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67
운을 뗀 시녀는 성마르게 얼굴을 몇 번 쓸더니 손바닥에 얼굴을 한 번 묻고 심호흡까지 크게 했다.
“그게…… 뒤에, 그런 게 있는데요…….”
“그런 거?”
“그, 콜린 공작 각하나…… 에탐 공작 각하 같은 분들을…… 그, 모시는…… 곳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모셔?”
“그러니까…… 그런 분들의 인형이나 사진이나 모형이나 그분들이 사용했던 제품과 같은 모델을 값싸게 만드는 둥…… 그냥…… 좋아하는 분에 관한 것을 열성적으로 모으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시녀가 한숨을 푹 쉬며 목걸이 안쪽에서 로켓 펜던트를 꺼냈다. 로켓 펜던트 안에는 콜린 공작의 사진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날카로운 시선이 아닌, 조금은 부드러운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주 미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간 표정이었다.
“이게 한정판 ‘미카엘 콜린’ 공작 각하 컬렉션으로 7개만 나온 로켓 펜던트 중 하나예요. 이런 것들을 모아 두고 파는 곳이 있어요.”
“……너 아버지 좋아해?”
리하르트 콜린이 충격적인 얼굴로 시녀를 보았다.
시녀가 당황해서 고개를 냅다 저었다.
두 손으로 손사래까지 쳤다.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더니 몸을 낮춰 리하르트 콜린과 시선까지 맞췄다.
“그, 그게 아니라……. 그런 거 있잖아요! 멋진 인형은 모아 두고 싶잖아요? 그런 것처럼 콜린 공작 각하는 잘생기셨고 아주 멋지시니까…… 그걸 본뜬 인형이나 이런 멋진 장면을 사진으로 만들어서 동경하는 사람들끼리 공유한다고 해야 할까요……?”
설명하던 시녀가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벌겋게 물든 얼굴로 눈물이 망울망울 맺혀 있었다.
수치심 때문인지 귓불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를 보며 리하르트가 팔짱을 끼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은 아니라는 거지?”
“네! 당연하죠. 마님께서도 계시고 도련님도 이렇게 계시는걸요.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이나…… 그, 선망! 뭐 그런 거예요.”
“그래?”
리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인데?”
“거기에…… 이런 시리즈도 있거든요.”
“이게?”
“네, ‘에이린’이라는 수인분 맞죠? 요즘 한창 ‘마켓’의 신흥 인기인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굿즈 수도 조금씩 늘어나더라고요.”
“이런 게 있다고?”
리하르트 콜린이 제법 정교한 도마뱀 모양의 나뭇조각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 봉제 인형도 있고 최근 사진도 있어요. 판매자 등록을 하면 직접 만들어 파실 수도 있고요.”
“……그래?”
리하르트가 눈을 살짝 아래로 내리깔았다.
‘뱀뱀이가 아예 없으면 외로우니까…….’
푹신푹신한 인형 하나 정도는 사도 되지 않을까?
“좋아, 안내해.”
“……네?”
“안내해, 가 봐야겠어.”
오만한 소년이 턱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안내하라고, 그 마켓인가 뭔가.”
설마 제가 모시는 도련님을 거기에 데려갈 줄은 몰랐던 터라 시녀는 울상인 얼굴로 입술만 뻐끔거렸다.
“안 해?”
사납게 눈을 치켜뜨는 소년의 으름장에 시녀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훗날, 리하르트 콜린은 ‘하트’라는 닉네임으로 ‘마켓’에서 유명세를 떨친다.
* * *
“에이린.”
아침부터 찾아온 칼란 에탐이 뿌듯한 얼굴로 내게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부탁한 거 다 됐어!”
“벌써……?”
“응, 벌써!”
아직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신기한 얼굴로 그를 보자 칼란 에탐이 헤실거리며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
나는 냉큼 그를 확 끌어안았다.
그러자 칼란 에탐이 나를 마주 끌어안곤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조금 어렵고 복잡하긴 했지만, 못할 건 아니었어! 네 오라버니는 대단하니까!”
“응……! 오라버니 짱이야!”
칼란이 히죽히죽 웃었다.
“그렇지? 내가 짱이지? 실리안은 아무것도 못 했어―. 다 내가 했다고.”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내리치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를 안고 후다닥 정원 뒤로 향했다.
뒤뜰에는 작은 화단이 새하얗고 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안에는 새하얀 빙하가 단단하게 얼어 있고 그 위에는 새하얗게 서리가 앉은 꽃이 위풍당당하게 피어 있었다.
손을 대면 녹을 것처럼 살짝 투명하기까지 한 이파리를 가진 아름다운 꽃이었다.
한 송이도 아니고 화단에 가득 핀 설빙화는 족히 백 송이는 넘을 것 같았다.
설빙화 백 송이가 흐드러지게 핀 광경은 그야말로 말문이 턱 막힐 정도였다.
“약속은 지키기로 했다!”
“응! 오늘부터 밤에 꼬박꼬박 오라버니 방으로 가께.”
“좋아……! 내가 따뜻한 우유 준비해 둘게.”
칼란 에탐이 입꼬리를 바들바들 떨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 송이라면 연구를 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
“근데 이건 뭘 하려고?”
“움, 무슨 꽃의 씨앗을 만드 꺼야.”
“꽃의 씨앗?”
칼란 에탐이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뭐 어떻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힘내! 나는 조금 자야겠다.”
“응, 고마어!”
설마 이렇게까지 해 줄 줄 몰라서 한 번 더 그를 끌어안자 칼란 에탐이 활짝 웃었다.
“내가 더 고맙지. 네가 도와준 일이 더 많은데.”
칼란 에탐은 정말 피곤한 모양인지 손을 휘휘 저으며 금세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나는 염옥화와 심해화를 그야말로 무더기로 받을 수 있었다.
칼란 에탐의 설빙화 백 송이 따위는 그야말로 귀여운 수준이었다.
“…….”
“왜, 마음에 안 드냐?”
의기양양하게 나를 데리러 왔던 미르엘 공작이 무섭게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아, 아녀.”
에탐 가문의 공터 한쪽에 불바다와 물바다가 생겨났다.
특수한 마법이 걸린 듯 투명한 유리 상자에 담긴 거대한 바다와 거대한 용암에 절로 말문이 막혔다.
“하라부지…… 요거….”
“화산을 옮길 수는 없으니 용암을 옮겼단다. 안에는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마법을 걸었지.”
“…….”
“이건 그냥 바다를 퍼 왔단다. 간단한 작업이었지. 조금 멀어서 시간이 걸렸을 뿐.”
미르엘 공작이 별것 아니라는 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심해를 그대로 떠온 것처럼 정말로 상자 안에는 심해어로 보이는 물고기도 있었다.
그리고 그 군데군데에 내가 찾는 꽃이 보였다. 문제는 내가 꺼낼 수가 없다는 거지.
“여기 버튼 보이느냐?”
내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미르엘 공작이 나를 투명한 유리 상자의 한쪽 벽면으로 데리고 가더니 어딘가를 가리켜 보였다.
손바닥을 올릴 수 있는 작은 센서 같은 곳이 있었다.
“여기에 손을 올리면 꽃이 한 송이씩 나올 거란다.”
‘…싱싱한 꽃 자판기가 있네.’
과학이 발전한 21세기 대한민국보다 더 미래 같은 판타지 세계에서 나는 그저 말문이 막혔다.
“근데 이걸로 뭘 하려는 거냐?”
“꽃을 만들 거에여!”
“꽃? 무슨 꽃을?”
“드라고니아여!”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르엘 공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라부지?”
“…드라고니아 약초는 만병통치약으로 통하지, 그것으로 2황자를 살리고 싶은 것이냐?”
“네.”
“확실히 그거라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네, 안 댈지도 모르지만여.”
미르엘 공작은 나를 내려다보며 몇 차례 입술을 달싹이곤 그저 할 말을 삼키며 설핏 웃었다.
그러고는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잘됐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다정했지만, 어쩐지 씁쓸하게도 보여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아직 미숙한 어린아이에게 다정한 용기를 북돋아 주는 듯한 태도였다.
“네.”
나는 가만히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나와 릴리안은 거의 매일매일을 만나서 꽃에 대해 공부하고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를 또 심기를 반복했다.
그사이에도 에노쉬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만, 루실리온이 종종 혼자서 황성으로 불려 가는 일은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몰라도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에노쉬를 만나러 갔다.
나나 릴리안이 전해 주는 선물이나 편지도 꼬박꼬박 챙겨 갔다.
그사이 나는 리하르트와 자주 편지를 주고받아야 했고 칼란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와 함께 잠을 잤으며 힐 로즈먼트에게 수업을 받았다.
가을이 막 다가오고 있을 때쯤, 염옥화와 설빙화를 수정하는 데 성공한 우리는 ‘설옥화’를 얻는 데도 성공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이 오기 전, 우리는 ‘설옥화’와 ‘심해화’를 수정하는 데에 또한 성공했고 100개의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겨울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마침내 드라고니아의 씨앗을 얻었다.
기나긴 고생의 결실이었다.