 가볍게 여긴 만큼, 리하르트는 이미 날 잊었을 수도 있으니까.
내 잘못이니까 기대는 하지 말자.
“아가씨, 가져왔어요!”
밝은 얼굴로 달려온 로랑이 내게 물건을 내밀었다.
나는 로랑이 가져다준 크레파스와 편지지를 보며 잠시 말문이 막혔다.
“로랑…, 나 펜 줘…….”
“앗, 하지만 그게 더 귀여운…….”
“으응?”
“아, 아닙니다……. 일단 크레파스로 먼저 연습을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굳이 펜도 아니고 크레파스로?
로랑이 두 손을 모아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그립감은 이게 더 좋은데…….’
작은 손아귀엔 크레파스를 주먹 쥐어 잡는 것이 훨씬 편안하기는 했다.
나는 검은색 크레파스를 쥐고 편지지에 글자를 적었다.
‘일단 리하르트한테…….’
또 까먹기 전에 먼저 쓰자.
삐뚤빼뚤하고 큼직한 글씨가 편지지 세 줄을 꽉 채웠다.
‘아이씨…….’
왜 이렇게 크기 조절이 잘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크레파스가 굵어서 그런지 글자 크기가 한층 더 큰 느낌이다.
불만스러운 기분에 꼬리가 멋대로 움직여 탁탁 바닥을 내리쳤다.
‘앗…….’
감정이 꼬리로 드러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하다.
“크흡…….”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던 로랑이 소매에서 무언가 둥근 것을 꺼냈다.
보아하니 요즘 저택 내에 자주 보이는 영상석이나 사진석인 모양이었다.
“아가씨, 저 따악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으응……?”
“따악, 한 장만요….”
로랑이 두 손을 모아 잡고 간절하게 말했다.
‘내 사진을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거지…?’
내 몸이 꽤 귀엽기는 하지만….
‘아, 이게 그 육아물 소설에서 아버지의 팔불출…, 뭐 그런 건가?’
에르노 에탐은 나를 꽤 좋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로랑이 저렇게 필사적이구나.’
에르노 에탐이 분명히 하루에 한 장씩 사진을 제출하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갠차나.”
에르노 에탐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저렇게 두 손까지 모아 잡고 부탁을 하는 걸까?
‘아빠가 아빠여서 다행이지, 상사였으면 나도 싫었어.’
하하, 하물며 지도 교수였다고 해도 싫었을 거다. 비위 맞추느라 얼마나 고생했을는지.
“정말요?”
“웅.”
엎드려 있는 사진쯤이야, 뭐.
나는 다시 크레파스를 붙잡고 천천히 글씨를 다시 써 내려갔다.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 글을 쓰는 동안 뒤에선 흥분에 가득 찬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딱 한 장이야, 로랑. 딱 한 장이라고…. 제대로 찍어야 해. 이 각도보단 저 각도가…… 아니, 이쪽에서 찍어야 꼬리 부분이…… 꼬리가 탁탁…. 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뭉개진 발음이 속사포처럼 흘러나와서 살짝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나, 괜찮은 거 맞지?’
위험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괜한 착각이겠지?
로랑은 내가 여러 장의 편지를 쓰는 동안 한참이나 무언가를 주문처럼 외우다가 이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내 편지를 잘 갈무리해서 가져갔다.
‘……무섭네.’
나는 편지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리하르트 콜린은 그야말로 우울의 극치를 찍는 중이었다.
처음으로 제 것처럼 여겨졌던 가족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결국엔 자신을 버렸다.
그 사실이 미치도록 충격적이라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찾은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해도 리하르트는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련님, 편지가 왔습니다.”
“필요 없어.”
또 귀찮은 사교계 편지나 아카데미 입학 권유 편지 따위일 것이다.
그런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귀족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저, 그저…….
‘가족을 원했을 뿐인데.’
내가 주운 내 가족이 사라졌다.
내가 살려서, 내 곁에 있겠다고 한 가족이.
“돌려보낼까요…? 에탐 가문에서 왔는데요.”
“……뭐?”
“에탐 공작가에서 온 편지입니다. 아, 무슨 선물도 같이 동봉되어 있었어요.”
살짝 머리가 멍해졌다.
갑작스럽게 생긴 제 아버지, 콜린 공작이 전해 주었던 에이린의 소식 중에는 에탐에 관련된 것도 분명히 있었다.
지금 에이린이 그곳에 있다고 했다.
“발신인이……, 아! 에이린 님이라고 하네요.”
“내놔!”
리하르트가 시녀에게서 빼앗듯 편지를 받았다.
시녀가 잠시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허리를 숙이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용서하지 않을 거야, 못된 뱀뱀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리하르트는 조급한 사람처럼 급히 편지 봉투를 뜯었다.
겨우 저만큼 썼는데 편지지 한 장이 꼬박 닳았다.
크레파스로 쓴 큼직한 글씨를 마저 읽고자 리하르트는 다급히 다음 편지지를 펼쳤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말이었다.
리하르트는 두 번째 장에서 느낀 감정을 애써 삭이며 꼬깃꼬깃 접힌 다음 장을 펼쳤다.
“멍청한 뱀뱀이…… 연락이 너무 늦잖아?”
리하르트가 얼굴을 확 구기며 작게 중얼거렸다. 눈물이 방울방울 맺힌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버려진 줄로만 알았다.
주먹을 쥐고 눈을 슥슥 닦은 리하르트가 코를 훌쩍이며 마저 다음 장을 읽었다.
눈이 나쁜 사람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글씨는 정말로 컸다.
마지막 장까지 읽은 리하르트가 훌쩍였다. 정말 버림받은 줄 알고…….
‘다음에 만나면 가둬 두려고 했는데.’
그래도 버린 것이 아니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리하르트가 뒤에 있는 시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물! 줘.”
“아, 네!”
시녀가 포장을 잘 뜯어 상자를 열어 내밀었다.
안에는 작은 나무 조각이 들어 있었는데 생김새가 뱀뱀이 버전 에이린을 똑 닮아 있었다.
‘뭐야, 이 기분 나쁠 정도로 닮은 건……?’
뱀뱀이 버전 에이린을 원하는 만큼 주물럭거렸던 리하르트는 나뭇조각을 만지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분명히 에이린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비율이 틀렸잖아?’
몸과 꼬리의 비율도 틀렸고 무게도 다르다. 심지어 등에 살짝 있던 오돌토돌한 두 개의 종기(?)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 이건…….”
옆에서 지켜보던 시녀의 말에 리하르트가 눈을 샐쭉하게 떴다.
“뭐야, 아는 거야?”
“아…… 그게…….”
시녀가 당황한 듯 눈을 도륵도륵 굴렸다.
그녀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리하르트가 눈을 매섭게 치켜뜨고 으름장을 놓았다.
“뭔데?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 네 시중 안 받을 거야.”
“예? 아, 아니 근데 하지만 그건 좀…… 엄청 개인적이고 엄청 사생활인 거라서…….”
당황한 시녀가 횡설수설 말을 얼버무리자 리하르트의 눈이 한층 뾰족해졌다.
“좋아, 비밀로 할 테니까 어디 말해 봐.”
“아, 진짜 안 되는데……. 공작 각하한텐 절대 절대로 비밀이에요. 아셨죠?”
“……좋아, 뭔데?”
리하르트가 콧김을 훅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사실은…….”
시녀가 울상인 얼굴로 운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